나홀로 아름답게

나홀로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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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8년, 결혼 3년. 명의상의 남편은 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앞에 놓인 이혼 합의서를 보며 남지수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웃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뱃속의 아이를 데리고 혼자 아름답게 떠났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남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해 나서주기도 하고 벚꽃도 따주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 남지수는 참다못해 소리쳤다. “꺼져.”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자기야, 우리 결혼하자.” 남지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전남편과 전처니 재결합이라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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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사모님, 이혼 합의서입니다. 한번 훑어보시고 문제없으면 서명해 주세요.”남지수는 눈앞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보며 뇌에서 윙 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사모님?”그녀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자 주민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정신을 차린 남지수는 망연하게 물었다.“하승우가 나랑 이혼한대요?”마스크를 쓴 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드러낸 그녀의 얼굴엔 풀리지 않는 슬픔이 가득한 걸 보며 주민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네, 하 대표님께서 어르신이 돌아가셨으니 이 결혼은 더는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사모님과... 이혼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남지수는 심장이 아파져 오는 걸 느꼈다. 곧 머리 위로 높이 솟은 칼날이 마침내 떨어지는 듯한 해탈감이 찾아왔다.3년 전 하승우 할머니의 병세 때문에 외모가 망가진 남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는 하씨 가문에 시집가 하승우의 아내가 되었다.하지만 3년 동안 그녀는 하승우와 두 번 만났을 뿐인데, 한 번은 결혼식 날, 또 한 번은 한 달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였다.지난 3년 동안, 하승우는 단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는데 아내인 그녀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하승우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그들이 이혼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사모님...”남지수가 몇 분 동안 침묵하다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펜을 들고 깔끔하게 서명하자 주민우는 황급히 주의를 주었다.“합의서 항목을 아직 확인하지 않으셨어요...”“필요 없어요.”남지수는 펜 뚜껑을 덮고 이혼 합의서를 앞으로 밀었다.그녀는 하승우가 그녀에게 얼마를 나누어 주려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 하씨 가문이 그녀를 찾아가 할머니의 병 때문에 하는 결혼이라고 밝힌 후 그녀에게 많은 보상금을 주었으니 그녀는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게다가 하승우의 돈 때문에 시집간 것도 아니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때 하승우를 좋아하게 되었고 무려 8년 동안 좋아하고 있었다. 3년 전 하승우와 결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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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지수야, 속상하지 마. 우리 나가서 쇼핑하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임연아가 말했다.“그래, 정리하고 나갈게.”삶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 남지수는 잠시 정리하고 나서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성화 거리로 간 그녀는 임연아와 함께 명품 쇼핑몰에 들어갔다.남지수는 171의 큰 키에 균형 잘 잡힌 날씬하고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피부에 공기가 오래 닿을 수 없어 마스크까지 쓰고 있지 않았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쳐다봤을 것이다.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가방 코너에 들어섰다. 임연아는 이혼을 축하하기 위해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했지만 남지수는 이를 거절했다. 그래서 임연아는 그녀를 강제로 끌고 올라갔다.“지수야, 저기서 고르자. 직원 언니가 신상이 많이 나왔다고 하니까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봐봐.”임연아는 앞쪽의 샤넬 코너를 가리키며 명쾌하게 말했다.남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범하게 카운터를 향해 걸어가다 1초 뒤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멈춰 섰다.키가 180정도 되는 남자가 검은색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눈을 지그시 감은 무심한 모습이었지만 이런 시큰둥한 모습은 영화에서나 나올듯했다.남지수는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했다. 여러 회사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있는 남편 하승우가 왜 대낮에 백화점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검은 웨이브 머리를 한 예쁜 여자가 다가와 하승우의 팔을 잡고 진열대에 있는 빨간 가방을 가리키며 애교를 부렸다.“승우 씨, 저거 갖고 싶어. 오늘 입은 치마랑 잘 어울리지 않아?”하승우는 흘끗 쳐다보고는 직원에게 말했다.“저거 포장해.”“...”거의 꽝 소리와 함께 남지수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그녀는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의 옆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간 줄도 몰랐다.“저 여자가 누구야?”임연아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하승우가 밖에서 사귀는...”임연아는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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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3년 동안 그녀는 하승우에게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열심히 요리를 연구해 일 끝나면 따뜻한 음식을 먹으라고 매일 하승우 회사에 들러 도시락을 배달했지만 하승우는 그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았고 얼굴도 보기 싫어했다.그녀는 힘들게 번 원고료로 하승우에게 옷을 여러 벌 사주었지만 나중에 주민우가 그녀에게 그 옷들을 한 번도 입지 않아서 구석에 먼지가 쌓일 정도로 쌓아두었다고 돌려서 말해주었다.이런 일들에 남지수는 낙담했고 자신이 못생겨서 하승우가 그러는 줄 알았다.결혼 전 그녀의 사진을 본 하승우는 수수한 얼굴에 흉악한 칼자국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보기도 역겨워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좀 예뻐져서 다시 하승우를 찾아가려 했다.하승우 자신은 모든 것이 톱급이었는데 그와 비슷한 여자만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3년 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승우에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남지수 씨도 쇼핑하러 왔어요?”허수영은 손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남지수가 대답하려 할 때 임연아가 끼어들었다.“남지수 씨 아니고 사모님이에요. 자중해 주세요.”남지수가 오전에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아직 법원에 가지 않았으니 임연아의 말이 맞긴 했다. 순간 허수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승우는 남지수에게 덤덤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이리 와봐.”남지수는 하승우가 그녀를 찾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잔뜩 긴장한 채 하승우와 함께 옆 복도로 나왔다.그녀를 내려다보던 하승우의 목소리는 한껏 차가웠다.“친구 관리 잘해.”남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임연아에게 아주 무례한 말이었지만 방금 임연아가 그 여자를 계속 겨냥했고, 하승우는 사랑하는 여자가 천대받는 걸 보았으니 기분 나빠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했다.“알아. 아까 연아가 오해해서 그래. 다른 뜻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말을 마친 남지수는 평온한 자태를 유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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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저택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라는 하봉주의 전화를 받은 남지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와 보니 하승우도 있었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마 그녀를 피했기 때문일 것이다.남지수는 하승우를 본체도 하지 않은 채 곧장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할아버지, 저 왔어요.”“아이고, 우리 지수 왔어. 어디 좀 보자...”하봉주는 손을 내밀었다.“아까 오종훈 할아버지가 애가 생기는 부적을 가져왔어. 너랑 승우는 언제쯤 아이를 가질 예정이야? 할아버지는 증손자를 안고 싶어...”‘아이?’심리적 작용 때문인지 남지수는 갑자기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가까스로 가라앉혔다.테이블에 놓인 송자 관세음보살을 보며 남지수의 입가에는 쓴맛이 돌았다.‘곧 이혼할 텐데 아기가 있을 수가?’“할아버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마침 하승우도 있었고 또 결판내야 할 일인 걸 번연히 알기에 남지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솔직히 우리 둘은 이미 이...”“콜록, 콜록콜록...”하봉주는 마치 폐를 뱉어낼 것처럼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했다,깜짝 놀란 남지수와 하승우는 하봉주를 부축해 침실로 들어갔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남지수는 걱정스러워 물었다.“난 괜찮아. 그저 너무 외로워서 그래. 너의 할머니가 떠난 후 이 텅 빈 저택에 홀로 남게 되니... 너희들은 임신 준비를 할 겸 여기서 한동안 나랑 함께 지내...”하봉주의 간절한 눈길을 보며 바로 앞에서 거절하지 못한 남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방으로 돌아온 후 남지수는 하승우에게 물었다.“우리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언제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거야?”전에는 주민우가 이혼 합의서를 가지고 남지수에게 사인하라고 한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문에 기대어 서 있는 하승우의 얼굴은 불빛에 드리워져 희미해 보였다.“할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나온 후 상황을 보면서 얘기하도록 해. 지금은 몸이 안 좋아.”“알았어.”하씨 가문에 시집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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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남지수는 이불을 움켜쥐고 조용히 말했다.“다 버린 줄 알았어.”남지수는 고개를 돌려 하승우를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의 놀란 기색을 알아볼 수 있었다.잠시 후 그의 의문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멀쩡한데 왜 버렸겠어.”남지수는 입을 꼭 다물고는 대꾸하지 않았다.도시락을 줄 때마다 그는 남지수를 만나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비서들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쏟아버리는 것도 직접 보았었다.“왜 말이 없어?”하승우의 목소리는 야밤의 첼로처럼 감미롭게 들려왔다.남지수도 조용히 말했다.“별거 아니야. 그냥 자.”남지수는 하승우가 왜 그녀가 만든 국을 먹었는지 고민하기 싫었다. 어쨌든 이혼을 앞둔 그들에게 있어 이런 고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생활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아침, 날이 훤히 밝았다.남지수가 얼떨결에 깨어났을 때 침대 위에서 윙 하는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들려왔다.자기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보니 주영배 감독이 보내온 카톡 문자였다.[여주인공 맡을 배우가 결정됐어요. 새로 데뷔한 배우인데 괜찮은지 확인해 보세요.]남지수는 시나리오 작가였는데 새로 쓴 ‘효의전’이 촬영을 앞두고 캐스팅 작업 중이다.사진을 열어보니 웨이브 머리를 한 예쁜 여자가 보였는데 바로 어제 백화점에 만난 하승우의 첫사랑, 허수영이였다.몸을 휘청거리던 남지수는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윙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저편 하승우의 휴대전화도 울렸다.개인 휴대전화여서 기밀이 없다 보니 화면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남지수는 허수영이 보낸 문자를 봤다.[승우야, 나 임신했어. 우리 곧 아기 가질 거야!]남지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이를 가졌어?’명치끝에서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욕실 문이 펑하고 열리며 아랫도리에 수건을 두른 하승우가 물기를 머금고 걸어 나왔다.황급히 등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이불을 꽉 움켜쥔 남지수는 하승우에게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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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괜찮아?”깜짝 놀란 남지수는 무심코 물었다.하승우는 말이 없었고 그 뒤로 하봉주가 지팡이를 짚고 나와 남지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지수야, 하씨 가문에 이런 불효자가 태어날 줄 생각지도 못했어. 너한테 면목 없네어!”하승우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수영이 아이가 태어나면 하씨 족보에 올릴게요.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침 생겼어요.”“너, 너 일부러 이렇게 말해서 나를 화나게 하려는 거지! 썩 꺼져...”하봉주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하승우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갔는데 남지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써 참으며 남지수는 하봉주를 침실로 모셔다드린 후 장영자를 한쪽으로 끌어당겨 나지막이 물었다.“무슨 일이세요?”“도련님께서 아침에 회장님께 이미 사모님과 이혼했고 또 허수영 씨가 임신했다고 말했어요. 회장님께서는 단단히 화나셨어요.”남지수는 멍해졌다.‘허수영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할아버지께 말했어?’아마도 허수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명분 없는 억울함을 당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하지만 할아버지 건강은...”“네. 회장님 건강검진 보고가 나왔는데 큰 문제는 없고 앞으로 식단을 조절하면 된다고 했어요.”남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효자인 하승우가 하봉주의 건강이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렇게 거역하지 않았을 것이다.하봉주의 건강을 고려하여 저택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생각난 남지수는 즉시 하승우와의 ‘집’으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챙겨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별장으로 돌아온 남지수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캐리어를 찾아와 물건을 하나씩 집어넣었는데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이 마음에 전해졌다.곧 3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게 되는데 이사를 하면 앞으로 하승우와 아무런 가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지수는 슬퍼졌다.남지수는 허수영이 떠올랐는데 하봉주가 말한 ‘그 여배우’가 혹시...‘그럼 허수영이 바로 하승우의 전 여자친구였단 말인가? 예전에 두 사람이 교제할 때 할아버지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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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공기가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남지수의 무릎은 그의 뻣뻣한 아랫배를 누르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그의 단단한 가슴을 떠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눈을 가린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당장 그의 몸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자 정말 꼼짝도 할 수 없었다.지금 그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조금 억울했다.분명히 정면으로 부딪친 사람이 그녀였고, 지금 옷을 입지 않아서 차가운 공기에 피부가 닿아 소름이 돋은 사람도 그녀였다.그녀는 기회를 타서 뭔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장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승우가 왜 소리친단 말인가?이런 생각에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이렇게 움츠러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눈 감아. 곧 여기를 떠날 테니.”말을 마친 남지수는 손을 들려 했다. 하승우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속눈썹을 바르르 떨고 턱을 팽팽하게 조이고 있는 것을 본 그녀는 이내 그의 몸에서 내려와 침실을 향해 달려갔다.하승우는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그는 ‘펑’ 하는 침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고개를 숙여 벨트를 본 그는 얼굴이 어두워졌다.안방에서 남지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옷을 입고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는 거울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그녀는 의사와 얘기해 봤는데 얼굴은 치료되었지만 새로 자란 연약한 피부는 아직 공기와 접촉할 수 없고 3개월 후에나 가능하므로 그녀는 3개월 동안 마스크를 써야 했다.거실로 나와 하승우를 다시 만났을 때 둘 다 어색해했다.결혼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던 하승우가 오늘 모처럼 돌아왔는데, 이런 난감한 상황에 부딪혀 두 사람 모두 불편했다.남지수는 등을 돌리며 무심히 물었다.“왜 왔어?”하승우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물건 가지러.”남지수는 멍해졌다.뭘 가지러 왔냐고 물으려는데 하승우가 침실 바닥에 열린 캐리어를 보고 눈을 들어 물었다.“이사 가?”남지수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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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남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어르신께서 이혼 신고를 철회하셨다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게다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왜 스타를 차별하는 거지? 스타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데.’“할아버지, 그러지 마세요.”그녀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다.“말 한마디 없이 이혼한 건 저와 승우 씨의 잘못이지만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같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었어요.”마지막 말을 마친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그녀와 하승우는 어울리지 않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도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사이였으니 말이다.결혼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집에 가지 않고 그녀를 별장에 홀로 남겨둔 하승우는 일찍이 그녀를 은성시 상류층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하봉주도 그녀의 억울함을 알고 곧 말투가 누그러져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수야, 승우가 너에게 미안한 거야. 너 3년 동안 정말 억울한 걸 할아버지도 알아...”그들이 대놓고 또는 은밀히 하승우가 일 년 내내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언급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미안한 표정이었다.남지수는 입술을 꼭 깨문 채 예전처럼 하봉주 앞에서 하승우를 감싸주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하봉주의 말이 끝나자 그녀는 복도로 나와 하승우에게 전화를 걸어 하봉주의 이혼 합의 파기에 대해 알려주려고 했다.그러나 전화를 세 번이나 걸었지만 한 통도 연결되지 않았는데 하승우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남지수는 생각 끝에 하봉주를 찾아가 정말 하승우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 누구세요?”발신지는 은성시였는데 장난 전화 같은 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남지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전화한 사람이 허수영일 줄은 몰랐다.“남지수 씨, 저예요. 어제 스타 플라자 샤넬 코너에서 만났는데 기억나요?”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듣기 좋아서 남지수는 잠시 멍해졌다.어제 샤넬 매장에서 만난 사람은 단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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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남지수가 도착했을 때 허수영은 이미 창가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허수영의 외모는 연예계에서는 중간 정도이지만 그녀는 매우 요염했다. 항상 웨이브를 넣은 머리를 어깨에 드리우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어 여성스럽고 매력적이었다.남지수는 허수영의 맞은편에 앉으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허수영 씨, 말씀하세요.”방금 허수영이 전화로 그녀와 하승우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해서 남지수가 나온 것이다.그녀는 이것이 자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승우의 과거가 정말 궁금했다.허수영이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에는 학창시절 흰 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하승우와 그녀의 사진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풋풋한 모습이었다.“남지수 씨, 저는 승우랑 대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못마땅하게 여기셔서 승우랑 헤어지라고 강요했어요. 승우가 나랑 헤어지기 싫어해서 가족과 사이가 틀어질 뻔했죠...”“나중에 우리는 서로 사정이 생겨서 헤어졌지만 그 이후로 승우는 다른 여자를 만난 적이 없어요. 몇 년 동안 계속 날 기다려왔어요. 정말 진심으로...”남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이 표정을 알아볼 수 없도록 했지만 벌써 가슴이 먹먹했다.“남지수 씨,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요?”허수영이 궁금해서 물었다.마스크를 쓴 남지수의 표정이 보아지 않는 허수영은 그 시각 남지수의 심정이 매우 궁금했다.고개를 든 남지수의 맑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저한테 그런 말 하는 이유가 뭐죠?”허수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온기가 전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남지수 씨, 할아버지께 이혼 신청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하신 거죠? 승우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지 않아요. 이렇게 해도 소용없어요.”남지수는 자세를 고쳐앉았다.‘허수영은 할아버지가 이혼 신청을 철회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이것보다 중요한 건 허수영이 그녀를 모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지수는 담담하게 말했다.“허수영 씨, 쓸데없는 고민을 했네요. 전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허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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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금니를 꽉 깨문 허수영은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곧 진정하고 티슈를 몇 장 뽑아 부드럽고 우아하게 얼굴에 묻은 커피 자국을 닦았다.“남지수 씨, 제가 한 말이 사실이 맞는지는 남지수 씨가 잘 알 거예요. 저는 내연녀가 아니에요. 믿을 수 없으면 승우 씨에게 직접 물어봐요.”말을 마친 허수영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남지수를 힐끗 보고는 가방을 들고 우아하게 떠났다.임연아는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독살스럽게 욕했다.“내연녀 주제에 떳떳하게 보이려고 발광하네. 염치없어.”남지수는 입술을 질끈 씹은 채 말이 없었다.허수영은 하승우에게 자기가 내연녀가 맞는지 물어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승우가 자기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고 또 두 사람의 감정이 좋기 때문이다.남지수는 갑자기 아랫배를 움켜쥐며 괴로운 듯 말했다.“연아야, 나 몸이 불편해...”“너 왜 그래?”임연아는 깜짝 놀라 남지수의 팔을 부축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갑자기 영문이 없이 울렁거렸지만 불과 몇 초 만에 사라졌다.어려서부터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았던 남지수는 배가 불편한 건 늘 있었던 일이라 개의치 않았다.이때 임연아의 고객이 돌아오자 그녀는 남지수에게 배가 계속 아픈지 여러 번 확인한 후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러 갔다.남지수는 택시를 타고 별장에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여보세요?”“남지수. 오후에 수영이에게 무슨 말을 했어?”하승우는 은근한 화를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남지수는 잠시 멍해졌다가 다시 신발을 벗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왜 그래?”“자궁 수축으로 병원에 입원했어. 하마터면 아이를 잃을 뻔했어.”주춤하던 남지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몇 초가 지나서야 남지수는 겨우 말을 할 수 있었다.“지금 천해 병원에 입원했어? 방 번호를 보내줘.”천해 병원이 그 커피숍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고 허수영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남지수가 이렇게 물었다.곧 하승우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남지수는 신발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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