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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남지수는 이불을 움켜쥐고 조용히 말했다.

“다 버린 줄 알았어.”

남지수는 고개를 돌려 하승우를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의 놀란 기색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의문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쩡한데 왜 버렸겠어.”

남지수는 입을 꼭 다물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줄 때마다 그는 남지수를 만나주지도 않았고 심지어 비서들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쏟아버리는 것도 직접 보았었다.

“왜 말이 없어?”

하승우의 목소리는 야밤의 첼로처럼 감미롭게 들려왔다.

남지수도 조용히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자.”

남지수는 하승우가 왜 그녀가 만든 국을 먹었는지 고민하기 싫었다. 어쨌든 이혼을 앞둔 그들에게 있어 이런 고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생활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아침, 날이 훤히 밝았다.

남지수가 얼떨결에 깨어났을 때 침대 위에서 윙 하는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자기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보니 주영배 감독이 보내온 카톡 문자였다.

[여주인공 맡을 배우가 결정됐어요. 새로 데뷔한 배우인데 괜찮은지 확인해 보세요.]

남지수는 시나리오 작가였는데 새로 쓴 ‘효의전’이 촬영을 앞두고 캐스팅 작업 중이다.

사진을 열어보니 웨이브 머리를 한 예쁜 여자가 보였는데 바로 어제 백화점에 만난 하승우의 첫사랑, 허수영이였다.

몸을 휘청거리던 남지수는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저편 하승우의 휴대전화도 울렸다.

개인 휴대전화여서 기밀이 없다 보니 화면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남지수는 허수영이 보낸 문자를 봤다.

[승우야, 나 임신했어. 우리 곧 아기 가질 거야!]

남지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를 가졌어?’

명치끝에서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

욕실 문이 펑하고 열리며 아랫도리에 수건을 두른 하승우가 물기를 머금고 걸어 나왔다.

황급히 등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이불을 꽉 움켜쥔 남지수는 하승우에게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지만 너무 힘주어 뼈마디까지 하얘진 남지수를 보며 하승우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왜 그래?”

남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울먹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 것도 아니야.”

입술에는 어느덧 깊은 핏자국이 났다.

인사치레로 물어본 것뿐이니 하승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에 무심코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남지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도 역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는 보는 시늉을 했으나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를 흐렸다.

곧 하승우는 침실을 떠났고 남지수는 얼른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남지수는 허수영의 이력서를 자세히 살펴본 후 주영배에게 문자로 회답했다.

[연기력은 괜찮은데 분위기가 효의 캐릭터와 잘 맞지 않아 안 될 것 같아요.]

[네. 다른 사람을 찾아볼게요.]

남지수는 알았다는 이모티콘을 보낸 후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얼굴을 두드렸다.

‘허수영이 아이를 가진 게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이혼할 것이니 하승우가 누구랑 아이를 갖든 상관없잖아...’

남지수는 이런 말을 곱씹으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위로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서재를 지날 때 닫힌 문에서 화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배우와 헤어진다고 약속했는데도 계속 연락이 있었던 거야? 이젠 아이도 생겼으니 창피하지도 않아?”

“회장님, 진정하세요. 때리지 마세요. 도련님 다칠 수 있어요...”

문이 쾅 하고 열리며 하승우가 굳어진 표정으로 문 앞에 나타났다. 셔츠에는 찻물 자국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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