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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지수야, 속상하지 마. 우리 나가서 쇼핑하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임연아가 말했다.

“그래, 정리하고 나갈게.”

삶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 남지수는 잠시 정리하고 나서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성화 거리로 간 그녀는 임연아와 함께 명품 쇼핑몰에 들어갔다.

남지수는 171의 큰 키에 균형 잘 잡힌 날씬하고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피부에 공기가 오래 닿을 수 없어 마스크까지 쓰고 있지 않았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쳐다봤을 것이다.

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가방 코너에 들어섰다. 임연아는 이혼을 축하하기 위해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했지만 남지수는 이를 거절했다. 그래서 임연아는 그녀를 강제로 끌고 올라갔다.

“지수야, 저기서 고르자. 직원 언니가 신상이 많이 나왔다고 하니까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봐봐.”

임연아는 앞쪽의 샤넬 코너를 가리키며 명쾌하게 말했다.

남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범하게 카운터를 향해 걸어가다 1초 뒤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멈춰 섰다.

키가 180정도 되는 남자가 검은색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비스듬히 서 있었다.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눈을 지그시 감은 무심한 모습이었지만 이런 시큰둥한 모습은 영화에서나 나올듯했다.

남지수는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아했다. 여러 회사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있는 남편 하승우가 왜 대낮에 백화점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검은 웨이브 머리를 한 예쁜 여자가 다가와 하승우의 팔을 잡고 진열대에 있는 빨간 가방을 가리키며 애교를 부렸다.

“승우 씨, 저거 갖고 싶어. 오늘 입은 치마랑 잘 어울리지 않아?”

하승우는 흘끗 쳐다보고는 직원에게 말했다.

“저거 포장해.”

“...”

거의 꽝 소리와 함께 남지수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녀는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의 옆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간 줄도 몰랐다.

“저 여자가 누구야?”

임연아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하승우가 밖에서 사귀는...”

임연아는 ‘애인'이라는 두 글자를 말하지 않았지만 남지수는 알아맞힐 수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얼음물에 빠진 듯한 추위가 살을 에는 듯 전해졌다.

그러니 하승우가 그녀에게 이혼하자고 한 건 그녀가 하씨 가문에 쓸모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이미 밖에 다른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란 말인가?

“헤헷.”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가격도 안 물어봐?”

하승우는 소탈한 사람으로 우아하고 귀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냉담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여자가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도록 내버려 두며 대답했다.

“얼마든 상관없어. 네 마음에 들면 돼.”

남지수는 뒤로 두 발짝 물러서 은근히 아파져 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임연아의 동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아야. 뭐 하려는 거야...”

임연아는 하승우와 빨간 치마 여자 사이를 비집고 카운터에 엎드려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정아 언니. 나 그 빨간 가방 줘요. 제가 어제 카톡으로 보냈던 그거 포장해 주세요.”

그녀는 블랙 카드를 꺼내 카운터에 탁 올려놓고 고개를 돌려 빨간 치마 여자를 향해 입꼬리를 씩 올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이 장면을 본 남지수는 어이없었다.

그녀는 하승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어가더니 임연아의 팔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연아야, 가자.”

그런 임연아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하승우는 낯익은 모습이 다가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남지수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비록 만난 횟수는 많지 않지만 그는 한눈에 그의 합법적인 아내 남지수를 알아봤다.

남지수는 몸을 돌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대답했다.

“쇼핑하러 왔는데 방해해서 미안해.”

이 말에 화가 난 임연아가 소리 지르려 할 때 옆에 있던 빨간 치마 여자가 남지수를 한 번 훑어보고는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남지수 씨죠? 승우 씨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은 허수영이에요.”

‘허수영?’

남지수의 얼굴이 문득 창백해졌다.

그녀는 8년 동안 하승우를 좋아했는데 그 8년 동안 허수영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들었다. 하승우 첫사랑의 이름은 거의 악몽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녀는 마음이 몹시 아팠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손을 뻗어 허수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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