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연은 뜻밖의 기억상실로 자신을 구해준 엄경준과 사랑에 빠졌다. 그에게 속아 그의 ‘여신’ 대역이라는 것도 모른 채 3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며 그가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엄경준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하던 날, 그녀를 홀로 이국 거리에 내팽개친 뒤 여신과 함께 귀국하면서도 그녀를 계속 비밀애인으로 곁에 두려 했다. 대역 놀이에 지친 그녀는 계약을 파기하고 쓰레기 같은 남자를 차버린 후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채 도망쳤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남자는 피를 토하며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잘나가는 화가이자 보석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는 자존심도 버린 채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나 버리지 마.” “여보, 다른 남자 말고 나 좀 봐주면 안 돼?” “여보, 내가 모델이 되어줄 테니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나 좀 그려줄 수 있어?” “여보... 여보... 여보...” 엄지연이 화를 낸다. “꺼져, 누가 네 여보야!” 엄경준은 그녀를 잡고 놔주지 않으며 억지를 부렸다. “몰라, 내 청혼 받아줬으니까 넌 내 아내야.” “다른 건 다 상관없어.”
View More옆 화실에 있던 친구가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왔다.“엄지연, 너 괜찮아?”마침 아침에 교문 앞에서 엄지연을 토론하던 인풀루언서였다.“다쳤어? 아파? 선생님에게 전화할게. 겁먹지 마.”인풀루언서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엄지연은 오른쪽에 마비가 오는 것처럼 아팠고 움직일 수 없어서 눈물을 흘렸다.선생님도 곧 왔고 급해서 말했다.“빨리 구급차 불러!”엄지연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으니 입을 열자마자 너무 아파 눈물이 줄줄 흐르다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구급차가 도착했다.“너희들은 돌아가서 전시회에 참가할 그림을 완성해. 내가 함께 병원에 갈게.”인화병원 응급실.의사는 X-ray 사진을 보며 말했다.“괜찮아요. 골절은 없고 피부에 상처가 있는데 멍이들고 부은 건 괜찮아요. 며칠 안정을 취하면 곧 회복될 수 있어요. 링거를 맞고 염증을 치료하면 돼요.”“선생님, 고마워요.”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교사가 제일 걱정했다.학생이 크게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교장 선생님께 혼나거나 학생에게 연루되면 최악이다.엄지연은 이미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선생님, 고맙습니다.”“고맙긴, 내가 해야 할 일이야.”선생님은 약이랑 엄지연이 넘어진 쪽 몸을 보며 말했다.“선생님께서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 학교 전시회는 안 가도 돼. 학교에서 해결해 줄 거야.”“네, 알았어요.”약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었는지 엄지연은 곧 깊은 잠에 빠졌다.비몽사몽일 때 그녀는 선생님께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것 같아 엄지연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미닫이로 된 병실 문이 다시 열리며 삐걱 소리를 냈고 곧 들락날락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 엄지연은 잠결에도 미간을 찌푸리며 편히 쉬지 못했다.병실 안이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동안 놀면서 제대로 쉬지 못했던 그녀는 또 잠이 들었다. 엄경준은 선생님과 인사를 한 다음 엄지연의 맞은
“앞으로 명심하고 그런 쓰레기들을 멀리해야 해. 아니면 아무것도 챙길 수 없어.”인풀루언서들은 토론을 멈추고 엄지연과 거리를 두며 강의실로 들어갔다.자퇴에 관한 생각에 잠겨있던 엄지연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강의실에서 첫 교시를 마친 후.“수업이 끝났지만 일단 가지 마. 다음 주 학교에서 상업 전시회가 열릴 건데 사업가와 명망 있는 분들을 다 초대할 거야. 심지어 정부에서도 이 전시회를 중시하고 있어. 학생들이 지금까지 그렸던 작품 중 제일 좋은 것을 전시회에 내놓으면 좋은 기회가 될 거야.”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학생들을 격려했다.“네.”학생들이 즐겁게 대답했다.엄지연은 자기 물건을 정리한 후 사무실에 가려고 했다. 이때 선생님이 그녀를 불렀다.“지연아. 넌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서 최고였어. 이번 전시회를 잘 준비해야 해. 이건 너의 진로에 매우 중요한 기회야.”“선생님, 고마워요.”엄지연은 감격하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전시회에는 참가하겠지만 저는 오늘 퇴학 절차를 밟으려고 학교에 왔어요.”“퇴학?”선생님은 놀라서 급히 물었다.“학교를 바꿀 생각이야?”“아니에요!”엄지연은 고개를 저었다.“저는 임해시에 있고 싶지 않아 다른 도시로 가든지 아니면 출국할 생각이에요.”“그래. 이런 생각이 있다면 억지로 말리지 않을게.”선생님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하지만 이번 전시회에는 참가해야 해.”“당연하죠.”엄지연이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는 퇴학 절차를 한 후였다.5층 화실.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화실을 하나씩 마련해 주었는데 크지 않고 마침 평소에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저장할 수 있었다.마침 퇴학하던 그녀는 예전에 여기에 뒀던 개인 소지품을 정리해서 가지고 가려고 했다.문을 열고 둘러보니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났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엄지연은 먼저 전시회에 참가할 작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학생마다 3개를 준비해야 했다.그녀는 선택한 그림을 옆에 놓은 후 개인 소지품과 나머지 그림을 정
이튿날 아침.엄지연은 예술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으려 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 예전에는 엄경준의 차를 운전했고 몇 대를 선물하기도 했지만 지난번에 떠날 때 차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에게 선물한 차와 보석들을 다 가져가지 않고 성월 별장에 남겨두었다. 학교와 성월 별장은 가까워 운전하면서 별장들을 볼 수 있었다.이재혁의 차는 성월 별장에서 나와 엄지연이 탄 택시와 스쳐 지나갔다. 엄지연은 이재혁의 차를 보았다. 검은색 마이바흐, 임해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번호였다.그녀는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오히려 택시 기사는 이 고급 차를 보고 야유를 불렀다.“방금 옆에 지나간 차는 마이바흐죠? 이 번호판은 쯧쯧,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잔가 봐요. 돈이 부족하지 않은 분들인 것 같아요. 듣기론 여기 별장들이 한 채에 몇십억이라면서요?”엄지연은 택시 기사를 힐끗 보며 말했다.“부족해요. 별장 위치에 따라 적어서 몇백억이에요.”“역시 부자가 많네요.”기사는 부러워 감탄했다....마이바흐 차 안.장수철이 운전하고 엄경준은 뒤에서 눈을 감고 휴식했다. 어젯밤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야 성월 별장에 돌아왔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엄지연은 이미 이사했고 옷장도 비었다. 한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던 그는 이 일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비록 옷장이 비었고 장옥매가 깨끗이 청소했지만 침실에는 여전히 엄지연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그녀의 독특한 냄새가 향수 냄새와 어우러져 엄경준의 코끝을 맴돌며 신경을 자극했다.오늘 아침에 떠날 때 그는 장옥매에게 침실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앞으로 연가희와 결혼할 건데 엄지연의 냄새가 방에 배이게 해서는 안 된다. 또 훗날 연가희가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앞으로 연가희와 결혼할 때는 신혼집을 새로 마련해야겠어.’택시가 학교에 도착하자 엄지연은 결제한 후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수업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퇴학 절차를 밟으러 왔다.앞으로 그녀는 임해시에서 발전할 계획이 없었고 또 엄경준을
“위장약이 떨어졌으니 새것으로 가져와.”엄경준은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줄곧 이 약이 회사의 필수품인 줄 알고 별다른 생각 없이 분부했다. 신석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서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엄경준은 불만스럽게 쏘아붙였다.“빨리 가서 가져와.”신석훈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했다.“위장약은 엄지연 씨께서 특별히 대표님을 위해 준비했었는데...”매번 거의 다 먹을 때마다 엄지연이 미리 준비해서 주었는데 이제 대표님과 엄지연 씨가 헤어졌으니 약을 더는 보내지 않았다.물론 신석훈은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이 약이 엄지연이 준비한 것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엄경준은 멍해졌다.“제가 바로 약 사러 가겠습니다.”신석훈은 대표님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급히 입을 열었다.대표님 사무실에는 엄경준만 남았다. 엄지연이 그의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던 거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그녀의 이름을 들으니 위장 통증에 이어 심기마저 불편해졌다.엄경준은 서랍 속에 놓여 있는 빈 약통을 들여다보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한참 후.신석훈이 돌아왔을 때 통증이 더 심해진 엄경준은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약을 사 왔어요. 오면서 죽도 사왔어요.”사람을 돌봐준 경험이 없었던 신석훈은 위장이 아플 때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몰라 약사가 주는 대로 여러 가지를 샀다.설명서대로 다 드시면 괜찮을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후 엄지연과 리나는 가방과 캐리어 속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다 하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두 사람은 힘들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배고파?”리나가 물었다.“배고파, 움직이기 싫어.”엄지연이 대답했다.“배달시킬게. 뭐 먹고 싶어?”“아무거나.”리나는 앱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른 후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엄지연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내가 리조트에서 누구를 봤는지 맞춰볼래?”엄지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엄경준.”“첫사랑을 데리고 리조트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너랑 너무 닮
엄호진의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엄경준은 엄호진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바라보다가 조 사장의 득의만면한 눈빛과 마주쳤다.‘람미의 대출을 부결하니 여기서 태클을 거는 거야? 윤성 그룹의 부대표로서 페이퍼컴퍼니로 그룹의 자금을 조달하다니. 둘째 삼촌은 나이 들수록 더 어리석어지네.’최근 몇 년 동안 엄호진이 경영하는 프로젝트의 수익이 점차 줄어들었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어중이떠중이 친구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는데 엄경준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할아버지의 체면을 봐서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엄호진의 부사장직을 해임하고 더 유능한 사람으로 바꿨을 것이다.“조 사장은 경력이 많지만 줄곧 전통 업무를 관리했어요. 신에너지 기술개발은 젊은이들이 해야 해요.”엄경준은 화를 내지 않아도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다. 둘째 삼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반대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하 본부장은 경력이 조 사장못지 않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승진했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입증할 수 있고 신재생에너지에 관한 연구도 해왔기 때문에 잘 관리할 것으로 믿어요.”부대표는 자신이 대표의 삼촌이라는 신분을 믿고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따낸 프로젝트를 가로채는 일을 많이 했는데 하 본부장도 신에너지 프로젝트가 부대표님에게 빼앗길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던 그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나머지 임원들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들여다보며 잠자코 있었다.엄호진은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엄경준, 무슨 뜻이야? 내가 나이 들었으니 물러나라는 거야? 내가 회사를 관리할 때 넌 아직 젖먹는 갓난아기였어. 내가 친삼촌이고 어른인데 감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대꾸해?’엄호진은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빼앗으려는 목적을 이루려말을 더 하려 했다.“다른 의견이 있어요? 없으면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할게요.”엄경준은 정색해서 말을 마친 후 엄호진을 보지도 않은 채 제일 먼저 회의실을
둘째 삼촌이 페이퍼컴퍼니로 윤성의 돈과 인맥을 이용했는데 몰래 또 다른 국제 무역 회사를 설립하고 윤성과 경쟁할 계획이었다.‘2000억이면 적네! 람미 그룹에 둘째 삼촌이 개인적으로 주식을 소유했나 봐.’“거절해. 평가 보고서와 문서를 함께 주고 조사결과는 주지 않아도 돼.”엄경준은 서류를 신서훈에게 돌려줬다. 결국, 엄경준은 둘째 삼촌의 체면을 봐준 셈이다.“네.”“북양시 정부와 경쟁 입찰하여 투자한 도시 신구역 건설이 완료되어 이번 달 21일 점검하는데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합니다.”“20일 점심에는 아성 글로벌의 대표님과 식사 약속이 있고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없으니 전용기로 북양시에 갈 수 있어.”“9시 반에 신에너지 차 프로젝트 투자 회의가 있는데 회의까지 15분 남았습니다.”신석훈은 말을 마치고 대표님 사무실에서 나왔다.엄경준은 잠시 후 회의에 사용할 신에너지 자동차에 관한 자료를 뒤적거렸다. 그는 신에너지에 관심을 가졌는데 다시 자료를 보며 회의 프로세스를 확인했다. 신에너지 기술은 발전 전망과 상업적 가치가 매우 크기에 R&D에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엄경준은 서류를 닫고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엄경준이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엄호진과 다른 임원진은 이미 와 있었다.“대표님.”“네, 앉으세요.”회의가 시작되었다.“신에너지 차 기술개발서를 다들 보셨죠?”엄호진의 냉엄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질 때 신석훈은 옆에서 회의기록을 작성하고 있었고 임원진은 고개를 숙이고 프로젝트 기획서를 뒤적거리고 있다.“정부의 신에너지 기술 지원으로 미래가 유망해 원래 금액에 3%를 추가해 사업 투자를 하기로 했어요.”“하 본부장님께서 추진해 왔으니 이 프로젝트도 맡길게요. 기술부에서 지원하세요.”엄경준은 냉엄한 목소리로 일사불란하게 일을 안배했다.“큰 조카!”엄호진이 갑자기 엄경준의 말을 끊어버렸다.엄경준은 내심 언짢았다. 비록 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지금은 가족 모임이 아니라 회의 중이다.엄호진이 둘째 삼촌이
엄경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연가희의 수척해진 얼굴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다.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늦었어. 그만 가야 해.”연가희는 엄경준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엄경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후에야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문이 닫힌 후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으로 처녀막 복원 수술을 예약했는데 특히 인화병원을 피해 국립병원을 찾았다.화면에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뜨자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경준은 다시 차에 돌아갔고 장수철이 차를 몰았다. 뒷좌석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등받이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미간을 주물렀다.지난 이틀 동안 그는 잘 쉬지 못했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꿈에사 그는 엄지연이 수영장에 빠진 것을 보고 아무리 뛰어도 다가갈 수 없었다. 마치 연가희가 미르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을 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을 때 거리의 벤처에 앉아 눈을 감고 있을 때와 같았다.이틀 동안 엄경준은 미래의 아내는 연가희이고ㅡ 엄지연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는 더는 쓸모없는 대체품 같은 애인에게 신경을 쓰기 싫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장수철이 문을 열었다.엄경준은 차에서 내리면서 양복을 정리했다.윤성 그룹은 임해시 도심에 있는 중요한 위취에 있는데 화인국에서 손꼽히는 국제금융무역회사다.본사는 단독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와 웅장한 모습으로 임해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대표님.”신석훈은 이미 회사의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음.”정장 차림을 한 엄경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온몸으로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회사 안으로 걸어갔다. 신석훈이 그 뒤를 따라 함께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에 도착했다.며칠째 회사에 나오지 않았던 대표님을 위해 비서진 직원들이 일찌감치 줄을 서서 기다렸다.“대표님, 안녕하세요!”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계속 일해.”
설명하지 않자 연가희도 묻지 않았는데 말이 필요없이 그저 엄경준이 그녀를 선택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이틀 동안 엄경준은 항상 연가희의 곁을 지켰다. 필요한 업무와 저녁에 휴식할 때를 빼고 항상 그녀와 함께 있었다.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두 사람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그저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안는 정도에서만 그쳤다.연가희는 아직 해야할 않은 일이 있어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그리 서두르지 않았다.오히려 엄경준이 그녀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녀는 불만이 많았다. 명확한 고백이 없이 그의 여자친구가 된다면 신분이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즉 그녀는 명분이 없는 여자라는 뜻이다.엄경준의 여자가 되어 주변에 알리며 그에게 청혼을 받고 혼인신고를 한 합법적 부부관계가 되어야만 연가희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차가 멈춰 섰지만 연가희의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케리 파크는 임해시 최고급 주택이다.연가희가 퇴원한 후 엄경준은 그녀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 복층으로 되어 몇억에 달하는 부동산을 입주 첫날 엄경준이 선물로 연가희에게 주었고 등기서류에도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연가희는 엄경준의 성의에 만족했다.엄경준은 한 손으로 연가희의 하얀색 캐리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연가희를 부축하며 지하주차장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올라가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경준아, 이대로 갈래?”연가희는 입을 살짝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엄경준은 캐리어를 거실에 놓으며 말했다.“응. 오후 회사에 일이 있어서 바로 회사로 가야 해. 3일 동안 너랑 노느라고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밀렸어.”엄경준은 평온한 어조로 설명했다.3년 전에 연가희에게 했던 약속을, 3년 동안 사라졌던 그녀가 돌아왔으니 마땅히 약속을 지켜 보상해줘야 한다.‘마땅히?’분명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연가희이고 그녀와 함께 놀러 가는 것은 커플로서 당연한 건데 왜 그는 ‘마땅히’라는 말을 썼을까?미션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다.엄경준은 이
“그럼 내가 도와줄게.”연가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래.”이에 엄경준은 덤덤하게 대꾸했다.사실 그는 다른 사람이 짐 정리해주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연가희가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엄경준은 그녀가 도와주게 내버려 뒀다.어차피 그저 옷 몇 벌일 뿐이니 말이다.캐리어를 다 싸고 나니 마침 백세훈도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가자.”엄경준은 두 사람과 함께 나란히 룸을 나섰다.백세훈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메시지에 답장했다.입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눈이 예쁘게 휘어진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백세훈은 엄경준과 가는 길이 달랐기에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그래.”이에 엄경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먼저 보냈다.연가희의 캐리어까지 들어준 탓에 엄경준의 양손은 모두 캐리어에 묶여 있었다.장수철은 차 안에서 대기하다 엄경준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서둘러 차에서 내려 얼른 그의 손에 있는 두 개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담았다.“대표님, 차에 타시죠.”그러고는 뒷좌석 문을 열고 엄경준을 향해 말했다.“응.”엄경준은 담담하게 대답한 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그러자 그때 뒤에 서 있던 연가희가 달콤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경준아.”엄경준은 그녀의 부름에 뒤를 돌아 연가희를 바라보았다. 불러놓고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엄경준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듯 연가희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열려 있는 문으로 향했다.엄경준의 행동에 연가희는 무척이나 기뻤다.그녀는 두 눈이 반달 모양이 되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엄경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엄경준은 신사답게 연가희를 먼저 차에 태우고 문을 닫아준 후 유유하게 반대편 걸어가 차량에 올라탔다.장수철은 그런 엄경준과 연가희를 넌지시 바라보았다.대표님을 위해 문을 열어준 게 결과적으로 연가희를 위한 게 되어버렸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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