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가씨, 오늘 밤 당신과 춤 한 번 같이 출 수 있을까요?”남자는 손을 내밀어 살짝 몸을 숙이며 양복 차림을 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래층에 있던 엄지연에게 누군가 다가와 춤을 추자고 했다.그녀의 꼬투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여자들의 눈에 이 장면은 남자를 낚는 엄지연의 모습으로 비쳤다.“엄지연 씨 아니야? 지연 씨가 어떻게...”연가희는 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발견한 듯 일부러 멈칫했고 이 모습은 연가희뿐만 아니라 발코니 옆에 있는 엄경준과 백세훈도 똑똑히 보았다.방금 아래층 여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대화조차 다 듣고 있었다.싱긋 웃으며 아래층 사람들을 보고 있던 백세훈은 뭔가 생각난 듯했다.‘지연 씨가 전에 경준이한테 놀러 가자고 졸랐던 것 같은데? 그게 하늘 리조트였어? 두 사람은 헤어졌는데 오늘 경준이가 여기로 오자고 한 건 설마...’백세훈은 연가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오늘 밤 날 여기로 부른 게 설마 엄지연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야?” 엄경준의 비밀스러운 속내를 발견한 듯 그는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엄경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언짢은 어투로 연가희 앞에서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 가희가 놀러 오고 싶다고 해서 왔어.”“그래, 그동안 내가 너랑 경준이 보살핌 많이 받았잖아. 안 그러면 이렇게 빨리 회복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서 너랑 경준이를 초대해서 놀자고 한 거야.”달콤하게 웃으면서 설명하는 연가희는 백세훈이 아무리 쏘아붙여도 친절하게 대하는 대범함을 보였다.백세훈은 와인잔을 내려놓더니 혀끝을 입천장에 대며 ‘쯧’ 소리를 냈다.‘내숭 참 잘 떤다.’아래층에 있는 엄지연은 남자의 초대에 응한 듯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여유롭게 아래층을 보고 있는 백세훈은 친구와 엄지연의 이별을 받아들인 듯했다.“지연 씨는 얼굴도 예쁘고 조건도 나쁘지 않은데 벌써 남자들이 쫓아다니는 걸 보니 곧 새 남자 친구가 생길 것 같네.”백세훈은 엄지연
“경준 형, 세훈 형.”성연우는 반갑게 인사했다.“연우구나.”백세훈이 입을 열었다.엄경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엄지연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가며 소년을 돌아보았다.‘아는 사이인가?’백세훈이 입을 열어 그녀에게 설명했다.“백씨 가문, 엄씨 가문, 성씨 가문은 임해에서 오랫동안 서로 왕래가 있었어요.”엄지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쩐지 비싼 차를 타고 주차장에서 무법천지로 운전한다고 했더라니 부잣집 아들이었다.성연우는 그녀의 표정으로 주차장 일을 떠올린다는 것을 눈치채고 다소 억울한 목소리로 불렀다.“누나.”이 누나라는 호칭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굳어버렸다.줄곧 투명 인간처럼 옆에서 겉돌던 연가희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엄경준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채 고개를 젖히고 그윽하게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어제 퇴원했어요. 그동안 내가 병원에서 지내느라 답답했을까 봐 경준이랑 특별히 같이 놀러 왔는데 우연히 엄지연 씨를 만나게 될 줄 몰랐네요.”“그날 병원에서의 일은 경준이가 말해줬어요. 제가 그때 엄지연 씨의 말을 잘못 듣고 오해했어요. 엄지연 씨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언뜻 듣기엔 사과하는 말 같아도 자기는 엄경준의 사람이며 그만이 그녀에게 뭐라 할 수 있다고 으스대는 것 같았다.엄지연은 못 알아들은 척했고 어쩌다 그들과 마주쳤는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담담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힐끗 보던 그녀는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연가희 씨 본인 잘못인 걸 알았으면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마세요.”연가희의 웃음이 사라지더니 입꼬리를 내리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왜 저래? 나는 아무 말 안 했는데?’“이미 지나간 일 더 꺼내지 말지.”투명 인간과 다를 바 없었던 엄경준이 입을 열어 연가희를 도와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줬다.“응, 경준이 네 말대로 할게.”연가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큰 체구를 지닌 엄경준이 바닷가에 나른하게 서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현성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엄경준은 빈정거림과 불신이 배어 있는 시선으로 엄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엄지연의 그림 실력을 폭로하지 않았다. 성월 별장에 있을 때 엄경준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는 고현성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그림 그릴 줄 아는 엄지연은 임해시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그렇다고 해서 천부적인 재능과 뛰어난 실력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그 학교는 엄경준이 많은 돈을 내고 엄지연을 들여보낸 것이지 그녀가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엄지연은 그림에 비해 춤을 정말 잘 췄다. 그조차 놀라게 했으니 말이다.‘화가도 아니니까.’엄경준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엄지연이 고개를 들어 엄경준과 시선을 마주했다.눈살을 살짝 찌푸린 엄경준의 시선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엄지연이 어떻게 화가 이미지를 계속 연기해 나가려는 지 보려는 것 같았다.비아냥거리는 엄경준의 시선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엄지연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엄지연은 돌아서서 엄경준을 등지고 그를 무시한 채 눈을 흘겼다.‘일부러 무시하고 장점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뭔가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결과로 보여줄 거야!’고현성의 격려하에 엄지연은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화판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오른손으로 붓을 집어 들고 물감을 묻혀 디테일을 더하니 밋밋하게만 느껴졌던 그림이 금세 선명해지고 다채로워졌다.엄경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놀라움을 표했다.그의 시선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의 눈빛이 흘러나왔다.‘의외네.’엄경준은 늘 엄지연의 얼굴에만 집중하며 그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연가희처럼 만들었다.어딘가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면 엄지연의 스타일을 바꿔서라도 연가희 흉내를 내게 했다.그래서 엄경준은 습관적으로 엄지연의 재능을 무시했고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마저 무시했다.엄경준은 줄곧 엄지연을 통해
‘그때부터 다른 남자랑 놀아났나?’고현성의 말을 듣고 멈칫하던 엄지연은 이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어르신께서 지금 뭐 하시는 거지? 엄경준과 맞선을 주선하시는 건가?’생각만 해도 몸서리를 치던 엄지연은 핑계를 대고 고현성과 작별했다.그녀는 리나를 찾아가 따져 물을 것이 있다.“어르신, 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엄지연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엄경준도 예의 바르게 작별을 고했다.고현성은 허허 웃으며 손을 내저었는데 마치 그에게 빨리 엄지연을 쫓아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젊었을 때 노는 게 좋아. 나이가 드니 놀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구나.”엄경준은 예의 바르게 고현성에게 인사하고 백사장을 떠났다.복도 모퉁이에서 엄경준은 빠른 걸음으로 엄지연을 뒤쫓아 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뻗은 손에 힘을 줘 엄지연을 돌려세운 그는 바로 구석진 곳에 가두었다.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비켜!”등이 아파 난 엄지연은 갑작스러운 엄경준의 행동에 놀라며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그녀는 리나를 찾기 위해 자리를 뜬 것이었다.엄경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큰 몸으로 엄지연의 퇴로를 막았다.그녀는 좁은 구석에서 진퇴양난이었다.불빛이 비치지 않는 구석에서 엄경준은 불빛을 등지고 복잡한 눈빛을 했다.“왜? 성씨 가문 그 자식 찾으러 가려고?”엄경준이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눈썹을 잔뜩 찌푸린 엄지연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엄경준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엄경준은 이미 엄지연이 정한 안전거리를 넘어서 가까이 있었다.그녀는 불편하다 못해 엄경준을 밀어내고 싶었다.“내가 누굴 찾든 경준 씨랑 무슨 상관이야?”엄지연은 그의 어두운 기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답했다.안 그래도 무표정하던 엄경준의 얼굴이 더욱 싸늘해졌다.그는 엄지연의 대답이 몹시 못마땅했다.“엄지연, 성연우는 너랑 안 어울려.”엄경준은 어두운 얼굴로 엄지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사람 위에 군림하는 기세를 풍겨냈다.그는 부하들을
성연우는 엄경준의 팔을 잡아당겨 엄지연의 손목을 힘껏 잡아 뺐다.엄경준은 넋이 나간 건지 성연우와 실랑이하지 않고 순순히 손을 풀었다.성연우는 그 틈에 엄지연을 뒤로 끌어당겨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엄지연을 보호했다.‘괴롭힌다고? 나를 때린 건 엄지연인데 누가 누굴 괴롭힌다는 거야? 게다가, 이게 괴롭히는 거면 그전에는? 엄지연 위에서 주최하지 못하고 밤새 사랑을 이어간 적도 있는데 그럼 그것도 괴롭히는 건가? 그럼 엄지연이 내 등을 할퀸 것도 나를 괴롭힌 건가?’엄지연은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성연우의 뒤에 숨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설마 두 사람도 같이 밤을 보낸 건가?’엄경준은 엄지연이 불쌍하고 연약하며 억울한 척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성연우의 뒤에 숨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엄지연이 나를 때린 건데!’성연우는 엄지연을 엄경준과 더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마치 역병을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엄경준이 더 이상 거친 행동을 이어 나가지 않을 것 같자 성연우는 엄지연의 손을 살며시 잡고 세세히 들여다보았다.“누나, 어때요? 아프지는 않으세요? 다치거나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성연우가 세심하게 묻자 엄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괜찮아요.”손목 부상은 없었지만 조금 빨갛게 달아오르고 뼈가 시큰거릴 뿐이었다. 엄경준이 너무 꽉 잡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내 탓이 아니야! 엄경준이 너무 심한 말을 하니까 그런 거였어!’“괜찮다더니 봐봐요. 빨개졌잖아요.”성연우가 엄지연의 손바닥을 펴서 그녀에게 보여주며 손목에 난 빨간 자국도 강조했다.“마침 저한테 약이 있는데 같이 가요. 약 발라 줄게요.”성연우는 엄지연을 데리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괜찮아요. 약 안 발라도 돼요. 이틀 후면 괜찮아질 거예요.”엄지연이 성연우가 잡은 손을 빼내며 그를 따라 자리를 떴다.“안 돼요. 하얀 피부에 난 빨간 자국은 사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입방아를 찧어댈 거예요.”성연우는 약을 발라
흠뻑 젖은 양복이었지만 색이 짙어서 그래도 엄지연을 가려주기에는 충분했다.“콜록... 콜록...”수영장 물에 사레가 들린 엄지연이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기침을 계속했다.성연우는 그녀의 등을 연신 토닥이며 코에 들어간 물을 빼주었다.“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얼른 돌아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옷 갈아입으세요.”엄지연이 조금 숨을 돌리자 성연우가 입을 열었다.“그래요...”사레들린 엄지연은 다시 기침을 심하게 했고 목소리도 쉬었다.조금 전 그녀를 잡아당겨 물에 빠지게 한 웨이터도 수영장에서 올라와 연신 허리 굽혀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드레스는 제가 배상해 드리겠습니다.”이성호는 엄지연의 손목이 다친 걸 몰랐다.“제발 클레임만 걸지 말아 주세요. 매니저님께서 아시면 혼날 거예요...”이성호는 수심에 찬 표정으로 연신 허리를 굽혀 용서를 빌었다.엄지연은 한 손으로 양복을 잡았다.괜찮다고 생각했던 손목은 확실히 통증이 느껴졌다.물에서 나와 정신을 차린 엄지연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하지만 주위에서 구경하는 남자들이 거리낌 없이 훑어보는 시선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엄지연은 여기서 괜히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이성호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그저 지금 룸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손목에 약을 바르고 싶었다.손목에서 간간이 통증이 전해져 오는 걸 보니 삔 것 같다.그림 그리는 손을 다쳤다는 건 꽤 심각한 일이었다.게다가 그녀는 앞으로 그림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이렇게 큰 리조트에서 이성호가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과 고객을 함께 끌어들여 빠진 것은 별개였다.그녀가 클레임을 걸지 않더라도 이성호는 상사에게 혼날 것이었다.“드레스는 배상할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엄지연이 눈살을 찌푸렸다.드레스는 비싸지 않았고 손목이 다친 건 며칠만 휴식하면 호전될 수 있어서 굳이 품위를 잃으며
엄경준의 팔을 잡고 수영장을 빠져나간 연가희는 너무 즐거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성씨 가문에까지 이 소식이 전해지면 엄지연처럼 파렴치한 여자는 성씨 가문 문턱에 발도 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엄지연은 내연녀가 어울려! 빛도 못 보고 숨어 사는 게 딱이야.’...룸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엄지연과 성연우가 함께 걷고 있었다.“아까 고마웠어요.”엄지연은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의식을 찾은 후 그녀는 물을 제일 무서워했는데 수영장에 빠진 그 순간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성씨 가문이 이 리조트의 투자자일 줄 생각지도 못했다.“아까 그 웨이터는...”이성호와 연가희의 거래를 모르는 엄지연은 단순 사고인 줄로만 알고 웨이터를 위해 말을 꺼냈다.“그 직원은 해고할 거예요. 모든 고객이 누나처럼 소통하기 쉬운 게 아니에요. 나중에 까다로운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리조트는 물론 심지어 그룹에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두 사람은 말하며 이내 엄지연의 묵고 있는 룸 앞에 다다랐다.성연우는 신사답게 문 앞에 멈춰 서며 부드럽게 말했다.“누나, 먼저 샤워하세요. 다 씻고 저한테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면 약을 가져다줄게요.”“그러지 않아도 돼요. 핸드폰도 챙겨 오지 않아서...”핸드폰을 룸에 두고 나온 엄지연이 성연우의 호의를 거절했다.성연우가 수영장에서 물에 뛰어들어 그녀를 구한 후부터 엄지연은 그가 주차장에서 트러블 났을 때처럼 싫지 않았다.“제가 카카오 친구 추가했으니 확인하시고 문자 하세요.”성연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얼른 들어가세요. 다 되면 연락하세요.”성연우는 신사답게 자리를 뜨며 엄지연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었다.엄징연은 지문 인식을 통해 방에 들어갔다.입실할 때 지문을 등록하고 퇴실하면 지문을 삭제하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리조트였다.엄지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그녀를 방 안으로 밀어 넣은 후 재빨리 문을
엄경준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떠났다.‘엄지연, 왜 다른 남자랑 함부로 자면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야! 내 앞에서는 온갖 도도한 척을 다 하더니 뒤에서는 다른 남자랑 침대에 기어 올라가?! 남자가 한시라도 옆에 없으면 안 되나 보지?!’엄경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셔츠를 아래로 세게 끌어내리며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러다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섹시한 몸매의 여성과 그만 정면으로 부딪쳐버리고 말았다.엄경준과 정면으로 부딪친 여성은 인상을 쓰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젠장,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여성은 한소리 하기 위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금세 인상을 펴며 눈을 반짝였다.아까 수영장 옆에서 봤었던 남자였다.여성은 그가 윤성 그룹의 대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아까 봤을 때는 웬 여자랑 함께 있었는데?’윤성 그룹의 대표는 리조트에 있는 모든 남자를 통틀어 최상급이었다.“어머나, 죄송해요. 제가 앞을 제대로 봤어야 하는데.”여자가 애교스러운 말투로 사과했다.여자는 엄경준을 아래위로 쭉 훑어보다가 그의 목덜미에 피멍이 든 상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여자가 깨물어버린 게 확실했다.그리고 엄경준의 흰색 셔츠의 가슴 부분에는 파운데이션 자국이 있었는데 이건 방금 그녀와 부딪히면서 생긴 자국 같았다.“어머... 제가 옷을 더럽혔네요. 어느 룸에 계시는지 알려주시면 세탁해서 돌려드릴게요.”여자가 파운데이션 자국을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그리고 목에 난 상처는 한시라도 빨리 약을 바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혼자 약 바르는 게 불편하면 제가 도와드리고요.”여자가 다정하게 말하며 그에게 윙크를 보냈다.“꺼져.”하지만 엄경준은 냉랭하게 한마디를 남긴 채 여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여자는 단호하게 거절당하자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와 콧방귀를 꼈다.“비싼 척하긴.”말을 마친 여자는 다시 또각또각 하이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