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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큰 체구를 지닌 엄경준이 바닷가에 나른하게 서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현성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엄경준은 빈정거림과 불신이 배어 있는 시선으로 엄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엄지연의 그림 실력을 폭로하지 않았다. 성월 별장에 있을 때 엄경준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현성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림 그릴 줄 아는 엄지연은 임해시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천부적인 재능과 뛰어난 실력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 학교는 엄경준이 많은 돈을 내고 엄지연을 들여보낸 것이지 그녀가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엄지연은 그림에 비해 춤을 정말 잘 췄다. 그조차 놀라게 했으니 말이다.

‘화가도 아니니까.’

엄경준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엄지연이 고개를 들어 엄경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린 엄경준의 시선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엄지연이 어떻게 화가 이미지를 계속 연기해 나가려는 지 보려는 것 같았다.

비아냥거리는 엄경준의 시선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엄지연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엄지연은 돌아서서 엄경준을 등지고 그를 무시한 채 눈을 흘겼다.

‘일부러 무시하고 장점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뭔가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결과로 보여줄 거야!’

고현성의 격려하에 엄지연은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화판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붓을 집어 들고 물감을 묻혀 디테일을 더하니 밋밋하게만 느껴졌던 그림이 금세 선명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엄경준은 눈썹을 치켜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의 시선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의 눈빛이 흘러나왔다.

‘의외네.’

엄경준은 늘 엄지연의 얼굴에만 집중하며 그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연가희처럼 만들었다.

어딘가 거슬리는 구석이 있다면 엄지연의 스타일을 바꿔서라도 연가희 흉내를 내게 했다.

그래서 엄경준은 습관적으로 엄지연의 재능을 무시했고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마저 무시했다.

엄경준은 줄곧 엄지연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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