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다 바른 후 백세훈은 거즈로 상처를 싸맸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지경까지 된 거야?”백세훈이 면봉 등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며 말했다.그 말에 엄경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그 말 하려고 찾아왔어? 그런 거면 나가.”“알았어. 얘기 안 할게.”백세훈이 두 손 들어 항복하며 엄경준을 진정시켰다.그때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려오고 잠금을 풀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던 백세훈의 입꼬리가 위로 씩 올라갔다.“너 연가희 주려고 불꽃놀이 세트 많이 사뒀었지? 그거 어디 있어? 나한테도 좀 줘.”엄경준은 기분이 나빠 있던 터라 친구의 이상함도 눈치채지 못한 채 턱을 치켜들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비밀번호는 0000이야.”백세훈은 캐리어를 열고 막대 폭죽을 꺼내며 말했다.“고마워.”그러고는 떠나기 전 그는 친구가 곤란해지는 건 싫었는지 고개를 돌려 엄경준에게 귀띔해줬다.“셔츠에 핏자국 있으니까 갈아입어.”말을 마친 백세훈이 미련 없이 문을 닫고 가버린 후 엄경준은 바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확실히 백세훈의 말대로 옷깃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이에 엄경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셔츠를 벗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옷을 찾으러 갔다.잠시 후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감기약, 진정제, 그리고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을 구매했다.빠뜨린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새 셔츠로 갈아입은 후 막대 폭죽을 들고 문을 나섰다....엄지연은 엄경준이 떠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와 엄경준의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욕실에 가서 샤워하며 가글도 몇 번 했다.하지만 여전히 피 냄새가 진동해 입안에 상쾌한 느낌이 들 때까지 양치질을 두 번이나 더 했다.오른손을 움직일 때 약간의 통증이 있어 그녀는 왼손으로 서투르게 샤워를 한 후 거울을 비춰보았다.목 근처에 몇 곳이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가려워서 긁고 싶은 거로 보아 아마 모기에 물린 것 같았다.바닷가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를 띈
엄지연은 약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받았다.“고마워요.”‘카톡 추가하자마자 약을 보냈네.’그녀는 성연우가 이렇게 빨리 일을 처리할 줄 몰랐다.엄지연은 약을 받은 후 곧장 그에게 감사하다고 카톡을 보냈다.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 외에 감기약과 수면제도 있었다.감기약?며칠 전처럼 쌀쌀하기는커녕 날씨가 좋아 물도 차갑지 않았는데 감기약은 왜 넣었지?물론 수면제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상처를 입고 기억을 잃은 후 줄곧 물을 두려워했었는데 오늘처럼 갑자기 수영장에 빠진 날 잠자기 전에 먹기 딱 좋았다.‘섬세한 사람이네.’엄지연은 마음속으로 성연우를 칭찬했다.그때 초인종 소리가 또다시 울렸고 그녀는 다시 문을 열었다.“성연우 씨?”직원이 이불을 갈러 온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문밖에는 성연우가 서 있었고 이에 엄지연은 깜짝 놀랐다.성연우는 손에 든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누나, 약 가져왔어요.”‘약? 약이라면 아까 보내 놓고 왜...’엄지연이 고개를 돌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약 봉투를 바라보았다.성연우가 약을 보내온 게 아니면 대체 누가 약을 보내온 거지?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설마 엄경준...?’성연우 외에 그녀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물에 빠졌다는 것도 알고 있을뿐더러 방 번호도 알고 있는 사람은 엄경준밖에 없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화를 내며 돌아간 인간이잖아. 혹시 모르니까 저 약은 버리는 게 좋겠어.’엄지연은 거실로 돌아와 탁자 위에 놓인 약을 다시 봉투에 넣고 잘 묶은 다음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만약 모르는 사람이 준 약이라면 함부로 먹으면 안 되고 엄경준이 보냈다고 하더라도 더더욱 버려야 한다.엄지연의 뒤에 섰던 성연우도 탁자에 놓인 약을 발견했다.그는 그녀가 약을 봉투째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지으며 못 본 척 소파에 앉아 자신이 가
세 사람은 종종 함께 어울려 얘기도 하고 카드놀이도 했다.그리고 리나는 두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도 금세 새로 알게 된 남자와 함께 자리를 떴다.며칠 동안 엄경준을 피해 다녀서인지 엄지연은 그날 뒤로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주차장.리나의 차는 접촉 사고로 카센터에 맡겨야 했기에 성연우는 두 사람을 바래다줄 차량과 함께 운전해줄 기사도 보냈다.이에 리나는 성연우를 칭찬했다.“너 사람 괜찮네. 일 처리도 깔끔하고.”성연우는 차량을 제공한 것 외에 보상금도 시원시원하게 물어주었다.며칠 함께 지내며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리나는 이제 그를 완전히 용서했다.성연우는 칭찬을 듣더니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다 제가 해야 하는 것들인데요, 뭘.”그러면서 그는 옆에 있는 친구들을 시켜 엄지연과 리나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게 했다.만약 잠시 후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었다면 그는 아마 직접 운전해서 엄지연을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했을 것이다.엄지연과 리나는 차 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차에 앉으려 했다.“다음에 봐.”“네. 형수님, 안녕히 가세요!”성연우의 곁에 있던 친구들이 일제히 소리쳤고 그중 이성준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성연우가 주차장에서 싸웠던 늙은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그는 그간 답답했던 게 뻥 뚫리며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지연이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나 했는데 그게 다 내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였구나, 너?”차에 앉은 리나가 창문을 내리고 성연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리나야, 재미없으니까 그런 농담 하지 마.”그러자 엄지연이 표정은 굳힌 채 리나를 향해 말했다.성연우는 화를 내는 엄지연을 힐끔 보더니 이내 뒤로 돌아 히죽거리며 장난치는 친구에게 발길질하며 헛소리 말라고 혼내주었다.그러고는 기사에게 빨리 운전하라고 눈짓했다.“우정으로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지연이한테 딴 맘 품고...”차가 움직이자 리나의 말도 바람에 흩어졌다.“성연우, 너 정말 그 늙은 여자의 친구가
“그럼 내가 도와줄게.”연가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래.”이에 엄경준은 덤덤하게 대꾸했다.사실 그는 다른 사람이 짐 정리해주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연가희가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엄경준은 그녀가 도와주게 내버려 뒀다.어차피 그저 옷 몇 벌일 뿐이니 말이다.캐리어를 다 싸고 나니 마침 백세훈도 캐리어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가자.”엄경준은 두 사람과 함께 나란히 룸을 나섰다.백세훈은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메시지에 답장했다.입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눈이 예쁘게 휘어진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백세훈은 엄경준과 가는 길이 달랐기에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그래.”이에 엄경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먼저 보냈다.연가희의 캐리어까지 들어준 탓에 엄경준의 양손은 모두 캐리어에 묶여 있었다.장수철은 차 안에서 대기하다 엄경준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서둘러 차에서 내려 얼른 그의 손에 있는 두 개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담았다.“대표님, 차에 타시죠.”그러고는 뒷좌석 문을 열고 엄경준을 향해 말했다.“응.”엄경준은 담담하게 대답한 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그러자 그때 뒤에 서 있던 연가희가 달콤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경준아.”엄경준은 그녀의 부름에 뒤를 돌아 연가희를 바라보았다. 불러놓고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엄경준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듯 연가희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열려 있는 문으로 향했다.엄경준의 행동에 연가희는 무척이나 기뻤다.그녀는 두 눈이 반달 모양이 되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엄경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엄경준은 신사답게 연가희를 먼저 차에 태우고 문을 닫아준 후 유유하게 반대편 걸어가 차량에 올라탔다.장수철은 그런 엄경준과 연가희를 넌지시 바라보았다.대표님을 위해 문을 열어준 게 결과적으로 연가희를 위한 게 되어버렸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설명하지 않자 연가희도 묻지 않았는데 말이 필요없이 그저 엄경준이 그녀를 선택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이틀 동안 엄경준은 항상 연가희의 곁을 지켰다. 필요한 업무와 저녁에 휴식할 때를 빼고 항상 그녀와 함께 있었다. 한가지 고민이 있다면 두 사람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는데 그저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안는 정도에서만 그쳤다.연가희는 아직 해야할 않은 일이 있어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그리 서두르지 않았다.오히려 엄경준이 그녀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녀는 불만이 많았다. 명확한 고백이 없이 그의 여자친구가 된다면 신분이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즉 그녀는 명분이 없는 여자라는 뜻이다.엄경준의 여자가 되어 주변에 알리며 그에게 청혼을 받고 혼인신고를 한 합법적 부부관계가 되어야만 연가희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것 같았다.차가 멈춰 섰지만 연가희의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케리 파크는 임해시 최고급 주택이다.연가희가 퇴원한 후 엄경준은 그녀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 복층으로 되어 몇억에 달하는 부동산을 입주 첫날 엄경준이 선물로 연가희에게 주었고 등기서류에도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연가희는 엄경준의 성의에 만족했다.엄경준은 한 손으로 연가희의 하얀색 캐리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연가희를 부축하며 지하주차장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올라가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경준아, 이대로 갈래?”연가희는 입을 살짝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엄경준은 캐리어를 거실에 놓으며 말했다.“응. 오후 회사에 일이 있어서 바로 회사로 가야 해. 3일 동안 너랑 노느라고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밀렸어.”엄경준은 평온한 어조로 설명했다.3년 전에 연가희에게 했던 약속을, 3년 동안 사라졌던 그녀가 돌아왔으니 마땅히 약속을 지켜 보상해줘야 한다.‘마땅히?’분명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연가희이고 그녀와 함께 놀러 가는 것은 커플로서 당연한 건데 왜 그는 ‘마땅히’라는 말을 썼을까?미션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다.엄경준은 이
엄경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연가희의 수척해진 얼굴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다.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늦었어. 그만 가야 해.”연가희는 엄경준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엄경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후에야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문이 닫힌 후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인터넷으로 처녀막 복원 수술을 예약했는데 특히 인화병원을 피해 국립병원을 찾았다.화면에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뜨자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경준은 다시 차에 돌아갔고 장수철이 차를 몰았다. 뒷좌석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등받이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미간을 주물렀다.지난 이틀 동안 그는 잘 쉬지 못했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꿈에사 그는 엄지연이 수영장에 빠진 것을 보고 아무리 뛰어도 다가갈 수 없었다. 마치 연가희가 미르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을 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을 때 거리의 벤처에 앉아 눈을 감고 있을 때와 같았다.이틀 동안 엄경준은 미래의 아내는 연가희이고ㅡ 엄지연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는 더는 쓸모없는 대체품 같은 애인에게 신경을 쓰기 싫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장수철이 문을 열었다.엄경준은 차에서 내리면서 양복을 정리했다.윤성 그룹은 임해시 도심에 있는 중요한 위취에 있는데 화인국에서 손꼽히는 국제금융무역회사다.본사는 단독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와 웅장한 모습으로 임해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대표님.”신석훈은 이미 회사의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음.”정장 차림을 한 엄경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온몸으로 시크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회사 안으로 걸어갔다. 신석훈이 그 뒤를 따라 함께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에 도착했다.며칠째 회사에 나오지 않았던 대표님을 위해 비서진 직원들이 일찌감치 줄을 서서 기다렸다.“대표님, 안녕하세요!”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계속 일해.”
둘째 삼촌이 페이퍼컴퍼니로 윤성의 돈과 인맥을 이용했는데 몰래 또 다른 국제 무역 회사를 설립하고 윤성과 경쟁할 계획이었다.‘2000억이면 적네! 람미 그룹에 둘째 삼촌이 개인적으로 주식을 소유했나 봐.’“거절해. 평가 보고서와 문서를 함께 주고 조사결과는 주지 않아도 돼.”엄경준은 서류를 신서훈에게 돌려줬다. 결국, 엄경준은 둘째 삼촌의 체면을 봐준 셈이다.“네.”“북양시 정부와 경쟁 입찰하여 투자한 도시 신구역 건설이 완료되어 이번 달 21일 점검하는데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합니다.”“20일 점심에는 아성 글로벌의 대표님과 식사 약속이 있고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없으니 전용기로 북양시에 갈 수 있어.”“9시 반에 신에너지 차 프로젝트 투자 회의가 있는데 회의까지 15분 남았습니다.”신석훈은 말을 마치고 대표님 사무실에서 나왔다.엄경준은 잠시 후 회의에 사용할 신에너지 자동차에 관한 자료를 뒤적거렸다. 그는 신에너지에 관심을 가졌는데 다시 자료를 보며 회의 프로세스를 확인했다. 신에너지 기술은 발전 전망과 상업적 가치가 매우 크기에 R&D에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엄경준은 서류를 닫고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엄경준이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엄호진과 다른 임원진은 이미 와 있었다.“대표님.”“네, 앉으세요.”회의가 시작되었다.“신에너지 차 기술개발서를 다들 보셨죠?”엄호진의 냉엄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질 때 신석훈은 옆에서 회의기록을 작성하고 있었고 임원진은 고개를 숙이고 프로젝트 기획서를 뒤적거리고 있다.“정부의 신에너지 기술 지원으로 미래가 유망해 원래 금액에 3%를 추가해 사업 투자를 하기로 했어요.”“하 본부장님께서 추진해 왔으니 이 프로젝트도 맡길게요. 기술부에서 지원하세요.”엄경준은 냉엄한 목소리로 일사불란하게 일을 안배했다.“큰 조카!”엄호진이 갑자기 엄경준의 말을 끊어버렸다.엄경준은 내심 언짢았다. 비록 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지금은 가족 모임이 아니라 회의 중이다.엄호진이 둘째 삼촌이
엄호진의 눈빛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엄경준은 엄호진의 말을 들은 후 그를 바라보다가 조 사장의 득의만면한 눈빛과 마주쳤다.‘람미의 대출을 부결하니 여기서 태클을 거는 거야? 윤성 그룹의 부대표로서 페이퍼컴퍼니로 그룹의 자금을 조달하다니. 둘째 삼촌은 나이 들수록 더 어리석어지네.’최근 몇 년 동안 엄호진이 경영하는 프로젝트의 수익이 점차 줄어들었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어중이떠중이 친구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는데 엄경준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었다.할아버지의 체면을 봐서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엄호진의 부사장직을 해임하고 더 유능한 사람으로 바꿨을 것이다.“조 사장은 경력이 많지만 줄곧 전통 업무를 관리했어요. 신에너지 기술개발은 젊은이들이 해야 해요.”엄경준은 화를 내지 않아도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다. 둘째 삼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반대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하 본부장은 경력이 조 사장못지 않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승진했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입증할 수 있고 신재생에너지에 관한 연구도 해왔기 때문에 잘 관리할 것으로 믿어요.”부대표는 자신이 대표의 삼촌이라는 신분을 믿고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따낸 프로젝트를 가로채는 일을 많이 했는데 하 본부장도 신에너지 프로젝트가 부대표님에게 빼앗길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던 그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나머지 임원들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들여다보며 잠자코 있었다.엄호진은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엄경준, 무슨 뜻이야? 내가 나이 들었으니 물러나라는 거야? 내가 회사를 관리할 때 넌 아직 젖먹는 갓난아기였어. 내가 친삼촌이고 어른인데 감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대꾸해?’엄호진은 화가 나서 책상을 두드리며 신에너지 프로젝트를 빼앗으려는 목적을 이루려말을 더 하려 했다.“다른 의견이 있어요? 없으면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할게요.”엄경준은 정색해서 말을 마친 후 엄호진을 보지도 않은 채 제일 먼저 회의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