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By:  향소리  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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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년 차, 허희영은 산부인과에서 뜻밖에도 유기현과 마주쳤다. 그가 함께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과거 허씨 가문의 아가씨였던 허주아였다. 기현은 허주아의 산전 검사를 돕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날 밤, 희영은 단호히 이혼을 요구했고, 기현은 신혼 초부터 준비해 두었던 이혼 서류를 망설임 없이 꺼내 서명했다. 기현은 언제나 희영이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허희영은 유기현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했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이혼 후,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어떻게 무너질지 비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석 달 후, 희영이 재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상대는 재벌 가문의 상속자였다. 이 소식을 접한 전남편 유기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희영의 결혼식 날, 기현은 사람들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난입해 혼란을 일으켰다. “넌 나를 그렇게 사랑했잖아? 지금도 나만 사랑해.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야 해. 넌 내 거야!” 하지만 희영은 차갑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야. 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어.” 기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얼어붙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받았던 모든 사랑이 사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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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 3년 차. 허희영은 산부인과에서 몇 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남편 유기현을 마주쳤다. 기현의 곁에는 그가 숨겨왔던 애인이 있었다.매혹적인 외모에 다정다감한 여자는 희영과 어딘가 닮아 보였다. 그녀는 바로 과거 허씨 가문의 아가씨였던 허주아였다.반년 전부터 희영은 기현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 상대가 주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G시 재벌가 사이에서는 허주아가 유기현의 첫사랑이자 소꿉친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영은 두 사람 사이에 억지로 끼어든 나쁜 여자로 낙인찍혔다.이제 더는 이상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평온한 눈빛으로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기현이 고개를 숙이고 다정한 눈빛으로 주아에게 나긋나긋 말을 건네는 모습은 희영에게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주아는 그의 말을 들으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살짝 부푼 아랫배를 조심스레 감싸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닮은 두 사람이었지만, 희영은 주아의 요염함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때 주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희영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주아는 겁에 질린 사슴처럼 몸을 움츠리며 재빨리 기현의 품에 파고들었다.희영은 그 장면을 보며 무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이, 어쩌면 이제야 그녀가 억지로 붙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을 순간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기현 오빠...”‘여전히 연기를 잘하네.’기현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희영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인 후, 기현은 다시 차갑고 혐오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희영을 내려다보았다.희영은 그 눈빛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언제나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희영과 기현의 결혼은 두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양가 부모님들이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희영이 세 살일 때 부모님이 사고로 사망하고, 그녀는 실종되었다. 그 이후 주아가 허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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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G시 대극장.키가 큰 남자가 차가운 기운을 품고 어둠 속에서 무대 위의 매혹적인 블랙 스완을 쳐다보고 있었다. 흑고니는 우아한 자태로 춤을 추며, 그 움직임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사람의 혼을 빼앗아 가기라도 할 듯,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나 그 흑고니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가자 남자는 시선을 거두며 차가운 표정으로 무대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희영의 허리가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아픔을 참으며 무대를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뜨거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희영은 아쉬운 눈빛으로 무대와 관객을 마지막으로 한번 쓱 바라보고는 무대 뒤로 물러났다. “많이 아파? 아프면 관객들과의 사진 촬영은 취소해줄게. 좀 쉬어.” 미나는 희영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희영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몇몇 관객이 그녀를 만나러 먼 길을 왔기에 희영은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미나는 공연장으로 돌아가며 희영에게 잠깐 쉬라고 몇 마디 당부를 했다. 어느새 주변은 고요해졌다. 희영은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발레를 배워왔고, 말하지 못하는 미래를 걱정한 보육원 원장님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주었기에 발레리나로서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무대를 떠나야 한다니, 아쉬움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메이크업을 지운 희영은 아픈 허리를 감싸며 혼자 1인실로 마련된 휴게실로 걸어갔다. 어두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안으로 세게 당겼다. 문이 닫히며 찰칵하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놀란 희영은 곧 익숙한 기운에 감싸이는 것을 느꼈다. 유기현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온 거지?’ 희영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기현의 입술이 무자비하게 그녀를 덮쳤다. 희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기현의 강한 힘과 분노에 압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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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기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허리는 날씬했다. 희영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기억 속에서 점차 흐려져 가는 앳되고 날렵했던 소년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 순간, 아무렇지 않던 그녀의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허희영.”문에 다다른 기현이 갑자기 멈추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난 더 이상 외할아버지의 뜻을 따를 필요가 없으니 너에게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없을 거야. 그리고 이 이혼은 네가 요구한 거니까, 후회되더라도 주아를 귀찮게 굴지 마. 주아는 이미 너 때문에 충분히 고생했거든.”희영이 그렇게 타오르듯 쏟아냈던 사랑을 기현이 몰랐을 리 없었다. 그녀의 황량한 삶 속에는 오직 춤과 그만이 전부였다. 기현은 희영의 행동이 주아에게 자극받은 것일 뿐이라, 그녀가 평정심을 되찾으면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가 오더라도 기현은 절대 희영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희영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예의 바르지만, 유독 주아에게만은 달랐다. 기현은 자신이 주아를 지키지 못한 탓에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난을 떠올리며,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아가 다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유기현, 그 말은 허주아한테 해주는 게 좋을 거야.” 희영은 평온하게 수화를 하며 말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엔 희미한 안개가 서려 있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허주아한테 날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줘.” 안 그러면 주아는 더 큰 불행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희영은 절대 미련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기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세상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필요 없으니, 그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조차 아까웠다.기현이 떠난 후, 희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질러진 휴게실을 정리했다. 그리고 찢어진 드레스를 조심스레 챙겼다. 이 드레스는 그녀가 가장 아끼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기현의 손에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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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자신이 키운 아이였기에 임서향은 희영의 표정을 보고 즉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 허씨 가문이 희영을 찾은 것은 신정훈이 세상을 떠난 지 반년 후였다. 임서향은 희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정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친 듯이 그를 찾아다니며 밥도 먹지 않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모두가 그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희영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서향은 희영이 새로운 환경과 가족들 속에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씨 가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를 G시로 보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희영의 결혼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임서향은 희영이 신정훈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 재벌가의 이익을 위해 희영에게 강제로 결혼을 요구했을까 봐 걱정되어 서둘러 G시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유기현을 보게 되었다. 기현은 정훈과 분위기가 전혀 달랐지만 외모는 꼭 닮아 있었다. 마치 복사한 듯했다.그때의 희영은 기현을 보며 마지막 희망을 붙잡은 듯, 그가 정훈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정훈이 잠시 자신을 잊은 것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임서향이 정훈의 죽음을 언급하면 부정하고 감정이 격해졌다. 그러나 오늘, 희영은 그저 슬프고 애달픈 눈으로 임서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너도 그 남자가 정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 임서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희영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은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기현은 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희영은 정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그와 닮은 사람을 곁에 두고 그가 살아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싶었다. 안 그러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기현은 그런 희영의 바람을 무시했다. 그는 항상 서늘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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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확실해, 서 어르신이 허희영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허희영이 서씨 가문의 모임에 빠질 리가 있겠어?” 핸드폰 너머의 여자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기현의 외가는 서씨 가문으로, 꽤나 유력한 재벌가다. 예전에 기현은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급히 외국에서 돌아왔고, 유씨 가문의 어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쫓겨날 뻔했다. 주아가 허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기현처럼 무너진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현은 희영과의 결혼을 통해 외할아버지의 지지를 얻어 빠르게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주아가 선택한 그 멍청이는 재산을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 만약 기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주아는 지금 어딘가에서 죽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 선택을 잘못했으니,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현을 반드시 붙잡기로 결심했다. 오늘 밤... 주아는 전화를 끊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서씨 가문의 어르신들 앞에서 희영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었다. ... 그러나 주아가 기대한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희영은 서씨 가문의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간병인은 임서향의 유골을 담은 후, 눈물을 흘리며 임서향의 유품을 희영에게 건넸다. 그녀의 물건은 매우 적었다. 10년 넘게 사용한 낡은 핸드폰과 한 묶음의 열쇠, 그것은 그녀들이 하늘 마을에서 살던 집의 열쇠였다. 저녁이 되자, 희영은 임서향과 함께 F시와 멀리 떨어진 하늘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희영을 보고 기뻐했지만, 임서향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곧 울음을 터뜨렸다. 하늘 마을에는 바다를 향한 작은 묘지가 있었는데, 보육원의 뒷산에 위치해 있었다. 임서향은 그곳에 묻힐 예정이다. 밤이 깊어가자 하늘 마을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희영을 도와 장례를 준비했다. 작은 섬의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희영은 길 모퉁이에 서서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곳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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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기현은 곧바로 떠났다. 서준모는 창문 앞에 서서 기현이 주아를 위해 보조석 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여보.” 뒤에서 송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모는 뒤돌아보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영이가 M시로 돌아갔대.”송혜정은 잠시 놀랐다가 곧 이어 말했다. “어차피 몇 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잖아. 결국 고향이니까...”서준모는 송혜정을 바라보았다.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 후 송혜정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희영이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가 보려는 걸지도 몰라. 좋은 일일 수도 있어.”송혜정은 말을 하면서 서준모의 세게 찌푸려진 이마를 보며 다소 짜증 섞인 말투로 덧붙였다. “지금은 훨씬 더 시급한 문제가 있어!”서준모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문제?” “당신 못 봤어? 허주아가 임신했잖아!” 송혜정은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어 주아가 숨기려 애썼지만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룻밤 관찰한 결과, 거의 확신에 가까워졌다.“뭐?” 서준모가 소리쳤다. 멀리 서 있던 아주머니들은 그 소리에 모두 움찔했다.“목소리 좀 낮춰!” 송혜정은 낮은 목소리로 꾸짖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현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세상 만만하게 알고 아이가 생기면 우리 서씨 가문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배를 부풀리고, 내 앞에서 까불다니. 희영이 오늘 저녁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실망해서 그런 걸 거야.”송혜정은 다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허주아 뱃속의 아이는 절대 태어나면 안 돼.”“응.” 서준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전에 사위가 임신한 여자를 데려온 걸 보고 넘어가 준 적이 있었다. 결국 그의 딸은 미쳐서 스스로 불태워 죽었다. 비록 그는 기현에게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세심하게 가르쳤지만, 유씨 가문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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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정훈은 사람을 구하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것이었다. 그의 시체는 무려 보름이 지나서야 해변으로 떠올랐다. 이미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기에, 희영은 그것이 정훈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도, 묘비에도 정훈의 사진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인은 정훈의 사진을 받아들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희영을 바라보았다.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훈의 사진이에요. 잘 만들어 주세요.” 희영은 미리 적어놓은 글을 장인에게 보여주었다. 장인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걱정 마세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희영은 다음 날 G시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곳의 일들과 사람들을 정리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비행기 탑승 전에, 희영은 기현의 변호사에게 카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장례 기간 동안, 희영은 G시 쪽의 어떤 사람과도 연락하지 않았다. 임서향의 죽음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재회한 시간은 너무 짧아,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더 많은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희영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임서향이 자신에게 병이 나아 A국에 정착했다고 속인 건 분명 G시의 사람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었다. 임서향은 수억 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낡고 환경이 열악한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그렇게나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직전에야 희영을 만날 용기를 냈다. 더군다나 임서향이 죽기 전에 한 말도 뭔가 이상했다. ‘날 묶어둘 사람이 없다고?’ ‘원장님이 왜 그런 말을 하신 걸까?’ 희영은 이번에 G시로 돌아간 후 이혼을 하고 이런 이상한 일들을 명확히 파헤칠 것이고 어떤 단서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대화창에는 진수혁 변호사가 며칠 전에 보내온 비난하는 메시지들이 떠 있었다. [허희영 씨, 이혼 계약서의 세부 사항에 관련해 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치셔도 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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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 서류는 무효야!” 기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법무팀에서 새로운 이혼 서류를 작성할 테니, 그 서류에 서명해.” 비록 이 이혼 서류에 적힌 조건도 만만치 않았지만, 3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희영은 그의 생명을 구해주기도 했다.“필요 없어.” 희영은 짜증을 내며 기현이 잡고 있는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기현은 화가 나서 더욱 강하게 그녀의 손을 움켜잡고, 갑자기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희영,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네가 1년 전에 나를 구하다가 크게 다쳤으니 이 정도 보상으로는 부족해. 새로운 이혼 서류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자산을 포함할 거야. 그럼 넌 더 안정적이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어.” 기현은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P국 쪽은...” P국? 희영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가 보낸 카톡을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애인이 먼저 발견하고 삭제해버린 걸까?’ 하지만 두 경우 모두 큰 차이는 없었다. 희영은 더 이상 기현에게 이런 상황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됐어, 어차피 변호사에게 내가 서명한 이 계약서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라고 하면 돼.” ‘돈을 준다는 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 ‘어쨌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 ‘적어도 허주아한테 주는 것보다는 낫지.’ 기현의 목소리는 갑자기 멈췄다. “뭐가 그렇게 급해?” 기현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허주아가 임신했으니까, 내가 서둘러 자리를 비워줘야지.” 희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기현은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저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정말 너그럽네, 허희영.” “당연하지.” 기현은 희영을 붙잡던 손을 놓았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외할아버지에게만 고개를 숙였고, 그 외에는 언제나 자존심을 지켰다. 희영은 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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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병원 안. 주아는 출혈이 발생하여 아이를 지키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기현은 병원에서 낯익은 두 사람, 허창석과 김수정, 즉 희영의 삼촌과 숙모를 만나게 되었다. 희영이 실종되었을 때, 두 사람은 주아를 데려와 그녀가 희영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주아를 자신의 자식처럼 사랑하고 소중하게 키웠다. 그러나 나중에 허진석이 희영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여전히 주아만 예뻐하고 희영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기현아, 왔어?” 김수정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아도 참,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큰일을 겪고도 우리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다니! 너와 이렇게 만나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 아무런 명분이 없는데... 희영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김수정은 울면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희영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지?” “언니는 사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주아가 말을 꺼냈다. “그래? 어쩐지 잘 지내다가 갑자기 출혈이 일어난 건지 싶었어! 분명히 희영이가 몰래 벌인 일이겠지! 내가 가서 혼내야겠어! 아무리 화가 나도 이건 너무 하잖아!” 김수정은 화를 내며 병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허창석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만해! 기현이가 왔으니, 주아랑 아이가 다치는 건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기현은 이 말이 점점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두 사람은 마치 주아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 듯 말하고 있었다. 기현은 주아를 쳐다보았다. ‘허희영에게 메시지를 보낸 일에 대해서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는데, 또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인 거지?’ 주아는 기현의 화가 난 눈빛을 발견하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기현아, 넌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김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주아는...” “숙모!” 주아가 김수정의 팔을 붙잡았다. 최근 들어 허씨 가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허진석이 세상을 떠나자, 허씨 가문의 무능력한 사람들이 집안의 자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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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주아는 한편으로는 가련하게 울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현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녀가 그 사건을 언급하기만 해도 기현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G시의 재벌가 사이에서 그녀와 기현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지만, 사고가 발생하기 전, 기현은 주아를 동생처럼 대하며 여자로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주아와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기현은 부모님들이 약속한 혼약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사고 이후 주아는 기회를 잡아 기현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모든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나는 약속대로 널 지켜주고 네 아이도 내 보호 아래 무사히 자라게 될 거야.” 기현이 한 말은 주아가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주아는 기현의 이혼 소식에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 기현과 결혼하고 싶다는 암시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회피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한동안 푹 쉬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해.” 기현은 말을 마친 후 일어나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쉬어, 내일 다시 보러 올게.” “제가 싫어진 거죠? 맞죠?” 주아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기현이 부정했다. “그럼 희영 언니를 사랑하게 된 거예요?” 주아는 더욱 격하게 울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현은 찌푸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말조차 하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하겠어? 주아야, 앞으로는 생각 좀 하고 말을 해.” 기현은 한 마디 위로의 말도 없이 병실을 나섰다.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김수정과 허창석이 돌아왔다. “주아야, 왜 울고 있어?” 김수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주아는 슬픈 표정을 거두고 짜증스러운 태도로 휴지를 세게 잡아당기며 눈물을 닦았다. 기현의 마지막 대답과 태도는 그녀를 만족시켰다. ‘허희영은 3년 동안 기현 오빠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나 보네.’ 그러나... 기현은 그녀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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