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 허희영은 산부인과에서 뜻밖에도 유기현과 마주쳤다. 그가 함께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과거 허씨 가문의 아가씨였던 허주아였다. 기현은 허주아의 산전 검사를 돕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날 밤, 희영은 단호히 이혼을 요구했고, 기현은 신혼 초부터 준비해 두었던 이혼 서류를 망설임 없이 꺼내 서명했다. 기현은 언제나 희영이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허희영은 유기현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했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이혼 후,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어떻게 무너질지 비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석 달 후, 희영이 재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상대는 재벌 가문의 상속자였다. 이 소식을 접한 전남편 유기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희영의 결혼식 날, 기현은 사람들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난입해 혼란을 일으켰다. “넌 나를 그렇게 사랑했잖아? 지금도 나만 사랑해.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야 해. 넌 내 거야!” 하지만 희영은 차갑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야. 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어.” 기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얼어붙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받았던 모든 사랑이 사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View More다음 날 아침.서준이 어린 소녀를 데리고 희영의 방 문을 두드렸다. 희영이 문을 열자, 서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 선생님, 오늘은 작은 과제를 드리죠!” 희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 앞에 서 있던 소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수화로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서예요. 저와 제 친구들이 공연에서 춤을 출 생각인데, 춤을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이서는 옆 보육원의 아이인데 태어났을 때부터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서준은 이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옆 보육원에는 이서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며칠 후에 좋은 사람들이 방문할 예정인데, 잘하면 입양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다른 아이들은 괜찮지만, 이서와 몇몇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선생님을 찾지 못해서 희영 씨한테 부탁하러 왔어요.”희영은 보육원에서 자랐기에 입양의 기회가 얼마나 간절하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할 일도 없었고, 매일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희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이서의 뺨을 만지며 수화로 물었다. “물론이지. 이서야, 어떤 춤을 추고 싶어?” 이서는 눈을 반짝이더니 기뻐하며 발레 동작을 취했다. “그럼 잘 찾아왔네! 허 선생님은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거든!” 서준이 자랑스럽게 수화로 이서에게 말했다. 희영은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이서의 손을 잡고 작은 별채를 나섰다.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하마터면 갑자기 뛰어오는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희영은 이서를 보호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사람은 선홍색 고급 브랜드의 후드 달린 재킷을 입고 있었고, 큰 모자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위쪽은 따뜻해 보였지만, 아래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드러난 피부는 차가운 공기에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남자는 두 사람과 부딪힐 뻔한 것을 보고, 음침한 표정으로 희영과 이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희영은 창백하지만 잘생긴 남자의 얼굴
‘분명 기뻐할 거야.’ 서준은 곧바로 희영의 눈이 선명하게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의 마음은 아팠다.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서준은 실시간 검색어에 대해 묻지 않았다. 희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후에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좀 피곤하네요. 한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서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희영 씨의 심리 상담사예요.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이야기해요. 희영 씨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드릴게요.” 희영은 서준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서준은 평소에 단 한 번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서준은 희영이 실시간 검색어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방금 오랫동안 잤다고 했으니 분명 보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요양원 사람들은 다 알고 있잖아.’ “희영 씨가 오늘 오후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 서준은 자신이 아는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했다. “지금은 이미 처리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거였구나...’ 희영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 로그인하지 않았던 카톡을 확인했다. 서준과는 요양원 내선 전화를 통해 연락할 수 있었고, 희영은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고 싶지 않아 계정 로그인을 종료했다.카톡을 로그인하자 읽지 않은 메시지가 화면 가득했다. 유선빈이 보낸 메시지 수만 해도 99개가 넘었다. 그리고 지민과 무용단의 친구들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두가 실시간 검색어 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희영은 선빈이 보내온 메시지를 빠르게 읽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자신의 사진이 게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화질이 좋지 않은 사진이었지만 희영을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었다. 허주아의 짓이었다.“희영 씨, 괜찮아요. 인터넷의 글들은 다들 금방 다 잊어버릴 거예요.” 서준은 희영이 차가운
주아가 외투를 입고 나왔지만 기현은 이미 떠나버렸다. 운전기사는 경건하게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주아 씨, 유 대표님께서 중요한 국제 회의가 있어서 회사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 안전하게 집까지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주아는 입술을 오므렸다. 무척 불만스러웠지만, 기현과 그의 사람들 앞에서 온순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다. 옷을 가지러 가던 중에, 그녀는 이미 다른 번호로 허창석 부부와 연락을 했다. 주아는 그들에게 실시간 검색어를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그 실시간 검색어는 주아가 기현에게 결혼 압박을 주기 위해 벌인 짓이었다.차에 앉은 뒤, 주아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기현이 희영에게 보이는 관심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 한참을 생각한 뒤, 주아는 모든 분노를 희영에게 쏟아내기로 했다....서준은 번거로운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인기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 세 번 자살을 시도한 후 회사에 의해 비밀리에 여기로 보내진 것이다. 이 요양원은 원래 이런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첫 진료는 순탄치 않았기에, 6시간 넘게 걸렸다. 서준은 진료를 마친 후에야 간호사에게서 희영이 인기 검색어에 오른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실시간 검색어는 이미 사라졌고, 관련 기사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간호사가 덧붙였다. “희영 씨가 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서준은 의사 가운을 벗고 자신의 외투를 입었다. 평소 온화하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희영의 작은 별채로 향했다....희영은 실시간 검색어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며칠 사이 늘 잠이 많았기에 점심 후 책을 보며 졸다가 잠이 들었다. 희영이 일어났을 때 실시간 검색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핸드폰에는 몇 명의 알 수 없는 사용자로부터 온 메시지가 있었다. 메시지 중 하나에는 초음파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3년 동안 임신하지 못한 걸
“형,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야?” 한결이 뒤에서 스포츠카 열쇠를 흔들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방금 안에서 사람들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다들 형이 허주아를 달래주기 위해 한 일이라고 떠들더라고. 나도 하마터면 믿을 뻔했어.”“헛소리 하지 마.” 기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주아와 그런 사이가 아니고, 뱃속의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야.”한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두 사람이 만나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허주아 뱃속의 아이도 형의 아이라고 확신하고 있던데?” 한결이 기현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형 아이가 아니라는 걸 허희영이 알고 있을까?”기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결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형, 나랑 내기 할래?” 기현은 의아해하며 한결을 경계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한결은 나이가 어린 데다가 경솔한 행동을 자주 보이곤 했지만, 기현은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결은 내기만으로도 몇몇 재벌가의 도련님들을 파산시켰던 경험이 있었다.“내기는 부가티 스포츠카 한 대면 충분해.” 한결이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난 형이 허희영과 이혼하면 후회할 거라고 확신해!”기현은 말문이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후회한다고?” “응.” 한결은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형은 다시는 허희영보다 더 형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야.”기현의 미소는 점차 사라졌다. “솔직히, 난 정말 부러웠거든.” 한결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펼쳤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준다면, 나는 평생 후회가 없을 거야.” 희영이 준 사랑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한결은 말을 마친 후 느긋하게 손을 흔들며, 엉뚱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났다.“기현 오빠!” 주아가 외투도 입지 않은 채로 연회장에서 뛰쳐나왔다. 차가운 바람에 그녀의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었고, 재빨리 다가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현을 살폈다. “방금 유리 조각이 여기저기
주변은 점차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기현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방금 말을 꺼냈던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져, 기현이 왜 갑자기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했다.“마시긴 뭘 마셔!” 기현이 짜증스럽게 한마디 했다.연회장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기현이 침울한 표정으로 떠나자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가 벙어리 나쁜 말 해서 화난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모두 유 대표가 벙어리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잖아. 안 그러면 결혼한 지 3년 동안 한 번이라도 우리한테 소개해줬겠지.” “맞아, 기현이 형이 왜 그 여자 때문에 화를 내겠어?” “그 여자가 신경 쓰였다면, 이혼조차 안 했겠지!” 주아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고, 긴 손톱이 살을 깊게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기현이 화를 낸 것은 분명 희영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없어! 기현 오빠 스스로도 허희영한테 관심 없다고 말했잖아!’“주아야...”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주아는 빠르게 감정을 다스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현을 대신해 모두에게 사과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기현 오빠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여러분에게 화를 낸 건 아니에요.” “내가 말했잖아, 주아와 화해했으니 벙어리 때문일 리가 없지...” 사람들은 다시 왁자지껄 얘기를 나누었다. 한결은 그들의 비열한 모습이 역겨웠기에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자리를 떴다. 작년에 기현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한결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었다. 그는 희영이가 기현을 보호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작고 연약한 그녀는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오직 기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희영은 기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의식을 잃었다. 한결은 늘 희영을 못마땅해 했었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희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는데, 주아 씨의 언니가 갑자기 끼어들어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부탁해서 두 사람을 갈라놓은 거예요! 결국 유 대표는 언니랑 결혼하게 됐고, 주아 씨는 외국으로 쫓겨났어요!][정말 뻔뻔한 여자네! 유 대표는 그 여자를 엄청 싫어했다던데. 결혼한 3년 동안 손대본 적조차 없다고 들었어!][자기 것이 아닌 걸 빼앗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유 대표는 자리를 되찾자마자 첫사랑에게 다시 가버렸잖아!]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현과 주아를 응원하며 희영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보정한 희영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 밑에는 주아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고, 한쪽은 기괴할 정도로 못생겼으며 다른 한쪽은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모두가 희영이 못생겼을 뿐 아니라 동생을 괴롭히는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네티즌들의 비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그때 한 유명인이 폭로글을 올렸다. [유 대표가 왜 급히 이혼했는지 아시나요? 허주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이 함께 산부인과에 나타난 걸 목격한 분들이 있다네요.]글은 곧 삭제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논란이 다시 커졌고, 기현과 주아에 관한 폭로였음에도 불구하고 희영의 이름이 인기 검색어에 올라갔다....소란이 커져가고 있었을 때, 기현과 주아는 친구 아기의 돌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 구한결은 기현의 친구로 부동산 회사의 후계자였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는 늘 사고를 일으켰다. 모두가 기현을 두려워했지만, 한결은 그런 기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형, 진짜 이혼했어?” 한결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응.” 기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주아는 그 옆에서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한결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허희영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필요는 없잖아?”기현은 연예계의 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실시간 검색어?”“누군가가 예전 일들을 적어 인터넷에 올린 것 같아요. 오빠와 제가 결
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준은 가벼운 음악을 틀어 놓았고 차 안은 은은한 향기로 가득했다. “요양원 근처에 대중교통이 없으니, 밖으로 나오고 싶으시다면 저한테 말해줘요. 제가 차로 데려다 줄게요. 제가 그쪽에 없다면...” 서준이 희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운전면허는 있어요?”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서준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였기에, 희영은 심리적 장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살 때 배워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무서워서 극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배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훈은 정말 대단했다. 운전면허를 만점으로 한 번에 합격했으니까. 정훈은 희영에게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가 항상 곁에 있을 테니, 희영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 줄 거라고 말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희영 씨의 기사가 되어야겠군요.” 희영도 웃으며 약속했다. “그럼 제가 밥 사 드릴게요.” 두 시간이 지나자, 차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희영은 브로셔를 읽어봤는데, 보통은 홍보 차원에 미화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풍경은 브로셔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희영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자연이 그녀의 몸속의 모든 불순한 기운을 정화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 정말 좋은 곳이네.’ 체크인을 마치고, 서준은 희영을 그녀의 숙소로 안내했다. 희영은 호텔과 같은 숙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준은 그녀를 작은 독채로 안내했다. 독채의 환경은 정말 좋았다. 밖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정원과 통하는 길이 있었고, 마당에는 귀여운 식물이 가득했다. 게다가 침실의 창문은 푸른 호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봄이 오면, 저기 백조가 돌아올 거예요.” 서준이 호수를 가리키며 희영에게 물었다. “맘에 들어요?” 희영은 서준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제가 지불한 돈이 부족하진 않은 가요?” “그럼요.” 서준은 주저
“정말 G시를 떠날 생각이야?” 기현이 갑자기 물었다. 그는 차 안에서 희영이 미나와 대화하는 모습을 듣고 있었다. 희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 손을 높이 들어 다시 중지를 날렸다. 벙어리도 장점이 있었다. 쓸데없는 설명을 줄일 수 있었기에, 욕할 때도 간결하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일 ‘정신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예정이니, 이혼 판결이 나기 전에 기현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기현 오빠, 괜찮아요?” 희영이 떠나자 주아가 다가와 기현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분명 언니가 잘못한 건데 왜 오빠한테 손을 댄 거죠? 역시 허희영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기현은 주아의 손길을 피했다. “병원에 데려다줄게.” “기현 오빠!” 주아는 손을 떨구며 기현의 뒷모습을 보며 투정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기현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차로 돌아갔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허희영이 날 때린 건 처음이야.’ ‘감히 날 때리다니...’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와 허주아를 언급하다니...’ 주아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기현은 차 안에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였기에 주아조차도 조금 겁을 먹을 정도였다. 기현은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다. 3년 전의 기현은 여전히 순수하고 활기 찬 재벌가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고작 3년 만에, 기현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주아는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희영이 기현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기현이 쉽게 희영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기현은 언제나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지만, 희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늘 격하게 다투었다. 심지어 희영에게 한 대 맞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를 기르더라도 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괜찮아! 난 최대한 빨리 희영을 기현의 삶에서 완전히 떼어 놓고,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앞으로는 영원
기현은 병원을 나설 때 기분이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넘쳐오르는 화는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희영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솟구쳤다. 희영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현은 곧 희영이 무용단 동료들과 함께 유명한 정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쯤 주아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아는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며 기현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현은 정원 레스토랑에 자리를 예약한 뒤 주아를 데리고 갔다. 무용단이 예약한 자리는 무대 쪽 긴 테이블에 위치해 있었다. 기현은 그곳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지만, 희영은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기현은 전혀 다른 희영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의 희영은 항상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녀는 크게 웃고 있었다.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둘 희영에게 다가가고, 곧 희영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춤을 추게 했다. 그 남자와 춤추는 희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기현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때 주아가 말했다. “기현 오빠, 희영 언니와 저 남자 너무 가까운 거 아니에요? 설마 언니가 그렇게 서둘러 이혼하려는 이유가...” 주아는 입을 가리고, 진실을 알아챈 듯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현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밥이나 먹어.” 주아는 가볍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틀 동안 기현은 계속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람 마음이 정말 갑자기 변할 수 있는 걸까?’ ‘혹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라면?’ 이런 생각이 들자 희영의 경쾌한 춤사위와 빛나는 미소가 더욱 날카롭게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허희영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때?’ ‘어차피 난 허희영을 사랑하지 않고, 이혼도 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잖아.’ 하지만 가슴속의 화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전, 기현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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