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했다. 돈 많고 잘생긴 데다가 다정하기까지 한 남편. 지금까지 나와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고 싸운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다정하기만 했던 남편이 첫사랑을 벽 쪽으로 밀어붙이며 화를 냈다. “그때 날 버리고 다른 남자랑 결혼한 건 너야. 그런데 인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해?” 나는 그제야 그가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화도 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이혼을 선택한 나,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여진구가 미쳤다고 했다. 단지 나를 찾겠다고 경운 전체를 다 찾아다녔으니까. 그렇게 신중하고 침착한 사람이 미칠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것도 아무것도 아닌 전처를 위해서. 나중에 내가 다른 남자 옆에 서 있는 걸 보게 된 여진구는 나의 손목을 잡고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비굴하게 빌었다. “지연 씨, 내가 잘못했어. 다시 돌아와 주면 안 돼?”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은 없었다. 여진구는 정말로 미쳐버렸다.
View More강예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뒤늦게 귓불을 만져보니 피가 말라서 붉은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손이 닿자 귓불에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피가 나는 줄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강예지가 내 손을 툭 때렸다.“그렇게 뜯으면 어떡해, 안 아파?”말을 하며 가방에서 약을 꺼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어쩌다 이런 거야?”“여정은이 잡아당겼어.”그녀에게 전후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강예지는 너무 화가 나서 욕을 연발했다.“그년 뭐야 대체, 양파 같은 물건이네 아주. 뜯어보지 않으면 속내를
“허리가 너무 아파...” 여정은은 여진구의 품에 안긴 채 울먹였다.“난 그냥 요즘 업무 상황에 대해 물었던 건데 날 밀쳤어.... 진구야, 그냥 지연이보고 본부장 하라고 해. 다른 사람들도 다 쟤 편만 들고 나도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가 지어내는 거짓말을 듣던 나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던 찰나 여진구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했다.“정말이야?”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목소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를 느끼게 했다.나는 자조 섞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아니라고 하면 믿어?
얼마 전까지 그런 말을 들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 흔들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여진구가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인 지금은 굳이 더 묻고 싶은 흥미가 사라져서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게 자신하면서 왜 매일 날 찾아와 난동을 부려?미친년.바람난 내연녀 찾아온 본처처럼 아침 일찍 사무실로 달려오다니.무덤덤한 내 반응에 여정은은 초조했는지 내가 묻기도 전에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나 때문이야.”그녀는 마치 패배한 상대를 바라보듯 내 책상에 손을 얹고 살짝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남지연, 나 아니
“정말 고마워?”차 쪽으로 걸어가던 육형준이 하성주를 뒷좌석에 밀어 넣고 차에 기댄 채 시선을 내리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그럼 앞으로는 나한테 계속 고맙다는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그 말이 조금 의미심장하게 들렸지만 내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너무 안 친해 보이잖아.”나도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네, 알겠어요.”마침 운전기사가 도착하자 그는 차 열쇠를 건네며 고개를 돌려 따뜻하게 말했다.“난 갈게. 너도 빨리 올라가.”위층으로 올라가니
다시 생각해 보니 우스꽝스러웠다.신혼 첫날 밤에 혼자 남겨진 것도, 몇 번의 생일에 남편이 없었던 것도, 원하던 선물을 빼앗긴 것도, 산부인과 검진 날마저 남편이 곁에 없었던 것도 나인데...그는 이혼할 지경에 이르러 친구들이 집들이를 해주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시선을 내려 그를 바라보았다.“안 나가면 정은 언니한테 전화할 거야.”여정은이 와서 소란을 피우면 그는 당해내지 못한다.여진구는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싼 채 내 가슴에 이마를 묻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지연 씨, 난 이렇게 될
두 사람은 나를 위해 감동적인 선물도 따로 준비했다.육형준도 예쁜 선물 상자를 건네주었다.“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고마워요 선배.”나는 싱긋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상자 안에 아주 정교하고 독특한 드레스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다소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이거 직접 디자인한 거예요?”“응, 하나밖에 없어.”육형준이 웃으며 말했다.“역시 선배라니까!”그를 칭찬하던 강예지는 일부러 여진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대표님, 집들이에 오셨으니 선물도 가져오셨겠죠?”내가 끼어들려는데 강예지가 막았다.나도 집에 들
육형준은 그 말뜻을 못 알아들은 건지, 굳이 상대할 마음이 없는 건지 그저 살며시 미소만 지었다.“별말씀을요. 다들 손 씻고 저녁 먹지.”육형준의 요리 솜씨는 매우 훌륭했고 한 상 가득 차려진 다양한 음식들이 사람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하성주와 강예지는 칭찬하기 바빴고 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선배가 한 요리 무척 맛있어 보이네요!” “얼른 먹어,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육형준은 주방에서 마지막 두 가지 요리를 가져왔는데 그중 매운 새우를 내 앞에 놓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이거 너 좋아하잖아.”나는 다소
그렇지 않았다면 재이그룹도 바로 여진구에게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런 당신은, 잘 지냈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갸름한 턱선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물었다.“너와 결혼한 3년 동안.”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가늘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갔다.“잘 지냈어.”그 대답에 나는 더 울고 싶었다.아쉬움 때문이겠지.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백년해로했을지도 모르니까....돌아오는 길에 둘 중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말을 많이 해서 좋을 것도 없었다.그는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없고 나도 아무렇지 않은
무슨 뜻일까, 내가 이혼하기도 전에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는 건가?하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나는 굳이 설명하기 싫어 무심하게 답했다.“친한 친구.”“어떤 친구?”“여진구 씨.”나는 나지막이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은 그렇게 캐묻지 않아.”그가 죽은 전 애인이 되기를 자처한다면 뜻대로 해줄 생각이다.여진구는 기가 막힌 듯 피식 웃더니 혀로 볼 안쪽을 굴리며 차갑게 말했다.“그래.”묘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나는 곧장 계단을 걸어 산으로 올라갔다.그가 따라오지 않자 나는 뒤를 돌아서서 그를 기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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