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너무 아파...” 여정은은 여진구의 품에 안긴 채 울먹였다.“난 그냥 요즘 업무 상황에 대해 물었던 건데 날 밀쳤어.... 진구야, 그냥 지연이보고 본부장 하라고 해. 다른 사람들도 다 쟤 편만 들고 나도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가 지어내는 거짓말을 듣던 나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던 찰나 여진구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했다.“정말이야?”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목소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를 느끼게 했다.나는 자조 섞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아니라고 하면 믿어?
강예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뒤늦게 귓불을 만져보니 피가 말라서 붉은 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손이 닿자 귓불에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피가 나는 줄 몰랐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강예지가 내 손을 툭 때렸다.“그렇게 뜯으면 어떡해, 안 아파?”말을 하며 가방에서 약을 꺼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어쩌다 이런 거야?”“여정은이 잡아당겼어.”그녀에게 전후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강예지는 너무 화가 나서 욕을 연발했다.“그년 뭐야 대체, 양파 같은 물건이네 아주. 뜯어보지 않으면 속내를
결혼 3주년 당일, 여진구는 내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목걸이를 고가에 낙찰받았다.사람들은 여진구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동영상 하나를 받았다.영상 속 여진구는 그 목걸이를 다른 여자에게 걸어주고 있었다.“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알고 보니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일 뿐만 아니라 그의 첫사랑이 이혼한 날이었다....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여진구와의 결혼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다가 진행된 결혼이 아니긴 하지만 남들
‘주얼리?’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조금 전 화장실로 들어간 여진구에게 물었다.“진구 씨, 정은 언니가 와서 먼저 내려갈게요.”그런데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진구가 바로 성큼성큼 나왔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얼굴이었다.“내가 내려갈게.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씻어.”내 앞에서는 늘 점잖고 차분하던 남자가 오늘따라 목소리에 짜증과 긴장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난 다 씻었어. 당신 치약도 내가 짜줬잖아. 잊었어? 됐어. 같이 내려가자. 손님 기다리겠다.”나는 그의
나는 순간 멈칫했다. 다시 확인하려고 메일을 여러 번 꼼꼼하게 보았다. 여러 번 확인해도 여정은이 확실했다.여정은은 낙하산으로 디자인팀 본부장이 되어 나의 직속 상사가 되었다.“지연이 너 이 여자 알지?”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강예지는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말했다.“응. 이 사람이 바로 진구 씨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누나야. 예전에 너한테 얘기한 적이 있어.”졸업 후 다른 친구들은 각자 자기 삶을 쫓느라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학교 때부터 사이가 좋았던 나와 강예지는 어디도 가지 말고 경운에
여진구는 한 치의 망설임과 고민도 없이 흔쾌히 동의했다.나는 그의 목을 잡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윽하게 쳐다보았다.“정말 10%나 주려고? 아깝지 않아?”그의 두 눈은 한없이 맑고 투명했다.“남도 아니고 당신 주는 건데, 뭐.”그 순간 돈은 정말 충성을 표하는 좋은 물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온 점심 우울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나는 뭔가를 떠보듯 웃으며 물었다.“그럼 정은 언니는? 언니한테는 줄 거야?”여진구는 잠깐 침묵하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정말?”“응. 내가 누나한테
여진구가 날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차를 얻어탔다. 그것도 조수석에.마음 같아서는 홱 돌아서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고 여진구에게 손을 내밀었다.“차 키.”여진구는 아무 말 없이 차 키를 나에게 건넸다.나는 곧장 운전석에 올라탄 후 여정은의 놀란 얼굴을 보며 히죽 웃었다.“뭐라 하긴요. 언니도 진구 씨 누나인데 차를 얻어타는 게 이상할 건 없죠.”그러고는 고개를 내밀어 밖에 있는 여진구를 쳐다보았다.“빨리 타. 할아버지 기다리시겠다.”본가로 가는 길 내내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여정은은 여진구와 얘기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온몸에 흐르는 피가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가끔 두 사람 사이에 진짜 뭔가가 있는 건 아닌지 상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매번 계속 부정했다. 비록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여씨 가문 도련님과 아가씨인 두 사람은 명의상으로는 그래도 남매였고 게다가 각자 결혼까지 한 상태였다.여진구처럼 모든 걸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절대 이런 황당한 일을 할 리가 없었다.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여진구는 여정은을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조롱과 싸늘함이 섞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