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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줘
다시 돌아와 줘
작가: 김니니

0001 화

결혼 3주년 당일, 여진구는 내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목걸이를 고가에 낙찰받았다.

사람들은 여진구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동영상 하나를 받았다.

영상 속 여진구는 그 목걸이를 다른 여자에게 걸어주고 있었다.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

알고 보니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일 뿐만 아니라 그의 첫사랑이 이혼한 날이었다.

...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여진구와의 결혼이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다가 진행된 결혼이 아니긴 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늘 애처가 이미지였다.

나는 식탁 앞에 앉아서 차갑게 식어버린 스테이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여진구가 아내를 위해 수억 원을 썼다는 내용이 계속 걸려있었다.

이 모든 건 아무 소리 없는 조롱이 돼버렸다.

새벽 두 시,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통유리로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았다. 훤칠한 키에 맞춤 제작한 양복을 입고 있어 우아하고 귀티가 흘러넘쳤다.

“왜 아직도 안 잤어?”

여진구는 불을 켜자마자 주방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저려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 기다렸어.”

“내가 보고 싶었어?”

여진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웃더니 물 한잔을 따라 마셨다. 그러고는 건드리지도 않은 저녁 식사를 보고 의아해했다. 그가 평소처럼 행동하니 나도 일단 마음을 진정해야 했다. 하여 그에게 손을 내밀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혼 3주년 축하해. 내 선물은?”

“미안. 오늘 너무 바빠서 깜빡하고 준비 못 했어.”

여진구는 멈칫하다가 그제야 오늘이 결혼기념일인 걸 떠올렸다. 그는 내 머리를 어루만지려 했지만 나는 무심결에 피해버렸다.

오늘 밤 그가 이 손으로 뭘 만졌을지 몰라 거부감이 들었다.

멈칫하는 여진구를 뒤로한 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왜 나한테 거짓말해? 내가 좋아하는 그 목걸이 샀잖아.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어. 얼른 줘.”

“지연 씨...”

여진구는 손을 거두어들이고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그 목걸이는 내가 성주 대신 낙찰받은 거야.”

...

인터넷에서 본대로 친구는 여전히 가장 좋은 방패였다. 나는 하마터면 표정이 확 굳을 뻔했다.

“그래?”

여진구의 말투와 표정만 봐서는 그 어떤 수상한 점도 캐치할 수 없었다.

나는 불빛 아래 그의 완벽한 이목구비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 남자를 제대로 안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여진구가 나를 처음 속이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 그를 너무 믿은 건지 되뇌기 시작했다.

만약 그 동영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여진구의 변명을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여진구가 인내심 있게 나를 달랬다.

“이렇게 중요한 날을 잊어서 미안해. 내일 꼭 선물 줄게.”

“난 그 목걸이만 갖고 싶어.”

나는 여진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동영상에서는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부정당한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진구가 망설이자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성주 씨더러 한 번만 양보하라고 하는 건 괜찮지 않아? 여자한테 그 목걸이 안 준다고 뭐 큰일이야 있겠어?”

줄곧 침묵하던 여진구는 내가 고집을 부리자 하는 수 없이 말했다.

“내일 걔한테 물어볼게. 그런데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어.”

걔라면 하성주일까? 아니면 그 여자일까?

궁금했지만 캐물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

“계속 밥도 안 먹고 나 기다렸어?”

여진구는 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하얀 자기 그릇에 닿으니 더욱 예뻐 보였다.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혼기념일이잖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정리하려는데 여진구가 내 어깨를 누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남편이 맛있는 국수 한 그릇 말아줄게.”

“알았어.”

여진구의 이런 모습에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의심이 또 조금 사라진 듯했다.

‘바람피우는 남자는 원래 이렇게 태연하고 다정해?’

여진구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요리 솜씨가 아주 좋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끼 뚝딱 차렸고 게다가 맛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 요리를 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10분 후, 맛과 비주얼 모두 잡은 잔치국수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맛있어.”

나는 한 입 맛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리는 누구한테 배웠어? 밖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

여진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치더니 추억에 잠긴 듯 30초 정도 지나서야 덤덤하게 말했다.

“유학 간 2년 동안 한식이 먹고 싶어서 스스로 해 먹는 수밖에 없었어.”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거라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시간은 이미 3시가 넘었다. 남자의 뜨거운 몸이 등 뒤에서 바짝 다가오더니 턱을 내 목에 대고 비볐다.

“하고 싶어?”

여진구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고 따뜻한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아직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돌려 한 손을 나의 실크 잠옷 원피스 밑으로 집어넣었다.

부부 관계는 항상 그가 리드하는 편이라 거의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절해야만 했다.

“여보, 오늘은 안 돼...”

목소리와 몸 모두 녹아내려 나른해졌다.

“응?”

여진구는 나의 목에 키스하며 더 아래쪽을 더듬거리더니 낯 뜨거운 말을 한마디 했다.

“여기가 이렇게 원하는데 싫다고?”

“나... 오늘 배가 아파.”

그는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내 귓불에 입을 맞추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생리 올 때 된 거 까먹었네. 쉬어, 그럼.”

긴장을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누워 그를 쳐다보았다.

“나 생리 이번 달 초에 이미 했어.”

“그래?”

여진구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내가 잘못 기억했나 봐. 많이 아파? 내일 아주머니랑 병원에 다녀와.”

“오전에 갔다 왔었어.”

“의사가 뭐래?”

“의사가...”

나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잠깐 멈칫했다.

검사결과 임신 5주라고 했다. 배가 아픈 건 유산기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에 약을 먹으면서 프로게스테론을 보충한 다음 보름 후에 다시 검사받으러 오라고 했다.

결혼기념일에 임신인 걸 알았다니...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나는 검사결과를 작은 유리병에 넣은 후 직접 만든 케이크 가운데에 숨겼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여진구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케이크는 아직도 냉장고 안에 있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괜찮대. 요즘 찬 음료수 많이 마셔서 그런가 봐.”

나는 잠시 숨기기로 했다.

만약 내일 그 목걸이가 내 손에 들어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제삼자가 끼어있는 우리 결혼은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진구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려준다고 해도 의미가 딱히 없었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여자가 남편이 바람난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이 곧바로 새로운 진전이 생겼다.

다음날, 여진구가 씻고 있던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었다. 유선희가 아래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모님, 정은 아가씨가 오셨어요. 뭘 돌려주겠다고 하던데요?”

여정은은 여진구 새엄마의 딸이었는데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여진구보다 두 살 많았다. 아무튼 지금은 여씨 가문의 딸이 되었다.

유선희는 여씨 본가에서 보낸 도우미라 여정은을 평소처럼 아가씨라 불렀다.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평소 본가로 갈 때나 여정은을 만나는 것 말고는 딱히 연락이 없어 뭔가를 빌릴 일도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뭘 돌려준다고요?”

“네. 엄청 정교한 액세서리 케이스던데 아무래도 주얼리 같아요.”

유선희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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