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0010 화

...

난 알고 싶지 않았지만 바로 그 뜻을 알아들었다.

강예지는 코웃음을 치며 평가했다.

“그냥 그래.”

“...”

나는 놀란 토끼 눈으로 강예지를 쳐다보았다.

“한 번 잔 적이 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어.”

강예지는 하성주가 옆에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하성주가 펄쩍 뛰었다.

“그건 내 처음이었단 말이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스톱, 스톱. 난 책임 못 져. 너 같은 바람둥이가 처음이라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네 처음은 얘나 얘한테 줬겠지.”

강예지는 하성주의 양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모든 것을 하찮게 대하던 하성주는 강예지의 말에 귓불마저 빨개졌다. 인제야 두 사람의 관계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원나잇을 한 사이였고 하성주는 강예지에게 대시하는 중이었다.

강예지는 더는 하성주를 거들떠보지 않고 나를 잡고 룸으로 들어갔다.

“어떤 선배가 귀국해서 성주 쟤네가 자리 만들었대. 나더러 오라고 하더라고.”

“어느 선배인데?”

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너도 아는 선배일 거야. 누구냐면...”

강예지는 말하면서 룸 문을 열었다. 룸 안에 남자 몇몇이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 말고도 잘생긴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남자는 훤칠한 키에 다리도 길쭉길쭉했고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소매를 걷어 올리자 하얀 손목에 백옥 구슬을 꿴 빨간 팔찌가 보였다.

빨간 팔찌는 그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눈에 더 띄는 것 같았다. 하지만 팔찌의 주인은 그 팔찌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했다.

거의 동시에 남자도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이야.”

“선배!”

나는 환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때 너무 갑자기 외국 갔어요.”

여진구의 친구들은 대부분 그의 소꿉친구였고 나와 강예지와는 학우였다. 그리고 하성주 무리와는 나와 여진구가 결혼한 다음에 자주 만났다.

그중 육형준은 나와 같은 과 선배였기에 대학교 때부터 꽤 친했다.

하성주가 장난 아닌 장난을 쳤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형준이 그때 어느 여자한테 상처받았는지 갑자기 도망쳤잖아. 형수님이랑 진구 형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육형준은 코를 어루만지며 가볍게 웃었다.

“쟤 쓸데없는 소리 듣지 말고 얼른 앉아.”

“그래. 얼른 앉자.”

강예지는 나를 소파 쪽으로 밀더니 육형준의 옆에 앉으라고 했다.

“너랑 형준 선배는 예전부터 친했으니까 할 얘기가 많을 거야.”

그러고는 그녀는 하성주 무리 쪽으로 가서 신나게 놀았다.

육형준이 먼저 물었다.

“주스 마실래?”

“네, 고마워요, 선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가 여기 없는 동안에도 선배 소식 많이 들었어요. 상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받았죠?”

“내 소식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육형준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두 눈에 미소가 담겨 있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나는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내 비서가 선배 광팬이거든요. 나중에 기회 되면 소개해줄게요.”

“그래.”

그의 기분이 살짝 다운된 것 같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다정했다.

“진구랑 행복하게 잘살고 있지? 인터넷에서 걔가 무슨 아내 바보고 어쩌고 하던데.”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여진구가 왜 자꾸 대외적으로 아내밖에 모르는 애처가인 척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의 나는 그 착각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인터넷에는 항상 과장된 게 많잖아요.”

“그럼 넌 행복해?”

육형준이 진지하게 물었다. 강예지 말고 이 질문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나는 시선을 늘어뜨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글쎄요.”

“대답하지 않아도 돼.”

육형준은 더는 캐묻지 않고 온화하게 웃기만 했다.

예전에 나는 육형준과 여진구가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정하고 점잖고 또 내성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