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난 이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강예지는 내 눈물을 닦아준 뒤 날 안아줬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다정한 모습이었다.“왜 울고 그래? 아이는 멀쩡해. 지금도 네 배 속에 있어. 정말 착하고 강한 아이야.”“진짜?”“그럼, 당연하지. 믿기지 않으면 간호사님에게 물어보든가.”강예지가 말했다.조금 전 강예지는 간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간호사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아이만 걱정하지 말고 본인도 걱정하셔야죠. 환자분은 머리를 다쳤어요. 이마의 긁힌 상처는 조금 전에
이번이 세 번째였다.난 세 번이나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지만 전부 그에게 거절당했다.‘아마 인연이 아니어서 그런 거겠지.’난 오히려 그에게 알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하면 훨씬 깔끔할 테니 말이다.경운은 넓었기에 이혼한다면 그와 우연히 마주치는 건 아주 어려울 것이다.어쩌면 여진구는 평생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모를지도 몰랐다.강예지는 내 말에 동의했다.“아이도 그런 쓰레기 같은 아빠가 있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여진구에게 알리지 않은 건 정확한 선택이야.”수액을 다 맞고
여진구가 나랑 싸울 리가.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날 설득하고 싶어서 안달 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와 여진구의 결혼 생활을 3년간 지켜보았기에 나와 여진구가 서로를 얼마나 깍듯이 대했는지 알고 있었다.난 여진구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여진구와 여정은이 한때 그런 관계였으니 말이다.그래서 아주머니는 날 차마 설득하지 못했다.내가 마지막 캐리어를 닫았을 때, 마당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여진구가 돌아온 것이다.아주머니가
“뭐?”난 당황스러웠다.여진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육형준 말이야. 그날 밤 당신을 바래다줬었잖아? 육형준이 귀국하자마자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만나러 갔었지.”조롱하는 것 같기도, 자조하는 것 같기도 한 말투였다.난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난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형준 선배를 좋아한다는 거야?”“아냐?”그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내가 보기에 그것은 조롱이었다.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분노가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힘껏
난 내가 이혼하자고 하면 여진구가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다.보기 좋게, 심플하게 끝날 줄 알았다.강예지가 물었다.“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진구 씨가...”그 말을 떠올린 나는 속이 터졌다.“내가 육형준 선배를 좋아한대.”강예지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을 쳤다.“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대학 때 하성주는 이미 네가 여진구를 좋아한다는 걸 눈치챘어. 심지어 내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니까. 그런데 여진구는 네가 육형준 선배를 좋아한다고 했다고?”“그래서 참지 못하고 때린 거야.”
아직 진짜 이혼한 것도 아닌데 여정은은 마음이 급했다.주식은 가치가 너무 높고 처리하기 어려워서 사실 갖고 있을 생각도 없었다.하지만 너무 빨리 여정은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무슨 신분으로 저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죠?”여정은은 피식 웃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설마 주식을 독식할 생각은 아니지? 그건 진구가 자기 아내에게 주려던 거야. 그러니까 둘이 이혼하면 그 주식은 네 것이 아니지!”“언니 병원 안 가봤어요?”나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치료는 일찍 받는 게 좋아요.
그리고 주식도 여진구가 원해서 준 것이 아니었다.‘남지연, 넌 여진구에게 아무것도 아니야.’“할아버지!”사무실 안에서 갑자기 여진구의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신을 차린 나는 다른 건 신경쓸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쉬기 힘들어하고 있었다.또 병이 발작한 것이다.“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자리에 앉혀야 해.”난 빠르게 걸어가서 여진구와 함께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할아버지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따뜻한 물이 필요해.”난 여진구에게 얘
난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또 다른 시선이 날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난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할아버지를 속이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히 얘기한다면 할아버지는 절대 우리를 이혼시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난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알겠다. 할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참아줄 수는 없겠니? 이 자식이 어렸을 때 엄마가 곁에 없어서 성질머리가 아주 고약해. 그러니까 네가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그러고는 여진구의 귀를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너무 오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