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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화

동작 하나하나 내 뺨을 때리는 듯했고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런 모습을 나는 여러 번 상상했었다. 분명 따뜻한 집 안이었지만 온몸이 차가워져 오싹할 정도였다.

“지연이 일어났어?”

여정은은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인사했다.

“와서 진구 솜씨 좀 맛봐. 무조건 맛있을 거야.”

그러고는 안주인처럼 식탁 위에 요리를 내려놓았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그녀를 지나쳐 여진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은 언니가 왜 우리 집에 있어?”

여진구는 마지막 요리를 그릇에 담고 앞치마를 벗으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밥만 먹고 꺼질 거야.”

“넌 양심도 없어? 진짜 날 내쫓으려고?”

여정은이 무섭게 노려보았다.

“여정은, 적당히 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말고.”

여진구는 어두운 얼굴로 최대한 인내심 있게 말했다.

“쪼잔한 놈.”

여정은은 중얼거리더니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다. 마치 어제 울며불며 남편더러 이혼하라던 사람이 그녀가 아닌 것처럼, 갖은 수단으로 내 남편을 불러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여진구의 요리 솜씨는 정말로 대단했다. 다섯 가지 요리와 국 하나를 했는데 맛과 비주얼 모두 다 잡았다.

내가 먹기 싫다고 배 속의 아이까지 굶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여정은도 이렇게 낯짝이 두꺼운데 내가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나는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앉았다.

여정은이 가볍게 물었다.

“어때? 맛 괜찮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요리 참 잘하더라고요. 평소 집에 있으면 다 진구 씨가 직접 해줘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수단으로나마 주도권을 잡고 싶었다.

“...”

여정은은 여진구를 흘겨보았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한테 잘해주네?”

“얌전히 밥만 먹으면 안 돼?”

여진구는 싸늘하게 말하면서 나에게 갈비 한 점을 집어주었다. 여정은은 툴툴거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얘가 어떻게 밥을 하게 됐는지 알아? 다 내가 가르친 거야. 특히 잔치국수를 제일 잘해. 내가 좋아한다고 잔치국수 할 때면 엄청 공들여서 하더라고. 한동안 맨날 해줘서 질렸다니까 나중에는 다른 거 하기 귀찮을 때만 해줬어.”

...

내가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어 갈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잔치국수가 남이 질린 음식이라니...

결혼기념일 날 저녁에 요리는 누구에게서 배웠냐고 물어봤을 때 30초 동안 말 못 하고 가만히 있던 여진구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 30초 동안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정은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여정은에게서 요리를 배우던 추억을 떠올렸을까?

“지연이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요리 잘하는 남편 못 만났어.”

여정은은 재잘재잘 끝도 없이 말했다. 나는 결국 참다못해 젓가락을 내려놓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지금 자기 결혼이 깨졌다고 진구 씨 결혼도 깨지길 바라는 거예요? 진구 씨한테 쓰레기나 줍는 취미가 있었어?”

나는 여진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남지연, 너 무슨 뜻이야?”

여정은은 화를 내면서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여진구를 보았다.

“진구야, 우린 가족이야. 결혼하고 나면 가족도 떠나야 해?”

“다 먹었어? 다 먹었으면 우혁이더러 데려다주라고 할게.”

여진구는 그녀에게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젠 너까지 날 괴롭혀?”

여정은의 두 눈이 순식간에 그렁그렁해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나 버릴 거야?”

여진구가 덤덤하게 말했다.

“나랑 무슨 약속 했는지 기억하지?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우혁이한테 연락하면 돼.”

여정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엄청나게 큰 상처를 받은 듯했다.

여진구의 표정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자 여정은은 되레 웃으면서 토라진 말을 내뱉었다.

“그래. 알았어. 앞으로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게. 내가 죽든 말든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캐리어를 들고 나가버렸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우혁은 여정은을 보자마자 바로 내려서 짐을 옮겨주었다.

...

여정은이 나가는 내내 여진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선을 긋는 속도에 나는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어젯밤에 그와 여정은의 관계를 알았는데 오늘 바로 끝내버렸다. 너무 빨라서 믿어지지 않았다.

“뭔 생각해? 밥이나 먹어.”

여진구는 나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나를 깨웠다.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었던 것처럼 여진구는 종일 내 옆에 있었다. 소화하러 마당에 나가면 따라 나왔고 물고기 먹이를 주러 가면 또 따라 나왔다. 그리고 설계도를 그릴 때면 옆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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