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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 화

육형준은 뼛속까지 다정한 사람이었고 여진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육형준은 남의 사생활이라고 캐묻지 않았지만 여진구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묻지 않을 것이다. 여진구는 마음이라곤 없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하성주는 자리를 옮겨 더 마시자고 아우성쳤다.

강예지는 내가 임산부라 밤을 새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집에 데려다주려 했다. 그러자 하성주가 말했다.

“형준이더러 데려다주라고 하면 돼. 쟤도 밤새는 거 싫어해.”

강예지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강예지가 걱정되어 거절하려 했다.

“됐어. 얼른 타.”

강예지는 내가 걱정하는 걸 알아채고 나를 육형준의 차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어디 가서 당할 사람이 아니야. 남자의 마음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 같아서 난 절대 그 바늘을 찾지 않아. 바다를 가질 거라고.”

강예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나는 그녀의 예쁘장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알았어. 일이 있으면 전화해.”

육형준도 차에 올라탔다. 나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선배, 우리 집 영안로에 있는데 같은 방향이에요? 같은 방향 아니면 택시 타고 갈게요.”

“왜 이렇게 남을 대하듯 해?”

육형준은 농담하면서 휴대 전화를 나에게 건넸다.

“내비 찍어줘. 몇 년 만에 오니까 길도 다 까먹었어.”

“알았어요.”

나는 휴대 전화를 받았다.

경운은 밤이 없었다. 이 시간까지도 시내는 불빛이 반짝이면서 대낮처럼 환했다.

오랜만에 만나 차 안에서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육형준은 내가 재미있어하는 화제들을 계속 꺼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육형준의 차분한 모습에 나는 참다못해 물었다.

“선배, 만약 넘기 힘든 고비를 마주하면 선배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신호등 앞에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산이 가로막으면 길을 뚫고 강이 가로막으면 다리를 놓아야지.”

육형준의 차분하고 확신에 찬 말투에 온 저녁 긴장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약 20분 후, 차는 별장 문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 육형준은 차에서 내려서 나에게 선물을 건넸다.

“작은 선물이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고마워요, 선배.”

나는 기분이 많이 좋아져 웃으면서 받았다.

“나중에 시간 되면 밥 사줄게요.”

“그래.”

육형준은 가볍게 웃으면서 당부했다.

“밥 좀 잘 먹어. 많이 야윈 것 같아. 앞으로 다시는 영양실조 같은 거 걸리지 말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알았어요.”

육형준이 마당을 나간 다음에 들어가려 했는데 그가 먼저 말했다.

“들어가. 네가 집에 들어가는 걸 봐야 성주가 맡겨준 임무를 완성한 거니까.”

“알았어요. 운전 조심해요.”

나는 말을 마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유선희도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그 대신 현관 등을 켜놓고 들어갔다. 집 안이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받은 문자가 많았지만 여진구가 보낸 건 한 통도 없었다.

남편이 저녁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보다 더 속상한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인제 보니 더 큰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참 동안 잠이 들지 못했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거의 되었다.

나는 고픈 배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거실에 못 보던 캐리어가 있었고 유선희 말고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눈살을 찌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방에 시선이 머물렀다.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하는 여진구와 그의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여정은이 보였다.

여진구가 손을 내밀자 여정은이 소금을 건넸다. 또다시 손을 내밀었을 땐 키친타월을 건넸다. 정말 죽이 척척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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