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남자는 잠결에 첫사랑의 이름을 불렀다. 이튿날 잠에서 깬 남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그 여자 당장 찾아내!” “...” 온지유는 이제 더는 실망할 힘도 없었다. 그러면서 내민 이혼서류에 적힌 이혼 사유는 이랬다. [아내 측은 아이를 원하나 남편 측이 생육 능력이 없어 감정이 깨짐.] 아무것도 모르는 여이현은 소식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내 그는 지유를 잡아다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어느 날, 지유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군가 그녀를 계단 구석을 몰아넣었다. “내 동의 없이 이혼은 꿈도 꾸지 마.” 지유가 말했다. “당신이 능력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쳐, 근데 내가 능력 있는 사람 찾는 것까지 방해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현은 정말 그길로 지유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유가 가방에서 임신이라고 적힌 검사 결과를 꺼냈다. 이를 본 이현이 불같이 화를 냈다. “누구 아이야?” 이현은 아이의 아빠를 찾아다니며 찾아내면 반드시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찾아낸 사람은 본인이었다...
View More김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저랑 보내는 시간 동안 즐겁지 않으셨어요?”그녀는 이내 신무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신무열보다 키가 크지 않았기에 신무열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젖혀야 했다.신무열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신이 조각한 것처럼 완벽한 이목구비였고 그녀가 푹 빠진 얼굴이었다.그는 입술을 짓이겼다. 머릿속에 김혜연과 같이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확실히 즐거웠다.김혜연은 고집을 부린 적 없었고 오히려 그를 배려해 주었다.다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도 무거웠다. 그는 Y 국 국민을 위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Y 국에 써야 했다.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김혜연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김혜연, 한 달이라고 했으니까 약속 꼭 지켜.”신무열은 느긋하게 입을 열며 김혜연에게 약속을 지키라면서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했다.김혜연은 순간 목구멍이 막힌 기분이었고 가슴이 미어졌다.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으나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차갑고 확고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저도 알아요. 도련님이 Y 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요. Y 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건 알겠지만 도련님도 도련님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Y 국을 위한답시고 평생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맞는 말이었다.하지만 법로가 그의 어머니에게 진 빚을 전부 똑똑히 보고 자랐기에 신무열은 법로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Y 국은 이미 그가 책임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희생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그래. 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어. 김혜연, 한 달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네 요구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고...”“싫어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도련님 마음을 얻을 거예요! 도련님이 하신 말씀들은 전 신경 안 써요. 전 도련님을 이해하거든요. 미
게다가 별이가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별이가 친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도 온지유는 별이를 데려다가 키우려고 했었다.심지어!인명진이 그녀의 심성이 착함에 제일 좋은 증인이었다.“이왕 경성에 온 김에 경성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가세요.”온경준은 법로가 진심으로 온지유를 위한다는 것을 보아내고 있었다.그들은 전부 온지유가 잘 살기를 바랐으니 당연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더구나 법로는 온지유의 친부가 아니던가.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별이의 곁에 남아서, 딸의 곁에 남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오늘 결혼식엔 필요한 과정은 전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결혼식 피로연에서의 게임도 말이다...지석훈과 최주하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여이현은 원래 이런 이벤트를 취소하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벤트가 없다면 완벽한 결혼식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들은 게임으로 여이현과 온지유에게 장난을 쳤다.하지만 대부분 여이현을 툭 밀면서 온지유와 붙어있게 해주었고 게임 벌칙도 두 사람이 이마 맞대기, 서로의 볼에 뽀뽀하기 등 시키면서 놀려대기 바빴다.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술이었던지라 두 사람은 러브샷도 했다.게임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그 후엔 다들 알아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최주하는 여이현을 향해 눈썹을 튕겼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주 귀하니까 있을 때 잘해.”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도 돌아왔다. 방 안에 두 사람뿐이었던지라 여이현은 자연스럽게 온지유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결혼식에서 벌어진 일은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원래는...”“그래도 날 사랑하는 건 여전하잖아. 안 그래?”온지유는 실소를 터뜨렸다.강서현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잊지 못할 것이고 온지유의 얼굴과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그거랑은 달라. 나는 원래 우리가 알콩달콩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고.
여이현은 입술을 틀어 물었다. 다시 말을 하려던 때 온지유가 다가왔다.“아빠, 이현 씨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이현 씨 친아버지가 정해준 약혼녀예요. 이현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절했었어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정말로 이놈 편을 들어주려고?”온지유는 처음부터 여이현을 감쌌다. 예전에는 여이현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식도 올린 적 없었다.하지만 여이현은 조금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여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온지유만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설령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어도 그는 온지유가 상처받는 걸 원치 않았다.이번 결혼식은 성대하고도 화려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온지유는 미소를 지었다.“아빠, 저랑 이현 씨는 그간 많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아이도 있고 다시 재혼했으니 우린 한 몸이 된 거나 마찬가지죠.”부부는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 않겠는가?“여이현, 경고하는 데 전처럼 우리 지유한테 상처를 준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온경준은 미간을 확 구기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여이현을 보았다.여이현은 바로 온지유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끌어당겼다.“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지유한테 백 배, 천 배로 잘할 거예요!”여이현은 그의 앞에서 맹세했다.그 말에 법로는 가슴이 저릿했다.분명 평범한 맹세였고 마음마저 따스해지는 장면이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릿했다.여이현이 온경준을 ‘장인어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그는 알고 있었다. 온경준 덕에 온지유가 건강하게 잘 클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하지만 여전히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그는 칼이라도 삼킨 것처럼 아프고 괴로웠다.여이현이 온지유의 허리를 감싸며 떠나자 그제야 법로는 온경준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온경준에게 은행 카드를 내밀었다.“이 안에 200억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지유를 정성스럽게 잘 키워줘서 고맙습니다.”법로는
“전에 노승아를 감싸주었던 건 노승아가 제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생명의 은인을 모른 척할 수가 없잖아요. 설명을 하지 않은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전 진심으로 온지유를 사랑하고 평생을 같이하고 싶기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지유를 헐뜯고 상처를 주는 꼴 구경하고 싶지 않네요.”“저 여자는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멋대로 정해준 약혼자이에요. 전 처음부터 분명하게 말했었죠. 좋아하지도 않으니 절대 결혼할 리도 없다고요.”“강서현, 네가 나와 지유의 결혼식에 와줘서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쫓아낼 생각도 없고. 하지만 만약 다른 마음을 품고 온 거라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전 설명할 건 다 설명했습니다. 다른 일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니 더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배진호가 보안 요원을 데리고 강서현에게 다가갔다.강서현이 준비했다던 선물도 뜯겼다.그녀가 준비해온 것은 시한폭탄이었다.다만 용경호와 성재민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군부대 생활을 했었고 강서현이 준비한 폭탄보다 더 큰 폭탄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폭탄을 해체할 줄 아는 건 만약의 상황을 위해 필수로 배웠기 때문이다.강서현이 준비한 폭탄은 아주 손쉽게 해체되었다.다만 하객들은 진정하지 못했다.이 문제는 배진호가 해결했다.어차피 돈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이런 소란에 여이현은 더욱 온지유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온지유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결혼식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일이 생겼으니 확실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온경준과 정미리도 어두워진 안색으로 그를 불러냈다.온경준의 표정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아주 싸늘한 눈빛으로 여이현을 보았다.“전에 자네가 우리 지유한테 어떤 짓을 했는데. 결혼식으로 그 잘못을 만회해보겠다고 떵떵 소리치더니 또 상처를 줘?! 여이현, 지유를 달라고 한 이유가
마침 온지유와 여이현이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던 상황이었다.찾아온 불청객은 강서현이었다.강서현은 찾아와 소리를 질렀다.“잠깐만요! 제가 준비한 선물도 드리지 못했는데 벌써 결혼식 시작한 거예요?”그녀가 등장하자 하객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표정을 구겼다.법로는 신무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신무열은 성큼성큼 걸어 나와 강서현의 앞으로 왔다.“그런 건 결혼식이 끝난 후에 다시 줘도 되지 않나요?”실무열 뿐 아니라 김혜연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들의 추종자이자 수호자였다.그러자 강서현이 픽 웃었다.“전 분명히 말했어요. 전 축하하러 온 거라고요. 그런데 왜들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전 혼자인데 말이죠. 설마... 제가 이 결혼식을 엎기라도 하겠어요?”강서현은 확실히 혼자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브람이 여이현에게 맺어주려고 한 약혼자였으니까. 게다가 제일 중요한 것은 강서현은 아직도 여이현을 포기하지 못했다.행여나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걱정되었다.신무열은 강서현의 손목을 확 잡았다.“결혼식을 엎을 수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대하지 않았는데 굳이 왜 온 거죠?”김혜연은 강서현의 허리를 잡았다.강서현은 눈치채고 있었으나 그녀의 행동은 김혜연보다 빠르지 못했다. 김혜연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혜연은 신무열과 온지유를 지켜줘야 했다.김혜연은 온지유의 결혼식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 거기에다 신무열과 함께 경성으로 오면서 그녀는 특별히 무기도 챙겨왔다.그랬기에 총이 강서현의 허리에 닿을 때 강서현은 순간 당황하게 된 것이다. 강서현은 이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비꼬았다.“그래도 한때 약혼까지 하려던 사이였는데 말이죠. 절 버린 것에 관해서도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반겨줄 줄은 몰랐네요.”강서현은 높은 소리로 말하면서 여이현을 보았다. 일부러 모든 책임을 여이현에게 돌렸다.그러자 현
온지유는 고개를 숙였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부끄럼을 탔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여희영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여이현이 말했다.“일부러 앞에서 염장을 지른 건 아니에요. 제가 그동안 지유한테 못 해준 게 많아서 그래요. 지유만 원한다면 제 능력껏... 전부 해줄 거예요.”능력이 닿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는 어떻게든 구해서 온지유에게 줄 것이다.“그래, 그래. 나한테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너희들만 좋으면 되니까.”여희영은 얼른 손을 저었다. 더는 닭살이 돋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별이를 아주 좋아했기에 본가에 남아 있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에 관해 여이현은 정성을 쏟아부었고 자그마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결혼식 당일, 최주하와 지석훈, 그리고 나도현과 백지희도 참석했다. 물론 강윤희도 왔다.강태규는 고령에도 직접 결혼식에 참석에 여이현을 축하해주었다. 강태규뿐 아니라 법로롸 신무열, 김혜연도 왔다.홍혜주와 용경호도 참석했다.두 사람은 원래 올해에 결혼할 계획을 세웠으나 용경호에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던지라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온지유와 여이현이 두 사람보다 먼저 결혼할 줄은 몰랐다.물론 그들은 온지유와 여이현의 곁에 오래 있은 사람들이었던지라 두 사람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뻐하였다.두 사람의 결혼식에 당연히 인명진도 빠질 수 없었다.온지유와 여이현은 돈도 어떠한 물건도 부족하지 않았다.인명진은 온지유에게 핑크빛 다이아몬드가 걸린 목걸이를 결혼 축하의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직접 만든 약을 건넸다.그는 온지유에게 직접 건네며 꼼꼼하게 당부했다.“이 약은 내가 고서를 읽으면서 만든 거야. 그러니까 가지고 있어. 언젠가 만약 목숨이 위험한 때가 온다면 이게 도움이 되어줄 거야.”약의 수량은 온지유와 여이현, 별이를 고려해 만들었다. 심지어... 그는 만약에 태어날 둘째의 것도 준비해 주었다.온지유는 마음이 무
강윤희는 조금 민망해졌다.“제 남자친구는 아마 못 올 것 같아요.”“뭐?”온지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내 빠르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이런 중요한 날에 바람맞히다니. 내가 보기엔 앞으로도... 이 사람은 안 될 것 같아.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랄게.”“네, 고마워요. 지유 언니.”강윤희는 감사 인사를 했다.여이현은 강윤희를 보며 물었다.“도움이 필요해?”강윤희는 강태규의 손녀였던지라 이런 상황을 알게 되고도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결혼 상대가 바람을 맞혔으니 두 사람이 도와줘봤자 그저 그를 찾아내 주고 혼낸 뒤 합의금만 낼 뿐이다.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더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이 일은 그녀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여이현은 온지유의 어깨를 감쌌다.“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네.”그렇게 여이현은 온지유를 데리고 구청에서 나왔다.강윤희는 여전히 구청에 혼자 남아 있었다. 다만 눈빛은 확고해지고 싸늘해졌다.여이현과 온지유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혼식이 생각난 여이현이 물었다.“들러리로 누굴 부를 생각이야?”여이현은 이미 생각해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부를 생각이다.“부를 사람이 있겠어?”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백지희였다. 그러니 불러도 백지희를 부를 것이다.“결혼식은 사흘 뒤야. 지금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알려야 해.”여이현은 얼른 온지유에게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었다.그때가 되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와 온지유가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사흘 뒤라고? 그렇게나 빨라?”온지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여이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안 빨라. 우리가 결혼식을 몇 년 동안이나 미루고 있었잖아. 이제야 돌아왔는데 얼른 해야지.”만약 더 미뤄두다가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겠는가.“이미 준비도 다 한 것 같은데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은 베리나인의 디저트였다.여이현이 얼마나 아이를 아끼는지 알 수 있다.별이는 여희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별이는 여희영을 빤히 보고 있었다.여희영은 젊어 보였을 뿐 아니라 이쁘기도 했다.특히 여희영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온화했다.“누... 구... 세... 요...”별이는 천천히 말했다.비록 그동안 별이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더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별이는 여전히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설령 말을 한다고 해도 아주 느리게 말했다.여희영은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눈치챘다. 말을 이상하리만큼 천천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나는 네 아빠의 고모야. 그러니까 별이는 나를 고모할머니라고 부르면 돼.”“고모할머니랑 같이 놀러갈까?”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보석 같은 두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리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전... 엄마... 를... 기... 다... 릴... 거... 예... 요...”현재 별이는 ‘엄마'라는 단어만 완벽하게 말할 수 있었다. 별이가 원치 않자 여희영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여이현과 온지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여이현과 온지유는 구청에 도착하자마자 강윤희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강윤희는 두 사람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벙긋거렸다.“두, 두 사람...”심지어 강윤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남몰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너무 아팠다.그녀는 환각이 아니라 정말로 두 눈으로 여이현과 온지유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이현 씨는 죽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종군 기자는 그만뒀고.”온지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꼬리는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다.“정말 잘 됐어요! 그런데 여기는 왜...”여이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강태규와 강윤희는 아주 슬퍼했다. 하지만 더 안타까웠던 것은 온지유에게 아무 도움도
만약 결혼식과 아이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온지유는 당연히 아이를 선택할 것이다.“지금 별이는...”“그동안 우리가 함께 해보지 못한 거 나랑 해보고 싶지 않은 거야?”여이현이 말허리를 자르며 물었다.못해 본 것을 한다니... 온지유는 여이현을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녀는 여이현보다 더 못해본 것을 그와 함께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과 달리 나이를 먹었다.별이도 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 만약 못했던 결혼식을 한다면 사람들이 유난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오늘 일단 혼인 신고하러 가자.”여이현은 온지유에게 다가가 손을 잡은 뒤 꽃다발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은 별이에게 건넸다.지금까지 별이도 여이현과 온지유의 사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눈치 백단인 별이는 바로 음식을 들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거실엔 여이현과 온지유만 남았다.“혼인 신고하러 가는 거라면 오늘 가도 돼요. 하지만 결혼식은...”“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결혼식을 해. 그런데 우린 고작 마흔일 뿐인데 왜 결혼식을 다시 올리면 안 된다는 거야?”여이현은 말허리를 자르며 확고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는 법로 앞에서 약속했었고 브람의 앞에서도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 5년이나 떨어져 지내서야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온지유에게 그간 못 해준 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았다.“나는 두려워...”“대체 뭐가 두려운 거야? 결혼식은 우리 둘이서 하는 거야. 돈도 우리 돈을 쓰고 앞으로도 너랑 나랑 별이 셋이서 같이 살 건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해. 지유야, 두려워할 거 없어.”여이현은 온지유의 손을 꼬옥 잡으며 확고하게 말했다.결혼식에 대해서 그는 이미 계획을 세워두었다.모든 사람에게 알릴 생각이다. 그와 온지유가 결혼한다고. 그리고 결혼식장에 온지유의 손을 꼭 잡고 등장한 후 둘이서 행복한 여생을 보낼 것이다.아니, 이젠 세 명이었다. 그는 온지유와 별이와 함께
호텔 바닥은 아수라장이었다.잠에서 깬 지유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지유는 미간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커다란 몸집을 가진 남자가 옆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조각과도 같았고 눈매도 깊고 진했다.아직 깊은 잠이 들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고 뽀얗고 매혹적인 두 어깨에 어젯밤 남긴 흔적이 보였다.지유가 앉았던 자리에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다.시간을 보니 어느새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유는 바닥에 널브러진 출근룩을 다시 집어 들어 얼른 갈아입었다.스타킹은 이미 남자에 의해 찢겨 있었다.지유는 스타킹을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하이힐을 신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유는 어느새 워커홀릭 비서로 완전히 돌아왔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들어온 사람은 청순한 미녀였다.지유가 부른 사람이었다.이현의 취향이 이런 여자였다.지유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침대에 누워서 대표님 깨나길 기다리면 돼요. 다른 건 한마디도 하지 마요.”지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단잠에 빠진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방에서 나왔다.지유는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현이 아는 게 싫었다.그들 사이에 계약에 의하면 아무도 모르게 3년간 결혼을 유지하면 바로 이혼할 수 있었다.이 기간에 선을 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지유는 7년째 이현의 비서로, 3년째 이현의 와이프로 있었다.졸업한 그날부터 이현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같은 날, 이현은 지유에게 두 사람은 그저 상사와 부하의 관계일 뿐 이 관계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지유는 복도 창가에 서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이현은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워 ‘승아’라는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지유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승아는 이현의 첫사랑이었다.이현은 지유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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