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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현은 일에 대해서는 매우 철저했기에 실수는 용납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유를 탓해서는 안 된다. 이현은 어제 병원에서 승아를 지켰다.

“대표님이 먼저 바쁘다고 전화를 끊었잖아요.”

이현이 멈칫하더니 입을 앙다물었다.

“어떻게 처리한 거죠?”

그때 지유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처리할 겨를이 없었어요. 내가...”

“온지유 비서.”

이현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전에는 절대 이런 실수가 없었던 거 같은데요.”

이현은 일부러 온지유 비서라는 말에 힘을 주며 그녀의 신분은 비서이지 아내가 아니라고 각인시켰다.

지유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시공은 영향받지 않았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대처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핑계를 찾기보다 해결해야죠. 전에 제가 한번 귀띔해 줬을 텐데.”

이현의 말투에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회사로 오세요.”

이 말을 뒤로 이현은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지유는 마음이 씁쓸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제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공사장의 상황을 신경 쓰지 못 했으니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지유는 얼른 정리하고 회사 갈 준비했다.

그제야 잠에서 깬 지희는 지유가 분주하게 돌아치자 하품하며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깼어? 어디 가려고?”

“일이 좀 생겨서 회사에 가봐야 해.”

“지금 이 상황에 왜 아직도 그 사람 신경 쓰는 거야?”

지희가 노발대발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하긴, 이혼 서류 이미 여진그룹에 보냈어.”

지유는 신발을 갈아신으며 대꾸했다.

“이미 보냈어?”

“응, 퀵으로 아침 일찍 보냈어. 아마 여이현도 봤을걸?”

지희의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지유가 이혼한다고 하자 속전속결로 바로 진행했다.

언젠가는 이혼할 텐데 빨리하든 늦게 하든 사실 달라질 게 없었다.

“그래, 어차피 할 이혼인데.”

지희가 미묘한 표정으로 지유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앞으로 네 덕 좀 봐서 잘사는 여자 좀 해보자. 지유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많이 뜯어내?”

지희는 어쩌면 이혼 당사자인 지유보다 더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는 지체할 엄두가 나지 않아 대충 대꾸했다.

“알았어.”

대표이사 사무실.

이현이 열심히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진호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잘 밀봉된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대표님, 퀵으로 온 긴급 서류입니다.”

“응.”

진호는 서류를 이현 앞에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현이 그 서류를 힐끔 쳐다보더니 여유롭게 봉투를 뜯었다. 지유가 작성한 ‘이혼신고서’였다.

이현은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이혼신고서를 꺼내 살펴봤다.

이혼신고서를 꼼꼼히 살펴본 이현은 얼굴이 어두워졌고 입가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생각도 좋아.”

그가 가진 재산의 60퍼센트를 주면 깔끔하게 이혼하고 그게 아니면 이현의 추문을 모두 터트릴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현의 얼굴은 그때부터 쭉 굳어 있었다.

회사 임원들은 살이 떨리는 상황에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그들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이현은 아침부터 화약을 먹은 것처럼 화가 잔뜩 나 있었고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현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가 났는데 왜 나한테 알리지 않은 거죠? 누가 다쳤나요? 환자를 만나서 잘 타이르긴 했나요?”

윤정이 전전긍긍해서 고개를 숙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표님. 그날 상황이 너무 급한데 대표님은 전화를 안 받으셔서 저랑 온 비서님이...”

이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윤정의 말을 잘랐다.

“온 비서님의 업무에 차질이 있었네요.”

죄책감에 휩싸인 윤정은 하마터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온 비서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사고가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제가 온 비서님을 잘 챙기지 못한 것도 있어요. 떨어진 유리가 마침 온 비서님의 머리를 명중했고 그렇게 온 비서님은 바로 병원에 실려 갔어요. 온 비서님이 다친 것도 시공이 하루 밀린 것도 다 제 잘못이에요.”

이를 들은 이현이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요? 다친 사람이 온 비서라고요?”

윤정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

“대표님, 모르셨어요? 온 비서님 유리에 맞아 뇌진탕까지 왔는데도 깨어나자마자 바로 업무부터 챙기셨어요. 몸 상태는 일도 신경 쓰지 않으시고요. 아마 어제 대표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말씀드리지 않았나 보네요. 저는 온 비서님이 이미 보고드린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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