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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류한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5-08 17:45:54
석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형 어디 아픈가?

전에 건강 검진했을 때는 정상이었는데.

이현과 같은 침대를 쓰는 지유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아마도...

석훈은 이현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이현에게 인사하며 그가 입은 슬랙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현은 어딘가 이상한 석훈의 눈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유 좀 봐달라고 했더니 나는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석훈은 시선을 거두고 어색하게 웃었다.

“별거 아니야.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수님 만났는데 어디 나가던데? 기분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

이현이 대답했다.

“그러다 돌아올 거야.”

“형 설마 형수님이랑 싸웠어?”

“여자가 심술부리는 건 정상이지.”

석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긴 어려워 소파에 앉는 걸 선택했다.

이현은 석훈이 앉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유도 나갔으니 너도 가봐. 나는 너 필요 없어.”

“형, 나 지금 왔어. 벌써 쫓는 건 아니지 않아? 형제간의 우애를 얘기해 보는 것도 좋잖아.”

석훈은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며 웃었다.

“형수님이 화났다면 화난 이유가 있겠지.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돼요. 그럼 사이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겠죠. 일단 자존심 내려놓고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요? 사이가 돈독해지면 형수님도 더는 형 얕잡아보지는 않겠죠.”

이를 들은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이상한 석훈의 말에 이현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석훈은 이현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최대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돌려서 말했다.

“근데 그 원인만 있는 건 아니야. 부부 사이에 서로 배려도 해주고 그래야지. 근데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좀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유가 그래?”

이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석훈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용기 내어 말했다.

“형수님이 형 몸 좀 잘 검사해 주라고 하던데?”

석훈이 약상자를 들고 다가오려 하자 이현이 바로 호통쳤다.

“꺼져!”

여씨 본가로 돌아온 지유는 짐을 챙겨 나가려 했다.

여진숙은 친구들과 화투를 치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 빠질 수 없는게 아들과 며느리에 관한 화제였다.

하지만 여진숙은 지유를 꺼낼 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 냈고 다른 집 며느리와 비기기 일쑤였다. 다른 집 며느리는 집안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다 좋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유는 집안부터 내세울 게 없었다.

이런 말을 이미 귀에 딱지가 나도록 들은 지유라 이제 더는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지유는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의 화제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여진숙은 그런 지유를 힐끔 쳐다보더니 화투를 내려두고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얘, 너 거기 서.”

지유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세요?”

여진숙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잔소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너 점점 돈을 흥청망청 쓰더구나. 한 번에 현이 카드를 1억이나 긁어? 너 같은 애랑 결혼하면서 우리 집안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데 생각 좀 하면서 살아. 어떤 집 며느리가 너처럼 돈을 써!”

상황을 모르는 지유는 이런 상황이 어이없었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많은 돈을 썼다고 그러세요?”

여씨 가문으로 시집오고 이현이 선물해 준 귀중품은 모두 상자에 넣어둔 채 꺼낸 적이 없었다.

지유는 한 번도 마음 편히 여씨 집안의 돈을 써보지 못했다.

다 그녀가 한푼 한푼 번 돈이었다

“모르는 척하기는, 봐봐.”

여진숙이 바락바락 성질을 내며 지유를 나무랐다.

“무슨 옷을 사는데 1억이나 썼어? 네가 그렇게 잘났어? 허구한 날 흥청망청할 줄만 알았지, 이 속도면 언젠간 우리 집 거덜 난다.”

은행에서 온 1억을 긁었다는 문자였다. 그것도 여성복이었다. 이에 지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유는 최근에 쇼핑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여성복을 사러 갈 일도 없었다.

게다가 지유는 사치스럽게 옷을 사는데 1억이나 쓸 사람이 아니었다.

지유는 여진숙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쓴 거 아니에요.”

여진숙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네가 긁은 게 아니면 또 누가 있어? 1억이나 되는 돈을 귀신이 긁었다는 거야 뭐야?”

“저는 신용카드를 긁은 적이 없어요.”

“아직도 변명이야? 우리 집 신용카드를 긁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것도 여성복인데. 내가 몰래 신용카드를 핸드폰에 연결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나 몰래 얼마나 돈을 흥청망청 썼는지 몰랐을 거야. 솔직히 말해. 더 있지? 도대체 우리 집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쓴 만큼 전부 뱉어내!”

여진숙은 우연히 카드 내역을 찾아보다가 이렇게 많은 돈이 나간 걸 보고 바로 지유를 의심했다.

지유는 자신이 아무리 여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해도 여진숙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집도 결국 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유는 트러블을 일으키기 싫었기에 당연히 선을 넘는 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를 의심하니 지유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

“가서 한번 조사해 보세요. 무슨 일만 터지면 일단 저부터 찾지 말고.”

“너 이게 무슨 태도야? 네가 쓴 돈이 아니면 누가 있어. 너처럼 돈 좋아하는 애가 애초에 이현이 돈 보고...”

“그 돈 제가 쓴 거예요.”

순간 밖에서 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집에 도착한 이현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에 무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지유와 여진숙의 시선이 일제히 이현에게로 향했다. 여진숙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많이 쏘아붙였는데 지유가 쓴 돈이 아니라니, 여진숙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현아, 네가 썼을 리가 없지. 다 여성복이던데? 설마 지유 감싸려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이현이 이렇게 말했다

“승아한테 쓴 돈이에요.”

이에 여진숙은 다시 할 말을 잃었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지유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이현을 바라봤다.

옷 한 벌에 1억이라니, 정말 승아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이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승아였다.

지유는 입꼬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위층으로 향했다.

여진숙은 이현이 승아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썼다는 건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했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유와도 곧 이혼할 것이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여진숙은 이렇게 말했다.

“이현아, 승아한테 쓴 돈이라니 하나도 아깝지 않네.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이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빌려준 거예요.”

여진숙이 넋을 잃었다.

“빌려준 거라고?”

이현이 그런 여진숙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경고했다.

“그러니 엄마도 중간에서 헛다리 짚지 마요.”

기분이 좋아진 여진숙은 이현의 말에 표정이 삭 바뀌었다. 원래는 몇 마디 반박하려 했지만 이현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그냥 입을 닫았다. 여진숙도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유는 위층에서 짐을 정리했다. 이현의 말을 들은 지유는 한시라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지유는 본인이 알아서 빠져주는 게 앞으로 쫓겨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다. 제 발로 나가면 꼴이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도 분수는 있었다. 그렇게 여씨 집안의 돈을 쓸까 봐 걱정하는데 이현이 준 값비싼 액세서리와 다른 선물은 하나도 챙기지 않고 옷가지들만 챙겼다.

그렇게 대충 캐리어 하나를 정리해 냈다.

마침 이현이 걸어들어오더니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는 지유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Jihye Kim
재미있어요!!!짱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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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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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지유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는 걸 보게 되었다.둘의 행동은 무척이나 가까워 보였고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이현의 미간이 순간 구겨지더니 차갑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매서운 눈빛으로 안고 있는 두 사람을 쏘아봤다.이현의 기억 속에 지유는 남성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아무튼 이현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갑자기 튀어나온 남자에 이현은 가슴이 먹먹한 게 불편했다.이현은 자기도 모르게 보폭이 빨라졌다.차에 부딪힐 뻔한 지유는 놀라서 잠깐 멍을 때리고 있다가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얼른 그의 품에서 나왔다.“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민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난 괜찮아. 고마워.”지유가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민우가 말했다.“봐봐. 만나서 지금까지 넌 계속 미안해하지 않으면 고마워하고 있어. 그렇게 내외하지 않아도 돼.”민우는 그녀와 거리를 조금 좁히고 싶었다.지유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늘 공손했다.하지만 민우도 자신이 그렇게 공손한 게 싫은 것 같았다. 그래도 지유는 그에게 부담을 주는 게 싫었다.마침 지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본 이현이 이를 매우 거슬려했다.지유는 이현 앞에서 이렇게 마음 놓고 편하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이 남자가 지유를 더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현도 순간 발견한 게 있었다. 지유에게 쏟은 관심이 너무 적었기에 그녀 옆에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는 걸 모르고 있었고 지유가 다른 남자 앞에서 이렇게 즐겁게 웃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게다가 이현의 옆을 오래 지키다가 그의 아내가 되긴 했지만 태도는 늘 공손했고 그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했다.비교되는 상황에 이현은 불쾌했다.“온지유!”이현의 목소리에 여유롭던 두 사람의 대화가 뚝 끊겼다.지유는 얼른 고개를 돌려 이현 쪽을 바라봤다. 얼굴에 걸린 미소도 순간 사라졌다.이를 본 이현은 점점 더 불쾌해졌다.그를 보고 웃음이 사라진다?두

    Last Updated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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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5화

    권다솔은 배진호 덕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운 느낌이었지만 눈을 뜨자마자 걱정으로 가득한 배진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진호 씨가 여긴 어떻게... 아, 머리가 너무 아파요.”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머리가 두 개로 갈라질 것 같았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직원과 부딪치게 되었던 것만 기억났다.그 뒤의 기억은 흐릿했다. 배진호가 자신을 어떻게 찾았는지도 몰랐다.권다솔은 배진호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녀를 보는 배진호의 눈빛은 심란했다.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할 말이 있었으나 다시 꾹 삼켜버렸다.“머리가 아프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요. 날이 밝는 대로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대충 짐 정리해서 떠나요.”할 말이 있지만 하지 않는 배진호를 보며 권다솔은 무의식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머리가 너무 아픈 탓에 이마저도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그랬기에 일단 이 일은 넘어가기로 했다.유람선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배진호는 그녀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진행했다.배진호의 태도는 강압적이었던지라 권다솔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행히 검사 결과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코로 마취 성분의 액체가 흘러 들어간 겁니다.”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보탰다.“이 약물의 성분은 임산부에게 아주 나빠요. 남편이라는 사람이 대체 아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마취약이라고요...”권다솔은 자신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의사에게 얼른 설명했다.“선생님,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부주의로 머리를 부딪쳐서 그런 거예요.”의사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돌아가는 길에서 결국 권다솔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진호 씨,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요? 어젯밤 분명 진호 씨를 놀리고 도망쳤던 것 같은데 깨어나고 보니 방에 있더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4화

    남태건은 권다솔이 있는 방으로 왔다.문을 열려고 하자 싸늘한 얼굴로 달려온 배진호와 마주쳤다.“다솔 씨를 납치한 사람, 그쪽이죠?”배진호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남태건은 멈칫하더니 손잡이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렸다.“그게 무슨 소리죠. 내 고양이가 그쪽이랑 함께 있지 않았나요?”“고양이요?”“네, 우린 서로 어릴 때 별명을 지어줬거든요.”남태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배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는 남태건을 빤히 보았다. 남태건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빴다.첫 만남에서부터 배진호는 남태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여하간에 이 바닥에서 일하며 그는 뒤도 깨끗한 사람을 본 적 없기도 했다.그러나 남태건은 달랐다.그의 손에 있는 더러운 것조차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그런 사람이 권다솔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배진호가 마음이 놓일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계속 남태건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자선 파티에 그 틈을 보여주게 될 줄은 몰랐다.배진호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정말로 다솔 씨를 좋아하는 거라면 이런 짓을 하면 안 돼요. 우리 일은 우리끼리 남자답게 해결하자고요. 무슨 일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나한테 하라고요.” 남태건은 달려들려던 경호원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막았다.“그쪽한테 하라고요.”그는 배진호가 한 말을 반복하며 곱씹었다. 그의 주위로 위험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그쪽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쪽한테 하죠? 난 다솔이랑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다솔이랑 먼저 알게 된 건 나라고요. 그쪽은 후에 나타난 주제에 무슨 자격이 있는 거죠? 나한테 그저 다솔이를 훔쳐 간 도둑일 뿐인데요.”남태건의 두 눈 가득한 살기는 곧 흘러넘쳐 유람선을 채울 것 같았다.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그는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두 남자는 서로를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주위는 시간이 멈춘 듯 아주 고요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3화

    배진호와 시선이 마주친 비서는 배진호의 두 눈에서 분노를 읽어내고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결국 비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져온 상자를 그대로 가져갔다.권다솔은 조심스럽게 배진호를 보며 물었다.“혹시 화났어요?”“아니요.”배진호는 멈칫하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를 본 후 말을 보탰다.“내 앞에서 눈치 볼 필요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면 돼요. 절대 다솔 씨 탓하거나 꾸짖을 생각 없으니까.”하지만 조금 전 일에 관해 그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경매가 끝난 후에 권다솔은 배진호를 보았다. 배진호는 뒤를 힐끗 보고 있었다.남태건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그녀도 몰랐다.다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 사이에 그녀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유람선은 경매가 시작했을 때 이미 출발하여 바다 위에 있었다. 이것은 규칙이었다. 바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말이다. 내일 아침이 되어야 다시 항구로 돌아갈 것이었다.그랬기에 배 위에 있는 손님들은 오늘 밤 전부 유람선에서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었다.주최 측은 세심하게 방을 전부 나눠주었다.배진호와 권다솔도 방을 배정받았으나 방은 두 개였고 심지어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권다솔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배진호는 그녀가 혼자 방을 쓰는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절대 아무한테나 문을 열어주지 말고 밤에 나가지도 말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그가 온 뒤 말하라고 했다.그렇게 배진호는 걱정에 주의사항을 한가득 말했다.권다솔은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멈춰서고 조금 짜증이 난 얼굴로 그를 보았다.“그렇게 걱정되면 나랑 방 함께 쓰면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어차피 혼인 신고도 했는데 괜찮지 않아요?”배진호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안 돼요.”“왜 안 되는데요?”“그게... 내가 이성을 잃을까 봐 그래요.”그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지금 다솔 씨 상태는 나한테 꽤 위험하거든요.”권다솔은 원래 그를 놀려주고 싶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2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건 우리한테 아주 불공평한 것이잖아요!”“맞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반우 그룹을 도와준 게 한두 번이 아닌데요! 그래서 이 자선 파티에도 참석한 거잖아요!”“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라는 겁니까? 적어도 합당한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한테 말도 없이 경매로 내놓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겠다니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불만이 가득했다.사회자는 무대 위에서 식은땀만 열심히 닦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일을 그가 바꿀 수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이 보석은 남태건 님께 드리겠습니다.”남태건의 이름을 들은 화가 난 사람들은 그제야 분노가 가라앉았다.여하간에 남씨 가문은 평범한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씨 가문은 그들이 사는 도시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가문이었으니까. 남은 절반은 여진 그룹의 것이었다.그들이 알기로 남씨 가문에서는 아들이 딱 한 명뿐이었다. 그 아들이 바로 금방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태건이었다.“남태건 님, 어서 물건을 가져가시지요.”사회자가 말했다.무대 아래에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걸음걸이에서도 그의 기품이 얼마나 남다른지 알 수 있었다. 상류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기세와 위엄이 흘러넘쳤고 인상 또한 남달랐다.그는 무대 위로 올라가 사회자가 들고 있던 상자를 받았다. 그러더니 어느 한 곳을 빤히 보았다.사람들은 그가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방금 저희 쪽을 보지 않았어요?”“에이, 설마요. 잘 못 본 거겠죠.”“아니에요. 제가 똑똑히 봤어요. 정확히 누굴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고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부럽네요. 저런 사람한테 시집을 간다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야말로 팔자가 활짝 피게 되는 거죠.”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입을 열었지만 유독 권다솔만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1화

    남태건의 시선이 권다솔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은 그녀에게 하는 것이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었다.“경매가 곧 시작할 겁니다. 좋은 물건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라면 얼른 준비하는 것이 좋겠죠.”남태건은 긴말하기 싫어하는 태도였다. 주위 사람들도 눈치가 있었던지라 바로 알아챘다.“남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번 경매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맞습니다. 곧 경매가 시작할 때가 되었지요.”말을 마치자마자 홀 안에 있던 조명이 어두워졌다.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홀 중앙으로 빛이 들어왔다. 사회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중앙으로 갔다. 한바탕 식상한 인사치레를 한 뒤 경매를 시작했다.홀에 있던 사람들은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권다솔도 배진호와 함께 자리를 찾아 앉으려 했다.걸음을 뗄 때 남태건이 그녀에게 말했다.“이따 경매가 끝나면 또 봐.”권다솔은 그를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배진호와 함께 시야가 탁 트인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고 난 후 그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했다.빨갛게 물든 손가락 관절에 권다솔은 미간을 찌푸렸다. 화가 나면서도 속상했다.“방금 물어봤을 땐 괜찮다면서요. 이게 뭐예요. 괜찮은 게 손이 이 모양인 거예요?”배진호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그의 손에는 방금 그녀를 붙잡고 있던 경호원을 때렸을 때 난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도 그는 망설임 없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들이 권다솔에게 손을 대고 있었으니 말이다.“난 정말 괜찮아요.”그는 권다솔을 달래곤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것도 그냥 살짝 까진 것일 뿐이에요. 내버려 두면 알아서 상처가 아물 거예요.”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고 나서야 권다솔은 마음이 풀렸다.경매는 지금까지 진행되었고 이미 5개의 물건을 낙찰받았다.낙찰받은 5개의 물건은 전부 자잘한 것이었다. 엽전이나 서화 등 뒤로 가면서 점차 소장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남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40화

    권다솔은 빠르게 사과한 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가려 했다.“뭐야! 감히 부딪치고 간단한 사과 한마디로 도망가려고?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남자는 그녀의 손목을 확 잡더니 잡아당겼다.권다솔은 아픈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그녀의 목소리에 남자는 술이 확 깬 듯 눈을 껌뻑이며 그녀를 자세히 보려고 했다.그러더니 이내 눈을 반짝였다.“아주 예쁘게 생겼네? 하룻밤 얼마야? 내가 오늘 네 시간 전부 사지!”배가 불룩 튀어나온 남자는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 훑어보았다. 권다솔을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확신한 듯했다.유람선 안에는 확실히 이런 부류의 여자가 있었다. 대부분 이곳에 모인 부잣집 도련님을 노리고 어떻게든 엮여 호화로운 인생을 살아보자고 했다.그러나 권다솔은 아니었다.“비켜! 거울이나 좀 보고 그런 말을 해! 내가 아무나 만나주는 사람인 줄 알아?!”권다솔은 하이힐을 신은 발을 들어 남자의 발을 꽉 밟았다. 남자가 고통에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그녀는 얼른 치맛자락을 들고 도망쳤다.빠르게 남자는 화를 내며 뒤쫓아왔다.“씨 x, 감히 발을 밟아? 내가 오늘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조금 전 남자가 나왔던 룸의 문이 또 한 번 열리더니 이번엔 경호원이 우르르 나왔다. 복도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남자는 경호원들에게 당장 권다솔을 잡아 오라고 명령했다.하지만 권다솔은 아주 빨랐다.그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자가, 그것도 하이힐을 신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뛸 수 있는지를.얼마 지나지 않아 권다솔은 코너를 돌더니 더 힘을 내서 뛰었다. 메인홀까지 말이다.그럼에도 그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와 그녀의 팔을 하나씩 붙잡았다.방금 권다솔에게 발 밟힌 남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뛰어왔다.“너, 방, 방금 아주 빨리 달리지 않았나? 어, 어디 지금 내 앞에서 또 달려보시지.”권다솔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숨이나 돌리고 말하는 게 어때.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아? 숨 헐떡이는 개랑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39화

    권다솔은 배진호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괜찮아요. 금방 다녀올게요. 우 대표님이랑 대화가 끝나서도 내가 안 보이면 그때 찾으러 와줘요. 그러면 괜찮죠?”배진호는 그제야 그녀를 보내주었다.유람선 안은 아주 컸기에 권다솔은 한참 헤매고 나서야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화장실 안도 호화롭기는 마찬가지였다.벽은 금색으로 도배되었고 세면대 거울 테두리는 정교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아주 호화로웠다.권다솔은 손을 씻은 뒤 나오자마자 누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다솔아, 이런 우연이 다 있네.”권다솔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남태건을 제외하고 그녀를 막아 세울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여긴 어쩐 일이세요.”말을 하고 나니 그녀는 후회가 되었다.최선정이 왔으니 최선정의 아들인 남태건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남태건은 역시나 웃음을 터뜨리며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 그 눈빛에 담겨 있는 불손한 마음 때문에 권다솔은 다소 무서웠다.“넌 역시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권다솔은 미간을 찌푸렸다. 남태건이 자꾸만 의미도 없는 어릴 적 일을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어릴 적 일은 그녀에게 전부 지나간 일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언급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러나 남태건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고 있는 듯했다.권다솔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오늘 경매에 아주 귀하고 희귀한 보석이 나온대.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그걸 조각해서 원석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이름은 Devil's Love이라고 지었대. 그 의미 또한 악마의 사랑이고.”“사실 이 보석은 보라색 보석이야. 의미가 사랑이긴 하지만 사람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의미는 아니었거든. 그냥 이 디자이너가 그 의미를 왜곡한 거야.”복도의 불빛이 남태건에게로 쏟아지며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하지만 조금 머리가 어질거리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38화

    직원이 샴페인을 쟁반에 올려놓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서빙하고 있었다.권다솔이 배진호의 팔짱을 끼고 입장하자 모든 이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리게 되었다.누군가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다.네이비색 드레스엔 반짝이는 것들이 붙어있어 꼭 밤하늘의 별같이 절로 시선이 갔다.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는 드레스 자락은 고요한 밤에 출렁이는 파도 같았다.물결 파마로 정리한 긴 머리는 그녀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드레스 자락을 들고 등장할 때 사람들은 전설에서만 나오는 인어공주가 등장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유람선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재계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도 있었고 해외에서 참석한 기업 회장도 있었다. 또 이 자선 파티를 기회로 인맥을 쌓으러 온 사람도 있었다.여자 스캔이 끝난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바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권다솔처럼 예쁘고 처음 보는 인물은 더욱 그들이 놓칠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예쁜 아가씨,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하, 그 얼굴로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요? 준다고 해도 저한테 주겠죠. 평소에 거울도 자주 안 보고 다니시나 봐요. 이분뿐만 아니라 평범한 여자들도 연락처를 안 주게 생겼네요.”“지금 뭐라고 했어요?!”배진호는 아주 담담했다. 묵묵히 작업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향해 서늘한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그의 눈빛에 권다솔에게 함부로 작업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이 먼저 옆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됐어요. 작업 걸 생각은 접는 게 좋겠네요. 임자가 있는 사람을 빼앗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남자는 부러운 눈길로 배진호를 보곤 작업을 걸려던 생각을 접었다.권다솔에게 꽂힌 시선들이 그제야 사라지게 되었다.배진호는 권다솔의 손을 꽉 잡고 나직하게 말했다.“날 꽉 잡아요.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면 안 돼요.”권다솔도 자신을 훑어보던 사람들을 눈치챘다. 좋은 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곁에 꼭 붙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237화

    권다솔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고 했으나 눈치챈 최선정이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다시 말을 이었다.“생각해보니 너랑 그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인 것 같구나. 네가 어렸을 때 기억나니? 아주 자그마한 아이였는데 그새 어른이 되었구나. 설마 오랜만에 만나서 내가 어색해진 건 아니겠지?”최선정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거절한다면 권다솔이 무정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수락했다.전화를 끊은 후 권다솔은 그제야 남태건도 가는 건지에 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조금 고민이 되었다.그녀는 남태건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다시 전화를 건다면 이런 그녀의 속마음이 들키지 않겠는가.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됐어. 그때 가서 제대로 분명하게 말하면 되는 거야.”한편 남씨 가문 본가 거실.통화를 마친 최선정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전화는 내가 이미 했으니까 이 기회는 네가 단단히 잡아.”옆에 앉은 남자는 짙은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은테 안경을 낀 남자는 편한 복장 차림이었던지라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으나 사나운 눈매만큼은 아무리 친근감이 느껴지는 복장이라고 해도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어딘가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내 고양이, 우리 곧 또 만나게 되었네?”권다솔은 한참 망설였다. 최선정과 함께 자선 파티에 간다는 말을 배진호에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다.말을 해준다면 행여나 배진호가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수상해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배진호 테이블에 있는 초대장을 발견하게 되었다.“당신도 이 자선 파티에 가요?”배진호는 그녀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당신도라니?”“남태건 씨 어머니가 저한테 이 파티에 같이 가자고 전화하셨어요. 그리고 전 동의했고요.”말을 마친 권다솔은 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화 안나요?”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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