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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Author: 류한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지유는 바로 옆에 있는 민우가 들었다가 상황이 난처해질까 봐 지희에게 그만하라고 했다.

지희는 하는 수 없이 지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민우는 다른 사람과 인사치레로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지유 곁으로 돌아왔다.

지희가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우가 대답했다.

“지희 씨, 이번 전시가 아주 성공적으로 잘 된 것 같네요. 영향력이 날로 올라가는 거 같아요.”

“문인들의 일개 취미일 뿐 대표님과는 비길 수 없죠.”

지희가 지유를 밀며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옛 친구라고 들었는데 혹시 지희 좀 바래다주시면 안 될까요? 오후에 회사로 들어간대요.”

지희에게 밀쳐진 지유는 순간 당황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나민우가 이렇게 말했다.

“마침 저도 다른 일정이 없어서 데려다줄 수 있겠네요.”

지희가 지유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대표님 부탁드릴게요.”

지희는 지유를 민우 곁으로 가까이 데려갔다

“옛 친구끼리 할 얘기도 많을 텐데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 저는 멀리 안 나갑니다.”

지희는 두 사람에게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지유는 그런 지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민우가 있어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자신의 임무를 완성한 지희는 바로 자리를 떴다.

지유는 민우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동창이긴 했지만 너무 오랜만이었다.

“지희 말 들을 필요 없어. 바쁘면 가서 일 봐. 나 데려다줄 필요 없어.”

지유는 이현과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민우가 이렇게 말했다.

“데려다주는 게 뭐 어때서? 나도 너랑 수다 좀 떨고 싶어.”

지유가 넋을 잃었다.

“뭐?”

민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말고. 외국에 너무 오래 있어서 국내에서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 너를 만나니까 반가워서 그래.”

지유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그와 보폭을 맞췄다.

“아까 너를 쓴 기사를 봤는데 M국에서 완전 잘나가던데? 너 이렇게 출세했을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을 뿐이지 나도 그냥 일반인일 뿐이야.”

민우가 대답했다.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민우가 고개를 돌려 지유를 바라봤다.

“운이 좋았던 것도 있고 노력도 있고. 근데 지유야, 넌 정말 그대로다. 하나도 안 변했어.”

지유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 네가 한눈에 알아보지.”

지희는 그동안 자신에게 변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있다고 생각했다.

키도 크고 사람도 성숙해졌다. 생김새도 예전처럼 그렇게 풋풋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유를 바라보는 민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억속의 지유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긴 생머리에 조용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늘 성적이 좋았다. 손에 책을 안고 걸으면서 고개를 숙이기 좋아했다.

그러다 누군가와 부딪치면 매우 당황해하며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머리를 넘기기 좋아하는 지유는 이마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 어김없이 하얀 목이 밖으로 드러났다.

그 옆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지유는 다가가기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늘 덤덤했지만 민우는 그녀가 착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지나가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먹을 것을 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끔 슬픈 일이 있을 때면 혼자 구석에 숨어 울기도 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그녀의 제일 좋은 보호색이었다.

그런 지유를 보고 있노라니 민우는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민우는 늘 맨 뒷자리에 앉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지유를 바라봤었다.

민우는 혼자만의 사색에서 나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지유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민우가 출국한 걸 기억해 냈다.

그해 지유는 죽을 고비에 부딪쳤다.

다행히 그 고비를 넘기긴 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도 가게 되었다.

뭐 크게 볼 건 없어도 안정적이었고 기복이 별로 없었다.

“잘 지낸 거 같아...”

지유는 자세히 돌이켜봤다. 자신의 인생에서 격정적인 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하 주차장.

차 한 대가 그들을 향해 질주해 왔다. 민우는 생각에 잠겨 이를 발견하지 못한 지유의 손목을 잡더니 부딪칠 뻔한 지유를 구해줬다.

“조심해. 지유야.”

그 힘에 지유는 민우의 품에 안겼고 코로 민우의 가슴을 박았다.

두 손으로 지유를 보호하는 민우는 퍽 젠틀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바깥에 선 채 그녀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고 있었다.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온 이현은 ‘지유’라는 이름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Comments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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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아
은근잼나네...중독성있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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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주
궁금해서 ~죽겠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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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점점 재밌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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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생각만으로도 김혜연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런 그녀를 보며 신무열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생각하는 거야? 혼자서 그렇게 웃으면서.”신무열의 목소리에 김혜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런 일들을 신무열에게 들키면 안 된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가요.”김혜연은 얼버무리며 걸음을 재촉했다....한편, 온지유는 김혜연과 신무열이 길을 잃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도 각자의 시간을 주고 싶어 여이현과 천천히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그러다 멀리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는 걸 본 온지유는 문득 지선율이 떠올랐다.지선율은 나중에 유명 감독이 되었고, 장다희는 인기 여배우가 되었다. 한때는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이지만 지금은 각자 바빠 거의 연락하지 못했다.신혼여행이 끝나면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이때 여이현이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연예계에 관심 있으면 내가...”온지유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나이도 서른이 넘었는데 무슨 연예계야. 괜히 시간 낭비지.”“꼭 배우가 될 필요는 없잖아. 기획자나 감독, 아니면 작가도 될 수 있지. 하고 싶은 거 있어?”여이현의 말은 온지유에 대한 아낌없는 배려였다. 그녀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러자 온지유는 말했다.“이제 다시 생각해 볼게.”여이현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온지유는 여이현이 가리킨 쪽을 보니 신무열과 김혜연이 나란히 팔짱을 끼고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두 사람 이제 잘 돼 가는 것 같네. 신무열은 자꾸 아닌 척하지만.”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좋은 일이 곧 생길 것 같아.”여이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은 일이지.”신무열은 온지유보다 몇 살 더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신무열 나이쯤 되면 이미 아이도 몇 명씩 있었지만 그는 이제야 겨우 여자 친구가 생긴 셈이었다.온지유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런데 우리 정말 같이 다닐 거야?”여이현은 신무열과 김혜연에게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34화

    과거 Y국에 전쟁이 일어날 때 김혜연은 신무열을 따라다니며 최고 수준의 격투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불량배는 김혜연을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ㄴ오히려 그녀에게 제압당해 발밑에 깔리고 말았다.“돈 안 내놓을래? 지금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갈 거야!”그 말에 불량배는 겁에 질려 서둘러 빌었다.“돈 돌려줄게요! 두 배로 줄 테니까, 제발 경찰서에만은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김혜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돈부터 돌려주고 얘기해.”불량배는 어쩔 수 없이 소녀에게서 빼앗은 돈을 돌려주었고, 김혜연은 소녀의 몫만 가져와 소녀에게 돌려준 후, 한 손으로 불량배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경찰에 신고했다.‘잡초를 뿌리째 뽑지 않으면 다시 자라듯이... 참 운도 없어. 나를 만나다니.’경찰이 도착해 불량배를 데려가고 나자, 김혜연은 소녀에게 돈을 더 건네며 말했다.“언니가 도울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이 돈으로 잘 지내길 바랄게.”어린 나이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나온 소녀를 보니 김혜연은 전쟁 속에서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전쟁이 없었더라면, 나라가 평화로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랬다면 신무열도 법로도 가정을 희생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감사합니다, 언니.”소녀는 김혜연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소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혜연은 소녀가 전화하며 Y국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같은 나라 사람이었구나!’같은 동포라는 생각에 김혜연은 더 정이 갔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이때 신무열이 다가와 말했다.“이곳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다음에는 이런 일에 휘말려 들지 마.”김혜연은 격투 실력이 뛰어났지만 이곳은 타지이고 그녀는 혼자였다. 만약 불량배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김혜연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그때는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리고 무열 씨도 제 옆에 있었잖아요.”그녀는 그저 소녀를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 신무열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33화

    잠깐 사이에 신무열과 김혜연은 온지유 일행과 떨어지고 말았다.김혜연은 다시 그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때 신무열이 말했다.“이제 어른이잖아. 핸드폰에 내비게이션도 있으니까 길 잃을 일 없어. 저쪽으로 가서 구경하자.”김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무열을 따라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얼마 가지 않아 그들 앞에 꽃을 파는 어린 소녀가 나타났다. 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였고, 야윈 몸에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언니!”소녀는 김혜연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꽃을 내밀며 말했다.“언니처럼 예쁜 사람은 꽃 한 다발 가져가야죠. 안 그래요?”김혜연이 대답하려는 찰나, 소녀가 말을 덧붙였다.“이 꽃들은 제가 아침에 직접 꺾은 거예요. 싸게 팔고 있어요. 하나 사시면 하나 더 드릴게요.”소녀는 정말 배가 고팠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꽃 한 다발도 팔지 못한 데다, 집에는 아픈 엄마와 어린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들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김혜연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여기 있는 꽃 전부 얼마야? 내가 다 살게.”같은 나라 사람끼리 서로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꽃을 사는 돈이 김혜연에게는 큰돈이 아니었지만, 소녀에게는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언니, 정말 다 사 주실 거예요?”소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김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얼른 가격 계산해 줘.”소녀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이제 돈이 생겼으니 음식을 살 수도 있고, 엄마 약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씨 좋은 언니를 만났으니 말이다.소녀는 서둘러 계산을 시작했고, 김혜연이 많이 사는 만큼 가격도 할인해 주었다.“이 돈 받아. 잘 챙겨서 남들 안 보이는 곳에 넣어 두렴.”김혜연은 원래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소녀에게 건넸다.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언니, 너무 많이 주셨어요. 제 꽃들이 그렇게 값어치 있는 것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32화

    법로가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린 다 먹었어. 별아, 엄마 아빠도 밥 먹었는지 물어봐 줄래?”“네.”별이는 천천히 말했지만,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별이는 법로가 한 말을 온지유에게 그대로 전했다.온지유는 무척 기뻤다. 최근 별이가 이렇게 완전한 문장으로 말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온지유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랑 아빠도 밥 먹었어. 그리고 여기서 네 외삼촌도 만났어. 별아, 너도 여기 와서 같이 놀고 싶지 않아?”온지유는 별이의 대답을 기다리며 옆에 있는 여이현을 슬쩍 당겼다. 별이가 오고 싶다고만 하면 바로 데려올 수 있었으니까.여이현도 부드럽게 웃으며 별이에게 물었다.“별아, 여기 오고 싶어?”별이는 고개를 저으며 법로를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별이는… 외할아버지랑 있을 거예요… 외할아버지가 별이 병 고쳐 주신대요…”“그래, 그럼 외할아버지랑 잘 지내고, 말씀도 잘 들어. 엄마랑 아빠가 돌아갈 때 선물도 사 올게. 네가 나아지면 같이 놀러 가자.”사실 여이현도 별이를 데려올까 했지만, 온지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온지유에게 미안했던 부분도 많았고, 이번에는 별이 곁에 법로가 있으니 온지유와 함께 둘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네.”별이는 짧게 대답했지만, 그 한마디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별이가 법로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좋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법로가 경성에 계속 머문다면, 별이의 건강도 회복되고 온지유와의 유대도 깊어질 것이다.온경준과 정미리는 온지유를 친딸처럼 여겼고, 친구들, 오빠와 새언니까지,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었으니 온지유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온지유는 별이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뒤, 법로에게 몇 가지 당부를 전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여이현이 온지유를 안으며 말했다.“별이는 외할아버지랑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별이 건강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그래서 지금 외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거잖아.”온지유는 별이가 점점 나아질 모습을 그리며 미소를 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31화

    온지유가 방을 잡을 때 신무열이 온지유한테 제대로 설명을 안 해서 온지유는 신무열과 김혜연이 같은 침대에서 자는 사이인 줄로 착각했다.신무열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꾹 참고 낮게 말했다.“네가 침대 써. 난 바닥에서 잘게.”Y국 북부에서 그 험난한 환경도 다 버텼는데,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신무열을 깊이 사랑하는 김혜연이 그를 바닥에서 자게 할 수 있을까?김혜연이 조용히 말했다.“제가 바닥에서 잘 테니까 무열 씨는 침대에서 주무세요. 아니면 저...”“지금 관광 성수기라 방 잡기도 어려워. 게다가 너 혼자 나가면 뭐가 되겠어?”김혜연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신무열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김혜연은 고개를 숙였다. 신무열 앞에서는 언제나 말 한마디 크게 못 하는 그녀였다.자신의 가장 부드럽고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었지만 신무열은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운 그녀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신무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고 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네.”김혜연은 신무열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그런데 민박에서 갑자기 물이 끊길 줄이야.김혜연은 거품투성이인 채로 욕실 안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무열 씨, 프런트에 전화해서 물이 왜 안 나오는지 물어봐 줄래요?”온몸에 거품이 잔뜩 묻은 채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신무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당황했지만, 곧바로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프런트 직원이 계속 사과하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예비 물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해결해 드릴게요.”“최대한 빨리 부탁해요.”신무열은 물이 나온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전화를 끊었다. 욕실 쪽으로 말한다.“곧 물 나온대. 조금만 기다려.”“네, 알겠어요.”김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고, 몇 분 후 김혜연은 머리가 흥건한 채로 나왔다.“머리 안 말려?”“이제 말릴 거예요.”김혜연은 이런 일상적인 대화가 좋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30화

    온지유의 말을 들으니 김혜연은 더 부끄러워졌다.신무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왕 만난 김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마침 식사 시간대인데.”“저희 민박을 예약했어요. 거기로 가요.”말을 마친 온지유는 길을 안내했다.빠르게 그들은 한 민박집으로 왔다.여이현은 민박집 직원을 불렀다. 그러자 직원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미 이곳에 먼저 와서 지내고 있었던지라 온지유는 김혜연과 신무열에게 맛있었던 음식을 추천했다.두 사람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열 가지가 넘는 음식을 주문했으나 다행히 양은 많지 않았다. 김혜연이 새우를 까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신무열이 매너 있게 대신 가져와 껍질을 까주었다.여이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바로 아내를 위해 새우를 까주었다.온지유는 김혜연의 잔에 음료수를 따라주었다.“여기엔 구경할 곳이 아주 많아요. 이왕 마주친 김에 같이 둘러볼래요?”“네, 좋아요!”김혜연은 바로 대답했다.그녀와 신무열의 사이는 원래부터 어색했다. 신무열이 무뚝뚝했기에 그녀가 자꾸만 말을 건다면 짜증이 솟을 게 분명했다.행여나 신무열이 언짢아하면서 이 관계를 얼른 끝내버리려고 할까 봐 걱정되었다.한 달이라는 체험 기간은 그녀가 겨우 얻은 기회였으니 말이다.“그럼 전 사장님한테 가서 두 사람 방 예약하고 올게요. 여긴 민박집이긴 하지만 엄청 커서 매일 신선한 채소도 많고 주변 환경도 아주 좋거든요.”온지유는 주동적으로 도와주었다.신무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김혜연은 당연히 미소를 지었다.“정말 고마워요.”온지유는 두 사람에게 방을 잡아 주었다.방 키를 두 사람에게 건넸을 때야 온지유가 방 두 개가 아닌 하나만 잡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너비가 1.5m밖에 되지 않는 사이즈의 침대만 하나 있었다. 다만 여이현은 온지유의 눈빛에서 계획을 눈치챘다.김혜연과 신무열이 방으로 올라가 짐을 내려놓으려고 할 때 여이현은 온지유를 구석으로 끌어당겼다.“지유, 일부러 그런 거지?”그녀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9화

    김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경성은 아주 좋은 곳이잖아요. 게다가 아가씨도 여기에 있으니까 저도 여기 남고 싶네요. 하지만 저랑 도련님은 다시 돌아가서 나라를 살펴보아야 해서 이곳에 정착하긴 어려워요.”“그렇군요. 그럼 편히 놀다가 가요. 별이를 혜연 씨한테 맡긴다면 자유 시간이 없잖아요. 오빠한테 이곳저곳 구경하러 가자고 해요. 화국은 아주 아름다운 나라라서 구경할 곳이 많거든요.”김혜연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온지유는 그녀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이 시간은 김혜연이 힘들게 노력해 얻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아깝게 낭비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온지유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별이는 아버지한테 맡길 생각이에요. 게다가 배 비서님도 있으니까 혜연 씨는 오빠랑 시간을 보내세요.”곧이어 온지유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여이현과 온지유는 차에 올라탔다. 순간 여이현은 뭔가 중요한 일을 깜빡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지?”여이현은 입술을 틀어 문 채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온지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뭘 잊고 있었는데?”여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그걸 왜 깜빡했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결혼 준비를 했는데 웨딩사진 찍는 걸 깜빡해버렸어.”온지유는 실소를 터뜨렸다.“난 또 뭐라고. 그 중요한 일이 웨딩사진 찍는 것일 줄은 몰랐네. 그래도 우린 이미 부부가 되었잖아. 안 그래?”그녀는 여이현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어차피 앞으로 우리에겐 시간이 많아. 천천히 찍으면 되지.”온지유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참, 우리 신혼여행 가서 찍으면 되겠다!”“그래, 그거 좋네. 배 비서, 들었죠?”여이현은 바로 운전 중인 배진호에게 지시했다. 배진호에게 이런 일은 그저 전화만 돌리면 되는 일이었기에 빠르게 촬영을 예약했다.한편 김혜연은... 온지유의 말을 명심하고 있었다.그녀는 신무열에게 다가갔다.신무열은 업무를 처리하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8화

    김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저랑 보내는 시간 동안 즐겁지 않으셨어요?”그녀는 이내 신무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신무열보다 키가 크지 않았기에 신무열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젖혀야 했다.신무열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신이 조각한 것처럼 완벽한 이목구비였고 그녀가 푹 빠진 얼굴이었다.그는 입술을 짓이겼다. 머릿속에 김혜연과 같이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확실히 즐거웠다.김혜연은 고집을 부린 적 없었고 오히려 그를 배려해 주었다.다만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도 무거웠다. 그는 Y 국 국민을 위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Y 국에 써야 했다.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김혜연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김혜연, 한 달이라고 했으니까 약속 꼭 지켜.”신무열은 느긋하게 입을 열며 김혜연에게 약속을 지키라면서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게 했다.김혜연은 순간 목구멍이 막힌 기분이었고 가슴이 미어졌다.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으나 신무열은 그녀의 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차갑고 확고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 저도 알아요. 도련님이 Y 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요. Y 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건 알겠지만 도련님도 도련님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Y 국을 위한답시고 평생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맞는 말이었다.하지만 법로가 그의 어머니에게 진 빚을 전부 똑똑히 보고 자랐기에 신무열은 법로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Y 국은 이미 그가 책임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희생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그래. 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어. 김혜연, 한 달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네 요구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고...”“싫어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도련님 마음을 얻을 거예요! 도련님이 하신 말씀들은 전 신경 안 써요. 전 도련님을 이해하거든요. 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027화

    게다가 별이가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별이가 친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도 온지유는 별이를 데려다가 키우려고 했었다.심지어!인명진이 그녀의 심성이 착함에 제일 좋은 증인이었다.“이왕 경성에 온 김에 경성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가세요.”온경준은 법로가 진심으로 온지유를 위한다는 것을 보아내고 있었다.그들은 전부 온지유가 잘 살기를 바랐으니 당연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더구나 법로는 온지유의 친부가 아니던가.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별이의 곁에 남아서, 딸의 곁에 남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오늘 결혼식엔 필요한 과정은 전부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결혼식 피로연에서의 게임도 말이다...지석훈과 최주하는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여이현은 원래 이런 이벤트를 취소하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벤트가 없다면 완벽한 결혼식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들은 게임으로 여이현과 온지유에게 장난을 쳤다.하지만 대부분 여이현을 툭 밀면서 온지유와 붙어있게 해주었고 게임 벌칙도 두 사람이 이마 맞대기, 서로의 볼에 뽀뽀하기 등 시키면서 놀려대기 바빴다.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술이었던지라 두 사람은 러브샷도 했다.게임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그 후엔 다들 알아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최주하는 여이현을 향해 눈썹을 튕겼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주 귀하니까 있을 때 잘해.”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도 돌아왔다. 방 안에 두 사람뿐이었던지라 여이현은 자연스럽게 온지유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결혼식에서 벌어진 일은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원래는...”“그래도 날 사랑하는 건 여전하잖아. 안 그래?”온지유는 실소를 터뜨렸다.강서현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잊지 못할 것이고 온지유의 얼굴과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것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그거랑은 달라. 나는 원래 우리가 알콩달콩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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