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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지유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짐 정리해요.”

“어디 가는데?”

지유가 대답했다.

“집에요.”

“여기가 집이잖아.”

이현의 말투가 확 차가워졌다.

지유는 마음이 살짝 쓰렸지만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이 집이 내 집이었던 적 있어요? 이제 그만 자리 내줄게요.”

이현이 갑자기 지유의 손을 잡으며 더는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머리 위에서 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심술부릴래?”

지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뭔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억울함이 북받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유는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심술 아니에요. 저 지금 진지해요. 대표님, 비켜주세요. 정리 마저 해야 해서요.”

지유가 고집을 부리며 이현과 이혼하려 하자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기척을 듣고 지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 다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네가 이토록 이 집에서 나가려는 원인이 뭔데?”

지유는 말이 없었다.

이현은 지유와 거리를 좁히며 캐물었다.

“정말 내가 그쪽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여줄까?”

이현의 말에 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혼신고서에 적힌 글을 보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유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현이 어느샌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유는 그렇게 휘청거리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는 이현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현은 지유를 자기 몸 아래 가둔 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욕망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지유는 그런 이현의 눈빛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얼른 시선을 돌리며 설명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이 모든 게 다 오해예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혼신고서는 제가 다시 작성해서 보내드릴게요. 만족하실 거예요...”

하지만 지유의 말은 이현의 화를 더 타오르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현은 커다란 몸을 이끌고 지유를 향해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현이 무서워난 지유는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이현의 가슴을 밀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이현은 지유의 턱을 으스러지게 잡더니 차갑게 말했다.

“온지유, 요즘 입만 열면 이혼 소리인데, 내가 평소에 너의 욕구를 잘 살핀 적이 없었네.”

이현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 하던 지유는 이현의 몸이 점점 뜨거워지자 바로 눈치채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는 이현의 몸에 지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이현 씨, 진정해요.”

“사랑을 나누는 것도 부부의 의무 중 하나야, 그게 어떻게 충동이지?”

이현이 되물었다.

지유가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대표님이 먼저 그랬잖아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요.”

이 말에 조용해진 이현이 깊은 눈동자로 지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몸은 점점 욕망으로 불타올랐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에 지유는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비록 전에 한 번 있었다 해도 차수가 너무 적었다. 그리고 그날은 이현이 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갑자기 두 사람 다 맨정신일 때 하려니 다소 어색했고 이에 지유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단추가 풀리며 지유는 순간 몸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머릿속엔 결혼한 첫날 밤, 그가 냉정하게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을 넘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지유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현의 손을 잡으며 온몸으로 거부했다.

“안 돼요. 지금은 싫어요.”

지유의 말에 이현의 욕망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는 그녀의 불안한 눈동자를 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온지유, 난 분명히 기회를 줬다. 네가 싫다고 한 거야.”

갑자기 차가워진 이현에 지유는 실망했다.

“이런 기회라면 차라리 없는 게 좋겠어요.”

이현은 입술을 앙다문 채 손을 빼더니 그녀의 몸 위에서 내려와 뒷모습만 보여주며 싸늘하게 말했다.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결혼은 거래일 뿐이야.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

그는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방을 나섰다.

갑자기 찾아든 정적에 지유는 한참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지유는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져 침대에서 일어나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다리에 파묻었다. 그렇게 자기만의 성벽을 쌓아야만 상처를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늘 이성적인 지유였지만 매번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한마디에 상처받았다.

원래도 거래뿐인 결혼이니 그녀도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결혼이 없었다면 참으로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년간 어딘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다.

지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순간 너무 힘들었다. 언제면 이런 실망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다 얼떨결에 잠이든 지유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꿈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어두운 불빛으로 누군가 비틀거리며 침대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으스러지게 꼭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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