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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류한나
지유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짐 정리해요.”

“어디 가는데?”

지유가 대답했다.

“집에요.”

“여기가 집이잖아.”

이현의 말투가 확 차가워졌다.

지유는 마음이 살짝 쓰렸지만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

“이 집이 내 집이었던 적 있어요? 이제 그만 자리 내줄게요.”

이현이 갑자기 지유의 손을 잡으며 더는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머리 위에서 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심술부릴래?”

지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뭔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억울함이 북받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유는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심술 아니에요. 저 지금 진지해요. 대표님, 비켜주세요. 정리 마저 해야 해서요.”

지유가 고집을 부리며 이현과 이혼하려 하자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기척을 듣고 지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 다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네가 이토록 이 집에서 나가려는 원인이 뭔데?”

지유는 말이 없었다.

이현은 지유와 거리를 좁히며 캐물었다.

“정말 내가 그쪽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여줄까?”

이현의 말에 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혼신고서에 적힌 글을 보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유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현이 어느샌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유는 그렇게 휘청거리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는 이현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현은 지유를 자기 몸 아래 가둔 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욕망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지유는 그런 이현의 눈빛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얼른 시선을 돌리며 설명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이 모든 게 다 오해예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혼신고서는 제가 다시 작성해서 보내드릴게요. 만족하실 거예요...”

하지만 지유의 말은 이현의 화를 더 타오르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현은 커다란 몸을 이끌고 지유를 향해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현이 무서워난 지유는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 손으로 이현의 가슴을 밀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이현은 지유의 턱을 으스러지게 잡더니 차갑게 말했다.

“온지유, 요즘 입만 열면 이혼 소리인데, 내가 평소에 너의 욕구를 잘 살핀 적이 없었네.”

이현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 하던 지유는 이현의 몸이 점점 뜨거워지자 바로 눈치채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는 이현의 몸에 지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이현 씨, 진정해요.”

“사랑을 나누는 것도 부부의 의무 중 하나야, 그게 어떻게 충동이지?”

이현이 되물었다.

지유가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대표님이 먼저 그랬잖아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요.”

이 말에 조용해진 이현이 깊은 눈동자로 지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몸은 점점 욕망으로 불타올랐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에 지유는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비록 전에 한 번 있었다 해도 차수가 너무 적었다. 그리고 그날은 이현이 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갑자기 두 사람 다 맨정신일 때 하려니 다소 어색했고 이에 지유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단추가 풀리며 지유는 순간 몸이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머릿속엔 결혼한 첫날 밤, 그가 냉정하게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을 넘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지유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현의 손을 잡으며 온몸으로 거부했다.

“안 돼요. 지금은 싫어요.”

지유의 말에 이현의 욕망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는 그녀의 불안한 눈동자를 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온지유, 난 분명히 기회를 줬다. 네가 싫다고 한 거야.”

갑자기 차가워진 이현에 지유는 실망했다.

“이런 기회라면 차라리 없는 게 좋겠어요.”

이현은 입술을 앙다문 채 손을 빼더니 그녀의 몸 위에서 내려와 뒷모습만 보여주며 싸늘하게 말했다.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결혼은 거래일 뿐이야.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

그는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방을 나섰다.

갑자기 찾아든 정적에 지유는 한참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지유는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져 침대에서 일어나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다리에 파묻었다. 그렇게 자기만의 성벽을 쌓아야만 상처를 받지 않을 것 같았다.

늘 이성적인 지유였지만 매번 그에게 빠져들었고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한마디에 상처받았다.

원래도 거래뿐인 결혼이니 그녀도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결혼이 없었다면 참으로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년간 어딘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다.

지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순간 너무 힘들었다. 언제면 이런 실망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다 얼떨결에 잠이든 지유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꿈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어두운 불빛으로 누군가 비틀거리며 침대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으스러지게 꼭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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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리윤이
남주 감정 롤코 지리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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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원은 정말로 일부러 강윤슬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지석훈은 그녀의 말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빤히 그녀를 보았다. 문지원의 얼굴엔 진지함과 단호함만 담겨 있었다. 그는 확실히 문지원이 일부러 찾아갔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해야 모든 사람들이 그와 문지원의 관계를 알게 될 거고 경성의 모든 사람들도 어떻게든 문지원을 도와주려고 할 것이니 말이다. 문지원의 야망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솔직하게 말해줄 줄은 몰랐다.그녀가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강윤슬이 일부러 문지원을 찾아온 것이 맞았다. 그 순간 지석훈은 대충 뭔가를 짐작하게 되었다.그러나 문지원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어서 말했다.“혹시 저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하지 마세요. 전 제 주제를 알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석훈 씨와 석훈 씨 아버지는 이미 충분히 저를 도와주고 있어요.”그녀에게 정말로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티가 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녀와 지석훈은 결국엔 다른 세계 사람이었고 주건 때문에 그녀는 더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알았어. 그럼 협력 업체를 만나러 온 거야?”지석훈은 더는 그녀와 이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네. 프로젝트를 더 많이 받아보려고 왔어요. 저희 직원들이 일을 너무도 잘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부족한 것 같아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보려고 온 거예요.”직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주고 있는 덕분에 주문도 밀리지 않고 제때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파산해버린 회사를 버리고 도망쳤을 테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직원들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지석훈은 입술을 달싹였다.“내가 사업하는 내 친구들을 소개해줄게. 내 친구들이라면 널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최근에 제약 회사에서도 뭔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한번 생각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44화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것이 지석훈이 그들을 비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임혁수의 안색이 더 일그러졌지만 강윤슬은 난감하기만 했다. 예전에 지석훈이 자신에게 어떻게 애절하게 사랑 고백했었는지 전부 지켜보았었다. 그런 지석훈이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주고 있으니 오히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강윤슬은 그런 그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석훈아, 말 좀 가려서 해. 사람을 존중해야 할 줄 알아야지. 우리가 언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그래?”강윤슬도 어느새 미간을 찌푸렸다. 임혁수는 계속 강윤슬의 편을 들어주었다.“지석훈, 너 지금 윤슬이를 갖지 못했으니까 질투하고 있는 거잖아. 너 그런 모습 추해. 애초에 네가 강아지처럼 꼬리 살살 흔들며 멋대로 윤슬이 옆에 있었던 거였으면서.”임혁수의 날카로운 눈빛과 말에 지석훈은 정곡을 찔리게 되었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예전의 지석훈은 한 마리의 개처럼 강윤슬의 주위만 맴돌았고 비굴하고도 애절하게 사랑 고백하면서 잘해주었지만 결국 지석훈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프러포즈를 몇 번이나 했지만 강윤슬은 단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고 임학수의 전화 한 통에 강윤슬은 바로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심지어 강윤슬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임혁수의 편을 들어주었고 자신과 혈연관계도 없는 임혁수의 딸까지 받아주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석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맞아. 내가 개처럼 꼬리를 흔들었지. 인정해. 그런데 너희들이 한 건? 너희들은 이 세상이 너희들을 둘러싸고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아니야?”“네가 질투한다고 말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임혁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며 강윤슬의 편을 들어주었다. 문지원은 더는 뻔뻔한 두 사람을 봐줄 수가 없었다.“만약 우리가 정말 그런 거라면 틀린 말도 아니겠죠. 하지만 이미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는데 뭔 이유가 필요하겠어요. 안 그래요? 두 사람은 그렇게 평생 함께 살아요. 다른 사람 해칠 궁리는 하지 말고요. 두 사람의 피해망상증이 다른 사람에게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43화

    문지원은 반드시 회사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회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방법이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돈을 많이 버는 것.그녀는 프로젝트를 더 많이 받으려고 나온 것이지만 강윤슬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윤슬은 연분홍색 정장을 입고 있어 청순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있었다. 비록 강윤슬과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강윤슬이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않았다.이번에 우연히 만나도 문지원은 당연히 먼저 인사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강윤슬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강윤슬의 두 눈엔 여전히 그녀를 깔보는 듯한 거만함이 담겨 있었다.“오늘은 석훈이랑 같이 있지 않네요?”다른 사람이 듣기엔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문지원이 듣기엔 이상하게도 말 속에 가시가 느껴져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저희 인사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설령 강윤슬과 지석훈이 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건 두 사람의 사이에서만 통할 뿐 그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강윤슬의 모습은 꼭... 일부러 그녀를 골탕 먹이려고 먼저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강윤슬은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그렇죠.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죠. 하지만 석훈이 봐서라도 인사를 해주는 거예요. 석훈이 도움으로 문정 그룹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잖아요.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하죠.”문정 그룹의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도 지석훈의 공로였다. 만약 지석훈이 여이현을 소개해주지 않았더라면 여이현은 아마 끝까지 그녀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알고서도 지석훈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고 강윤슬의 말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강윤슬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맞아요. 아주 좋은 방법이죠. 그런데 그쪽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강윤슬 씨, 혹시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예요?”문지원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죠?”강윤슬이 대꾸하기도 전에 누군가 끼어들며 강윤슬의 편을 들어주었다. 목소리를 들은 문지원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42화

    이 말은 손기영만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하고 싶은 말을 그가 해준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문지원이 없을 때 젊은 나이에 큰일을 하고 있는 문지원을 칭찬하고 있었고 몇 년만 더 지나면 아주 문용석을 뛰어넘는 훌륭한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문지원이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려던 때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라 다시 몸을 돌렸다.“공장장님, 직원들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거예요? 다들 도시락이라도 준비해오는 거예요?”“어떤 사람은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오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근처에서 간단히 사 먹고 있어. 어차피 우린 힘 쓰는 일을 해야 하니까 배만 든든하게 채우면 되거든.”“그렇군요. 알겠어요.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문지원은 이미 무언가를 생각해두고 있었다.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해주려면 사장으로서 직원 복지 정도는 만들어 줘야 했다. 예시를 들면 점심 식사 같은 것을 챙겨주는 직원 복지 말이다.물론 지금 공장의 상황으로는 직원들을 위해 식당을 만들어줄 정도의 돈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근처 식당과 협력해 점심마다 대량의 도시락을 주문하는 것이 더 나았다. 대량으로 도시락을 주문하니 가격도 협상할 수 있었다.직원들도 매일 따듯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기와 채소를 곁들여 영양도 챙길 수 있으니 분명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지원은 행동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지라 사무실에 앉아 한참 고민한 후 공장의 이틀간 생산량을 훑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직접 운전해 공장 근처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직원을 위해 도시락을 주문한다고 해도 문지원은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깨끗한 식당에서 주문해 직원들에게 점심을 주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어느 한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사장님, 도시락 하나에 얼마씩 해요?”“도시락마다 다 다르죠. 고기반찬 둘에 나물 반찬 하나 들어간 건 2400원 정도 하고 고기반찬 하나와 나물 하나면 2000원 정도 해요. 두 가지 모두 생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41화

    “문 사장, 내가 며칠 동안 지켜봤는데 다들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더라고. 농땡이 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다들 어렵게 찾아온 일할 기회를 소중히 하고 있는 것 같아.”손기영은 문지원의 옆에 서서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고 직원들을 위해 감싸주는 말이 아니었다. 비록 그도 일하러 온 것이지만 공장장이었던지라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했다. 문지원도 그런 그를 믿고 있었다.“공장에 아저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저씨는 이 공장의 원로급 임원이나 다름이 없잖아요. 예전에 우리 아빠랑 일하셨을 때도 아빠가 항상 아저씨 일 잘한다고 하셨거든요. 아저씨는 언제든 잘하실 거예요.”그녀의 말을 들은 손기영은 미소를 지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뒤 손기영은 문을 꼭 닫았다.“문 사장, 내가 문 사장한테 보고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전에 우리 공장 직원 중 진태준이라는 직원을 기억해?”“네. 기억해요. 그 사람이 왜요?”문지원은 어렴풋이 진태준이라는 직원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손기영에게 연락을 부탁했을 때 진태준은 다시 돌아와 일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했기에 직원 리스트 중에 그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태준은 문지원에게 이미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손기영은 한숨을 내쉬었다.“진태준 생활 형편도 아주 좋지 않아. 자식이 네 명이나 있는데 그동안 변변한 일자리도 없었나 보더라고. 막내아들이 학원도 다녀야 하는데, 형편이 좋지 않아 망설이는 듯한 눈치였어. 전에 내가 연락했을 때 다시 일하기 싫다면서 거절했잖아. 아마 한번 망하고 월급이 밀리니까 불안했나 봐. 우리가 다시 전처럼 출퇴근하고 있으니까 돌아오고 싶은지 얘기를 꺼내더라고. 문 사장은 어떻게 생각해?”문지원은 미간을 구겼다. 손기영의 말을 들으니 진태준의 형편도 확실히 좋지 않고 이 일도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애당초 이 기회를 거절한 것은 진태준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일을 이미 포기했다는 것이었던지라 만약 불쌍하다고 해서 받아준다면 다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40화

    문지원은 자기 입술을 찰싹찰싹 때리며 원망했다.‘왜 야밤에 배가 고픈 거냐고! 배고픈 건 그렇다고 쳐도 이 차림으로 석훈 씨 앞에 서 있었다니! 정말 창피해 죽겠어!'“잠깐.”지석훈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나도 조금 허기진 것 같네. 야식 만들려고 하는데 먹고 싶으면 옷 갈아입고 나와. 아니면 내가 만들어서 방 앞에 놓고 갈 테니까 들고 가서 먹어.”“아니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문지원은 당연히 집주인에게 야식을 만들어 문 앞까지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은 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추어보더니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세수했다. 덕분에 얼굴의 붉기는 조금 전보다 가라앉은 상태였고 그제야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지석훈은 이미 야식을 만들어 놓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대찌개를 본 그녀는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석훈 씨 요리를 아주 잘하나 봐요.”“전에 사둔 밀키트가 있어서 쉽게 만든 거야. 그냥 안에 있는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끓이면 되는 거거든. 얼른 와. 내가 냉장고에 있는 치킨도 데워줄게.”지석훈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나왔을 때 잊지 않고 문지원에게 앞치마를 챙겨주었다.“이거 하고 있어. 그래야 먹을 때 양념이 튀어도 네 옷에 튀지 않을 테니까.”문지원은 갑작스럽게 그의 집에서 지내게 된 것이라 가져온 옷이라곤 없었다. 입고 온 것이 전부였던지라 더러워지면 골치 아팠다.“석훈 씨도 얼른 먹어요. 저 혼자 먹기엔 눈치가 보이네요.”문지원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문용석이 병원에 입원한 뒤로 집안에 자꾸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던지라 이렇게 야식으로 부대찌개를 먹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어느 새부터인가 그녀는 살기 위해 음식을 먹을 뿐이었지만 이렇게 지석훈과 함께 야식을 먹으니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다.아마도 점점 나아지는 집안의 상황에 이런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했다. 회사의 상황도 나아지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39화

    지석훈의 상처를 치료해줄 때 문지원은 아주 열심이었다. 지석훈은 저도 모르게 그런 그녀를 빤히 보게 되었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연고가 상처에 닿은 순간 지석훈은 저도 모르게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아, 미안해요. 혹시 방금 아프게 했어요?”문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상처에 대고 후후 바람을 불었다.“이러면 조금 나을 거예요. 최대한 살살 발라볼 테니까 조금만 참아줘요.”“문지원, 난 어린애가 아니야. 이런 통증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러니까 애 취급하지 마.”지석훈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문지원이 말했다.“석훈 씨가 아이가 아니라는 거 당연히 알고 있죠. 하지만 아이만 다치면 아픈 게 아니잖아요. 어른도 다치면 똑같이 아파요. 그리고 이런 통증은 줄일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최대한 살살 바르면요.”최대한 살살 약 발라주겠다고 하면서 대체 왜 자꾸만 그에게 참으라고 하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석훈은 더 말하지 않았다. 팔을 치료한 뒤 문지원은 그의 다리를 치료해주었다. 전부 치료해주고 나니 어느새 반 시간이 훌쩍 지났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씻고 쉬어. 내일 공장으로 갈 거면 내가 데려다줄게.”지석훈은 소파에서 일어나며 손님방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저 방에 새 이불도 있으니까 그냥 덮으면 돼.”“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문지원은 농담을 반쯤 담아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현재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집안에 들이닥친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던지라 지석훈에게 보답할 여력은 없었기에 정말로 보답할 수 있을지 몰랐다.지석훈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우린 친구잖아. 친구 사이에 그런 부담은 가질 필요 없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어. 넌 피곤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가 피곤해.”“그럼 쉬는 데 방해하지 않게 전 이만 먼저 방으로 들어가 볼게요.”문지원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손님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38화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된 후 지석훈은 이미 문지원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도와주었다. 그에게 진 빚도 갚지 못할 정도였던지라 만약 그가 그녀를 구해주다가 다치게 된다면 그녀는 정말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눈 앞에 펼쳐진 위험한 상황을 지석훈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대로 가버린다면 문지원 혼자서 그 위험을 감당해야 했기에 그는 그녀를 두고 절대 혼자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두 남자에게 달려들어 싸웠다.문지원이 초조해하고 있던 때 마침 그녀가 신고했던 경찰들이 도착했다. 경찰들은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움직이지 마! 두 손 들어!”두 남자는 빠르게 도망치려고 했지만 자신들의 차로 문지원의 차를 쳤던지라 더는 시동을 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도망칠 수 없었던 그들은 이내 경찰에게 제압당했다. 문지원과 지석훈도 경찰서로 따라가 진술서를 작성했다.진술서를 작성하고 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고 피로 물든 그의 셔츠를 보던 문지원은 눈가가 붉어졌다.“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리게 했어요. 만약 제가 아니었다면 석훈 씨가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뭘. 괜찮아.”지석훈은 애초에 자기 상처에 신경 쓰지 않았다.“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지내. 거기가 더 안전할 거야.”그러나 문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누구 집이 더 안전한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친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병원부터 가야 한다.“다쳤잖아요. 그러면 병원 가서 치료부터 받아야죠. 온몸에 이상 없나 확인해야 저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지석훈도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자꾸만 올라갔다.“문지원,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은 거야? 내가 의사야. 이 정도 상처는 별거 아니니까 병원까지 갈 필요 없어.”“아무리 별거 아닌 상처라고 해도 치료는 해야죠. 그렇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잖아요.”문지원은 여전히 그가 걱정되었다. 그러자 지석훈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 짙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37화

    그 순간 두 남자는 문지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문지원은 급하게 차에 올라탄 뒤 사람이 많은 시내로 향했다. 시내엔 사람이 많았던지라 아무리 두 사람이 그녀에게 범죄를 저지르려고 해도 수많은 시선이 느껴지는 앞에서는 대놓고 하지 못할 것이었으니까.다행히 차가 옆에 있어 그녀는 바로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할 새도 없이 시동을 걸었고 멈춰선 두 남자는 서로 마주 보았다.“도망치고 있어요!”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얼른 차 시동 걸어! 쫓아가야지!”옆에 있던 남자가 그의 머리를 내리치며 말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애초에 돈을 받고 무엇이든 해주는 흥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대로 문지원을 놓친다면 의뢰인이 난리를 피우며 돈을 달라고 할 것이 뻔했다.두 사람의 차도 근처에 주차되어 있었던지라 남자는 빠르게 차를 몰고 다른 남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태웠다. 차에 올라탄 남자는 이내 지휘했다.“속도 올려서 일부러 부딪쳐.”“네!”남자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속도를 꾹 울린 후 문지원의 차를 쫓아갔다.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두 차는 서로 부딪치게 되었다. 문지원의 몸이 그 충격에 앞으로 확 나갔고 다행히 제때 펴진 에어백 덕에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그녀는 두 남자가 돈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두 남자는 차에서 내린 후 그녀가 있는 운전석으로 달려와 끊임없이 창문을 두드렸다. 문지원은 당연히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두 남자도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던지라 한 사람은 계속 밖에서 그녀를 협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차로 돌아가 망치를 들고 왔다.“문지원 씨, 우린 문지원 씨랑 싸우려고 온 게 아니에요. 일단 내려서 평화롭게 잘 얘기를 나눈다면 우리도 조용히 물러갈 거예요. 굳이 이렇게까진 할 필요 없잖아요. 안 그래?”문지원은 당연히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흉흉한 두 남자의 얼굴만 봐도 신뢰도가 떨어졌다. 만약 남자의 말을 믿고 문을 열었다면 그들에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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