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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류한나
“지유 언니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다면서 오기 싫다고 해서 내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

승아는 얼른 손에 난 덴 자국을 일부러 보여주며 말했다.

“오빠도 지유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마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일을 그르친 건 아니죠?”

지유가 회사의 서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현은 안색이 너무 어두웠지만 승아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니야.”

이현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왔으니 앉아.”

이현의 말에 승아는 내심 기뻤다. 그녀를 받아준다는 건 그래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회의하러 간다면서요? 내가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다.

“회의 시간 뒤로 30분 미루세요.”

승아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에 인사도 없이 떠나서 혹시나 이현이 원망하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메꾸면 된다.

소파에 앉은 승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해명하려 했다.

“오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그때 내가 인사도 없이 떠난 거 잘못한 거 알아요. 근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으니까...”

“먼저 일 처리 좀 할게.”

이현이 승아의 말을 잘라버렸다.

승아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바빠 보이는 이현의 모습에 승아는 별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오빠 일 끝나는 거 기다릴게.”

승아는 방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반 시간 중 얼마나 더 앉아 있어야 마주 보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약간 이현의 속내를 맞히기 어려웠다.

진호가 안으로 들어와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

이현이 걸어오자 승아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나...”

“손은 아직도 아파?”

그녀의 상처를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걱정한다는 걸까?

승아가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 안 아파요.”

“응.”

이현이 가볍게 대답하더니 진호의 손에서 한약을 받아왔다.

“귀국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목도 불편하고. 이 약 마셔. 성대에 좋은 약이야.”

승아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약을 보며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이현이 승아의 소식을 주목하고 있었으니 성대가 불편한 것도 알았겠지, 이현이 승아를 아직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승아는 얼른 약을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오빠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해요. 얼른 다 마실게요.”

코에 가까이 대지도 않았는데 맡기 힘든 냄새가 풍겨왔다.

한약을 싫어하는 승아였지만 이현이 준 것이었기에 승아는 꾹 참고 마셨다.

너무 써서 미간이 찌푸려졌고 목구멍이 메어왔지만 군말 없이 한 번에 끝냈다.

승아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해치워서야 이현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대표님, 회의 곧 시작합니다.”

진호가 옆에서 귀띔했다.

이현이 승아에게 말했다.

“나 이제 일하러 가야 해. 들어가 봐.”

승아가 입가를 닦으며 어쩔 수 없이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찾으러 올게요.”

이현이 바깥으로 나갔다.

승아는 그런 이현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서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이겼어. 오빠는 아직 날 사랑해.]

사무실 밖.

회의실로 걸어가던 진호가 이현에게 물었다.

“대표님, 왜 탕약에 피임약을 넣으신 거예요?”

아무 표정이 없는 이현은 차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승아 호텔에 갔었다면서요.”

진호는 그제야 알았다. 아마도 어젯밤 그와 잠자리에 든 여자가 승아라면 혹시나 임신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 같았다.

피임약을 먹어야 안전하다.

하루 종일 지유는 회사로 나오지 않았고 전화로 휴가를 내지도 않았다.

평소 이현의 곁을 지키며 실수를 한 적도 자리를 비운 적도 없는 지유였다.

요새 지유는 점점 제멋대로 나갔다. 회사를 나오지 않으면서 연락 한 통이 없었다.

이현은 속에 화가 치밀어올라 하루 종일 얼굴을 굳히고 웃은 적이 없었다. 이에 직원들은 혹시 업무 실수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퇴근하고 이현은 바로 본가로 향했다.

그 시각 지유는 이미 풀려난 뒤였다.

방에 돌아와 누운 지유는 아직도 두손이 바들바들 떨렸고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무척 불안해했다.

손에 난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아 어느새 수포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현이 현관으로 들어오자 도우미가 다가와 신발을 갈아주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윤는?”

“위층에 계십니다.”

도우미가 말했다.

“사모님은 밖에서 들어오신 후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이현은 바로 위층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어보니 침대가 봉곳하게 올라와 있었다. 지유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다.

지유의 이상행동에 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침대로 걸어가더니 이불을 살짝 건드렸다.

“건드리지 마요!”

지유가 이현의 손을 탁 쳐냈다.

사실 지유는 문 쪽에서 나는 기척을 이미 들었다. 다시 그녀를 깜깜한 방에 가두려는 줄 알고 지유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이불을 푹 뒤집어쓴 지유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누군가 그녀의 이불을 건드리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 손을 뿌리친 것이다.

이현은 이상할 정도로 큰 지유의 반응에 얼굴이 굳더니 차갑게 말했다.

“온지유, 호들갑 떨 필요 없어. 나도 너 건드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현의 목소리에 불안했던 지유의 마음이 천천히 차분해졌다.

하지만 그 말에 구멍 난 가슴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유는 감정을 추스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온 줄은 몰랐어요.”

“이 집에 나 말고 너를 건드릴 사람이 어디 있어?”

이현이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너의 마음이 다른 데로 샜다면 몰라도.”

지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머릿속엔 여진숙의 매정한 말들로 가득 찼다.

어쩌면 승아가 이현과 더 잘 어울릴 수도 있다.

때마침 승아도 귀국했으니 두 사람은 못 이룬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유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겠지.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요.”

지유는 자신의 입지를 잘 알고 있었다.

“승아 씨가 서류 가져다줬죠?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요.”

오늘따라 제멋대로 행동한 지유에 이현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온지유 비서, 사리가 이렇게 밝은 사람이 왜 이런 사달을 자꾸만 만들어내는 거지?”

사달이라면 그의 어머니를 노엽게 한 것,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치게 한 것일 테지.

지유는 다친 손을 이불 속에 감췄다. 마음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엔 유의할게요.”

이혼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일도 없어질 것이다.

지유는 그들 중 그 누구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젯밤 그 여자 누구였는지 조사해 봤어?”

지유가 멈칫하더니 대꾸했다.

“시시티브이가 고장 나서 아직이에요.”

이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늘 하루 종일 도대체 뭐한 거야?”

지유는 그제야 창밖을 내다봤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나가지 않았으니 이현은 분명 그녀가 업무 태만에 게으름을 피운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바로 조사해 볼게요.”

지유는 더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다. 여씨 가문에 빚진 돈까지 갚으면 둘 사이는 완전히 끝나게 된다.

그러면 7년 동안 지속된 짝사랑도 결말을 맺을 수 있겠지.

지유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더니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 집에서 지유가 유일하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현이었다.

하지만 지유는 이제 지쳤다. 더는 이런 수모를 겪고 싶지 않았다.

이현은 그런 지유를 바라보다 그녀도 손을 다쳤음을 알게 되었다.

그 상처는 승아보다 훨씬 심각했다.

지유가 방에서 나가려는 찰나 이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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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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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
굿굿굿 너무 재밌고 설레고 하..이런설렘 얼마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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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윤
사람을 가두다니.. 진짜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이다;;
goodnovel comment avatar
시원
계속보게되는 중독성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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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형 어디 아픈가?전에 건강 검진했을 때는 정상이었는데.이현과 같은 침대를 쓰는 지유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아마도...석훈은 이현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이현에게 인사하며 그가 입은 슬랙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이현은 어딘가 이상한 석훈의 눈빛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유 좀 봐달라고 했더니 나는 왜 그렇게 보는 거야?”석훈은 시선을 거두고 어색하게 웃었다.“별거 아니야.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수님 만났는데 어디 나가던데? 기분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이현이 대답했다.“그러다 돌아올 거야.”“형 설마 형수님이랑 싸웠어?”“여자가 심술부리는 건 정상이지.”석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긴 어려워 소파에 앉는 걸 선택했다.이현은 석훈이 앉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지유도 나갔으니 너도 가봐. 나는 너 필요 없어.”“형, 나 지금 왔어. 벌써 쫓는 건 아니지 않아? 형제간의 우애를 얘기해 보는 것도 좋잖아.”석훈은 고민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며 웃었다.“형수님이 화났다면 화난 이유가 있겠지.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돼요. 그럼 사이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겠죠. 일단 자존심 내려놓고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요? 사이가 돈독해지면 형수님도 더는 형 얕잡아보지는 않겠죠.”이를 들은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이상한 석훈의 말에 이현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석훈은 이현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최대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돌려서 말했다.“근데 그 원인만 있는 건 아니야. 부부 사이에 서로 배려도 해주고 그래야지. 근데 그쪽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좀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까?”“지유가 그래?”이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석훈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용기 내어 말했다.“형수님이 형 몸 좀 잘 검사해 주라고 하던데?”석훈이 약상자를 들고 다가오려 하자 이현이 바로 호통쳤다.“꺼져!”여씨 본가로 돌아온 지유는 짐을 챙겨 나가려 했다.여진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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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유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짐 정리해요.”“어디 가는데?”지유가 대답했다.“집에요.”“여기가 집이잖아.”이현의 말투가 확 차가워졌다.지유는 마음이 살짝 쓰렸지만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이 집이 내 집이었던 적 있어요? 이제 그만 자리 내줄게요.”이현이 갑자기 지유의 손을 잡으며 더는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머리 위에서 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까지 심술부릴래?”지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뭔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억울함이 북받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유는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심술 아니에요. 저 지금 진지해요. 대표님, 비켜주세요. 정리 마저 해야 해서요.”지유가 고집을 부리며 이현과 이혼하려 하자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기척을 듣고 지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 다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네가 이토록 이 집에서 나가려는 원인이 뭔데?”지유는 말이 없었다.이현은 지유와 거리를 좁히며 캐물었다.“정말 내가 그쪽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여줄까?”이현의 말에 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혼신고서에 적힌 글을 보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현이 어느샌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유는 그렇게 휘청거리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는 이현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현은 지유를 자기 몸 아래 가둔 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욕망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지유는 그런 이현의 눈빛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얼른 시선을 돌리며 설명했다.“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이 모든 게 다 오해예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혼신고서는 제가 다시 작성해서 보내드릴게요. 만족하실 거예요...”하지만 지유의 말은 이현의 화를 더 타오르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현은 커다란 몸을 이끌고 지유를 향해 저돌적으로 다가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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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91화

    “틀린 말은 아니네.” 김숙희는 차가운 웃음을 내뱉으며 떠나기 직전 문지원의 얼굴을 가리키고는 낮게 경고했다. “너, 이 마을 사람들이 다 한통속이라는 거... 이제 슬슬 눈치 챘겠지?”“이웃끼리 워낙 끈끈해서 말이야. 네가 발만 슬쩍 빼도 금세 내 귀에 들어온다?”“우리가 이렇게까지 챙겨줬는데도 네가 끝까지 도망치겠다고 나선다면... 그땐 돼지우리에서 콕 처박혀야 할 거다.”“그때 가서 우리가 너무하다느니, 냉정하다느니 해봤자 소용없어. 그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이런 식의 협박은 문지원이 TV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설마 자기 인생에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이 판국에 괜히 발끈했다가는 맞아죽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그냥 얌전한 며느리 코스프레나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도망 안 가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문지원은 어린 소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등 뒤로 감춘 손을 악착같이 움켜쥐었다. “나래가 저를 구해줬잖아요.”“저도 진씨 가문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문지원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말에 김숙희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별다른 수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싸늘하게 비웃었다. “쓸데없는 꿍꿍이 부릴 생각 마.”“경고하는데 우리 집 사람들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쏘아붙이듯 말을 마친 김숙희는 진나래의 손을 잡았다. “가자. 아가.”“듣자 하니 그 의사가 꽤 유명하다더라. 진짜로 네 오빠 다리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그러면 우리 집안엔 또 한 번 경사가 나는 거지.”진나래는 오빠의 불편한 다리를 떠올리자 어느새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맞아요... 오빠는 그 다리 때문에 정말 많은 걸 견뎌야 했어요.”“이제 다리만 나으면 남들 눈치 보며 살 필요도 없고...”그녀는 문지원을 돌아보며 수줍게 웃었다. “이렇게 예쁜 언니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 다들 부러워서 입이 딱 벌어질 거예요.”그때, 김숙희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90화

    “뭘 번거롭게 식을 올리려고 하는 거니? 내가 네 아빠한테 시집왔을 때는 그냥 머리에 면사포 하나만 두르고 왔어. 그 면사포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김숙희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둘이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겉치레에 신경 써?”웨딩드레스니 뭐니 들어만 봐도 돈이 많이 들 것 같았다. 그들의 집안 형편은 좋지 못했다. 그동안 모은 돈도 400만 원 되지 않았고 결혼식에 전부 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지원이 핸드폰에 배터리가 남아 있는 틈을 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사진을 검색해 진나래에게 보여주었다.“네 오빠가 이런 턱시도를 입으면 분명 엄청 멋있을 거야.”“와! 옷이 너무 예뻐요. 언니는 원래도 이쁘니까 이런 옷을 입으면 완전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이 될 거예요.”진나래는 바로 감탄했다.“이 옷을 사면 나중에 저도 빌려 입을 수 있어요?”“당연하지.”어차피 문지원이 원해서 하는 결혼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사진을 보여준 뒤 진나래의 마음을 움직여 가족들을 설득해주길 바랐다.그녀의 예상대로 진나래는 웨딩드레스를 사달라고 졸랐고 진수호도 턱시도를 입고 싶다며 말했다. 자식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김숙희는 결국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문지원이 조금 전 꺼낸 돈도 있지 않은가.김숙희는 그간 모은 돈을 전부 진수호에게 주었다.“내일 혼자 시내로 가서 사와. 이 돈을 다 쓰지는 말고. 조금이라도 남겨. 우리 집에서 키우는 닭도 몇 마리 안 되는데 남은 돈으로 돼지고기라도 사와야 하니까.”“알았어요.”진수호는 원래부터 문지원을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핸드폰으로 물건도 사고 그러던데, 지원 씨 핸드폰에도 돈이 있어요? 있는 거면 내일 내가 은행 가서 찾아올게요. 나랑 결혼하는데 나만 돈을 쓰는 건 불공평하잖아요.”문지원은 이미 진수호의 행동에서 뿌리 깊게 내린 악을 발견했다. 진수호는 부녀자를 유괴했을 뿐 아니라 스스럼없이 돈도 요구하고 있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9화

    진나래는 문지원을 보며 말했다.“고기 몇 점 더 먹는다고 살이 찌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전 명절에 매일 돼지고기만 먹었는데도 살이 안 쪘거든요.”문지원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가정에서 평소에 매일 고기를 먹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명절이 되어야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간식은 물론이고 인스턴트 음식도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이 찔 수가 있단 말인가.그녀가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살이 찔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진나래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녀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었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너무도 미웠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그녀는 밥그릇에 있는 고기를 먹어버렸다.김숙희는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그렇게 몸매에 집착할 것 없어. 많이 먹어야 건강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거야. 아들 낳고 나서 살을 빼든 말든 마음대로 해. 그땐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오늘은 너와 수호가 이 방에서 자. 어차피 이젠 내 아들과 살림을 차려야 할 텐데 일찌감치 한방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나한테는 며느리니까 말도 놓을게. 얼른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주면 좋겠구나.”그 순간 문지원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비록 순결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외진 마을에 갇혀 아이를 낳는 도구가 되는 건 싫었다. 그녀의 아이가 이런 곳에 태어나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정말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오늘부터 같이 밤을 보내기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문지원은 일부러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저희 집에서는 결혼하기 전까지 외간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저희 부모님께서 어릴 때부터 가르치셨거든요.”“그럼 지금도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진수호는 눈에 띄게 흥분했다. 이렇게나 예쁜 여자가 자신의 여자로 되었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났든 신경 쓰이지 않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8화

    문지원은 순식간에 눈빛이 변해버린 아이의 가족들을 보았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왜 이곳에 남아요? 전 돌아가야 할 집이 있어요.”“언니, 언니도 남편감을 만나지 못한 게 아니에요? 그럼 우리 오빠를 빌려줄게요. 앞으로 둘이 서로 지켜주면서 행복하게 지내면 언니에게도 좋잖아요. 설마 우리 오빠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예요?”진나래는 다급해져 얼른 입을 열었다.“우리 오빠는 비록 발이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힘든 일도 못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밭일은 저도 도울 수 있어요. 언니랑 제가 밭을 관리하면 되잖아요.”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찌감치 자신을 구해준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됐어. 너희 둘 다 그만 말해.”진성국은 집안의 가장이었던지라 당연히 자신의 아들이 한눈에 봐도 귀하게 자란 문지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문지원이 이곳에 남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마을로 시집오려는 여자는 아주 흔했고 진수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대도 상관없었다. 사람만 이곳에 있으면 되니까. 그는 직설적으로 문지원에게 말했다.“우리 마을은 아주 외진 곳에 있지요. 마을을 벗어나려면 저 산부터 넘어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 중 아무도 아가씨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외지인이라면 그 산을 빠져나가기엔 아주 힘들죠. 게다가 마을 사람들끼리도 서로 아는 사이고 친척인 경우도 많아 도망치려고 한다면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 아가씨를 다시 잡아 올 거예요.”문지원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가족들에게 미움을 산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테니 말이다. 그녀는 이런 산속 마을에 영원히 갇혀 살고 싶지 않았다.“우리 집안 사람들은 그래도 인정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들이랑 서로 알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7화

    여자아이는 조금 난감해졌다.그들의 마을에서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 돈이 조금 있다는 집에서 며느리를 들였고 그들처럼 가난한 집안에서는 아들을 장가보낼 돈조차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의 오빠는 절름발이였던지라 오빠를 보는 여자마다 비웃기 바빴고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빨리 걸을 수는 없었기에 밭일도 할 수 없었다.오빠의 나이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커지고 평생 혼자 살 거라고 생각하니 아이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겨우 산에 올라갔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다를 바 없는 문지원을 발견했던 아이는 어떻게든 문지원을 자신의 새언니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대로 자리를 비운다면 문지원이 도망치거나 다른 마을 사람에게 잡혀갈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의 오빠는 정말로 평생 혼자 살게 될지도 모른다.“지금은 시간이 많이 늦었어. 아무리 마을 사람들과 친하다고 해도 네가 혼자 밖으로 나가는 건 위험해. 차라리 내일 불러오시는 게 어때.”문지원이 호의로 아이를 설득했다. 그녀는 아이가 오밤중에 나갔다가 사고당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언니 말씀이 맞아요. 내일 가서 모셔와야겠어요.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쿵쿵쿵.이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오빠는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 문밖에서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저녁 준비 끝났으니까 나와서 먹어.”“언니, 가요. 제가 우리 가족들을 소개해 줄게요.”아이는 문지원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안방은 제일 큰 방이었고 아이의 부모가 지내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거실과 밥 먹는 곳으로 쓰이기도 했다. 문지원이 들어오자 아이의 부모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열정적인 모습으로 문지원을 맞이했다.“얼른 앉아서 입맛에 맞는지 봐요. 그런데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 우리 마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아가씨보다 예쁜 사람은 없을 거예요.”문지원은 대충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너무도 열정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니 왜 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6화

    문지원의 눈앞에는 마을이 보였다.“언니,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리 집으로 가요. 우리 엄마랑 아빠, 오빠도 언니를 잘 대해줄 거예요.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체력이 회복되면 내일 언니를 시내로 데려다줄게요.”아이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다.“우리 엄마 음식 아주 잘해요. 언니가 가면 분명 한 상 가득 차려주실 거예요.”확실히 하늘도 어두운 늦은 시간이었고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아이가 아직 어리니 다른 속셈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웠기에 오늘 밤에 당장 시내로 데려다 달라고 할 수 없었다.문지원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현금이 떠올랐다. 차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을 전부 아이의 가족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이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지금도 산속에서 헤맸을 테니 말이다.“우리 집은 바로 저기 앞이에요. 조금 낡긴 했는데 그래도 지낼 수는 있어요. 그러니 너무 싫어하지는 말아주세요. 내년에 아빠가 일하러 나가서 돌아오면 집을 다시 고칠 수 있을 거예요.”아이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대문을 열던 아이는 집안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엄마, 아빠. 저 왔어요. 제가 누구를 데리고 왔는지 보세요!”“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지금 저녁 만들고 있으니까.”부엌 쪽에서 아이의 부모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아이가 오는 길 내내 말한 오빠가 방에서 나왔다.“우리 동생, 오늘 산에 올라가서 버섯 따온 거야?”“아니거든. 얼른 나와보면 알 거야.”아이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오빠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곧이어 아이의 오빠가 나오더니 달빛의 힘을 빌려 여동생 옆에 서 있는 문지원을 보았다. 그 순간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두 눈엔 오로지 문지원만 담겨 있었고 살아생전 문지원처럼 예쁜 여자는 처음 보았다.학교도 제대로 다닌 적 없었기에 그의 가방끈도 짧아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도 몰랐고 기껏 생각해낸 말이 고작 이것이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5화

    문지원은 다시 한번 긴장하게 되었다. 황폐한 산속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이니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만약 또 뱀이 나타나거나 다른 야생 동물이라면 발목을 접질린 상황에서 빠르게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던지라 이대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는 반드시 아주 조용하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지만, 주위에 덜어진 나뭇잎이 많아도 너무 많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빠각.뒷걸음질을 치던 문지원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뭇가지를 밟아버렸고 이내 큰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앞에서 들리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그녀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귓가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언니는 누구예요? 왜 여기 혼자 있는 거예요? 가족이랑 함께 오지 않았어요?”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야생 동물도 아니었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뜬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온몸을 휘감던 공포는 어느새 사라지고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난 혼자 여기로 왔어. 혹시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알아?”문지원은 허리를 숙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어림잡아 열셋 정도 되어 보였고 아마도 근처 마을에서 사는 아이 같았다.아이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랐던지라 당연히 이 산도 익숙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문지원의 손을 잡았다.“네. 알고 있어요. 언니는 저만 따라오면 돼요. 근데 마을에서 언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언니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죠?”“응. 아니야. 언니는 다른 도시에서 왔어. 오빠 찾으려고 온 거야.”문지원은 어린아이를 경계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는 순수해 보였던지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그럼 언니 오빠는 찾았어요?”아이는 그녀보다 더 그녀의 오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고 문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정말로 찾았더라면 이렇듯 몰골이 처참해지지 않았을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4화

    최주하는 또 젓가락을 들어 여울이 직접 만든 만두와 교자를 먹어보았다. 확실히 맛은 있었지만 유명한 맛집에서 먹은 것보단 못했다. 그래도 집밥 느낌이 물씬 났고 물론 그 죽도 맛있었다. 그렇게 그의 숟가락은 멈춘 적이 없었고 한 그릇 싹싹 비워버렸다....한편 문지원은 오빠를 찾지 못해 실망하고 있었다. 그녀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순간 발신자표시제한으로 한 통의 문자를 받게 되었다. 문자를 눌러 확인하자 손목시계 사진이 한 장 있었다. 그 손목시계는 바로 그녀의 오빠가 늘 하고 다니던 것이었다.그녀는 바로 사진을 확대해 시계에 난 스크래치까지 전부 확인해 보았다. 시계에 새겨진 이니셜마저 똑같은 것이 오빠의 시계가 분명했다. 사진 아래는 위치까지 찍혀 있었고 바로 근처였다. 조금 전까지 실망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이 변해버렸다.만약 오빠의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이대로 떠나버렸을 테지만 이미 이 문자를 받고 위치까지 알게 되었다. 설령 이 문자가 누군가 파놓은 함정임을 알아도 그녀는 아마 그곳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컸다.‘함정이면 뭐 어때?'그녀는 시간 낭비를 해도 오빠에 관한 단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찾을 가능성이 만분의 일이라고 해도 그녀는 직접 그곳으로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만약에 정말로 있으면?'만약 이번에 정말로 오빠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 도박에 기꺼이 뛰어들 생각이다.문지원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사진 속에 찍힌 위치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가는 길 내내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제대로 된 길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온통 잡초로 무성했다.무성한 풀숲 사이로 벌레가 자꾸만 튀어나왔고 심지어 앞에서는 뱀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깜짝 놀란 문지원은 얼른 뒷걸음질을 쳤다. 다행히 뱀이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계속 앞으로만 스르륵 소리를 내며 기어갔다.뱀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문지원은 움직일 엄두가 났다. 그녀의 두 눈엔 피로로 가득했지만, 오빠를 찾을 수 있다면 이런 길도 언제든지 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83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울은 시야에 들어온 클럽이 아닌 주위 환경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두리번대던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실내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갔다.“여긴 어디지?”“여긴 내 집이야. 곤히 자고 있길래 클럽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데리고 왔어.”혼자 중얼거리고 있던 때 마침 거실에서 최주하가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자 그는 간단히 설명해주며 다가갔다.“시간도 늦었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내일 데려다줄게.”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시간이 늦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냉장고에 먹을 게 있으니까 배고프면 알아서 꺼내먹어. 그 옆에 서랍에는 간식도 있어. 먹고 싶으면 꺼내 그냥 꺼내 먹어.”“네.”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의 그녀는 배가 고팠던지라 서랍을 열어 초코파이 몇 개를 꺼내 먹은 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그렇게 아침까지 쭉 자게 되었다.어제 최주하가 그녀에게 약을 발라주고 잠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간 후 간식까지 내어줬기에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마침 아침 일찍 눈을 떴던지라 주방으로 가서 아침을 만들어 줄 생각을 했다. 최주하의 방은 조용한 것이 아직도 자고 있는 것 같았다.바쁘게 음식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눈을 뜬 최주하는 거실로 내려가자마자 고소한 음식 냄새를 맡게 되었고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다가간 후 문을 열었다.“깼어요? 마침 아침 준비가 끝났는데 얼른 씻고 와요.”여울은 죽 그릇을 든 채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아침으로 뭘 드시는지 몰라서 여러 가지를 조금씩 만들어 봤어요. 얼른 와서 먹어 봐요. 제가 요리엔 꽤 자신이 있거든요.”“그래.”최주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씻으러 들어갔다. 어차피 그는 여울의 솜씨에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비록 입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대부분 음식은 전부 맛보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음식은 그에게 그저 그런 음식이었다.주방으로 내려온 그는 숟가락을 들어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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