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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류한나
지유는 걸음을 멈췄다. 이현과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조화로움보다는 위계질서에서 오는 거리감이 더 컸다.

“대표님,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

이현이 고개를 돌리더니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유의 얼굴을 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앉아.”

지유는 이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

이현이 지유 쪽으로 걸어갔다.

지유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순간 이현이 어딘가 달라 보였고 이에 지유는 숨이 가빠졌다.

긴장하기도 하면서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가 딱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현의 따듯한 손이 지유의 몸에 닿자 그녀는 마치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현이 너무 꽉 잡고 있어 빼려고 해도 뺄 수가 없었다. 이현은 지유를 확 끌어당기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손 다쳤잖아, 몰랐어?”

이현의 관심이 지유는 퍽 의외였다.

“난... 괜찮아요.”

“수포까지 났어.”

이현이 물었다.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야?”

이현이 큰 손으로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지유는 그런 이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유는 이현의 손을 잡고 그가 따듯함으로 그녀를 이끌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유가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현은 다시 희망을 주었다.

“큰일 아니에요. 며칠이면 나아요.”

지유가 대답했다.

“연고 좀 가져오라고 할게.”

지유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이제 좀 보상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유는 이성적이었다. 이현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현은 연고를 가져와 그녀의 상처에 발라줬다. 지유는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현에 혹시 자신도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나니 그래도 눈길을 주는 이현이었다.

7년이나 옆을 지키면서 극진하게 챙겨주기보다 차라리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게 그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더 낫겠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

다친 게 아깝지 않았다.

하염없이 흐르던 지유의 눈물이 마침 이현의 손등에 떨어졌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촉촉해진 지유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녀가 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왜 그래? 내가 아프게 했어?”

지유는 이런 모습이 자신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눈이 좀 불편해서요.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할게요.”

이현은 수도 없이 들은 인사치레에 싫증이 났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회사도 아니고 집이야. 내 앞에서 그렇게 맨날 경직되어 있을 필요 없어. 집에선 이름 불러도 돼.”

하지만 7년간 지유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비서, 집에서는 사모님이라는 명분으로 비서가 해야 할 일들만 했다.

지유는 몇 년간 짝사랑했던 그 얼굴을 바라봤다. 호응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지유가 잠깐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현 씨, 우리 언제 이혼...”

이현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이에 지유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지유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운 지유는 이현이 어딘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유와 꼭 붙어 누운 이현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이현은 지유의 허리를 감쌌다. 약간은 시원한 세달향에 지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살살 만졌다. 이에 지유가 몸을 움츠리자 이현이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간지러움 많이 타?”

지유가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이렇게 답했다.

“나는 습관이 없어요.”

이에 이현이 더 적극적으로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럼 천천히 적응해. 언젠간 습관 하겠지.”

지유는 그의 품에 기댔다. 귓가로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에 얼굴이 그녀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다른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유는 신분을 바꿀 수 있기를 갈망했다.

“이현 씨, 혹시 나...”

그때 이현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의 시선이 핸드폰으로 쏠렸다.

지유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아내의 신분으로...

그럴 수만 있다만 더는 비서의 신분으로 이현의 곁에 남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도 단 1초, 지유는 이현의 핸드폰 화면에 뜬 글자를 보게 되었다.

[노승아]

이에 잠깐 품었던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현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가 그녀를 놓아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마무리 짓지 못한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여보세요.”

이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가 보는 앞에서 승아의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지유는 마음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허황한 꿈을 품었던 자신을 비웃었다.

‘온지유, 어쩌다 그런 환상을 한 거야. 그의 마음은 온통 승아에게 가 있으니 너에게 감정 따윈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미 3년 전 결혼식 날 들었잖아.’

지유는 고개를 들었다. 씁쓸한 마음에 눈동자에 눈물이 자꾸만 차올랐다.

지유는 두눈을 질끈 감았다. 더는 이현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현은 모르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있다는 걸 안 그날부터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울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지유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보잘것없는 비서일 뿐이었다.

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이현은 아직 잠에 들지 않은 지유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일이 생겨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아. 일찍 쉬어.”

지유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알았어요. 가봐요. 내일 제때 출근할게요.”

“응.”

이현은 이렇게 말하더니 외투를 들고 나갔다.

엔진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듣고 있노라니 지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밤새 지유는 별로 자지 못했다.

이튿날, 출근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지유는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라 회사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비서라는 직책에 맞게 이현이 봐야 할 업무를 조리있게 정리했다.

하지만 이현은 오늘 회사로 나오지 않았다.

지유가 전화를 여러통 걸어봐도 핸도폰은 꺼져 있었다.

윤정이 다급하게 물었다.

“온 비서님, 대표님이 안 계시니 공사장 순찰은 혼자 진행하셔야겠어요.”

지유는 이현의 비서로서 회사의 대부분 업무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그 프로젝트도 익숙히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한통의 전화를 끝으로 지유는 이현을 찾는 걸 포기했다.

문득 어젯밤 승아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는게 생각났다.

회사도 나오지 않고 밤새 귀가도 하지 않았으니 아마 그녀를 만나러 간게 아닐까 싶었다.

지유는 애써 씁쓸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일단 대표님 없이 먼저 가요.”

밖은 햇빛이 쨍쨍했고 온도가 높았지만 지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 현장으로 나왔다.

현재 시공하고 있는 건물은 틀만 잡았을뿐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아 겉보기에 조잡해 보였다.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는 먼지와 철근이 가득했고 기계에서는 굉음이 들려왔다.

몇번이나 와본 지유는 이곳이 꽤 익숙했기에 빠른 속도로 순찰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요!”

지유가 고개를 들어보니 커다란 유리 한장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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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goodnovel comment avatar
시윤
뭐냐;;;ㅋㅋㅋㅋ 남자 이중인격인가 웨저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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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흥미 진진한 이야기가 ...
goodnovel comment avatar
시원
엄청 슬픈일이 기다리고 있을것같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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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유가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짐 정리해요.”“어디 가는데?”지유가 대답했다.“집에요.”“여기가 집이잖아.”이현의 말투가 확 차가워졌다.지유는 마음이 살짝 쓰렸지만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봤다.“이 집이 내 집이었던 적 있어요? 이제 그만 자리 내줄게요.”이현이 갑자기 지유의 손을 잡으며 더는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머리 위에서 이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까지 심술부릴래?”지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뭔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억울함이 북받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지유는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이현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심술 아니에요. 저 지금 진지해요. 대표님, 비켜주세요. 정리 마저 해야 해서요.”지유가 고집을 부리며 이현과 이혼하려 하자 이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기척을 듣고 지유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 다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네가 이토록 이 집에서 나가려는 원인이 뭔데?”지유는 말이 없었다.이현은 지유와 거리를 좁히며 캐물었다.“정말 내가 그쪽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여줄까?”이현의 말에 지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혼신고서에 적힌 글을 보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유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현이 어느샌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유는 그렇게 휘청거리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는 이현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현은 지유를 자기 몸 아래 가둔 채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욕망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지유는 그런 이현의 눈빛이 큰 부담으로 다가와 얼른 시선을 돌리며 설명했다.“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이 모든 게 다 오해예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혼신고서는 제가 다시 작성해서 보내드릴게요. 만족하실 거예요...”하지만 지유의 말은 이현의 화를 더 타오르게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현은 커다란 몸을 이끌고 지유를 향해 저돌적으로 다가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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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은 몸이 뜨거웠고 술 냄새가 세게 풍겼다. 그가 내뿜는 뜨거운 숨결이 바로 지유의 귓가로 전해졌다.술을 마신 건가?지유가 그런 이현을 불렀다.“이현 씨?”이현이 지유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그녀의 머리카락에 갖다 대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움직이지 마. 조금만 안고 있자.”이에 지유는 움직이지 않았다.그가 왜 이렇게 술을 퍼부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던 지유는 몸이 뻣뻣해질 지경이었지만 이현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키스했다.지유를 또 승아라고 생각했나 보다.지유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이현 씨...”“이렇게 조금만 더 누워있자, 지유야.”이에 지유가 다시 입을 꾹 닫았다.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는 건 적어도 그녀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거다.이현이 이런 적은 별로 없었기에 지유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마음이 약해진 지유는 그가 이렇게 자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다.지유는 이현을 살짝 밀며 이렇게 말했다.“이렇게 자지 마요. 샤워하든지 아니면 이불을 덮든지...”이현이 방향을 고쳐 눕더니 지유를 번쩍 들어 자신의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 지유의 코끝엔 이현의 향기로 가득했다. 술 냄새와 몸에서 나는 시원한 향기가 섞여 있는 듯했다.지유는 지금 매우 당혹스러웠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현을 바라봤다.이현도 눈을 감고 있지는 않았다.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았다.하지만 지유는 그가 왜 기분이 별로인지 헤아리기가 귀찮았다고 눈도 오래 마주치기 싫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이현이 손으로 지유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뜨거운 손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져 지유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현이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아파?”지유는 코끝이 찡했다. 억울한 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 갑자기 들이닥친 이현의 관심을 당해내기 힘들었다.“그건 왜 묻는 거예요?”지유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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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63화

    강윤슬의 이런 모습은 여자인 문지원이 봐도 마음이 아팠다. 하물며 오랫동안 강윤슬을 사랑한 지석훈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문지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강윤슬의 말에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강윤슬을 향해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여자들은 늘 그러잖아. 늦게 온 사랑은 싸구려라고. 우리 남자들도 그래. 나 이제 예전처럼 선배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배는 임혁수한테 가.”“임혁수가 선배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강윤슬이 임혁수의 사랑을 원했다면 아마 벌써 그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석훈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사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상대를 보물처럼 여기다가도 사랑하지 않으면 헌신짝 취급을 한다. 한번 마음먹었으면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사랑해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제 장난 그만 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돌아와 줘.”강윤슬은 목이 멘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기 싫었던 그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얼른 가. 나도 할 일이 있어. 선배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볼일을 봐?”지석훈은 그게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윤슬은 깨달았다.지금 두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두 남녀 사이에 할 일이라는 게 또 뭐가 있겠는가?울면서 애원했지만 지석훈은 요지부동이었고 그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그래. 지석훈, 잘 들어.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눈물을 닦으며 말하던 강윤슬은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별장을 뛰쳐나갔다.강윤슬이 떠난 후, 지석훈은 바로 문지원을 밀어냈다.그의 마음속에 강윤슬이 1 순위라는 걸 문지원은 잘 알고 있었다. “쫓아가 보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62화

    더 이상 강윤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지원에게 눈빛을 보냈다.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문지원의 허리를 껴안았다. “선배, 문지원이랑 있으면 나 편해. 사랑은 일방적인 게 아니야. 선배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아니. 이 여자가 너한테 순종하는 거 네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야. 네가 지석훈이 아니었다면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문지원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겠지.”강윤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문지원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문지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석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찌 그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훈 씨한테 순종하는 거 맞아요. 나한테 잘해주니까요. 결혼도 안 한 남녀가 만나겠다는데 뭐가 문제예요?”문지원은 강윤슬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강윤슬 씨, 나랑 석훈 씨가 만나는 게 불만인 거죠? 우리 두 사람은 당신한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어요. 석훈 씨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임혁수 씨를 찾아간 건 바로 당신이에요.” 프러포즈하던 날, 그곳에는 강윤슬과 지석훈 두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석훈이 이 일을 문지원에게 알려준 것일까?문지원의 차가운 눈빛을 보니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에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지석훈, 너 꼭 이 여자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줘야겠어?”강윤슬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문지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녀가 지석훈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확실히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다.다만 문지원이 이 얘기를 꺼낸 건 강윤슬이 더 이상 이렇게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게다가... 지석훈은 문지원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들은 그녀도 단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를 챈 것뿐이었다. 먼저 포기를 한 사람은 강윤슬이었기 때문에 지석훈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61화

    지금까지 강윤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나 아무리 강윤슬이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앞에서 당당했고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지석훈은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선배 곁에는 이미 임혁수가 있잖아.”“임혁수만으로는 만족 못 하는 거야?”그의 말에 강윤슬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지석훈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임혁수였다. 비록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임혁수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그저 단지 과거의 아쉬운 감정만 남아있는 것이었지만 지석훈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혁수 씨 얘기가 왜 또 나와? 설마 나더러 혁수 씨를 쫓아내라는 거야? 어떻게 쫓아내니?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인데.”“어찌 됐든 알고 지난 사이인데. 임혁수도 임혁수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된다면 나도 널 도와줬을 거야.”그녀는 지석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그도 더 이상 그녀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선배 자유야. 하지만 나랑 선배 사이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아니지. 시작한 적이 없으니까 끝낼 것도 없지 뭐.”오랜 시간 강윤슬의 옆에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었다. 강윤슬은 아예 그를 남자 친구의 후보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의 위치만 했어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면 남자 친구로 변할 법도 한데, 그녀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옆에 문지원이 나타난 걸 보고 강윤슬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가. 혼자 돌아가지 말고 임혁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그녀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윤슬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한없이 다정하고 그녀에게 고분고분하던 남자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있다. “정말 내가 너한테 사정까지 해야 하는 거니? 아니면 혁수 씨를 쫓아내야 네 화가 풀릴 거니?”그래야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60화

    심호흡을 하던 강윤슬은 그 순간, 지석훈을 되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임혁수의 손을 뿌리쳤다.“석훈이한테 볼일이 있어. 먼저 갈게. 혁수 씨는 딸이랑 당분간 이 별장에서 지내. 나중에 돈이 생기면 헐값에 넘겨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자리를 떴다. 워커홀릭이었던 지석훈은 병원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그는 병원에 있지 않았고 병원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그가 휴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석훈의 별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녀는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바로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문을 두드리는데 뜻밖에도 문을 연 사람은 문지원이었다. 문지원도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잠깐만요. 석훈 씨 불러줄게요.”사실 문지원은 별장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옷이 마르지 않았고 지석훈을 생각해 비서한테 옷을 가져다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었고 누군가한테 연락해서 별장으로 오라고 한다면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윤슬이 이렇게 찾아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 강윤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문지원에게 떨어졌다.문지원은 지석훈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녀의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성인인 강윤슬이 어찌 그걸 보고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있겠는가?이젠 정말 늦은 것 같다. 만약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석훈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있었을까?강윤슬은 문지원을 가로지나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지석훈을 찾았다.마침 그가 샤워 가운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고 두 사람은 계단에서 마주쳤다. 180cm가 훨씬 넘는 큰 키, 어두운 눈빛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그녀는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석훈아, 나 결심했어.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네 마음도 몰라주고. 하지만 이제는 알 것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59화

    또한 회사에 임혁수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임혁수도 자신이 입만 열면 그녀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건 강윤슬이 완전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도 이젠 귀국한 지 꽤 되었고. 너... 내가 한 번 결혼한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는 거잖아. 내 과거에 대해 감출 생각은 없어. 우리 딸도 너 많이 좋아하고. 우리한테 기회가 있을까?”임혁수는 강윤슬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녀는 사귀자는 말도 없었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지석훈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 혁수 씨가 돌아온 건 기뻐. 당신을 도와준 건 그저 친구로서 도와준 것뿐이야. 그리고 나 계모가 될 자신 없어.”임혁수의 딸이 예쁜 건 맞지만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임혁수 때문에 지석훈의 프러포즈까지 거절한 강윤슬인데...게다가 그를 회사로 끌어들였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알고 있었다.그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예전에 널 두고 떠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돌아왔잖아. 하루라도 젊을 때 같이 있자. 아이가 싫다면 아이는 우리 엄마한테 맡길게.”“강윤슬, 나 더 이상 널 잃을 수가 없어.”그의 목소리는 울컥했고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윤슬은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찌 됐든 한때는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고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임혁수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아쉬움을 달래준 셈이었다.지석훈이 그날 프러포즈를 할 때, 임혁수의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공항에서 임혁수와 그의 딸을 마주한 순간, 임혁수는 여전히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젊은 날의 아쉬움도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지석훈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아물게 되었다.지석훈...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58화

    한편,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문지원은 지석훈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디 있어? 우리 집으로 와.”“알았어요.”지석훈의 말이라면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석훈은 그녀한테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니까.만약 지석훈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후, 퇴근하고 나서 그녀는 바로 지석훈의 집으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는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녀를 본 순간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그녀는 그의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문지원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석훈 씨, 날 여기로 부른 건...”차마 입 밖으로 다 꺼내지 못할 말이었다.지석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향기가 꽤 좋더라고맛있더라고. 내가 오라고 하니까 이렇게 왔잖아. 그럼 충분한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하룻밤의 섹스로는 끝나기가 아쉬웠던 관계,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편, 임혁수는 강윤슬을 위해 정성껏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다. 장미꽃은 강윤슬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고 평소에도 장미꽃을 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기뻐했었다.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장미꽃을 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지석훈이 떠올랐다. 지석훈은 사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의학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의학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예전에 지석훈은 그녀에게 각양각색의 장미꽃을 선물해 주었다. “왜 그래?”임혁수도 그녀가 딴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요즘 들어 강윤슬은 툭 하면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강윤슬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니야.”정신이 돌아온 강윤슬의 말투는 차갑기만 했다.차가운 강윤슬의 태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예전의 강윤슬이라면 그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지금 이러는 걸 보면 아마도 지석훈 때문인 것 같았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57화

    “왜? 마음이라도 아픈 거야?”“알았어요.”그녀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그녀는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최지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여울은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어두컴컴한 게 좋아서.”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리 와봐.”여울은 얌전히 다가가 살짝 몸을 숙여 그의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응.”무심하게 대답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당신은 나 배신하지 않을 거지?”그 말에 여울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설마 최지후가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당연히 그럴 일 없죠. 난 지후 씨 곁에 평생 있을 거예요.”그녀는 예쁜 말로 골라서 했고 원하는 답을 들은 최지후는 이내 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이 날 배신한다면 내가 당신을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농담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윤슬 씨, 나 어떡하죠? 최근에 회사의 프로젝트들이 지석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어요.”엄우정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문지원을 건드린 것이 엄청 후회되었다.강윤슬은 그녀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바보같이 왜 일을 만들어서는... 일이 틀어지니까 날 찾아와?’“윤슬 씨, 말 좀 해봐요. 내가 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요?”강윤슬이 말이 없자 엄우정은 더 초조해졌다.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에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강윤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정 씨, 석훈이는 이제 우정 씨가 알던 사람이 아니에요. 나도 우정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문지원 씨를 찾아간다면 어쩌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문지원 씨는 줄곧 우정 씨와 협력하고 싶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56화

    최주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 문지원 씨 때문이 아니라면 네가 나한테 보자고 할 일도 없겠지.”“말해 봐.”한참을 망설이던 지석훈은 끝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됐다. 술이나 먹으러 가자.”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최주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술잔을 들자마자 최주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여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잠깐 전화 좀 받게 올게.”지석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최주하는 밖으로 나오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볼 일이 있어서요...”전화를 끊고 최주하는 다시 지석훈에게로 다가갔다. “미안하다.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내가 술 살게.”“됐어. 일 있으면 가.”최주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혼자 술을 마시던 지석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한 그룹의 그 프로젝트, 나한테 넘겨.”전화를 끊은 후, 그는 눈앞의 술잔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왜 신한 그룹을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본능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한편, 프라이빗한 호텔에 도착한 최주하는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꽃 같은 여인, 여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말해.”여울은 그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하 씨, 최지후 씨가 저한테 마음을 완전히 연 것 같아요.”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현재 최지후는 여울을 완전히 신임하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라 그녀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알아. 하지만 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필요해.”최주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부담감이 확 밀려왔고 최주하가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 최지후 씨가 최근에 입찰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입찰 문서를 손에 넣었어요.”그녀는 급히 입을 열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955화

    문지원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고통스러웠다. 지석훈에게 붙어있으면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흠칫 놀라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가 앞에 앉아 있는 운전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출발해요. 가장 가까운 호텔로 갑시다.”이내 가림막이 내려졌고 문지원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몸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얼마 후,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프런트 데스크에 다가가 블랙 카드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스위트룸으로 잡아줘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온 후, 그는 문지원을 침대에 눕혔다. 막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지 마요.”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문지원,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더 이상 그도 참지 않았고 들끓어 오른 욕정을 드러냈다. ...뜨거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문지원이 몸을 움직이는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자마자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빛은 평온하기만 했다.“깼어?”“저기... 우리...”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지석훈은 아주 자연스러웠다.“걱정하지 마. 책임질게.”“책임... 책임질 필요 없어요. 어젯밤 일은 사고였어요.”어젯밤의 일에 대해 기억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 일로 지석훈한테 뭔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한테 고마웠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니까.“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은 거야?”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갑게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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