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는 어머니와 내기를 했다. 서진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한다는 조건이었다. 서진우가 온순하고 굳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가난한 여대생으로 위장해 그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서진우는 첫사랑을 품에 안고 그녀를 비웃었다. “너처럼 속물에 찌든 거지가 어떻게 서아랑 비교가 되겠어?” 그녀는 비참하게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시간이 흘러 안다혜는 값비싼 명품 옷을 입고 엄청난 권력자인 금욕적인 불자의 손을 잡고 화려하게 서진우 앞에 나타났다. 그때서야 서진우는 후회했다. 곧 그는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예전에는 내가 씩씩하고 독특한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다혜야. 너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예외라는 것을 알았어.] 그날 밤,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윤씨 가문의 도련님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 속 소녀는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했다. 그는 안다혜의 손을 잡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윤 여사, 예외는 없어. 넌 내가 늘 그리워하고 오랫동안 꿈꿔온 사람이니까.”
View More이튿날 아침, 안다혜는 일찍부터 상쾌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잘빠진 하얀 슈트를 입은 안다혜는 오늘따라 더 아리따워 보였고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가 돋보였다‘해고당하면 뭐 어때서? 나 안다혜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고.’태안 그룹에 도착한 안다혜는 하이힐을 신고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걸으며 그녀가 왔음을 알렸다. 이훈의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막힘이 없었고 데스크 직원마저도 안다혜를 막아서지 못했다.쾅.노크도 없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차를 마시던 이훈은 안다혜를 보고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경멸에 찬 웃음을 지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태안 그룹 전 직원 아니에요? 여긴 무슨 용건으로 왔어요?”이훈이 안다혜를 비꼬며 놀렸지만 안다혜는 가볍게 무시하고 테이블로 걸어가더니 서류와 녹음기를 테이블에 던졌다.“이훈 씨.”안다혜가 이훈을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봤다.“이거면 차 마시며 보기에 충분하죠?”이훈이 느긋하게 서류를 펼쳐보더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훈이 공금을 횡령한 장부와 성추행 정황이 담긴 녹음이었다. 어떤 증거를 내놓든 이훈의 명예가 나락으로 가는 건 한순간이었다.이훈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안다혜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이걸 농담이라고 들고 온 건 아니죠?”안다혜가 차갑게 웃었다.“농담이요? 이게 지금 농담 같아요? 이훈 씨가 한 더러운 짓거리 내가 다 알고 있어요.”이훈이 그제야 표정을 바꾸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다혜를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해보자는 거냐고요?”안다혜가 전혀 물러서지 않고 이훈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뭔가를 했다해도 이훈 씨가 했겠죠. 그게 도대체 뭔지는 이훈 씨가 더 잘 알 거고요.”이훈이 펄쩍 뛰었다.“고작 이런 걸로 나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 마. 나 안소현 씨 라
윤해준이 대답 대신 웃으며 제육볶음 하나를 안다혜의 앞접시에 집어줬다.“이것도 먹어봐. 맛있어.”안다혜는 그릇에 담긴 닭고기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서진우와 3년을 함께 했는데도 서진우는 안다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윤해준은 번개 결혼하고도 안다혜를 살뜰히 챙기니 말이다. 너무 비교되는 모습에 안다혜는 씁쓸했지만 한편으로 감동했다.전에 서진우와 함께 밥을 먹으면 주문은 서진우가 했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를 위주로 주문했고 종래로 안다혜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었다. 한번은 안다혜도 용기 내 매운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서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여자애가 매운 요리는 무슨. 피부에 안 좋아.”과거를 떠올린 안다혜가 차갑게 웃었다.‘피부에 안 좋긴 개뿔.’하지만 윤해준은 지금 안다혜가 좋아하는 요리를 전부 안다혜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누군가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해 주고 챙겨준다는 느낌이 들자 안다혜는 낯설면서도 따듯했다.윤해준도 안다혜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눈치채고는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부드럽게 물었다.“왜? 입에 안 맞아?”안다혜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맛있어요.”“그러면 많이 먹어.”윤해준이 활짝 웃으며 찌개를 담아줬다.“요즘 일이 힘든데 몸조리 잘해야지.”찌개를 받아와 한 모금 들이키자 속도 마음도 뜨끈해졌다. 그릇을 내려놓은 안다혜는 오늘 파티에 참석한 목적이 생각나 다시 우울해졌다.“아참.”안다혜가 갑자기 생각난 척 이렇게 물었다.“혹시 풍산 그룹 대표랑 아는 사이에요?”반찬을 집던 윤해준이 멈칫하더니 눈꺼풀을 들고 안다혜를 바라봤다.“그건 갑자기 왜?”안다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냥요. 오늘 그 파티에 간 게 사실 베일에 싸인 풍산 그룹 대표를 만나고 싶어서 간 거거든요. 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어서 뭐라도 배우고 싶어서요.”안다혜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근데 끝날 때가 됐는데도 안 나타나더라고요. 아마 엄청 바쁘겠죠. 신경 쓰지 마요. 앞으로 기회가
안다혜가 윤해준을 힐끔 돌아봤다. 윤해준의 눈빛은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안다혜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내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윤해준을 바라봤다.“서진우, 용건 있어?”서진우가 옆에 탄 윤해준을 보고 멈칫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남자를 아래위로 훑었지만 주차장은 불빛이 어두워 남자의 얼굴 윤곽만 대충 보였다. 서진우는 안다혜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렇게 비아냥거렸다.“안다혜. 벌써 다음 타자 찾은 거야? 아까 파티장에서 왜 그렇게 배짱 좋나 했더니 이미 다음 타자를 찾은 거야?”옆에 선 심서아도 맞장구쳤다.“다혜 씨, 시골에서 올라와서 살림 좀 고치고 싶으면 좋은 남자를 찾아야죠. 이 남자는 딱 봐도 별로잖아요.”이 말에 안다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서진우와 심서아를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서진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가 누구와 있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심서아 씨, 말 가려서 해요. 내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에요. 그러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요.”안다혜가 이 말만 남기고 창문을 올리더니 더는 두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다. 이에 윤해준도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알렸고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차가 멀어지자 서진우가 얼굴이 파래서는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힘껏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딱 기다려. 나 그냥은 안 넘어가니까.”심서아도 옆에서 이간질했다.“진우야, 화내지 마. 다혜 씨도 그냥 너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일 거야.”“내가 기분이 나쁘면 뭐?”서진우가 차갑게 웃었다.“내가 기분이 나쁘면 다시 돌아갈 줄 알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차안, 안다혜는 화가 채 가시지 않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애써 진정하려 했다. 서진우가 비꼬듯 내뱉은 말은 마치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너무 거슬렸다.안다혜가 옆에 앉은 윤해준을 힐끔 쳐다봤지만 윤해준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저기... 그 서진우가 한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파티장에서 안다혜가 우아하게 샴페인 잔을 들고 업계 거물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아까 있었던 소동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매력 발산 중이었다.“안다혜 씨는 젊은 나이에 이런 성과를 얻어냈으니 정말 훌륭하네요.”거물이 안다혜를 칭찬하며 흠모의 눈길을 보내자 안다혜가 살며시 웃으며 잔을 들었다.“과찬입니다. 전 그냥 제가 해야 할 몫을 한 것일 뿐이에요.”안다혜가 샴페인을 한 모금 홀짝이자 금색 액체가 잔에서 넘실거리며 안다혜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비췄다. 눈동자로 번지지 않은 웃음기가 까만 눈동자를 더 또렷해 보이게 했다.‘풍산 그룹 대표는 못 만나고 가는 건가? 오늘도 나타나지 않네. 스케줄이 안 맞나? 그러면 오늘은 허탕인데.’파티가 거의 끝나가자 공기 속에 샴페인과 향수 냄새가 달짝지근하게 섞였다. 안다혜는 여러 남자가 보낸 초대를 이미 여러 번 거절한 상태였다.그때 민초연이 걸어왔다.“다혜야. 나 먼저 간다. 기사님이 밖에서 가다리고 있어서. 오늘 얘기는 잘 됐어?”민초연의 목소리가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했다. 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야유했다.“잘했냐고? 그냥 그럭저럭.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봤거든.”“보고 싶은 게 누군데? 설마 전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풍산 그룹 대표?”민초연이 입을 가리고 웃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나를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안다혜가 일부러 신비한 척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아쉽네. 너무 바빠서 오늘은 못 만날 것 같아.”민초연이 안다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점잖은 스타일인가 보지. 됐다. 이제 수다는 그만 떨고 가야겠어. 다음에 봐.”민초연을 눈빛으로 마중한 안다혜가 핸드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려는데 화면이 저절로 켜지더니 전화가 걸려 왔다. 윤해준이었다.“여보세요?”“주차장에서 기다릴게.”윤해준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매력적이었는데 쉽게 티 나지 않은 부드러움이 녹아 있었다.안다혜가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이 따듯해졌다.
“일반 직원?”안다혜가 가볍게 웃더니 경멸에 찬 눈빛을 지었다.“혹시 일반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접시를 나를 웨이터라고 해도 집안 축내는 재벌 2세보다는 훨씬 낫지.”서진우가 얼굴을 굳히더니 안다혜를 손가락질했다.“너... 너 정말 이럴 거야?”서진우는 지금까지 크면서 이런 수모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내가 뭘 어쨌다고?”안다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서진우를 날카롭게 쏘아봤다.“평생 나만 사랑한다 그러더니 등 돌리자마자 첫사랑 품에 안겼잖아. 나 차버리겠다고 이별 리스트까지 만든 사람이 무슨. 너에 비하면 내가 한 짓은 아무것도 아니야.”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서진우는 마치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너무 화가 났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서진우가 정말 그랬으니 할 말이 없었다.“안다혜 씨. 잘난 척하지 마요.”심서아가 소리를 질렀다.“잘사는 사람과 붙어먹으면 까치가 제비 될 줄 알았어요? 남자들은 다 새로운 걸 좋아해요. 단물 빠지면 버려질 거라고요.”안다혜의 눈빛이 심서아로 향하더니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심서아 씨, 일단 본인 앞가림이나 잘해요. 짝퉁하고 다니다가 들통나면 쪽팔리니까.”심서아는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뭐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안다혜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는 걸 심서아도 알고 있었기에 구명줄이라도 잡듯 서진우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서진우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담았다.“안다혜, 그렇게 잘난 척할 필요 없어. 거물들 몇 명 알고 지내면 끄떡없을 줄 알았나 본데 풍산 그룹 프로젝트는 네가 가져가고 싶다고 해서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야.”안다혜가 전혀 물러서지 않고 도발하듯 서진우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봤다.“서진우 너도 앞가림이나 잘해. 편들다가 오히려 나가떨어지는 수가 있어.”서진우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안다혜를 달리 어쩔 방법이 없어 그런 안
심서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안다혜가 서진우에게 버림받고 태안 그룹에서 쫓겨나면 꼴이 우스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파티에 나타나 온몸으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잔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심서아는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어느 돈 많은 사람과 붙어먹은 거 아니야?”질투에 사로잡힌 심서아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서진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안다혜가 무슨 수로? 얼굴로 아니면 뭐로? 그냥 소셜에 능한 사람일 뿐이야. 거물들도 가지고 놀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릴 거고. 불 보듯 뻔한 거 아니야?”심서아가 맞장구를 쳤다.“그러게. 무슨 방법으로 여기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잖아.”심서아의 질투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안다혜가 태안 그룹에서 쫓겨나고 꼴이 우스워질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온몸으로 눈 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심서아는 무슨 짓이든 해서 안다혜의 기를 반쯤 꺾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안다혜는 그런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대범하게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감과 우아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오늘 그녀가 이 자리에 나온 목표는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풍산 그룹 프로젝트를 성사하기 위해서였다. 서진우와 심서아는 이제 안다혜의 인생에 있어서 지나간 티끌이나 다름없었다.심서아는 활활 타오르는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든 채 허리를 흔들며 안다혜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어머, 안다혜 씨?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요?”안다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차가웠다.“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태안 그룹에서 나갔다고 들었는데.”심서아가 일부러 볼륨을 높이며 비아냥댔다.“태안 그룹에서 잘리고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예요? 돈이... 많이 부족한가 보네요.”심서아가 말하다가 일부러 뜸을 들이며 경멸에 찬 눈빛으로 안다혜가 입고 온 드레스와 하고 온 쥬얼리를 쳐다봤다.“지금
전에는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안다혜가 지금은 영롱한 보석으로 거듭난 것이다. 어찌나 눈부시게 빛나는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안다혜가 역겹다고 해도 안다혜가 예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진 서진우는 참기 힘들 정도였지만 이런 이상한 감정은 이내 역겨움과 분노로 바뀌었다.‘내 눈길을 끌려고 안간힘을 쓰네. 어쩌면 이렇게 변한 거 하나 없는지.’“안다혜가 왜 여기 있지?”서진우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 말투에는 경악과 분노가 동시에 들렸다. 심서아가 걱정하는 척 맞장구를 쳤다.“누구 보여주려고 이렇게 입은 거지? 정말...”심서아가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미간은 여전히 우쭐대고 있었다. 안다혜가 염치없이 들러붙을수록 심서아의 얌전함과 부드러움이 더 돋보일 테니 말이다.안다혜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우아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커다란 진주처럼 어딜 가나 초점이 되었다.서진우는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안다혜를 보며 누군가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불편해 이를 꽉 깨문 채 차가운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나한테 차이고 이런 곳에서 존재감을 찾으려는 이유는 불 보듯 뻔하지... 근데 꼭 저렇게 여우처럼 굴어야 하나?’멀지 않은 곳에 있던 민초연이 서진우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짓자 너무 우스워 안다혜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다혜야. 저 연놈의 시선이 너한테서 떠나질 않아. 이참에 더 눈꼴시리게 가서 인사라도 할래?”안다혜가 느긋하게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서진우와 심서아를 힐끔 쳐다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상대해서 뭐 하게.”안다혜가 주변을 빙 둘러보다 대화를 나누는 업계 거물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풍산 그룹의 중요한 파트너였고 안다혜가 오늘 만나봐야 할 목표였다.안다혜가 살포시 웃으며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황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얼굴에 화색이 도시는
윤해준이 신비롭게 웃더니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안다혜 옆으로 다가가 안다혜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예쁘네. 잘 어울릴 거 같아.”안다혜는 윤해준이 갑작스럽게 보인 친근한 행동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해 고개를 드는데 마침 윤해준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했다.“아참.”윤해준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정교한 선물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선물.”선물함을 받아 열어보니 안에는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보였고 불빛 아래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너무 비싸요... 받을 수 없어요.”안다혜는 윤해준이 이렇게 비싼 선물을 할 줄은 몰랐기에 살짝 놀랐지만 윤해준이 그저 웃으며 선물함을 다시 안다혜의 손에 밀어 넣었다.“이런 작은 선물은 앞으로도 많을 거야.”윤해준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말했다.“그러니까 다른 생각 말고 일단 받아.”안다혜가 뭐라고 덧붙이려는데 윤해준이 손을 꼭 잡았다. 윤해준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안다혜에게로 전해지자 안다혜는 심장이 파르르 떨려 눈꺼풀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더니 결국엔 얌전하게 목걸이를 받았다.선물함이 닫힌 순간 따듯한 기류가 마음을 맴돌았고 안다혜가 모르는 무언가가 천천히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이틀 후, 유안 호텔. 풍산 그룹에서 주최한 비즈니스 파티가 예정대로 열렸다. 찬란한 불빛 아래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이 도시의 엘리트는 다 한자리에 모였다.핏좋은 슈트를 입은 서진우는 화려하게 단장한 심서아의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심서아는 샴페인 색 드레스를 입고 예쁜 화장까지 했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우아했다. 그런 두 사람이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바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서진우 씨랑 심서아 씨 정말 너무 잘 어울린다. 하늘이 맺어준 짝이라는 게 저런 건가?”“그러게나 말이야. 심서아 씨 부드럽고 착한데 서진우 씨 짝으로 정말 딱 맞잖아.”아부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심서아는 점잖게 웃는 듯 보였지만 우쭐거리는 표정은 그렇게 쉽게 감춰지는 게 아니었다. 심서아는
“다혜야, 너 표정이 왜 그래? 뭐 생각나는 거 있어?”민초연이 안다혜의 표정이 변했음을 바로 알아챘다. 안다혜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마음속에 드는 의문을 꾹꾹 눌러 담았다.“지금은 그냥 의심일 뿐이지 증거가 없어.”“어떻게 할 생각이야?”“닥치는 대로 해야지. 일단 이훈부터 태안 그룹에서 쫓아내야 해.”안다혜는 종래로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때 웨이터가 요리를 들고 올라왔고 두 사람의 대화도 거기서 끊겼다. 정갈한 요리가 테이블을 가득 메웠고 향긋한 냄새가 풍겼지만 안다혜의 식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안다혜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앞접시에 담은 요리를 헤집으며 머릿속으로 안소현과 이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불쌍하고 연약한 척하던 안소현의 모습을 돌이켜보니 토가 나올 지경이라 안다혜는 제육볶음을 입에 넣었지만 나무껍질을 씹듯 맛이 없었다.민초연은 그런 안다혜를 보고 회사 일을 묻는 대신 다른 화제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안다혜는 민초연의 말에 대꾸하긴 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절반쯤 먹었는데 민초연이 갑자기 야릇한 표정으로 안다혜에게 다가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다혜야. 우리 오빠랑은... 어때?”안다혜가 멈칫하더니 금세 얼굴을 붉히며 대충 얼버무렸다.“좋아.”민초연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눈을 찡그리며 계속 캐물었다.“잘 설명해 봐. 그쪽은 어때?”사레에 걸릴 뻔한 안다혜가 민초연을 노려보며 나무랐다.“무슨 헛소리야? 민초연. 점점 더 막 나가네.”민초연이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무슨. 말해 봐. 궁금해서 그러잖아. 우리 오빠 그렇게 점잖아 보이는데 그런 쪽으로...”민초연이 말끝을 흐리며 얍삽한 표정을 지었다. 안다혜는 민초연의 성화에 못 이겨 대충 둘러댔다.“뭐... 그저 그래.”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윤해준과 있었던 몇 번의 끈적한 스킨십을 떠올리며 얼굴이 빨개졌다. 그날 밤의 윤해준은 강압적이면서도 부드러웠는데 뜨거운 불길처럼 안다혜
서진우가 첫사랑을 생일 파티에 데려왔을 때 안다혜는 자신이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석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다혜야, 네가 졌어.][3년이 지났는데도 서진우는 널 사랑하지 않으니 이젠 약속대로 돌아와서 네 할 일 해야지.]안다혜의 시선은 저 멀리 서진우가 껴안고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서진우의 첫사랑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여자는 순수하고 온화하고 조용해 보였다. 싸구려 옷을 입고 있었지만 눈에 띄었다.‘서진우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런 거였구나.’안다혜의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문득 4년 전, 명문가 집안의 아가씨가 서진우에게 고백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남자는 담뱃재를 털며 차가운 눈빛으로 장난스럽게 말했다.“미안하지만, 아가씨. 난 얌전하고 평범한 여자가 좋아.”그때부터 그녀는 서진우를 2년 동안 짝사랑했다.하지만 어머니는 둘이 사귀는 걸 반대했다. 집안끼리 사업 문제도 있었고 어머니는 사랑 같은 건 믿지 않았다. 게다가 서진우는 바람둥이라 어머니 보기에는 적합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래서 그의 이상형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어머니와 내기를 했다.서진우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와 사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승낙했다.서진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안씨 가문의 베일에 싸인 아가씨에서 가난하고 얌전한 여자로 변신했다.그때부터 그녀는 서진우의 곁을 맴돌았다. 어느 날 서진우는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른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좋아해?”“나랑 사귀어 볼래?”서진우와 3년 동안 사귀면서 안다혜는 열정과 용기를 다 써버렸다.서진우를 위해 요리도 배우고 아플 땐 밤낮으로 간호했다. 다들 안다혜가 서진우한테 푹 빠졌다고 했다.서진우도 바람둥이 짓을 그만둔 듯 그녀를 아껴주었다.몇 번이고 웃으며 그녀를 아내라고 부르며 먹여 살리겠다고 말했지만 안다혜는 거절했다.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생일날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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