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서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안다혜가 서진우에게 버림받고 태안 그룹에서 쫓겨나면 꼴이 우스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파티에 나타나 온몸으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잔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심서아는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어느 돈 많은 사람과 붙어먹은 거 아니야?”질투에 사로잡힌 심서아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서진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안다혜가 무슨 수로? 얼굴로 아니면 뭐로? 그냥 소셜에 능한 사람일 뿐이야. 거물들도 가지고 놀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릴 거고. 불 보듯 뻔한 거 아니야?”심서아가 맞장구를 쳤다.“그러게. 무슨 방법으로 여기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잖아.”심서아의 질투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안다혜가 태안 그룹에서 쫓겨나고 꼴이 우스워질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온몸으로 눈 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심서아는 무슨 짓이든 해서 안다혜의 기를 반쯤 꺾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안다혜는 그런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대범하게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감과 우아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오늘 그녀가 이 자리에 나온 목표는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풍산 그룹 프로젝트를 성사하기 위해서였다. 서진우와 심서아는 이제 안다혜의 인생에 있어서 지나간 티끌이나 다름없었다.심서아는 활활 타오르는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든 채 허리를 흔들며 안다혜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어머, 안다혜 씨?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요?”안다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차가웠다.“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태안 그룹에서 나갔다고 들었는데.”심서아가 일부러 볼륨을 높이며 비아냥댔다.“태안 그룹에서 잘리고 호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예요? 돈이... 많이 부족한가 보네요.”심서아가 말하다가 일부러 뜸을 들이며 경멸에 찬 눈빛으로 안다혜가 입고 온 드레스와 하고 온 쥬얼리를 쳐다봤다.“지금
“일반 직원?”안다혜가 가볍게 웃더니 경멸에 찬 눈빛을 지었다.“혹시 일반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접시를 나를 웨이터라고 해도 집안 축내는 재벌 2세보다는 훨씬 낫지.”서진우가 얼굴을 굳히더니 안다혜를 손가락질했다.“너... 너 정말 이럴 거야?”서진우는 지금까지 크면서 이런 수모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내가 뭘 어쨌다고?”안다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서진우를 날카롭게 쏘아봤다.“평생 나만 사랑한다 그러더니 등 돌리자마자 첫사랑 품에 안겼잖아. 나 차버리겠다고 이별 리스트까지 만든 사람이 무슨. 너에 비하면 내가 한 짓은 아무것도 아니야.”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서진우는 마치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너무 화가 났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서진우가 정말 그랬으니 할 말이 없었다.“안다혜 씨. 잘난 척하지 마요.”심서아가 소리를 질렀다.“잘사는 사람과 붙어먹으면 까치가 제비 될 줄 알았어요? 남자들은 다 새로운 걸 좋아해요. 단물 빠지면 버려질 거라고요.”안다혜의 눈빛이 심서아로 향하더니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심서아 씨, 일단 본인 앞가림이나 잘해요. 짝퉁하고 다니다가 들통나면 쪽팔리니까.”심서아는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뭐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안다혜가 한 말이 다 사실이라는 걸 심서아도 알고 있었기에 구명줄이라도 잡듯 서진우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서진우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담았다.“안다혜, 그렇게 잘난 척할 필요 없어. 거물들 몇 명 알고 지내면 끄떡없을 줄 알았나 본데 풍산 그룹 프로젝트는 네가 가져가고 싶다고 해서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야.”안다혜가 전혀 물러서지 않고 도발하듯 서진우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봤다.“서진우 너도 앞가림이나 잘해. 편들다가 오히려 나가떨어지는 수가 있어.”서진우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안다혜를 달리 어쩔 방법이 없어 그런 안
파티장에서 안다혜가 우아하게 샴페인 잔을 들고 업계 거물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아까 있었던 소동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매력 발산 중이었다.“안다혜 씨는 젊은 나이에 이런 성과를 얻어냈으니 정말 훌륭하네요.”거물이 안다혜를 칭찬하며 흠모의 눈길을 보내자 안다혜가 살며시 웃으며 잔을 들었다.“과찬입니다. 전 그냥 제가 해야 할 몫을 한 것일 뿐이에요.”안다혜가 샴페인을 한 모금 홀짝이자 금색 액체가 잔에서 넘실거리며 안다혜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비췄다. 눈동자로 번지지 않은 웃음기가 까만 눈동자를 더 또렷해 보이게 했다.‘풍산 그룹 대표는 못 만나고 가는 건가? 오늘도 나타나지 않네. 스케줄이 안 맞나? 그러면 오늘은 허탕인데.’파티가 거의 끝나가자 공기 속에 샴페인과 향수 냄새가 달짝지근하게 섞였다. 안다혜는 여러 남자가 보낸 초대를 이미 여러 번 거절한 상태였다.그때 민초연이 걸어왔다.“다혜야. 나 먼저 간다. 기사님이 밖에서 가다리고 있어서. 오늘 얘기는 잘 됐어?”민초연의 목소리가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했다. 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야유했다.“잘했냐고? 그냥 그럭저럭.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봤거든.”“보고 싶은 게 누군데? 설마 전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풍산 그룹 대표?”민초연이 입을 가리고 웃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나를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안다혜가 일부러 신비한 척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아쉽네. 너무 바빠서 오늘은 못 만날 것 같아.”민초연이 안다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점잖은 스타일인가 보지. 됐다. 이제 수다는 그만 떨고 가야겠어. 다음에 봐.”민초연을 눈빛으로 마중한 안다혜가 핸드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려는데 화면이 저절로 켜지더니 전화가 걸려 왔다. 윤해준이었다.“여보세요?”“주차장에서 기다릴게.”윤해준의 목소리는 나지막하면서도 매력적이었는데 쉽게 티 나지 않은 부드러움이 녹아 있었다.안다혜가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이 따듯해졌다.
안다혜가 윤해준을 힐끔 돌아봤다. 윤해준의 눈빛은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안다혜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내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윤해준을 바라봤다.“서진우, 용건 있어?”서진우가 옆에 탄 윤해준을 보고 멈칫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남자를 아래위로 훑었지만 주차장은 불빛이 어두워 남자의 얼굴 윤곽만 대충 보였다. 서진우는 안다혜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렇게 비아냥거렸다.“안다혜. 벌써 다음 타자 찾은 거야? 아까 파티장에서 왜 그렇게 배짱 좋나 했더니 이미 다음 타자를 찾은 거야?”옆에 선 심서아도 맞장구쳤다.“다혜 씨, 시골에서 올라와서 살림 좀 고치고 싶으면 좋은 남자를 찾아야죠. 이 남자는 딱 봐도 별로잖아요.”이 말에 안다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서진우와 심서아를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서진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내가 누구와 있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심서아 씨, 말 가려서 해요. 내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에요. 그러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요.”안다혜가 이 말만 남기고 창문을 올리더니 더는 두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다. 이에 윤해준도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알렸고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차가 멀어지자 서진우가 얼굴이 파래서는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힘껏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딱 기다려. 나 그냥은 안 넘어가니까.”심서아도 옆에서 이간질했다.“진우야, 화내지 마. 다혜 씨도 그냥 너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일 거야.”“내가 기분이 나쁘면 뭐?”서진우가 차갑게 웃었다.“내가 기분이 나쁘면 다시 돌아갈 줄 알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네.”...차안, 안다혜는 화가 채 가시지 않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애써 진정하려 했다. 서진우가 비꼬듯 내뱉은 말은 마치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너무 거슬렸다.안다혜가 옆에 앉은 윤해준을 힐끔 쳐다봤지만 윤해준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덤덤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저기... 그 서진우가 한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윤해준이 대답 대신 웃으며 제육볶음 하나를 안다혜의 앞접시에 집어줬다.“이것도 먹어봐. 맛있어.”안다혜는 그릇에 담긴 닭고기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서진우와 3년을 함께 했는데도 서진우는 안다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윤해준은 번개 결혼하고도 안다혜를 살뜰히 챙기니 말이다. 너무 비교되는 모습에 안다혜는 씁쓸했지만 한편으로 감동했다.전에 서진우와 함께 밥을 먹으면 주문은 서진우가 했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를 위주로 주문했고 종래로 안다혜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었다. 한번은 안다혜도 용기 내 매운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서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여자애가 매운 요리는 무슨. 피부에 안 좋아.”과거를 떠올린 안다혜가 차갑게 웃었다.‘피부에 안 좋긴 개뿔.’하지만 윤해준은 지금 안다혜가 좋아하는 요리를 전부 안다혜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누군가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해 주고 챙겨준다는 느낌이 들자 안다혜는 낯설면서도 따듯했다.윤해준도 안다혜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눈치채고는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부드럽게 물었다.“왜? 입에 안 맞아?”안다혜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맛있어요.”“그러면 많이 먹어.”윤해준이 활짝 웃으며 찌개를 담아줬다.“요즘 일이 힘든데 몸조리 잘해야지.”찌개를 받아와 한 모금 들이키자 속도 마음도 뜨끈해졌다. 그릇을 내려놓은 안다혜는 오늘 파티에 참석한 목적이 생각나 다시 우울해졌다.“아참.”안다혜가 갑자기 생각난 척 이렇게 물었다.“혹시 풍산 그룹 대표랑 아는 사이에요?”반찬을 집던 윤해준이 멈칫하더니 눈꺼풀을 들고 안다혜를 바라봤다.“그건 갑자기 왜?”안다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냥요. 오늘 그 파티에 간 게 사실 베일에 싸인 풍산 그룹 대표를 만나고 싶어서 간 거거든요. 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어서 뭐라도 배우고 싶어서요.”안다혜가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근데 끝날 때가 됐는데도 안 나타나더라고요. 아마 엄청 바쁘겠죠. 신경 쓰지 마요. 앞으로 기회가
이튿날 아침, 안다혜는 일찍부터 상쾌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잘빠진 하얀 슈트를 입은 안다혜는 오늘따라 더 아리따워 보였고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가 돋보였다‘해고당하면 뭐 어때서? 나 안다혜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고.’태안 그룹에 도착한 안다혜는 하이힐을 신고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걸으며 그녀가 왔음을 알렸다. 이훈의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막힘이 없었고 데스크 직원마저도 안다혜를 막아서지 못했다.쾅.노크도 없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차를 마시던 이훈은 안다혜를 보고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경멸에 찬 웃음을 지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태안 그룹 전 직원 아니에요? 여긴 무슨 용건으로 왔어요?”이훈이 안다혜를 비꼬며 놀렸지만 안다혜는 가볍게 무시하고 테이블로 걸어가더니 서류와 녹음기를 테이블에 던졌다.“이훈 씨.”안다혜가 이훈을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봤다.“이거면 차 마시며 보기에 충분하죠?”이훈이 느긋하게 서류를 펼쳐보더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훈이 공금을 횡령한 장부와 성추행 정황이 담긴 녹음이었다. 어떤 증거를 내놓든 이훈의 명예가 나락으로 가는 건 한순간이었다.이훈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안다혜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이걸 농담이라고 들고 온 건 아니죠?”안다혜가 차갑게 웃었다.“농담이요? 이게 지금 농담 같아요? 이훈 씨가 한 더러운 짓거리 내가 다 알고 있어요.”이훈이 그제야 표정을 바꾸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다혜를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해보자는 거냐고요?”안다혜가 전혀 물러서지 않고 이훈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뭔가를 했다해도 이훈 씨가 했겠죠. 그게 도대체 뭔지는 이훈 씨가 더 잘 알 거고요.”이훈이 펄쩍 뛰었다.“고작 이런 걸로 나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 마. 나 안소현 씨 라
안다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려웠다.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입술은 덜덜 떨리며 말이 나오지 않았다.안다혜는 더 이상 말을 낭비하지 않고 돌아서서 이훈의 사무실을 나갔다.높은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또각또각 울려 퍼지며 이훈의 심장을 짓눌렀다. 한 번, 또 한 번... 점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그는 의자에 앉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떨었다.‘네가 뭔데? 가난한 대학생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기고만장해?’그는 생각할수록 억울해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안다혜가 직원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안다혜? 다시 돌아왔네? 퇴사한 거 아니었어?”“누가 알겠어? 이 부장에게 사정하러 온 거 아닐까?”몇몇 직원들은 서로 속닥거리며 비웃고 있었다.안다혜는 그런 뒷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그때 누군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세게 잡아당겼다. 미처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뺨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몰려왔다.짝!“빌어먹을 년이, 감히 날 협박해?”이훈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맹수와도 같았다. 안다혜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따가운 손찌검이 그녀의 뺨에 내려앉았다.얼얼한 통증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안다혜의 머릿속은 멍해지며 눈앞이 흐릿해졌다.사무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다들 이훈이 감히 회사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안다혜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천천히 뺨을 감싼 손을 떼고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이훈을 응시하며 또렷하게 말했다.“이훈, 넌 끝났어.”이훈은 경멸 어린 비웃음을 흘렸다.“내가 끝났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가 가진 그 쥐꼬리만 한 증거로 날 어쩌겠다는 거야? 내 백이 누군지 알아? 안소현 씨야! 나를 건드리면 안소현 씨를 건드리는 거라고!”안다혜는 코웃음을 쳤다.“안소현? 네가 회사에서 이렇게 설치는 거 알면 그녀가 널 계
사무실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이훈은 바닥에 누워 허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안다혜는 손을 탁탁 털고는 이훈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아직도 내가 네 멋대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 다시 말해 두는데, 난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이훈은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두려움과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안다혜를 노려보았다.그는 여리고 약해 보이는 안다혜가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이훈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안다혜! 미쳤어! 감히 날 때려? 고소할 거야!”안다혜는 차갑게 웃으며 발끝으로 이훈의 손등을 지그시 눌렀다.“고소? 좋아, 어디 해 봐. 누가 먼저 끝장나는지 보자고.”그녀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이훈은 마치 독사에게 찍힌 쥐처럼 몸을 떨었다.바로 그때, 소란을 듣고 프로젝트팀장이 달려왔다. 그는 어지러운 사무실 풍경에 얼굴을 굳히며 날카롭게 물었다.“무슨 일입니까? 다들 뭐 하는 거예요!”안다혜는 발을 거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아하게 손을 털었다.그리고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팀장님, 저는 이훈이 저를 포함한 여러 여성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해왔다는 사실을 고발합니다.”안다혜는 주변을 둘러보며 놀라거나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동료들을 훑어보고는 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훈은 평소에도 저희에게 말로 추행하고 신체 접촉을 시도하며 심지어 직권을 이용해 은밀하게 저희를 압박해 왔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안다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뭐라고? 이훈이 그런 사람이었다고?”“어쩐지 신입 여직원들한테만 유독 친절하더라니...”“난 진작에 이상하다고 생각
윤해준이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오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태안 그룹 지하 주차장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찾아봐. 안다혜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해.”오정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노트북을 켜고는 위치추적기로 안다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몇 분 후, 오정우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찾았어요. 누군가가 안다혜 씨를 납치해서...”“서쪽 창고로 데려갔을 거야. 경찰에 신고하고 오 비서도 서쪽 창고로 와. 나는 지금 바로 출발할 거야.”윤해준은 엄숙한 어조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정우는 윤해준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동안 윤해준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독한 남자였다.오정우는 안다혜를 납치한 사람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윤해준이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그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서쪽 창고로 향했다. 신호등에 걸려도 멈추지 않고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운전대를 잡고는 생각에 잠겼다.‘다정아, 곧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진작에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한편, 서쪽 창고.안다혜는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훈은 임유정의 옆에 서서 피식 웃더니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서진우는 무언가를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는 악마 같은 남자였다. 그는 이훈한테 안다혜를 괴롭히는 영상을 잘 찍어서 전송하라고 지시했었다.건달은 손발이 묶여서 꼼짝하지 못하는 안다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며 건달을 노려보았다.“나한테 손대지 마!”안다혜는 저도 모르게 윤해준을 떠올리면서 울먹였다. 그가 곁에 있어 주면 늘 든든했고 하늘이 준 선물처럼 소중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윤해준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기를 바랐다.“성격도 화끈하니까 가지고 놀 맛이 있네.”“반항해도 소용없어. 소리 지르지 말고 우리랑 재밌게 놀자.”이훈이 옆에 서서 다급
안다혜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납치당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를 납치하려고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안다혜가 밉보인 사람은 그 몇 명뿐이었던 것이다.이훈이 당당하게 걸어오자 안다혜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쳐다보았다. 그는 안다혜의 턱을 거칠게 잡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눈 깔지 못해?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순순히 풀어줄 것 같았어? 얼른 대답해 봐.”안다혜는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떼어달라고 눈짓했다. 임유정이 테이프를 뜯으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회의실에서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다가 납치당해 보니 기분이 어때? 정말 짜릿하지 않아? 울면서 나한테 빌면 기분이 좋아서 너를 풀어줄 수도 있어.”임유정은 안다혜의 볼을 매만지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안다혜가 침을 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를 납치해도 태안 그룹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경고하는데...”안다혜가 이훈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지금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풀어.”이훈은 안다혜가 협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안다혜의 몸매를 훑어보면서 침을 삼켰다.이훈과 눈이 마주친 안다혜는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돌렸다.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를 탓할 게 아니라 너를 원망해. 네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납치당한 거야.”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훈은 그녀의 턱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더니 밖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이때 건달이 4명 정도 들어오자 안다혜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임유정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어때?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겠지? 개 같은 년, 내가 기회를 주었을 때 나한테 빌었어야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어.”건달들은 의자에 묶인 안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예쁜 얼굴과 굴곡진 몸매를 쳐다보면서 여유롭게 웃었다.“오늘 정말 운이 좋네.”“우리한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마침 서진우도 안다혜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훈은 서진우의 힘을 빌려서 안다혜를 상대할 생각이었다.그는 울고 있는 임유정을 달래주고는 창가로 가서 서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유정은 눈물을 그치고 이훈의 뒷모습을 지그시 쳐다보았다.이훈이 회사에서 거만하게 굴었던 건 안씨 가문 첫째 아가씨뿐만 아니라 서씨 가문 도련님이 뒷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그가 서진우의 도움을 받게 되면 안다혜를 망가뜨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한편, 발신자를 확인한 서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훈의 이름만 보면 그동안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찾느라고 고생했던 것이 떠올랐다.카운터에서 마주친 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무능한 이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서진우가 전화를 받고는 차갑게 말했다.“쓰레기 같은 놈,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안다혜가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하랬더니 풍산 그룹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 내 일을 망치게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여자 하나 감시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내쫓기다니...”이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진우는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쩔쩔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진우 도련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다른 방법을 토론해 보려고 연락한 거예요.”“다른 방법이라니?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서진우는 지난번에 연회에서 안다혜한테 한 방 먹은 후로 갖은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보내서 안다혜한테 복수하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계속 보호해 주어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제일 믿었던 이훈마저 회사에서 해임당했기에 점점 화가 났다. 이훈이 임유정한테 일어난 일을 말하면서 제안했다.“서진우 도련님, 이번이야말로 안다혜한테 복수할 기회예요. 임유정을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의 여자 친구잖아요. 여자 친구가 괴롭힘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서진우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 여자 친
경비원들이 임유정을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카운터 직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밖을 내다보며 수군거렸다.태안 그룹에서 사원을 내쫓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이때 한 경비원이 임유정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던지면서 말했다.“앞으로 회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신고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경비원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뒤돌아 갔다. 그는 팀장의 지시에 따라 임유정의 물건을 전부 상자에 넣어서 던졌다.임유정은 팀장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부터 지금까지 봤던 사람 중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이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임유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깔깔 웃어댔다.임유정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오늘 당한 치욕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몇 배로 갚아줄 테니 두고 봐.’카운터 여직원이 임유정을 쳐다보면서 다른 직원을 향해 말했다.“회사에서 내쫓긴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봐요. 살벌한 표정을 짓는 걸 봤어요?”다른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겉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여자 같아도 늘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조금 전에 회사 단톡방에서 얘기하는 걸 보니 동료의 기획안을 표절했대요. 그리고 이훈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고 했어요.”“회사에서 내쫓을 만하네요.”두 사람은 임유정이 어떤 표정을 짓든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임유정은 더 이상 이 회사의 사원이 아니기에 카운터 직원한테 따질 수도 없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손가락질해도 임유정은 반격할 수 없었다. 예전의 임유정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그녀는 상자를 들고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길 한복판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안다혜한테 몇백 배 돌려줄 거야.’임유정은 택시를 타고 이훈이 지내는 곳으로 향했다. 이훈은 해임당한 뒤로 취직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가끔 서진우와 연락하면서 안다혜를
“안다혜 씨,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다음이란 게 있을 것 같아요?”안다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임유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진작에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임유정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을 수도 있었다.안다혜가 아니라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턴이었다면 임유정한테 당해도 반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안다혜는 차가운 두 눈으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 임유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안다혜 씨, 이번에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하라는 대로 하고 죽은 듯이 지낼게요.”임유정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지만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평소에 인성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기에 모두 멀리하고 싶어 했다.이지영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었다.아까 안다혜가 나서지 말라고 할 때 속이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안다혜가 현명하게 처리해서 임유정의 만행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안다혜는 임유정의 손을 내치고는 팀장을 향해 말했다.“임유정 씨가 제대로 반성한 것 같으니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요?”임유정이 기뻐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회사에서 내보내고 이 업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하는 거예요.”안다혜가 또박또박 말했다. 임유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물만 흘렸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기에 해임당하면 이 업계에서 취직할 수 없을 것이다.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좋은 생각이에요. 안다혜 씨 말대로 해요.”안다혜는 임유정을 스쳐 지나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이때 임유정이 벌떡 일어서더니 안다혜의 얼굴을 잡아 뜯으려고 덤볐다.“안다혜, 이 개 같은 년!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는 없어.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야 해!”안다혜가 재빨리 옆으로 비키자 임유정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임유정이 씩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보여줘. 네가 그렇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 것 같아?”안다혜는 임유정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PPT를 한 장씩 넘겼다. 임유정이 발표한 것과 완전히 다른 기획안이 눈앞에 나타났다.이미 협업할 연예인을 섭외했고 구체적인 대안을 정리해서 적어두었다.안다혜의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임유정 씨가 발표한 기획안은 저의 초안이에요.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린 건 최근에 완성한 기획안이에요. 온천 휴양지는 럭셔리한 이미지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지금 보시는 화면은 초안의 단점을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확정한 내용이에요. 유명한 브랜드 회사 담당자와 미팅을 진행했어요. 저의 기획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요.”그 자리에 있던 사원들이 전부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조금 전에 임유정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훌륭했다.안다혜는 사원들의 인정을 받았다. 두 사람의 기획안을 비교해 보면 누가 더 유능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임유정이 안다혜의 기획안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임유정 씨가 이런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평소에 얌전한 척하더니 아무도 모르게 이익을 챙기려고 했네요.”“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앞으로 조심해야겠어요.”“표절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곧 해임당하지 않을까요? 오늘 밤에 회사의 상업 기밀을 유출할지도 모르잖아요. 회사 차원에서 놓고 보면 위험한 인물이에요.”그 말을 들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다혜를 향해 말했다.“안다혜 씨, 정말 훌륭한 기획안이네요. 표절할 생각밖에 없는 사람과는 다르게 무척 애썼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팀장님,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처음부터 진행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였거든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리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찾아냈고요. 임유정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안다혜는 임유정을 내팽개치고는 티슈로 손가락을 닦았다. 임유정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안다혜를 노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다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안다혜, 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당장 무릎 꿇고 나한테 빌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더한 짓도 벌일 수 있어.”임유정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안다혜의 기획안을 훔쳐서 발표한 사람은 임유정이었지만 오히려 피해자처럼 굴었다.이때 팀장이 나서서 임유정을 말리며 진지하게 말했다.“임유정 씨, 동료끼리 싸우지 마세요. 안다혜 씨가 이러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팀장의 말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안다혜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맞아요. 임유정 씨는 저의 기획안을 표절했어요.”“웃기는 소리! 내가 언제 표절했다고 그래? 내 기획안이 욕심나서 일부러 나를 모함하는 거잖아.”임유정은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러워서 언성을 높였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네가 팀장의 침대에서 뒹굴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지 않고서야 팀장이 너를 감싸고 돌 리가 없잖아.”“임유정 씨의 말을 들어보니 문뜩 궁금해지네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훈 씨랑 무슨 사이였어요? 아주 특별한 사이인 것 같던데요.”“뭐, 뭐라고?”그 말을 들은 임유정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안다혜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임유정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사원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팀장과 안다혜가 아니라 임유정과 이훈이 특별한 사이였던 것이다. 안다혜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리고 임유정 씨가 이 기획안을 어떻게 완성했는지 다시 설명해 볼래요?”안다혜의 말에 팀원들이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때 이지영이 피식 웃으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다혜 씨의 말대로라면 임유정이
“임유정 씨의 기획안을 제출하면 회사의 명예에 먹칠하게 될 거예요.”안다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단상에 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임유정을 지켜보다가 더는 들어줄 수 없어서 나섰던 것이다.임유정이 주먹을 꽉 쥔 채 반문했다.“안다혜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임유정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설마 제가 안다혜 씨보다 먼저 승진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요? 안다혜 씨는 보기보다 속 좁은 사람이었네요. 동료를 시기 질투할 시간에 더 노력하지 그래요?”임유정은 안다혜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불안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안다혜의 컴퓨터에 있던 파일을 전부 복사한 뒤에 삭제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안다혜가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임유정이 먼저 발표했기에 이 기획안은 임유정의 것이 되었다.팀장이 안다혜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안다혜 씨, 설마 이 기획안을...”“팀장님!”임유정이 팀장의 말을 끊으면서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동료를 모함하고 있어요. 그런데 팀장님은 왜 안다혜 씨의 편을 드는 건가요? 설마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겠죠? 어쩐지 저번부터 분위기가 미묘한 것 같았어요.”임유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두 팀장과 안다혜를 번갈아 보면서 귓속말했다.팀장은 임유정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임유정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런 사이 아니니까 모두 조용히 하세요.”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팀장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안다혜와 특별한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팀장이 아무리 부정해도 임유정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이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하려고 했지만 안다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다혜는 피식 웃더니 임유정 쪽으로 다가가서 노려보았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안다혜와 달리 임유정은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임유정과 안다혜가 나란히 서 있으니 비교가 되었다. 짙은 화장을 한 임유정은 안
안다혜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안다혜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자 임유정은 화가 솟구쳐 올라서 주먹을 꽉 쥐었다.‘멍청한 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조금 있다가 너를 처참히 짓밟아줄 테니 기다려. 언제까지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볼 거야. 이 기획안이 나의 것이 되면 너는 팀장한테 버림받겠지.’임유정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단상으로 올라갔다. 안다혜는 그 모습을 보고 팔짱을 끼더니 피식 웃었다.임유정은 USB를 컴퓨터에 꽂고는 준비한 기획안 파일을 클릭했다. 안다혜가 예상했던 대로 컴퓨터에 손을 댄 사람은 임유정이었다.임유정이 여유롭게 웃으면서 도발했지만 안다혜는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크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임유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안다혜, 내가 준비한 기획안을 보고도 웃음이 나와? 곧 울면서 나한테 빌겠지.’임유정이 차분하게 말했다.“며칠 동안 준비한 기획안을 발표할게요. 풍산 그룹의 고급 온천 프로젝트는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와 컬래버하는 게 좋아요. 혹은 요즘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을 홍보대사로 초빙하면 더 좋고요. 그리고 풍산 그룹의 온천 휴양지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거예요.”임유정이 스크린에 PPT를 띄워놓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프로젝트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발표가 끝난 후, 팀원들은 임유정이 이토록 훌륭한 기획안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팀장이 감탄하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정말 혼자 생각해 낸 기획안인가요?”임유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팀장님, 제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가 아니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을 거예요. 팀장님이 저를 미덥지 않아 하는 건 알지만 이건 오로지 저의 힘으로 완성한 거라고요.”팀장은 조금 전에 임유정이 자신만만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