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우는 소리를 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전화 건너편의 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목이 쉬도록 울어 댔지만 건너편에서는 한마디 위로의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신호가 안 좋은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귀에서 떼어내 관찰하고 있을 때 전화 건너편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 울었어?”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하윤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그대로 던져버릴 뻔했다. 하지만 그런 충동을 누른 채 의아한 듯 물었다. “저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전화 오면 지역이 뜨는 거 몰랐어?” 하윤은 순간 난처했다. 하지만 이내 의문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내가 전화한 걸 알면서도 전화 받았다는 건가?’ 그걸 인지한 순간 난처함은 기쁨으로 변했고 손가락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 변두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 “울려고 했는데 도준 씨 목소리를 들으니까 울기 싫어 졌어요.” “또 병이 도졌어?”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에 하윤은 숨이 턱 막혔다. ‘설마 내가 또 속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 저는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어젯밤…….” “뚜뚜뚜…….”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끊어진 전화에 하윤은 풀이 죽었다. 하지만 도준과 말이라도 했다는 생각을 하니 충전이라도 한 것처럼 힘이 솟아났다. 이에 하윤은 다시 침대에 엎드린 채 엄석규의 자료를 펼쳐봤다. 엄석규는 이성호와 마찬가지로 해원 음악 대학의 선생이다. 물론 이성호는 교수이고 엄석규는 부교수였지만. 그런데 지금 엄석규는 학교의 부총장으로 승진했다. 엄석규는 이성호처럼 평생 음악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관직에 더 집착했다. 보통 사람이 위로 올라가려면 필요한 요소는 적지 않다. 인맥, 스펙, 직함 그리고 배경 등등. 엄석규와 이성호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는데 집안은 그나마 풍족하게 사는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앞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엄석규가 위증을 하고 난 뒤 고작 몇 년 동안 부교수에서 바로 교수, 학과장, 부학장,
행사 당일. 하윤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던의 서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스폰서인 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심지어 학장이 직접 두 명의 학과장과 영어 통역을 도와줄 영어 선생님을 데리고 마중 나왔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던에게 영어 선생님은 사실 필요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던은 매번 한국어 발음을 또박또박 하려고 애쓰다 보니 외국인이 한국어 듣기 평가 시험 문제를 읽는 것 같다는 착각을 주기는 했다. 학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런 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해원 음악 대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선 학교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점심은 학교 귀빈실에 준비해 뒀습니다. 그리고 행사는 오후 1시에 옆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학장은 말하면서 영어 선생님을 바라봤고 영어 선생님이 통역을 하는 동안 던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경청했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이 어렵사리 통역을 마치자 그제서야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 말에 학장과 영어 선생님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본관에 도착하자 존재감을 숨기고 있던 하윤이 갑자기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고, 앞에서 걸어가던 던이 발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이 건물은 조금 특이해 보이네요.” 학장과 학과장은 일제히 퇴색한 낡은 건물을 바라봤다. 이윽고 귀빈의 취향을 모르는 학장은 마지못해 맞장구 치며 대답했다. “네, 뭐 고풍스럽고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이긴 하죠.” “그렇게 칭찬하니 들어가 보고 싶네요.” 던은 사람들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말을 마치자마자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 저기…….” 학장은 이내 던을 막으려 했지만 곧이어 반시간도 넘는 사무실 관광이 이어졌다. 교실부터 교사들의 사무실, 심지어는 도구실까지 던은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총장실에 도착하자 학장은 너무 놀라 머리가 곤두섰다. “저기……, 총장실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
방금 들어올 때 권하윤은 대충 정찰했는데 도청기를 숨기기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테이블 아래였다. 테이블은 하윤이 있는 정수기와 약 2,3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학장이 계속 하윤을 보고 있는 바람에 쉽사리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하윤이 조급해할 때 던이 벽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 사진들 재밌네요.” “아, 이 사진 말씀이시구나. 이건 저희 학교 부총장입니다…….” 학장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위치가 애매한 터라 고개만 돌리면 들킬 게 뻔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 데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하윤은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했다. 컵을 정수기 위에 올려 놓은 하윤은 물을 내리는 버튼을 누르고는 기회를 엿봐 재빨리 테이블 쪽으로 몸을 숙였다. 대화 소리와 물 소리가 함께 들려오자 하윤의 심장은 더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종이컵에 물이 차는 건 한순간이기에 그 사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너무 긴장한 탓에 손이 떨리는 데다 손바닥에 땀이 차올라 하윤은 테이프를 떼어낼 때 몇 번이나 실패했다. 심지어 물이 컵에 차는 동안 물소리가 점점 변했다. 그런 변화는 마치 하윤의 명을 재촉하는 듯했고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었다. 다행히 물컵이 찬 순간 하윤은 도청기를 테이블 아래에 붙이는 데 성공했다. 하윤은 학장이 있는 방향을 감히 보지도 못한 채 얼른 정수기 쪽으로 달려가 버튼을 눌렀다. 불과 20초도 안 되는 사이 하윤의 등은 식은 땀에 흠뻑 젖었고 입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안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제야 하윤은 조심스럽게 학장이 있는 쪽을 바라봤는데, 그 시각 학장은 끊임없이 물어보는 던 때문에 정신이 팔려 하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 쉬며 하윤은 조심스럽게 넘쳐날 것처럼 찰랑거리는 물컵을 들고 던 쪽으로 걸어갔다. “드세요.” 여유만만하던 던은 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는 종이컵을 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때마침 학장의 아부 섞인 목소리가 들
“야, 저 사람 오나영 선배 아니야?” “정말이네? 나영 선배도 오늘 행사에 참석하나 봐.” 시선이 집중된 곳에서 오나영은 스포티한 옷차림으로 식당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오나영의 팬인 여자 후배가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저 선배님 오래 전부터 팬이었어요. 오늘 이렇게 보게 돼서 너무 기뻐요.” 오나영은 후배의 말에 입을 가리며 웃었다. “나도 너희들한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돼서 기뻐.” “선배님 멘탈 진짜 짱이네요. 요즘 악녀한테 괴롭힘 당했다면서요? 그 소식 듣고 엄청 걱정했어요.” 오나영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걔도 아버지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니까. 물론 내 인생이 걔네 아버지 때문에 망치긴 했어도 그 애를 탓하지는 않아. 그냥 하루빨리 진실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를 바랄 뿐이야.” “선배님은 어쩜 그렇게 착해요? 제가 만약 그렇게 악독한 부녀를 만났다면 먼저 주먹부터 날라갔을 텐데.” 조소와 악랄함이 섞인 단어들은 칼자루처럼 하윤의 가슴을 찔러댔다. 이에 입맛조차 사라진 하윤은 식판을 들고 바로 식판 회수 창구로 향했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뒤에 있던 오나영이 하윤을 알아봤다. “시윤?” 마침 쥐처럼 숨어 다니는 하윤을 보며 오나영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너 왜 그런 차림으로 있어? 설마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그래?” 오나영은 일부러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소개할게. 이 사람이 바로 이성호 딸이자 내 후배야.” 오나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 학생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왔지?” “그러게 말이야. 설마 학교 행사를 망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진짜 뻔뻔하다.” 그때 흥분한 남자 후배가 오나영의 앞을 막아서며 하윤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너 같은 건 우리 학교에 올 자격 없어!” “당장 나영 선배한테서 떨어져!” 하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들에게 둘러 쌓였고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분노 가
며칠 사이에 권하윤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득의양양해하는 오나영을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죽고 싶어 발악을 하는 건 너지. 내가 아니라.” “이게!” 발끈하려던 오나영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오늘 개쪽을 당하는 게 누구인지.” 오나영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따가 무대 위에서 너랑 네 아비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거 세상 사람들한테 까발릴 거야.”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케빈이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막 나서려고 하자 하윤은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하지만 오나영은 케빈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뒤집더니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의기양양해서 떠나갔다. “혹시 화 안 나세요?” 케빈은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을 내뱉었다. 이에 하윤은 덤덤하게 웃었다. “오히려 진실이 밝혀졌을 때 저 여자의 반응이 더 궁금해요.” …… 오후 1시.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은 어느새 꽉 찼다. 맨 앞줄은 학교 지도자들과 초대를 받은 교육기관 관원들이었고 뒤에는 초대를 받은 우수 졸업생들과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심지어 좌석 사이의 빈 공간에는 각종 촬영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생방송용 카메라와 후속 보도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각 매체 기자들도 있었다. 엄석규는 행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홀에 도착해 학교측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다. 게다가 사전에 기자들에게 이번에 받을 후원은 자기가 끌어들인 거라고 기자들에게 말해 두어 스펙에 한 획을 그을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편 하윤은 이번에 후원을 한 던의 신분이 폭로되어 오나영 일행이 의심하는 걸 피하기 위해 학교측에 대표님이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 맨 마지막 줄을 비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때문에 이 시각 하윤은 맨 마지막 줄에 앉아 무대 위에서 행사 오픈 연설을 준비하는 엄석규를 지켜봤다. 엄석규는 이성호와 나이가 비슷하고 새치가 섞여 있는 중단발을 하고
“오늘 이 자리에 두 분의 옛 친구가 와 계십니다. 그 친구분이 두 분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축복의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하니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자, 진은영 학생,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물론 조금 의외긴 했지만 무대 아래에 수많은 카메라가 있는 데다가 또 친구 사이의 정으로 이슈 몰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나영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진은영이 무대에 올랐을 때 오나영은 포옹으로 그녀를 맞이하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은영아, 너도 왔구나.” 채영도 보여주기 식으로 진은영과 포옹했다. 하지만 진은영은 싸늘한 눈으로 자기를 손에 쥐고 놀았던 ‘친구들’을 바라보더니 사회자 손에서 마이크를 받아 들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내가 영상을 준비했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스크린에는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쓱쓱 스쳐 지나가는 영상의 맨 앞에는 세 사람이 대학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이 담겨 있었다. 풋풋한 미소는 세 사람의 청춘을 그대로 사람들 앞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앵글은 바로 화장실로 바뀌었다. “너 뭐 하자는 거야? 우리가 위증을 했다는 걸 시윤이 발견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쟤가 우리를 찾아온 게 자랑하러 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아니면 엄석규 쌤 한테 물어볼까?” “…….”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모든 사람은 미처 반응도 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 시각 무대 위에 있던 오나영과 채영은 벙찐 얼굴로 서 있다가 겁에 질린 얼굴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엄석규도 많이 당황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자기가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졌음을 직감했다. 한편 상영실에 있던 사람도 뭔가 잘못됐음을 그제야 눈치챈 듯 바로 화면을 꺼버렸지만, 진은영이 마이크를 든 채 버럭 소리쳤다. “너희 둘 그때 나한테 거짓말했잖아. 교수님이 너희 성추행했다고 나를 속여 위증까지 하게 한 것 때문에 교수님이 억
오나영이 미친 듯이 소리지르고 채영이 귀를 막고 중얼대는 걸 보자 권하윤은 속이 시원했다. 한순간 무대 위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무대 아래 사람들 역시 패닉에 빠졌다. 그러던 그때, 하윤이 엄석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석규 부총장님, 아니 엄석규 씨, 당신이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혹시 우리 아버지가 당신 꿈에 찾아가지 않았나요? 절친한 친구면서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 않던가요?” 엄석규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 채 옆에 있는 경비원에게 버럭 소리쳤다. “당장 소란 피우는 자들을 끌어내리라고!” 그 말에 스무 명이 되는 경비들이 일제히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케빈은 손으로 끌고 있던 스피커를 경호원들에게 던지면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다 보니 케빈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경비원들이 하윤을 끌어내리려던 찰나,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남자들이 떼거지로 몰려 들어 여자 하나 때리려 하다니 집에 가서 엄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 흠칫 놀라 천천히 고개를 돌린 하윤은 무대 위에 있는 경호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나타난 한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민혁이 데려온 패거리들은 무대를 세 바퀴 정도 둘러쌌고 무대 아래에 어느 새 대포만한 카메라 한 대가 하윤을 겨누고 있었다. “계속 말해요. 누가 감히 움직이는지 제가 지켜볼 테니까.” 긴급한 상황이라 하윤은 민혁을 향해 감사하다는 듯 미소 짓고는 다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 모든 관객들은 하윤에게 집중했다. “저의 아버지는 이성호 교수님입니다. 유명한 음악가이기도 하죠. 제 아버지는 수많은 학생들이 우러러보는 선생님이자 학생들의 길을 빛내주는 등불 같은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이 악독한 사람들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신자살을 택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의 행복한 가정도 산산조각 나버렸고요. 그뿐만 아니라 저도 오나영의 악의적인 유도하에 인터넷으로 수많은 언어 폭력을 당해 왔
가까스로 집에 도망쳐 온 오나영은 신발이 벗겨진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심지어 누가 잡아당겼는지 두피마저 찌근거렸고 전화벨 소리가 목숨을 재촉하는 듯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너 이제 끝났어. 전에 계약했던 브랜드사에서도 위약금을 요구하는 상황이고. 이 문제는 모두 네가 초래한 거니까 위약금은 네가 해결해!” 늘 입만 열면 우리 귀염둥이 우리 여신 하면서 떠받들던 매니저의 싸늘한 말투에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던 오나영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언니, 언니마저 저 버리면 안 돼요. 언니가 저 이미지 복구하는 거 도와주면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이미 증거가 그렇게나 많이 나왔는데 어떻게 다시 일어서? 얼른 위약금 물 방법이나 생각해!” “…….” “언니? 언니!” 오나영은 몇 번 외치고 나서야 전화가 한참 전에 이미 끊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이 속물들! 나 광고 몇 개만 찍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오나영이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분노를 표출할 때 전화가 벨이 다시 울렸다. 매니저가 다시 전화한 줄로 착각한 오나영은 다시 희망을 품고 전화를 받았다. “언니, 저 대신 방법 좀 생각…….” “악독한 X! 사람 목숨으로 쌓아 올린 성에서 여왕 놀이하니까 재밌었어?” “누구야? 당신 누구야?” 오나영이 버럭 화내며 소리쳤지만 전화는 이내 끊겼다. 하지만 곧이어 다음 전화가 걸려 왔다. “돈 돌려줘! 내가 선물 쏜 거 다 돌려달라고!” 오나영은 당황한 듯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헛수고였다. 전화를 끊으니 이내 메시지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내렸으니까. 심지어 항상 오나영 편에 서 있던 팬덤까지 등을 돌려 돈을 돌려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제야 오나영은 무서운 게 뭔지 까달았다. 심지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려도 주위에서 수많은 눈이 자기를 분노와 증오의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았고 욕설을 퍼붓는 것 같았다. 오나영은 미친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내가 피해자야. 내가 피해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