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7년이 지났지만, 경민준은 그녀에게 한결같이 차가웠다. 하지만 연미혜는 사랑했기에, 언젠가는 그의 마음도 따뜻해질 거라 믿었기에, 그 냉랭한 태도를 묵묵히 견뎌냈다. 그러나 7년의 기다림 끝에 그녀에게 돌아온 건 그의 사랑이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한눈에 반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 여자에게 다정하고 사려 깊었고, 연미혜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미혜가 생일을 맞아 남편과 딸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날아갔지만, 그들이 함께 향한 곳은 그녀와의 약속 장소가 아닌 다른 여자의 곁이었다. 그날 밤, 혼자 남겨진 호텔 방에서 연미혜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딸이 다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날이 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이혼 서류를 작성했고, 양육권도 미련 없이 포기한 채 깔끔히 떠났다. 그 순간부터 그들 부녀에게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오직 이혼 서류가 정리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가정을 잃었지만, 그녀에겐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모두에게 무시당했던 그녀는 단숨에 수천억 자산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혼 서류는 언제까지고 정리되지 않았고, 집에 발길조차 두지 않던 남편이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벽에 몰린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때 차가웠던 남편이 낮게 속삭였다. “이혼? 절대 안 돼.”
View More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의미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연미혜는 복잡하게 얽힌 두 사람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지금 그녀는 김태훈과 함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식사를 거른 터라 잠시 대화를 마무리한 뒤,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뷔페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던 구진원이 곧 뒤따라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바로 옆, 같은 구역에 있던 정범규는 그 장면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다.‘...씨X.’작게
하승태는 여전히 무반응이었다.그때 마침 누군가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상대는 연미혜와 김태훈까지 아는 사람이었다.자연스레 넷이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들 사이엔 빠르게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됐다.그 곁에 서 있던 손아림은 대화에 낄 틈도 없이 방치된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상황에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결국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범규가 중얼거렸다.“승태는 요즘 따라 두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네.”
그동안 임씨 가문 산하의 엘리스 그룹은 핵심 기술도, 고급 인력도 없어 적자를 겨우 메우며 유지되는 상태였다.이번 출장에서도 경민준은 시간을 쪼개 해외에서 인재들을 수소문했고, 엘리스 그룹에 맞는 기술자 몇 명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그가 손을 뻗은 이상, 엘리스 그룹은 조만간 다시 숨통이 트일지도 몰랐지만 이 모든 일은 연미혜가 몰라도 무관한 일들이었다.만약 연미혜가 아직 경민준을 마음에 남겨두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라는 걸 하승태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뒤, 경다솜이 무심코 말을 꺼냈다.“아... 엄마, 아빠는 출장 갔대요.”그제야 연미혜는 경민준이 출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연미혜가 샤워 중인 사이, 침대 위에 두고 온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전화를 먼저 받은 건 경다솜이었다.화면에 하승태의 이름이 뜬 것을 본 경다솜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승태 삼촌, 다솜이에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승태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다솜아... 안녕.”그때, 연미
잠시 후, 경민준이 전화를 받았다.“하원했어?”경다솜은 대답했다.“네...”“엄마 보고 싶어?”“네.”“엄마한테 전화는 안 했어?”“네.”경민준은 웃으며 말했다.“전화해 봐. 오늘은 엄마가 받을 거야.”그 말에 경다솜의 눈이 반짝였다.“정말요?”“응. 전화해 봐.”“네!”전화를 끊자마자 경다솜은 연미혜의 번호를 눌렀다.연미혜는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병원과 고씨 가문에서 한 번씩 마주친 걸 제외하면 딸과는 벌써 한 달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그 사실이 마음을 건드렸다.그녀는
그 뒤로 경민준은 단체 대화방에 짧은 메시지를 하나 더 남겼다.[고객 접대 중. 너희끼리 얘기해.]그러고는 더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하승태도 차에 올라탄 후 단톡방을 확인했지만, 굳이 이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나도 좀 바빠... 너희들끼리 얘기 나눠.]그러고는 카톡 창을 닫아버렸다.정범규는 말없이 점 세 개만 남겼다.그렇게 되자 임지유도 발 빠르게 응수했다.[난 식사 약속이 있어서 이만... 다음에 얘기하자.][...]대화방엔 더 이상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다들 해
월요일 아침, 연미혜가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AI 학술지에서 그녀의 논문이 정식 게재 승인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잠시 후, 김태훈이 업무 관련해서 찾아왔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논문 게재 승인되었어요.”“난 예상했어.”그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유명욱 교수가 검토하고 좋다고 한 논문이라면 당연히 통과됐을 거라 믿고 있었다.업무 이야기를 마무리하던 연미혜가 시계를 흘끗 보며 물었다.“점심 같이 드실래요?”김태훈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오늘은 안돼. 약속 있어.”“무슨 약속이요?”“소개팅.
연미혜는 김태훈의 말을 듣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김태훈은 이력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물었다.“이력서는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실력은 어때?”“수준급이었어요. 인공지능 쪽에 입문한 지는 2년도 안 됐는데, 이미 대부분 박사급 개발자보다 뛰어나요.”“오... 그 정도야?”김태훈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타고났네. 마음에 들어?”“후보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며칠 못 가고 훌쩍 떠날까 봐 걱정이지?”“맞아요...”물론 CUAP이든 Infinite-CM이든, 구진원은 정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게
“봐야죠. 면접 끝까지 봐야죠.”그는 능청스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구진원입니다. 진실의 진, 원할 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연미혜는 간단히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력서 봤어요.”연미혜는 이력서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이제부터 제가 구진원 씨를 면접해 보는 건가요? 아니면 계속해서 저를 테스트하실 생각인가요?”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전 뭐, 둘 다 괜찮습니다.”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알고리즘에 강점을 둔다고 했다.연미혜는 그가 데이터 정제, 특성 엔지니어링, 하이퍼파라미터
연미혜가 아이리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9시가 넘어 있었다.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동료들과 친구들에게서 온 생일 축하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지만, 정작 경민준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연미혜의 미소도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저택에 도착했을 땐 벌써 10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유순자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보곤 순간 멈칫했다.“사모님, 말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민준 씨랑 솜이는요?”“대표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고 다솜 아가씨는 방에서 놀고 계세요.”연미혜는 짐을 유순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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