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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내 인생 리부트
이혼 후, 내 인생 리부트
Author: 구름속

0001 화

Author: 구름속
연미혜가 아이리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동료들과 친구들에게서 온 생일 축하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지만, 정작 경민준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연미혜의 미소도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택에 도착했을 땐 벌써 10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

유순자는 갑자기 나타난 그녀를 보곤 순간 멈칫했다.

“사모님, 말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민준 씨랑 솜이는요?”

“대표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고 다솜 아가씨는 방에서 놀고 계세요.”

연미혜는 짐을 유순자에게 건네고 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 딸이 작은 탁자 앞에 앉아 무언가를 정성스레 만들고 있었다.

귀여운 잠옷 차림으로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누군가 방에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솜아?”

경다솜이 고개를 돌리더니 밝게 외쳤다.

“엄마!”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다시 손에 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연미혜는 다가가 딸을 품에 안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지만 곧 밀려났다.

“엄마, 나 바쁘단 말이에요.”

두 달 만에 만난 딸이었기에 연미혜는 아무리 안아도 부족했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딸이 이렇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솜이 목걸이 만들고 있구나?”

“네!”

그 말에 경다솜은 한껏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면 지유 이모 생일이잖아요. 이건 아빠랑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이 조개껍데기들은 아빠랑 같이 직접 한 땀 한 땀 깎고 다듬었어요. 예쁘죠?”

연미혜의 목이 잠겼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그녀에게 딸은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지유 이모 선물도 따로 준비했대요! 내일이면...”

그 순간, 연미혜의 가슴이 세차게 조여왔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

“다솜아... 엄마 생일은 기억하고 있니?”

“네? 뭐라고요?”

경다솜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시 손에 쥔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엄마, 나한테 말 걸지 말아줄래요? 헷갈리잖아요...”

연미혜는 그제야 아이를 안고 있던 손을 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아주 오랫동안 아이의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다솜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결국 연미혜는 입술을 앙다문 채 말없이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내려오자, 유순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모님, 아까 대표님께 전화드렸는데... 오늘 저녁은 따로 일정이 있다고 하네요. 사모님께서 먼저 쉬시라고...”

“알겠어요.”

짧게 대답한 연미혜는 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 신호음이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나 지금 바빠. 내일 얘기하자.”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민준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야?”

임지유였다.

연미혜는 손에 쥔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과 함께, 경민준은 연미혜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두 사람은 벌써 두세 달째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렵게 아이리스까지 찾아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보러 오지 않았고, 심지어는 전화 한 통마저 이렇게 무성의했다.

그들이 함께한 결혼 생활 내내, 그는 언제나 이렇게 차갑게 거리를 두었고 조금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연미혜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그의 위치를 물었을 것이고, 조금만 시간을 내서라도 집에 돌아올 수 없는지 간절히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했던지라 그런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고민 끝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이리스와 한국은 18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즉, 아이리스에서는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었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이유는 두 달 만에 딸과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며, 무엇보다 오늘만큼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생일 소원이었는데...

경민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겨우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점심에 시간 있어? 솜이도 데리고 셋이 함께 밥 먹고 싶어.]

[알겠어. 장소 정해서 알려줘.]

[응.]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생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역시나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씻고 내려가려던 그녀는 우연히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다솜과 유순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사모님이 오셨는데, 다솜 아가씨는 안 기뻐요?”

“아빠랑 나는 내일 지유 이모랑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와버리면 엄청 어색해질 거 아니에요... 그리고 엄마는 너무 나빠요! 맨날 지유 이모한테 화내고!”

“다솜 아가씨... 사모님은 아가씨의 엄마잖아요. 이런 말 하면 사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알아요. 하지만 나랑 아빠는 지유 이모가 더 좋은걸요. 그냥 지유 이모를 엄마로 하면 안 돼요?”

“...”

유순자가 그 뒤로 뭐라고 말했는지, 연미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갓난아이 이때부터 그녀가 직접 키워온 딸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경민준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그에게 애착을 보였다.

작년, 경민준이 아이리스로 장기 출장을 떠나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했을 때, 경다솜은 어떻게든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연미혜는 떠나보내기 싫었고 딸이 자신의 곁에 머물길 바랐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상처받는 것이 싫었기에 결국 허락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연미혜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한동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 일부러 모든 일을 미루고 딸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아이리스까지 날아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온 연미혜는 정성껏 준비해 온 선물을 다시 조용히 캐리어 속에 넣었다.

잠시 후, 유순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모님, 다솜 아가씨랑 같이 잠깐 외출하려고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알겠어요.”

연미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순간 텅 빈 가슴속이 허무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모든 걸 뒤로하고, 먼 길을 날아왔지만... 아무도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녀의 존재란 마치 우스운 농담 같았다.

얼마 후, 그녀는 집에서 나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도심을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문득 아침에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잠시 집에 돌아가 다솜을 데리고 나와야 할지 고민했지만, 아침에 들었던 딸의 말이 또다시 귓가를 맴돌았다.

망설이던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고 역시나 경민준이었다.

[중요한 일이 생겼어. 점심 약속은 취소하자.]

연미혜는 잠시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놀랍지도 않았다. 이런 경우의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터였다.

경민준에게 있어, 일도, 친구도, 그 무엇도 아내인 그녀보다 중요했다. 그녀와의 약속은 언제든 깰 수 있는 것이었고, 단 한 번도 그녀의 감정을 고려한 적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속상했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미혜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차에 타고 무작정 어디론가 향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과거 경민준과 함께 자주 찾았던 레스토랑에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려던 순간, 창가 너머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경민준, 임지유... 그리고 경다솜이 보였다. 이 순간에도 세 사람이 함께였다.

임지유는 경다솜의 옆에 앉아 다정하게 아이를 챙기고 있었고 경다솜은 즐겁게 웃으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임지유가 한입 베어 문 디저트를 경다솜이 장난스럽게 받아먹으며 깔깔댔고, 두 사람과 마주 앉은 경민준은 그저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는 반찬을 집어 두 사람 앞에 놓아주었지만, 시선은 오직 한 곳, 임지유에게만 머물렀다.

연미혜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게... 당신이 말했던 중요한 일이었어?’

그리고 경다솜은 그녀가 열 달 동안 품고,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였다.

한참 동안,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돌아섰다.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서재로 향했다. 변호사와 연락해 이혼 협의서를 준비했고, 단호하게 서명했다.

경민준은 그녀의 소녀 시절, 가장 간절한 꿈이었으나, 그의 눈길은 단 한 번도 그녀를 향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결혼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그날 밤의 실수와 가문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어리석게도 믿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경민준이 자신을 바라봐 줄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거의 7년이었다. 이제는, 정말 깨달아야 할 때였다.

그녀는 조용히 이혼 서류를 봉투에 넣고 나서 유순자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민준 씨가 들어오면 전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캐리어를 손에 쥐고 차에 오른 그녀는 기사에게 짧게 말했다.

“공항으로 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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