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은 그녀는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남자의 문을 두드렸다. 단지 복수를 위한 하룻밤이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윤하경은 경성 상류층에서 빼어난 미모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순진한 헌신 때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약혼자의 배신 이후 그녀는 더 큰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뜻밖에도 최상위 계층의 한 남자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하룻밤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차갑고 단호한 태도로 그녀를 지배하며 그녀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그의 집착은 그녀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갔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게 얽혔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도, 순간의 방황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며 그녀는 그의 숨겨진 진심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제 그녀는 선택해야 한다. 그의 집착에 휘말려 그의 세계에 갇힐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 벗어날 것인지...
View More윤하경은 속으로 울고 싶었다.‘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어.’오건우는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어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윤하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흐트러졌다.“나랑 하룻밤만 있어. 계약 조건은 네가 정해.”윤하경은 모욕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죄송합니다. 오 팀장님, 저는 몸 파는 사람 아니에요.”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하다 보니 그녀의 말투는 좋은 편이 아니다.오건우도 이를 악물었다. 약 효과 때문인지 윤하경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았다.특히 윤하경의 벌름거리는 붉은 입술이 새빨간 금단의 열매처럼 보여 한 입 먹어보고 싶었다. 한 입만 먹으면 그는 곧 해방될 것만 같았다.“3년... 아니면 기간은 네가 정해.”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자기 욕망을 억제할 줄 아는 남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결국 약효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모든 모공이 지금 당장 이 여자를 품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있지만 그의 이성은 적어도 윤하경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해준다.윤하경은 이 순간 오건우가 이미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보았다.이 작은 방은 잡동사니를 넣은 창고 같았는데 안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고 텅 비어 있어 돌멩이도 보이지 않았다.“오 팀장님, 진정하세요. 저를 내보내면 의사를 불러줄게요.”그녀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방도 비서가 들고 있어 도움을 청할 방법조차 없었다.순간, 그녀는 울고 싶었다.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오건우는 마지막 이성마저 흐트러진 채 윤하경의 빨간 입술에 키스하려고 고개를 숙였다.윤하경은 급히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손이 테이블 옆에 놓인 꽃병에 닿았다.그녀는 내심 기뻐하며 주저 없이 꽃병을 들어 오건우의 머리를 내리쳤다.오건우는 그녀를 놓아주며 체력이 바닥 나서 쓰러졌다.윤하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발로 문을 걷어차서 열었다.문 앞에는 큰 키를 가진 남자가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윤하경은 오건우를 따라 정원으로 나갔다.이번 만찬은 교외 호텔에서 열렸기 때문에 밤의 정원은 실내보다 훨씬 고요했다.그녀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하이힐을 또박거리며 그를 따라갔다.“오 팀장님, 계시나요?”그녀의 목소리는 밤하늘에 맑게 퍼졌지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몇 걸음 더 나아가며 다시 불렀다.“오 팀장님, 어디...”“악...”그녀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비명을 질렀다.“소리 지르지 마. 나야!”“오 팀장님?”이 작은 방에는 불이 꺼져 있지 않았고 그저 정원의 가로등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왔다.윤하경은 눈을 깜빡이며 마침내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이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그런데 그녀는 곧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건우의 호흡이 너무 거칠어서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왜 그러세요?”“시치미를 떼긴.”오건우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찼다.“네가 한 짓이야?”윤하경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뭐라고요?”“나에게 약 먹인 거 말이야.”오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음산한 눈빛으로 어두운 조명을 뚫고 윤하경을 바라봤다.윤하경은 멈칫거리다가 욕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무슨 헛소리예요? 저는 그저 계약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에요.”“흥...”오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그녀의 간계를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윤하경은 그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정말 제가 아니라고요.”“그럼 왜 따라왔어?”오건우의 목소리는 점점 불안정해졌다.이 질문에 윤하경은 어이를 없어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말했잖아요. 저는 그저 계약에 관해 얘기하러 왔을 뿐이라고요.”이 말을 듣자 오건우의 입가에 비웃음을 흘렸다.“계약을 따내기 위해 약을 탔나 보네.”윤하경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제정신이 아니죠?”오건우는 이를 악물었다. 밑바닥에서 한 계단씩 이 자리까지 올라온 그는 갖은 속임수를 다 겪어왔다. 윤하경의 이 수단을 한눈에 간파하고는 뭔가 말하려고 할 때 마침 문밖에서 두 여자의
“오 팀장님.”그녀는 다가가서 오건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오건우는 즉시 손을 내밀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가 내민 손을 훑어보다가 눈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비쳤다.윤하경은 가까이서 그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는데 아마 오늘 밤 그에게 아부하러 파티에 온 여자로 생각한 모양이다.“저는 한빛 그룹의 신임 부대표 윤하경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그녀의 자기소개를 듣고서야 오건우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그제야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오건우예요.”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사람을 깔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윤하경은 약간 긴장되었다. 오기 전에 오건우의 자료를 보지 않고 그저 말투로 보아도 이분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아냈다.이제 이 사람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윤하경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오 팀장님, 시간 되시면 이야기 좀 나눠 볼 수 있을까요?”오건우는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두 눈은 물처럼 조용했다.“죄송한데 시간이 없네요.”윤하경은 그가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오건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윤하경을 에돌아 자리를 떠났고 비서가 다가와 속삭였다.“윤 부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우린 이미 오 팀장님과 여러 번 약속을 잡았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다음 달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이번에 계약을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는...”비서가 말을 다 하지 않았지만 윤하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취임하자마자 이미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았는데 만약 한빛 그룹에서 최대 고객사인 오 팀장을 잃으면 아마 회사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다.강현우도 비록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했지만 결국 한계가 있었다.그렇다고 앉아서 밑천만 바라고 놀고먹으면 언젠가 망하기 일쑤였다.“괜찮아요. 오늘 저녁에 기회를 찾아봐야죠.”비서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랬으면 좋겠어요.”비서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윤하경은 입술을 깨물며 바로 가서 샴페인 한 잔을 들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윤하경이 알았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나가보세요.”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를 문질렀다.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그녀는 무력감을 느꼈는데 마치 모든 일이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았다.얼굴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그때,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와 확인해 보니 비서였다.전화를 받자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안 부대표님, 회장님이 전화 연락이 안 돼요. 오늘 중요한 비즈니스 파티가 있는데 혹시 부대표님께서 저녁에 한빛 그룹을 대표해 참석할 수 있어요?”윤하경은 마음이 답답해서 거절하려고 물었다.“취소할 수 있어요?”비서가 난감해하며 말했다.“어렵습니다. 오늘 파티의 주최 측은 현재 우리의 최대 고객인데 그렇지 않아도 계약을 해지 의향이 있는 상태라... 만약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더 좋지 않을 거예요. 또 사전에 미리 초대장을 보냈고 저희도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회장님께서 연락이 안 되네요. 다른 사람은... 부대표님만큼의 위상이 안 되어서요.”윤하경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알겠어요. 주소를 보내주세요.”말을 마친 후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마침 점심때라 저녁 파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그녀는 약간 어지러운 머리를 문지르면 소지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요즘 일이 많아 소지연에게 연락할 생각을 못 했는데 이제야 상황을 물어보게 되었다.문자를 보낸 지 오래 지났어도 답장이 없자 그녀는 저녁에 일이 끝난 후 소지연의 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파티 시간이 다가오자 윤하경은 옷을 갈아입었다. 한빛 그룹을 대표해 이런 만찬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옷을 입어 너무 가볍게 보이지도, 너무 공식으로 보이지도 않게 하려고 그녀는 고민 끝에 실크 스트랩 원피스를 선택했고 밖에는 같은 소재로 만든 양복 외투를 걸쳤으며 액세서리로는 진주로 된 장신구를 골랐다.진주와 실크의 질감이 조화를 이루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는데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여 보이자 진한
윤하경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덕분에 폭주하던 윤수철도 잠시나마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뿐 그는 다시금 분노에 휩싸여 윤하경을 노려봤다. “왜 왔어? 설마 나 비웃으러 온 거냐?” “꺼져!” 그는 또다시 손에 잡히는 것을 윤하경에게 집어 던졌다. 윤하경은 몸을 살짝 틀어 피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 윤수철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화가 풀리신다면 저한테 던지셔도 돼요.” “어차피 저는 죽어도 상관없잖아요.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니 다시 낳으면 그만이겠네요.” 윤하경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윤수철은 이를 악물었다.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낮게 내뱉었다. “네가 감히... 내가 못 할 거 같아?” “아버지라면 할 수 있겠죠.” 윤하경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아끼던 윤하연은 사라졌고 이제 저까지 없어지면 아버지는 이 집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겠네요.”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면 조용하긴 하겠어요.” 윤수철은 콧방귀를 뀌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윤하경의 한마디가 그의 화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린 듯했다. 그녀는 그가 더는 난동을 부리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던 책을 치우고 털썩 앉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물었다. “이제 말해 보세요.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신 거예요?” 윤수철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뻔뻔할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가 더 괘씸했다. “어디 감히 네가 어른들 일에 끼어들어?” “당장 꺼져!” 윤하경은 어깨를 으쓱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잊으신 거 아니죠?” “제가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아직도 자기 머리 위에 그럴듯한 장식이 얹힌 걸 몰랐을 텐데요.” 그녀는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법
윤하경은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눈을 떴을 때 강현우는 이미 병실을 떠난 뒤였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멀찍이 앉아 있던 민진혁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윤하경 씨, 깨어나셨군요.” “네...” 윤하경은 아직 멍한 머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물었다. “현우 씨는요?” “대표님께서 아침 일찍 회사에 회의가 있어 가셨습니다. 대신 제가 남아 윤하경 씨를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상태가 많이 좋아지셔서 오늘 퇴원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퇴원 수속부터 밟을까요 아니면 아침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어젯밤 늦게 먹은 탓인지 윤하경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퇴원할게요. 집에 가고 싶어요.” 어제 하루 집을 비웠더니 어떤 상태일지 모르겠고 회사도 이틀이나 나가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병원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윤하경의 대답을 들은 민진혁은 즉시 병실을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공손하게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직접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의 태도는 한없이 정중했고 말투 역시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갖췄다. 윤하경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조용히 말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저 혼자 가도 괜찮아요.” “안 됩니다. 대표님께서 반드시 모셔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민진혁의 단호한 태도에 윤하경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괜히 신경 쓰느니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고마워요.”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하경은 옷만 갈아입고 곧장 회사로 가려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선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집이 엉망진창이었다. 가구며 장식품이 죄다 어지럽혀져 있었고 윤수철이 아끼던
윤하경은 손이 살짝 떨었다. 숟가락이 죽 그릇에 빠질 뻔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현우를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눈빛 깊은 곳에 서린 냉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등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와 맞설 때마다 결코 좋은 일이 없었으니까. 윤하경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말했다. “무슨 남자친구요? 그건 그냥 사람들이 오해한 거예요.” “오해?”강현우는 느긋하게 젓가락을 들어 연근 한 조각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올려놓았다. 반찬은 분명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윤하경은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 그의 말투가 너무 묘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은근히 비꼬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제가 오후에 병원에 왔을 때 마침 배경빈 씨를 만난 거예요. 제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그분이 의사를 불러준 것뿐이에요. 아마 의사 선생님 우리 관계를 착각한 것 같아요.” “그래?” 강현우는 가볍게 한쪽 눈썹을 올리며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윤하경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정말이지, 이 남자는 너무 까다로웠다. ‘어떻게 해야 납득을 시킬 수 있을까?’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손을 들어 맹세하듯 말했다. “정말이에요. 거짓말이면 제가 벌을 받을게요.” 강현우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카롭게 좁혀지던 눈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제야 그는 천천히 턱을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어.” 윤하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이 위기는 넘긴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 이미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그런데 옆을 돌아보니 강현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떠날
윤하경은 문득 자신이 한 질문이 어리섞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지훈이 이미 왔으니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 강현우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강현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네 표정 보니까 내가 오지 않기를 바란 거냐?”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정말?” 강현우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방금 그토록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떠오르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병실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꾸르륵...” 윤하경은 갑자기 자신의 배에서 나는 소리에 멈치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점심 이후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지금은 한밤중이니 배고픈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강현우 앞에서 이렇게 배가 고픈 소리를 내다니 마음 한 구석이 꺼림척했다. 그때 강현우는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병실에는 윤하경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침대 옆에 있는 불을 켜고 핸드폰을 꺼내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만사가 꼬였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닳아 있었고 더 불운하게도 충전기도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배고픔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배고픔을 잊으려 애쓰던 찰나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본능적으로 이불 속으로 몸을 움츠린 그녀는 그제서야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강현우라는 것을 확인했다. 강현우는 우아한 기운을 뿜어내며 병실에 들어섰고 그의 존재는 그 좁은 병실을 더 좁게 만들었다. 윤하경은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때 민진혁이 여러 개의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현우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까 현우 씨가 말없이 나갔던 건 나한테 먹을 걸 사다주려고 나
그 시각, 강현우는 재무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을 울리며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거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여자친구?’배지훈이 이런 식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윤하경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며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무언가 불편한 기운이 감도는 듯 그의 표정은 점마 굳어갔다. 그때 민진혁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강현우를 한 번 흘낏 쳐다보았다. “대표님, 헤븐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강현우는 잠시 말없이 화면을 응시한 뒤 천천히 고개를 들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옆에 있던 우지원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누군가 손을 댄 것 같아요. 경찰이 이미 출동해서 조사 중입니다.” 강현우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거친 손끝으로 입술을 문질렀다. 시간이 지나고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겠다. 나가자.” 민진혁은 당연히 강현우가 헤븐 쪽으로 향할 거라 생각하고 바로 차를 몰고 차고로 내려갔다. 하지만 차가 차고를 빠져나가자 뒤좌석에서 강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레니티 병원으로 가.” 민진혁은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미러를 보며 말했다. “병원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요?” 그는 뒷미러를 통해 강현우를 살짝 쳐다보았고 그 순간 강현우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그대로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민진혁은 곧바로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쥐고 차를 급히 몰았다. 한편, 세레니티 병원에서. 윤하경은 흐릿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열은 내려갔지만 여전히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주미나는 칼을 들고 자신을 쫓아왔다. 구지호를 대신해 복수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추격
경성 상류층 사람들은 윤하경이 구지호에게 목숨 걸고 매달리는 순정파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한밤중에 몸에 꼭 맞는 섹시한 슬립 드레스를 입고 강현우가 묵고 있는 호텔 방을 두드렸을 때, 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구지호가 알면 어쩌려고?”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목을 감싸안고 대담하게 입을 맞췄고 과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그의 입술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 향이 이상하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경성 상류층 사람들은 강현우가 여자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윤하경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분명했다.첫째, 강현우는 구지호보다 훨씬 강력한 인물이었고 구지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둘째, 강현우는 여자를 오래 곁에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곁에 머무는 여자는 길어야 한 달이다.구지호가 자신과 이복동생 윤하연과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윤하경은 주저 없이 강현우를 찾아왔다.구지호는 윤하경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믿음을 깨뜨릴 차례였다.‘나는 너 없이도 잘 살아!’강현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방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였다. 문이 닫히고 그는 윤하경을 문에 밀어붙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후회하지 마.”“현우 씨, 뭐 이렇게 질질 끌어요? 진짜...”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우는 그녀의 입술을 막으며 그대로 침대 위로 그녀를 던졌다.그 순간, 윤하경은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강현우는 이 방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능숙했고 처음의 고통을 제외하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생각보다 좋은데?’다만 이상했던 건, 여자와의 경험이 많다고 소문난 강현우가 이 밤만큼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는 점이었다. 두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눈 윤하경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강현우는 침대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첫 경험이야?”믿지 못하겠다는 그의 말투에 윤하경은 차갑게 웃었다.“걱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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