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경이 술을 마시는 모습은 금세 파티장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이전에 구지호의 기분을 신경 쓰느라 이들과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술잔을 드는 모습을 처음 보며 놀랐고 농담을 던졌다.“하경 씨, 오늘 정말 특별한 날인가 보네요. 이렇게 큰 판을 깔아주시다니요.”윤하경은 대꾸하기도 귀찮아했다.‘몇억 원짜리 계약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지.’그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띠고 강현우를 바라봤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이에 윤하경은 다시 잔을 들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큰 잔의 술을 급하게 마시다 보니 위스키가 입가에서부터 턱, 목선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녀의 쇄골과 드레스 속으로 스며들었다.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아무도 강현우가 그녀를 바라볼 때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몇 잔의 술이 넘어가며 윤하경의 얼굴엔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멈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옆에 앉은 여자가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윤하경은 멈추지 않고 이를 악물고 한 잔씩 더 마셨다. 몇 잔을 더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강현우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그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고 순간 윤하경은 동작을 멈췄다.문을 박차고 들어선 사람은 바로 구지호였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윤하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오늘 밤 계약하러 간다더니 이런 데 와서 술 마시고 있었어? 윤하경, 넌 자존심도 없어?”술기운에 흐릿했던 윤하경의 눈빛은 단숨에 차갑게 변했고 차분히 입술을 다물었다.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강현우가 먼저 나섰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윤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하경 씨, 일단 개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다시 저한테 와서 계약 이야기하시죠.”비즈니스와 관련된 말 같았지만 윤하경은 그 속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읽어냈다. 그녀가 더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큰 키와 존재감은 방 안
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윤하경을 바라봤다.“응?”윤하경은 손을 떨며 침착하게 말했다.“담배 한 대만 주실래요? 부탁드릴게요.”그녀는 몸이 떨려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강현우는 잠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차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가져왔다.“먼저 구급차부터 부르는 게 순서 아닐까?”윤하경은 담배를 받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핸드폰을 꺼내 구조를 요청했다.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강현우는 보상금이라며 1억짜리 수표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윤하경은 강현우가 우연히 구지호의 차를 들이받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주차장이 이렇게 넓은데 하필 그 차를 들이받다니, 세상에 그런 우연이 있을 리 없었다.하지만 강현우의 무심하고 태연한 태도를 떠올리면 그게 정말 우연 같기도 했다.윤하경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주미나가 걱정할까 봐 결국 구지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차 안에서 구지호는 화가 나서 계속 윤하경과 강현우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건 고의야! 내가 고소할 거야!”윤하경은 그런 구지호를 날카롭게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계속 떠들면 지금 당장 널 차 밖으로 던질 거야. 병원까지 걸어가고 싶어?”강현우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윤하경은 속으로 구지호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강현우와의 몇억짜리 계약이 무산된 상황에서 구지호가 더더욱 원망스러웠다.병원에서 구지호가 깁스를 마친 뒤, 주미나가 병원에 도착했다.“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야!”윤하경은 입술을 깨물더니 구지호를 힐끗 보며 담담히 말했다.“아줌마, 저한테 묻지 마시고 지호한테 물어보세요.”구지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뻔뻔해도 윤하경에게 강압적으로 굴다가 강현우의 차에 치였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할 수는 없어 결국 더듬거리며 대답했다.“그냥... 사고였어요.”그러자 주미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가 널 들이받은
윤하연은 손끝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말했다.“아빠, 언니한테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윤하경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가볍게 웃었다.“네가 챙겨준다면 더 고맙겠지.”그녀는 태연하게 식탁 한쪽에 앉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아빠, 그 말은 좀 아니죠. 하연이는 집에서 먹고 자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뭔가 해야 마음 편하지 않겠어요?”그 말에 임수연과 윤하연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임수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윤수철에게 말했다.“맞아요, 여보. 하경이가 틀린 말은 한 건 아니잖아요.”윤수철은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며 매섭게 윤하경을 노려봤다.“먹기 싫으면 나가!”하지만 윤하경은 더욱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왜 제가 나가요? 제가 여기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러면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잖아요.”그녀의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윤하경은 곁눈질로 서 있는 윤하연을 바라보며 덧붙였다.“빨리 앉아. 아빠를 더 화나게 하지 말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만 친딸인 줄 알겠어.”그리고 옆에 서 있던 집사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뭐 하세요? 제 그릇이랑 숟가락 빨리 가져다주세요. 동생 하연이한테 직접 가져오라고 할 순 없잖아요?”‘동생’이라는 단어를 그녀는 일부러 강하게 강조했다.윤하연은 머뭇거리며 조용히 식탁에 앉았지만 윤하경이 자리를 잡은 이후로 식탁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윤하경만이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갔다.끝내 침묵을 깬 것은 임수연이었다.“하경아, 어제 구지호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던데 괜찮아?”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끗 보며 웃었다.“궁금하시면 직접 가보시죠.”임수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금세 억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내가 간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그녀는 집사에게 말했다.“좋은 식재료 좀 사 와요. 보양식 끓이게. 하경이 너랑 하연이가 오후에 병문안 다녀오면 좋겠다.”윤하경은 그녀를 빤히 보며 비웃듯 말했다.“저는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하연이가 가서
온지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늘 모임이 있는데 강현우도 온대. 같이 갈래?]윤하경은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당연히 가야지.]그녀는 어릴 때부터 역경이 닥칠수록 더 강해지는 성격이었다. 강현우가 협력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는 이상, 윤하경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온지우가 보내준 주소를 확인한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정성껏 메이크업을 한 뒤 계약서와 기획안을 챙겨 목적지로 향했다.1층으로 내려가던 그녀는 소파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임수연과 윤하연을 발견했다.“엄마, 만약 지호 오빠가 언니랑 약혼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요?”임수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너는...”그 순간, 윤하경이 웃으며 말을 끊었다.“두 분, 남의 걸 어떻게 빼앗을지 의논하실 때는 좀 더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하시는 게 어때요? 제가 들으면 얼마나 서로 민망하겠어요.”윤하경은 계단을 내려가며 방금 한 말을 되새기며 만족스럽게 웃었고 임수연과 윤하연의 얼굴은 보기 좋게 굳어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뻔뻔하다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사실 그들이 거실에서 대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이유도 이해할 만했다.평소 주말이면 윤하경은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윤하경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려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윤하경은 두 사람 앞에 다가가며 웃음을 지었다.“굳이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돼요. 구지호 같은 사람은 제가 아쉬워할 상대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몰래 숨어서 속닥일 필요 없어요.”그녀의 독설에 두 사람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윤하경은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문을 나섰다.목적지까지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도착한 곳은 고급스러운 회장이었는데 입구에서 바로 직원에게 제지당했다.“죄송합니다. 오늘은 전관 대관이라 초대장이 필요합니다.”윤하경은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잠
윤하경은 강현우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날 밤의 혼란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며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며 화끈거렸다.하지만 강현우는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이 상황에서 그를 변태라 부를 수도 없으니 그녀는 그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저희 회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 계약을 체결하면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진심으로 임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이며 그의 반응을 살폈지만 강현우의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그러자 윤하경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또한, 어떤 요구사항이든 최대한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어떤 요구사항이든 가능하다고?”윤하경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며 강현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강현우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손가락으로 소파 팔걸이를 천천히 두드리며 탁탁 소리를 냈다. 느긋하게 들리는 소리였지만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며 점점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진 순간, 그는 입을 열었다.“이 계약 사인 못 할 이유는 없지.”그 말에 윤하경은 얼굴이 밝아졌지만 곧이어 들려온 그의 말에 멈칫했다.“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그녀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조건이요? 말씀만 해주시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그는 약간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내 조건은, 너야.”윤하경은 당황한 나머지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깜짝 놀라며 말했다.“네? 잠시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시 저를 여자 친구로 만들겠다는 건가요?”강현우는 입꼬리를 비웃듯이 말아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네가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이때 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네게 하루 시간을 줄게. 생각해 보고 계약서 들고 내 방 808호로 와.”그
한참 후, 방문이 열렸다. 강현우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의 표정엔 전혀 놀라움이 없었다. 마치 그녀가 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했다.샤워를 마친 그는 흰색 목욕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교차한 앞섶 사이로 느슨하게 묶인 허리띠 때문에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이 은근히 드러났다.평소에는 깔끔한 맞춤 정장을 입고 있어 늘 날씬하고 단정한 느낌을 줬지만 그의 몸은 정반대였다. 탄탄한 가슴과 복근은 그의 꾸준한 운동을 증명했다. 이런 남자를 본다면 누구라도 시선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강현우는 문 앞에 선 윤하경을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결정했어?”윤하경은 입술을 꼭 다물고 손에 든 계약서를 내밀었다.“조건이 있어요. 돈은 오늘 안으로 입금돼야 하고 한 달 동안만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강현우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로 끌어들였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그녀를 벽에 밀치고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키스했다.그의 익숙한 향이 그녀를 감쌌고 윤하경은 순간 놀라 손가락으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녀의 이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강현우의 입꼬리는 더 올라갔다.그는 그녀를 가뿐히 들어 올려 엉덩이를 받친 채 방 안으로 걸어갔다. 그의 능숙한 스킬은 윤하경을 더욱 당황하게 했고 그저 그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이번의 강현우는 지난번보다 더 거칠고 열정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열정에 윤하경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결국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몸이 공중에 뜨는 듯한 느낌에 눈을 떴다. 강현우가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이제야 끝났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자신의 생각이 너무 일렀다는 걸 깨달았다. 강현우는 그녀를 세면대 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시작했다. 그때의 상황은 그녀가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였다.그렇게 사랑을 나누면서도 강현우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다. 아무리 감정이
강현우와의 짧지만 뜨거웠던 만남이 떠오르며 윤하경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온지우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하경아, 왜 내 연락 씹어? 그리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긴 객실 구역인데. 강현우는 지금 뒤쪽 파티룸에 있어. 내가 데려다줄게.”윤하경은 당황하며 변명하려 했다.“잠깐만 지우야, 나...”하지만 온지우는 그녀에게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객실 구역을 빠져나가, 곧 다른 건물로 향했다.밖으로 나오자 해가 기울어 있었고 윤하경은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깨달았다. 즉, 그녀는 강현우의 방에서 거의 하루 종일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강현우가 있는 파티룸은 멀지 않았다. 온지우는 성급하게 걸음을 재촉하며 문을 열었고 방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그중 강현우는 카드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불과 몇 시간 전의 격렬했던 순간이 무색할 만큼, 그는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의 선명한 근육은 매력적이었고 차분한 분위기는 여전히 돋보였다.강현우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잠시 윤하경의 손목에 머물렀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고개를 돌리자, 차가운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그녀와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보였다.“어때?” 온지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카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추성운이 웃으며 말했다.“현우 형님이 있는데 누가 이길 수 있겠어? 하경 씨, 한 판 해볼래? 지면 내가 대신 내줄게.”윤하경이 대답하려던 순간, 강현우가 무심하게 말했다.“네 차례야. 카드 내.”추성운은 건성으로 카드를 한 장 내려놓으면서도 시선을 윤하경에게서 떼지 않았다.온지우는 이런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윤하경을 강현우 쪽으로 살짝 밀며 말했다.“현우 형님 카드 실력은 최고야. 하경아, 가서 형한테 좀 배워봐.”그러고는 자신이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듯 윤하경에게
추성운은 강현우가 윤하경에게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아쉬운 듯 어금니를 혀로 살짝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슬쩍 윤하경을 훔쳐봤다.'윤하경은 정말 매혹적인 외모를 가졌어. 강현우 같은 사람도 반하지 않을 수 없겠지.'강현우가 자리를 권하자 윤하경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어 그의 옆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강현우 특유의 은은한 우디 향이 코끝을 스치며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몇 판이 지나자, 강현우는 느긋하게 카드를 테이블 위에 던지며 말했다.“네가 해봐.”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진심이세요?”사실 그녀는 카드 게임에 큰 흥미가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지만 몇 판을 지켜보며 게임 규칙 정도는 익혔다.강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힐끗 보았다.“이기면 네 거고 지면 내 책임이야.”윤하경은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들었다."그럼 해볼게요."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고 판돈도 적지 않았다.비록 강현우의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작은 복수를 하듯 일부러 계속 지는 척하며 강현우를 곤란하게 만들었다.큰 카드가 손에 들어와도 그녀는 일부러 내지 않고 꼭 붙들고 있었다. 판이 끝날 때마다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죄송해요, 현우 씨. 제가 워낙 서툴러서요.”강현우는 담배를 물고 그녀를 느긋하게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무심함이 묻어났다.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윤하경은 1억을 졌다. 그녀가 다시 한 판을 준비하려는 순간, 뜨거운 온기가 느껴지며 강현우가 그녀 뒤에서 다가왔다.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이렇게 못한다고 소문나면 내 체면만 떨어지겠지.”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카드를 빼내 한 장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손등이 스치자 윤하경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겉으로는 성숙하고 대담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사실 그녀를 잘 아는 사
임수연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흥미로운 눈길로 임수연을 바라보았고 임수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건 이유가 있어요. 여보, 저를 믿어 주세요. 정말로 당신을 배신한 게 아니에요.”윤수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에 있던 물컵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고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그는 이를 악물며 임수연을 노려보았다.“이 사진이 진짜라고 인정해 놓고도 그딴 소리를 해? 날 뭐로 보는 거야? 감히 날 이렇게 우습게 만들어?”“아니에요! 저 정말 그런 게 아니에요!”임수연은 당황한 듯 몸을 바로 세우더니 고개를 들고 윤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말 좀 들어봐요. 아이들 앞에서는 이야기하기 곤란해요. 그러니까 아이들 먼저 내보내요.”윤수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야? 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이혼이야.”그는 원래부터 강한 남성우월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그런데 이런 사진까지 공개되었으니 그에게는 굴욕 그 자체였다.자존심이 짓밟힌 지금, 그는 더 이상 임수연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임수연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윤하경과 윤하연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숨을 깊이 내쉰 뒤,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여보, 내가 이렇게 한 건 다 당신을 위한 거예요.”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한쪽에서 윤하경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황당무계한 변명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아마 임수연이 유일할 것이다.윤하경은 거실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미안해요,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네요. 계속하세요. 저는 없는 셈 칠게요.”그녀는 종이 냅킨을 집어 들고 입가를 닦으며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임수연은 눈에 독을 품고 윤하경을 노려보았다. 오늘 이 일이 윤하경과 무관할
윤하경은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뜨고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평소에 하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아줌마, 아버지가 이렇게 잘해 주셨는데 아버지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어요?” 임수연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옆에 있던 윤하연은 이를 악물고 윤하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지! 네가 꾸민 짓이지! 우리 엄마를 모함하려고!” 윤하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윤씨 가문에서 쫓겨나기 싫은 건 이해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가진 걸 지키려고 아무에게나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옳지 않지 않겠어? 이건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수철을 바라보았고 일부러 안타까운 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윤수철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했다. 마치 자신의 죽은 아내를 떠올리는 듯한 착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윤하경의 눈빛에 담긴 묘한 동정과 실망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고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윤하경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곧 심장병 발작...’ “유 집사님, 빨리 심장약 가져와요!” 쇼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윤수철이 이렇게 빨리 쓰러지면 너무 싱겁다. 유 집사는 허둥지둥 약을 가져왔고 윤하경은 직접 물을 따라 건넸다. “아버지, 약부터 드세요. 이런 일로 건강까지 해치시면 안 되죠.” 윤수철은 그녀의 손에서 약을 받아들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무릎 꿇고 울며 매달리던 건 임수연이었고 위로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윤하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 의외로 재미있는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임수연을 바라보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임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지금은 윤하경을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고 다시 들었을 때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보...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윤하경은 속으로 눈을 굴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졌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상처를 소독하면서 일부러 손에 힘을 줘 눌러보았지만 강현우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고 끝까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마치 아예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인내심에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붕대를 마무리한 후, 강현우는 마침내 그녀를 놓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거실에 윤수철이 앉아 있었고 표정은 썩 좋은 기색이 아니었다. 윤하경을 보자마자 윤수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 전화도 안 받고.” 윤하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버지가 저한테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이 있어야만 너를 찾을 수 있는 거냐?” “아니라면 그냥 올라가 볼게요.” 어젯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오늘도 충분히 쉬지 못했다. 계단을 오르려던 순간, 거실에서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여전히 사모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윤하경의 걸음이 멈추면서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임수연이 사라졌다고?’“흥.” 윤수철은 콧방귀를 뀌며 화난 듯 말했다. “계속 찾아봐.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윤하경은 순간 뭔가 떠올라 곧장 방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난번 사진. 내가 준 번호로 익명으로 보내. 응, 당장. 지금.” 그녀는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이미 받아둔 자료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윤수철이 오늘 언급하지 않았다면 더 늦어질 뻔했다. 5분 후. 거실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도자기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윤하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곤란한데.”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애피타이저일 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우가 자기 침대에서 죽기라도 하면 강씨 집안에서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녀가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리 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고 유심히 들으면 약간 허스키까지 했다.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고 조심스레 그의 옆으로 다가가자 강현우의 등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젯밤, 그녀가 직접 절개했던 상처가 아직도 선명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고 꽤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근육과 함께 보니 오히려 강렬한 야성미가 느껴졌다. 윤하경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자, 강현우가 미세하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깃 봤다. “다 봤어?” “아, 네?” 그녀는 당황해 얼버무리다, 결국 말을 꺼냈다. “현우 씨, 등에 난 상처가 생각보다 심한데요. 다른 일들은 좀 미루시면 안 될까요?” 나름 조심스럽게 돌려 말했지만 강현우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오? 다른 일이라면 어떤 일인데?” 윤하경은 할 말을 잃었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떤 말을 해도 저 사람이 비꼬면서 받아칠 게 뻔했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물자, 강현우는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당겨지자, 그녀는 그대로 소파로 넘어지려 했다. 그러나 강현우가 그녀를 가볍게 붙잡아 균형을 잡아주더니 그대로 품에 가둬버렸다. “뭐야, 나 무서워?” “아, 아니요.” 윤하경은 그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몸을 빼내려고 하자, 강현우는 더욱 강하게 팔을 조였다. “저, 저 좀 놔주세요. 그렇게 급해요? 몸도 다 낫지 않았는데?” “내가? 급하다고?” 강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윤하경을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그일 말이에요.” 윤하경은 숨이 턱 막혔다.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뭘
강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등을 돌렸다.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벌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으러 가는 듯했다.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강현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더욱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하지만 강현우는 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러나 사당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다급히 달려온 한선아가 강현우의 앞을 막아섰다.“아버지, 현우는 방금까지도 큰 부상을 입고 있었어요. 이렇게 벌을 받게 하시면 안 됩니다.”“어머니.”강현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빛을 살짝 가라앉혔다.“여기까지 왜 오셨어요?”한선아는 강현우의 몸 상태를 살피듯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네가 ‘옥제당’를 불태웠다는 말을 듣고...”강현우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무표정해졌다.“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는 단호하게 말을 남기고는 그녀와 강호석을 뒤로한 채 사당을 떠났다.“저게 네가 그렇게 아끼는 아들이냐!”강호석은 수염을 흩날리며 노기를 터뜨렸다.그는 강현우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대신, 곁에 남아 있던 강현우의 어머니에게 모든 화풀이를 쏟아냈다.“아버지, ‘옥제당’의 손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그녀는 억울함을 삼키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나 강호석은 불만스러운 듯 코웃음을 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사당에서 나온 강현우는 한쪽에서 몰래 기다리고 있던 우지원을 발견했다.우지원은 강현우가 온전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강현우는 그의 존재를 전혀 놀라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어머니는 네가 부른 거야?”우지원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아니 대표님이 괜히 심하게 맞을까 봐... 그냥 혹시 몰라서.”강현우는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올라탄 뒤,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그의 목소리에 담긴 냉기가 우지원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알겠어요.”우지원은 짧게 대답한 뒤 입을
강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등을 곧게 편 채로 조용히 돌아섰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벌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으러 가는 듯했다. 뒤에서는 강현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끊이지 않았지만 강현우는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우지원은 그런 강현우를 따라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형, 그냥 바로 끝내면 되잖아. 이렇게 본가에서 일을 벌이면 할아버지가...” 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형, 내가 대신 맞을게. 형 몸도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잖아.” “넌 ‘헤븐’으로 돌아가.” 강현우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지원은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돼. 난 못 가.” 강현우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그 표정을 본 우지원은 그가 화를 내기 직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얼마 전 강현우가 반쯤 죽은 상태로 돌아온 모습을 떠올리자 도저히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우가 내린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지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형, 조심해.” 그는 세 번이나 뒤돌아보며 아쉬운 듯 본가를 떠났다. 강현우가 사당에 도착하자, 그곳을 청소하던 하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잠시 눈을 내리깔고는 조용히 사당을 빠져나갔다. 강현우는 사당 안을 가득 채운 조상들의 위패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경멸이 담겨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 불효자 놈, 무릎 꿇지 못해?” 강호석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현우는 천천히 돌아서더니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묵묵히 무릎을 꿇었다. “사람을 불러, 집안 규율대로 처벌하겠어.” 강호석이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한 하인이 두꺼운 회초리를 들고 앞으로 다가왔다. 어린아이 팔
강현석은 이를 악물고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자, 두 여자가 겁에 질린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그는 대충 욕실에 걸려 있던 가운을 걸치고 창문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아래에서 여유롭게 앉아 있는 강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며 태연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강현석이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자, 강현우는 손가락 마디가 도드라진 손을 흔들며 가볍게 인사했다. “형, 참 우연이네.” “강현우, 미쳤어? 여기가 어디인 줄 알아? 여긴 본가야!” 강현석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러나 강현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 태양 빛을 받은 목선을 드러내며 그저 느긋하게 웃었다. “그래서?” 그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형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강현석은 이를 갈며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우지원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오늘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뒤에서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길이 점점 번지고 있어요!” 강현석은 이를 악물고 순간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죽느니 차라리 다치는 게 낫겠지.’ 그는 이를 꽉 깨물고 망설임 없이 2층에서 몸을 던졌다. “쾅!” “으악!” 2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몸은 강현우처럼 단련된 것이 아니었기에 착지와 동시에 다리뼈가 부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지만 강현우를 향해 이를 악물고 독하게 노려보았다. “두고 봐, 할아버지가 오시면 넌 끝장이야.” 그러나 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도 조용히 웃으며 우아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강현석의 부러진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발로 짓눌렀다. “으악!” 강현석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강현우, 미쳤어?” 그는 고통 속에서도 소리쳤다. 그러나 강현우는 얼굴에 냉소를 띠며 조용한 목소리로
우지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너무 마음이 약하십니다. 강현석 같은 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인데 그냥 싹을 잘라버리는 게 맞지 않습니까?” 강현우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가서 주기석에게 전해. 가격을 3% 더 올려서 배상하는 걸로 하겠다고. 그리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 “강현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 당장 찾아.” 우지원은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띠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돌아왔다. “대표님, 강현석은 지금 본가에 있습니다.” 강현우는 비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좋은 장소를 골랐군.” 그는 ‘겁쟁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진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났다. 문제를 일으켜 놓고도 살고 싶어 본가로 도망쳤다는 사실이 가소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본가에 있으면 자신이 손도 못 댈 거라고 착각한 건가? 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명령했다. “차 가져와. 본가로 간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곧은 자세로 본가 거실에 들어섰다. 거실에서는 한 노인이 차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고 그는 강현우를 보자마자 비웃음을 지었다. “오호, 이제야 돌아올 마음이 들었나 보지?” 강현우는 그의 냉소를 못 본 척하며 담담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현우는 손주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녀석이었으나, 유독 이놈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 “지난번에 당한 상처는 다 나았느냐?” “네.” “네 놈, 목숨 하나는 질기군.” “그래, 이제라도 네가 잘못을 깨달았느냐?” “아닙니다.” 그의 뻔뻔한 태도에 노인은 이를 악물고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놨고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좁혀졌다. “당장 가서 사당 앞에 무릎 꿇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강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
“네?”우지원이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봤다.“왜 꼭 제가 있어야 하는 건가요?”윤하경이 묻자 우지원은 가볍게 웃었다. 얼굴에 남아 있던 핏자국이 그의 미소를 더욱 날카롭게 보이게 했다.“아마도, 강 대표님께는 윤하경 씨가 특별한 존재여서 그런 거겠죠.”그는 말을 끝내지 않았다. 강현우에게는 오래전부터 깊은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함부로 꺼냈다간, 그가 깨어난 후 자신부터 처참한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사실, 처음에 연락했을 땐 별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대단하시네요. 이번 일은 제가 신세를 졌습니다.”윤하경은 손을 흔들며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우지원은 이미 등을 돌려 걸어가고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고 온몸의 힘이 빠진 듯, 침대 옆에 기대어 깊은숨을 내쉬었다.조금 전까지 봤던 피투성이의 광경이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고 두근거리던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남아 있는 따뜻한 피가 강현우의 체온을 떠올리게 했다.멍하니 손을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우지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강 대표님에게 윤하경 씨는 특별한 존재니까요.”‘정말 내가... 특별한 존재일까?’윤하경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윤하경,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헛된 기대는 할 필요 없어.”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고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뜨거운 물을 맞으며 오늘 하루를 정리한 뒤 깨끗이 씻긴 머리카락을 말리며 침대로 돌아왔다.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침대에 몸을 눕히는 순간 정신을 잃을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녀가 얼마나 잠들었을까. 어느 순간, 따뜻한 기운이 이불 속으로 스며들었다.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러나 깊이 잠든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곁에 누운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이렇게 깊이 자면... 사냥감이 사냥꾼에게 먹히기 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