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의 명령에 한민혁은 성은우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은찬이더러 안에서 지켜보라고 말한 뒤 다시 내려갔다.그 사이 민도준은 1층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그 모습을 본 한민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민도준 앞으로 걸어갔다.“도준 형, 사람은 위층으로 보냈어. 블랙썬에 진씨 가문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어떡할래?”민도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접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민도준한테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읽어낼 수 없었다.그때 한민혁이 위층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민용재 쪽에서 움직임이 끊이질 않는 것 같은데 요즘 박씨 가문과도 가깝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 시영 아가씨도 민용재네랑 왕래하는 것 같고. 이런 때에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돼.”눈빛 한 번에 한민혁은 바로 목소리를 낮춘 채로 작게 웅얼거렸다.“바람 피우는 현장을 덮치겠으면 위층에서 덮쳐야지 여기서 뭐가 보인다고.”“뭐라고?”순간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한민혁은 스스로 입을 찰싹 때리더니 어색하게 웃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 아니면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테니 블랙썬 한번 갔다 오는 건 어때?”하지만 민도준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위층에서 갑자기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갓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듬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열심히 불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연주 소리였다. 심지어 듣기에 그닥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지는 매력이 있었다.그 시각, 위층에서는 점점 익숙해진 하모니카 소리가 활짝 열린 방에서 흘러나왔다.성은우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모퉁이에 기대 한번 또 한 번 의자에 앉은 여자를 위해 그녀가 가르쳐줬던 멜로디를 연주했다.바람이 불자 은찬은 담요를 가져다가 권하윤에게 덮어주려고 하다가 권하윤이 눈물을 글썽이며 성은우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순간 눈이 반짝 거렸지만 권하윤을 놀라게라도 할까 봐 은찬은 아무 말도 없이 물러갔다.성은우는 권하윤의 시선을 느꼈는지 하모니카
오후의 햇살은 마룻바닥을 밟으며 슬며시 방안으로 비춰들어 침대 끝자락을 닿을까 싶더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 때문에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심지어는 남자의 포악한 분위기에 놀랐는지 조금씩 뒤로 물러나다 조용히 창문으로 빠져나갔다.그와 동시에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고 권하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컴컴한 밤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몸을 살짝 움직이고 나서야 권하윤은 자기 손이 민도준의 팔을 감싸고 있고 몸 전체는 민도준의 품에 기대 있다는 걸 알아챘다.얼마나 잠잤는지 사지가 아파 났다.“이제야 깨났어?”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권하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하지만 다음 순간 방안 불이 켜지는 바람에 권하윤은 눈을 감았다 떴다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시선이 점차 또렷해졌다.그와 동시에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이던 남자의 윤곽이 눈 안에 들어왔다.민도준은 어쩜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잘생긴 데다 공격적이고 위험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심지어 권하윤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다.하지만 이상했다.분명 가까운 데 있는데 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으니.호박색 눈동자에 당혹함이 담겨 있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의 이런 표정을 거의 본 적 없다.예전에는 그저 비위를 맞추려고 머리를 굴리거나 아니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현재는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민도준의 눈부터 시작해 코 그리고 턱에 닿았다.그런 눈빛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민도준은 끝내 차가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왜? 설마 기억상실이라도 했다고 할 건가? 이제 나를 모르겠어?”자기가 또 미움을 샀다는 걸 인식한 권하윤은 눈을 내리깔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권하윤이 죽상이 된 모습을 보자 민도준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공기 속에 흐르는 고요함.이런 고요함은 사흘 동안 지속됐다.그리고 마침 나흘인 오늘 밤, 권하윤은 우렛소리에 놀라 깨어나더니 무의식적으로 옆에
권하윤은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오직 민도준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고 싶다는 데만 정신이 팔렸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이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애먼 이불만 손가락으로 뜯었다.그러다 끝내 불이 다시 꺼지는 순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둠 속에서 권하윤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니, 잘 수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보는 순간 머리에 여러가지 생각이 흘러들었다.‘민용재가 그랬나? 아니면 다른 원수?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이건 저도 알아요. 옛말에 영웅도 미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잖아요.”이튿날 은찬의 해석을 들은 권하윤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나 진지해.”“저도 진지하게 설명한 건데요?”은찬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민 사장님도 여인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해 매일 이 별장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패턴을 읽혀 매복하고 있던 놈들에게 당한 거고요.”패턴…….확실히 그건 맞았다. 민도준이 매일 저녁 개인 별장에 와서 휴식하니 만약 민용재가 또 암살을 저지른다면 뒤를 밟을 필요도 없이 별장 주위에 매복하고 있기만 해도 되니까.민용준이 또다시 암살을 저지르려 하는 걸 보니 마음이 많이 급한 모양이다.그 생각을 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음식조차 넘어가지 않았다.은찬도 권하윤이 정신이 딴 데 팔렸다는 걸 알았기에 눈을 깜빡이며 장난기 섞인 말을 꺼냈다.“민 사장님이 걱정되면 전화 해보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저 이번 달 보너스도 생길 것 같은데.”권하윤은 멍해졌다.“그 말 도준 씨가 한 거야?”“민혁 형님이 그랬어요. 제가 누나와 민 사장님을 화해하게 하면 보너스를 챙겨주겠다고. 게다가 저를 중매쟁이로 모시겠대요.”은찬이 일부러 자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챈 권하윤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려 억지웃음을 지어냈다.아침을 먹고 방에 돌아오고 나서 권하윤은 창가에 앉아 멍때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밖을 내다보니 조용하기 그지없었다.보아하니 민상철이 사람을 모두 통제한 모양이었다.그제야 민도준이 요즘 왜 매일 별장에 오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 민상철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겠지.하지만 권하윤은 두렵지 않았다. 만약 민상철이 지금 당장 권하윤을 죽이려 한다면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소파에 앉은 권하윤은 이내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이렇게 늦게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권하윤의 여유작작한 말투에 민상철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참 쉽게도 내뱉네.”“저를 양손녀로 들이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예전 같았으면 민상철은 이 시간에 벌써 휴식을 취했을 거다. 때무에 불빛 아래에 있는 민상철의 낯빛은 조금 어두웠다.“내가 왜 왔는지는 알 거다.”나이가 든 눈에는 냉철함과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너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네가 이리도 야심이 있을 줄은 몰랐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야심이 있다 해도 민 사장님이 더 만만하지 않을 텐데요.”권하윤은 웃음이 나 그저 생각한 바를 말했지만 민상철이 듣기에는 그저 불에 기름을 붓는 거나 다름없었다.“그만하지 그러니. 결혼 날짜도 잡았으면서 시치미 떼긴!”“결혼 날짜요?”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권하윤은 그저 멍해졌다.‘결혼 날짜? 누구 결혼 날짜를 말하는 거지?’민상철의 진노하는 어조 속에서 권하윤은 뭔가 조금 눈치챘다.아니나 다를까 민도준은 얼마 전 박 대표가 딸 박민주를 위해 혼담을 꺼낸 걸 거절했다고 한다. 23일에 결혼할 거라고 박 대표가 박민주를 데리고 와서 함께 즐기다 가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의 헛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라면서.신부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23일이라면…….그건 민도준이 전에 권하윤더러 결혼 날짜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권하윤이 선택했던 날짜다.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민상철이 빈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그리고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도준 씨가 미쳤나?’권력다툼을 하
권하윤은 뒤에 들려오는 몇 마디는 듣지 못하고 앞에 한마디만 들었다.‘도준 씨가 박민주와 결혼하면 후계자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그런데 그런 기회를 그대로 거절했다는 건가?’가슴에 순간 뜨거운 물이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만약 그걸 동의했더라면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울 필요가 없을 텐데.순간 자기에 대한 혐오감이 더해졌다.‘나는 어디를 가나 짐밖에 되지 않네. 은우한테도, 도준 씨한테도.’오랫동안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민상철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살기를 번뜩였다.“고민해 보죠.”권하윤은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민상철은 그것에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끝까지 망치려 한다면 그냥…….’민상철이 잠깐 고민하고 있을 그때.갑자기 “아!”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그러더니 곧이어 민상철 신변을 지키는 경호원이 안으로 날아들었고 덩치 큰 몸뚱아리는 마치 낙엽처럼 바닥에 미끄러 민상철 암에 멈췄다.남자는 피떡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어르신, 저 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하지만 그 소리마저 그를 그렇게 만든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 뚝 끊겼다.현관에서 민도준은 고개를 움직이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손에는 자기 것이 아닌 피가 흐르고 있었다.이윽고 그 피를 아무렇지 않은 듯 털어버리고는 웃으며 민상철을 바라봤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뭐 손주며느리 뻘 되는 여자와 간통이라도 하려고요?”“…….”권하윤은 절망한 듯 눈을 감았다. 민상철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어떨지 짐작이 갔다.역시나 곧이어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못된 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민도준은 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는 경호원을 발로 밟고 비명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 민상철 앞으로 다가갔다.“제가 틀린 말 했나요? 사람을 시켜 며칠 동안 관찰하게 하다가 제가 없는 날 찾아온 걸 보면 의심이 안 갈 수 없는데요.”“민도준!”민상철은 민도준의 이름만 부르고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하지만 장 집사는 다른 경호원들과 마찬가지로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깃들어 캄캄했고 공기 속에는 아직 어제의 폭우 때문에 남은 습기가 서려 있었다.민상철이 떠난 뒤 민도준이 밖으로 나가 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명령하자 사람들은 모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민도준은 하려던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권하윤을 발견했다.“오늘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우물대다 어렵사리 내뱉은 말이었지만 여전히 분유처럼 덩어리가 져 제대로 풀어지지 않았다.“그래서? 내일 시신 수습하러 올까?”모든 걸 알게 된 권하윤은 마치 산을 등에 업은 듯 무거워 고개도 들지 못했다.“제가 죽으면 오히려 편해질 거라면서요.”민도준은 권하윤의 말에 피식 웃더니 권하윤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땅 파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살아.”익숙하면서도 장난기 섞인 말투에 권하윤은 눈가가 시큰거리더니 눈앞이 희미해졌다.슬프고, 미안하고, 원망스럽고, 마음 아프고 또 감동스럽고…….여러 가지 대립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출구를 찾지 못해 좌우충돌하는 것만 같았다.가장 사람을 피 말리는 건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다.오히려 그 경계선에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는 것이지.“또 왜 울어?”귀찮고도 짜증 나 하는 말투였다.권하윤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그저 흐느낌밖에 나오지 않았다.손을 들던 민도준은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권하윤의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다.“맨날 울기만 하네.”“…….”“얼씨구? 말했다고 더 울어?”권하윤도 울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유일한 분출구였다.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이, 어느새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민도준은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권하윤을 보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다 울었어?”하지만 아직도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 권하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을 목 끝까지 끄집어 올리고는 민도준을 등진 채 슬픔 가득한 뒤통수만 남겼을 뿐.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의 불은 꺼지고 침대 머리맡에
권하윤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만 끝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설마 못 들었나?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건가?’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권하윤은 갑자기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민도준은 그저 23일에 결혼식을 올린다고만 했지 상대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는 거.그런데 그저 날짜만 듣고 자기라고 확신하다니. 아니라면 이런 물음을 묻는 것마저 어색한 상황이 된다.이에 권하윤은 퇴로라도 마련할 생각으로 한마디 더 보충했다.“누구랑 결혼하는지 물어봐도 돼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덜미에 손이 얹히더니 민도준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사실 나도 아직 선택하지 못했는데. 하윤 씨가 나 대신 선택해 주는 건 어때?”권하윤은 큰 손에 잡혀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민도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흘겼다.“박민주 씨는 어때요?”“박민주?”민도준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뭐, 괜찮기는 하지. 집안 좋지 나밖에 모르지…….”민도준이 박민주의 장점을 하나하나 열거할 때마다 권하윤의 손은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하지만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말머리를 틀었다.“그런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 몸도 대뇌처럼 아직 덜 익었어.”“풉-”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머리카락으로 애써 가리느라고 애를 썼다.확실히 민도준다운 대답이었다. 박민주는 겉보기에도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아직 천진난만하여 쫓아다니는 남자가 절대 적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렇게 평가하다니.그때 민도준이 뒤로 몸을 기대며 느긋하게 물었다.“뭘 웃어? 계속 선택해.”“그러면 고은지 씨는요?”“고은지는…….”민도준은 끝 음을 길게 늘어트리더니 말을 이었다.“말 잘 듣지, 학습 능력 뛰어나지, 확실히 좋은 선택지긴 해.”나지막하고도 야릇한 목소리를 듣자 권하윤이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내심 또 민도준이 말머리를 돌릴 거라고 기대했지만 끝내 말이 돌아오지 않아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렇게
몇 번 버둥댔지만 오히려 눌리는 힘만 더 거세지는 힘에 권하윤은 억울했지만 화를 내지 못하고 그저 불만을 토해냈다.“얘기하고 있는데 뭐 하는 거예요?”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일부러 몸을 아래로 눌러 권하윤의 생존 공간을 줄였다.이윽고 권하윤이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자 귓가에 대고 속살거렸다.“말하고 싶으면 말해, 난 내할 일 할 테니까. 이래야 효육적이지 않겠어?”오랫동안 서로 맞닿지 않은지라 익숙하고도 강력한 기세에 눌려 권하윤은 다리가 후들거렸다.심지어 저항하는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다가 점점 야릇한 톤으로 변했다.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확함과 갈등은 남자에 의해 하나둘씩 깨졌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고 온 세상에 그저 야성적인 숨결과 권하윤을 속박하는 힘만 남은 것처럼 권하윤을 가두었다.정신이 그나마 남아 있을 때 민도준은 권하윤의 귀를 살짝 물며 악랄한 말투로 물었다.“할 말 있다더니 왜 말하지 않아?”그 말조차 자꾸만 몽롱해지는 정신 때문에 어렵게 들은 거다.다만 머리가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자 그저 민도준의 말을 반복했다.“말하지…… 않냐고요?”권하윤의 얼굴은 어느새 술에 취한 듯 발그스름해졌고 눈동자는 몽롱해져 나쁜 마음을 자극했다.“나랑 결혼하고 싶은지 말해. 매일 이렇게 나한테…….”살짝 잠긴 목소리는 권하윤의 귓가에서 힘 있고도 야릇한 말을 속살거렸다.원래도 뇌가 흐리멍덩했는데 민도준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자 내비치지 않으려고 애쓰던 마음마저 모든 걸 뚫고 나와버렸다.‘도준 씨랑 결혼하고 싶냐고?’권하윤의 망설임은 그대로 민도준의 눈에 들어와 원래도 무섭던 눈은 더 침략적으로 변했다.‘입 열게 할 방법은 많아.’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흐물흐물해진 권하윤은 민도준의 어깨를 잡고 애원했고 민도준이 다시 똑같은 물음을 물었을 때 끝내 방어선이 허물어져 울음을 터뜨렸다.“좋아요. 결혼할래요.”“착하네.”민도준은 큰 손으로 권하윤의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더니 칭찬이라도 하듯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