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배정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임슬기에게 프러포즈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주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1년 후 그녀는 예기치 못한 유산을 겪었고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임슬기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녀를 집에 가둬버린 배정우. “이혼? 꿈도 꾸지 마. 넌 평생 죗값을 치러야 해.” 임슬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우야, 나 폐암 말기래. 죽어가는 날 잡을 수 있겠어?”
Lihat lebih banyak“모른다고? 그럼 독 먹인 건 어떻게 아는데?”배정우가 시선을 들어 차갑게 노려보자 육문주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나랑 슬기 씨 사이의 일인데요. 형이랑은 상관없어요.”임슬기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린 진범이 배정우였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육문주의 마음속엔 쌓인 게 많았다.자기가 그렇게 도와줬는데, 돌아온 건 뭐였나?그 순간 배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누가 너한테 슬기 이름 함부로 부르라고 했어.”“그럼 뭐 이제 와서 형수님이라고 불러요?”육문주는 배정우가 무섭긴 했지
“재혼이라니?”김현정이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걸 알기에 임슬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 전에 일단 이혼부터 해야지.”“그래서 이혼하면 재혼할 생각은 있어요?”김현정이 진지하게 다시 묻자 임슬기의 눈빛에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임슬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현정아, 자꾸 장난치지 마. 내가 이혼한다 해도, 지금 이런 나를 마음에 들어 할 남자가 있을 것 같아?”결혼한 적도 있고, 두 번이나 유산하고, 한 사람을 17년 동안 사랑하고, 가슴에 피보다 짙은 원한을 안고 살아가는 데다 말기 폐암 환자인 여자.
배정우가 팔을 뻗어 진승윤의 목을 움켜쥐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뭘 하든 네가 참견할 일은 아니야.”진승윤은 목이 짓눌리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뿌리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너 슬기랑 종현이 사이 억지로 갈라놓고, 애한테 그런 증오를 심어준 게 진심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해? 너랑 연다인 일에는 솔직히 나도 관심 없어. 하지만 종현이는 이제 슬기한테 돌려보내야 하잖아.”배정우는 코웃음을 치며 조수석을 가리켰다.“좋아.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 봐. 직접 물어보지 그래, 본인이 가겠다고 하는지?”잠시 멈칫하던
“종현아?”임슬기가 성큼 앞으로 다가가 임종현을 와락 껴안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누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었어.”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임종현은 임슬기를 거칠게 밀쳐냈고 그녀는 중심을 잃고 김현정 품에 쓰러졌다.“종현아...”임슬기의 눈동자에는 실망감이 스쳤고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아직도 누나 미워하는 거야?”얼마 전 마지막으로 동생을 만났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며 그날의 상처가 다시 가슴을 쥐어짰다.한때는 누구보다 가까웠던 남매였지만 지금은 연다인의 농간에 휘말려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임
반 시간쯤 지나 진승윤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급히 달려온 탓인지 이마엔 땀이 가득 맺혀 있었고 평소 깔끔하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흰 셔츠엔 커피 자국까지 묻어 있었다.“슬기야, 괜찮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병원 아래에 너희 어머님 시신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응... 난 괜찮아.”그가 다급해하는 걸 보자 임슬기의 콧등이 절로 시큰해졌다. 그녀와 친구로 지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흘이 멀다고 걱정을 안겨주니까.임슬기가 무사한 걸 확인한 진승윤은 그제야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안도했다.“괜찮아서 다행이야
“여기... 무슨 일 있었어요?”강재호는 병실 바닥에 널브러진 난장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별일 아니에요.”임슬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고개를 들고 강재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강재호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물었다.“옷에 왜 피가 묻었어요? 혹시 어디 다쳤어요?”그녀는 곧바로 김현정의 팔을 툭 쳤다.“현정아, 빨리 의사 좀 불러와.”김현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강재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슬기 씨, 걱정하지 마요. 이건 제 피가 아니에요.”“재호 씨가 흘
“다시 가지면 된다고?”임슬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배정우, 너 혹시 아이가 네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쉽게 말하는 거야?”그 아이는 그들의 아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다시 가지자’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배정우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떼려는 순간 임슬기는 거침없이 그를 밀쳐냈고 그는 병실 문에 세게 부딪혔다.“배정우.”임슬기는 눈물을 머금은 채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나랑 너 사이에... 다시는 아이가 있을 일 없어.”그 말은 날 선
“희망?”임슬기는 눈이 붉어진 채 진승윤을 바라보았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승윤아, 내 아이가 없어졌어. 이제 다시는 희망 같은 건 없어.”그녀도 한때 모든 걸 끝내버릴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불룩하게 솟아오른 작은 배를 볼 때마다 다시 마음을 접었었다.그러나 이제 아이가 사라졌다. 그녀의 희망도, 배정우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도 그렇게 끊어졌다.“승윤아.”그녀는 흐느끼며 진승윤의 손을 붙잡았다.“내 아이가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나를 탓하지 않을까? 혹시... 나 같은 엄마를 만난 걸
임슬기도 한때는 이 아이를 지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결국 이 아이는 그녀의 아이였고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오직 이 아이만이 그녀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었으니까.가끔은 꿈꿨다. 아이가 태어나면 혹시 배정우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비록 그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셋이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그러나 그 아이를 죽인 건 배정우였다. 그는 스스로 그들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그를 사랑해야 할 이유도, 그를 용서해야 할 이유도
“임슬기 씨, 폐암 말기입니다. 길어봤자 6개월 정도 남았어요.”‘폐암?’임슬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27살밖에 안 됐는데 폐암이라고? 그것도 말기?’그녀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선생님, 확실합니까?”“임슬기 씨 맞아요?”임슬기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확실합니다. 아직 젊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알려드려야 하니까요. 지금이라도 입원해서 치료받으면 희망이 조금 있으니까 당장 입원하시죠.”‘입원?’그녀는 고개를 숙여 검사 결과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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