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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 화

Author: 동그라미
배정우에게 세게 밀쳐진 임슬기는 캐비닛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저도 모르게 아픈 신음을 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픔을 참으며 뒷머리를 만져보았다. 오른손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너덜거리는 살점이 더욱 섬뜩하게 보였다. 하지만 배정우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는 임슬기가 연다인을 때리려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다시 그녀를 밀쳤다.

“그 더러운 손 치워.”

그러고는 연다인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차갑게 노려보며 경고했다.

“임슬기,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 한번 다인이를 괴롭혔다간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해줄 테니 알아서 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이 떠오른 임슬기는 피를 흘려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배정우를 따라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정우야, 내 동생 어디 있어?”

연다인이 제대로 말하진 않았지만 임슬기는 반쯤 추측하고 있었다. 임씨 가문이 부도난 게 배정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배정우가 그녀를 가두던 날 동생에 대해 언급했었다. 하여 동생이 배정우의 손에 있다고 확신했다.

배정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임슬기는 그의 소매를 잡고 울면서 애원했다.

“정우야, 제발 내 동생 좀 풀어줘. 아직 13살밖에 안 된 애란 말이야...”

배정우는 임슬기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발로 걷어차고는 차갑게 말했다.

“임슬기, 계속 이러면 평생 동생을 못 보는 수가 있어.”

그 소리에 임슬기는 바닥에서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미 많은 걸 잃었는데 동생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복부를 차여서 상처가 다시 벌어졌고 피가 옷을 적셨다. 하지만 몸의 아픔도 잊고 연다인을 안고 떠나는 배정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랑은 마치 덧없는 꽃과 같아서 잠시 피어났을 뿐이지만 평생을 그리워하게 했다. 심지어 그 잠깐의 기쁨을 위해 평생의 행복을 버리게 만들었다.

임슬기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수천 개의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했고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배정우와 임씨 가문의 부도를 연결 지어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배정우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고 아무리 그녀를 미워한다고 해도 설마 그런 짓까지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임슬기는 진승윤이 왔을 때까지 여전히 멍하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진승윤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비밀을 지켜달라고 애원하던 임슬기의 눈빛만 떠올리면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측은지심에 밥을 사 들고 왔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자마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앉아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임슬기를 발견했다.

진승윤은 급히 음식을 내려놓고 그녀를 안아 병실로 옮긴 후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그녀의 오른손에 너덜거리는 상처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진승윤을 혼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손에 생긴 이 상처 누가 봐도 일부러 잡아당긴 거잖아요. 오른손은 이제 더는 주사도 못 맞겠네요.”

간호사는 서둘러 임슬기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런데 피투성이인 손을 보자 간호사도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아플까?’

하지만 임슬기는 치료를 받는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상처가 그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뒷머리가 모서리에 부딪혀서 상처가 났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의사는 간단하게 치료를 해주었다.

“임슬기 씨, 아직 젊은데 몸을 아끼세요. 이렇게 하다가는 6개월도 못 버팁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임슬기는 살짝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의사를 바라봤다.

“그럼 얼마나 남았나요? 석 달은 살 수 있나요?”

의사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또 비누를 먹으면 석 달도 못 버틸 겁니다.”

‘석 달도 못 산다고?’

하지만 아직 죽을 수는 없었다. 동생을 찾고 임씨 가문이 부도난 진실도 알아내야 했다.

“알겠습니다. 말 잘 들을게요. 저 아직 죽을 수 없어요.”

임슬기는 뭔가 결심한 듯 눈빛이 아주 단호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간 후 진승윤은 옆에 서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임씨 가문 아가씨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몸이 종잇장처럼 얇아 안았을 때 공기를 안은 듯한 느낌이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입술마저 건조하고 창백했다.

임슬기가 먼저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가 약간 쉬어 있었다.

“변호사님은 여기 어쩐 일로 왔어요? 혹시 정우가 부탁해서 온 거예요?”

결혼한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진승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문의할 법률적인 일도 없었으니까.

진승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걔는 내가 온 거 몰라요.”

임슬기는 잠깐 멈칫하더니 진승윤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긴. 지금 나한테 신경 쓸 여유도 없을 텐데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진승윤이 화제를 돌렸다.

배정우는 그의 친구였고 임슬기는 친구의 아내라 부부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게 좋았다.

“입맛이 없어요.”

임슬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승윤은 마음이 아팠다. 상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 밥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먹고 어떻게 살려고요?”

그 말에 임슬기는 무언가 깨달은 듯 그를 향해 웃었다.

“맞네요.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살죠.”

다행히 힘들게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진승윤은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은 일단 죽을 먹고 내일 다른 음식을 가져다줄게요. 괜찮죠?”

임슬기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은 가져온 전복죽을 먹을게요.”

“그래요.”

임슬기가 죽을 먹는 모습을 지켜본 후에야 진승윤은 병실을 나섰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욱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와 배정우는 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임슬기는 병원에서 이틀을 지냈다. 몸에 있는 칼자국도 많이 나아졌고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퇴원하고 싶었다.

의사가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병원 소독약 냄새가 너무 싫었다. 특히 이 병원에 연다인도 입원해 있어서 더더욱 있기 싫었다.

결국 의사도 임슬기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몇 마디 당부한 뒤 퇴원하게 했다.

가뜩이나 텅 빈 별장이 며칠 동안 사람이 살지 않으니 더욱 차갑고 음산해 보였다.

임슬기는 대충 청소하고 약을 먹은 다음 익숙한 침대에 누워 꿈나라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임슬기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배정우라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진승윤이 서 있었다.

“변호사님?”

진승윤이 사 온 음식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병원에 갔더니 퇴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밥을 제때 안 먹을 것 같아서 직접 가져왔어요.”

임슬기는 잠시 멍해졌다가 진승윤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며칠 동안 계속 진승윤과 함께 밥을 먹었기에 임슬기도 익숙해졌고 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식탁에 앉자마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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