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끝나자마자 배정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재빨리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거칠게 임슬기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진승윤은 놓아주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배정우, 적당히 해.”지금 임슬기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진승윤은 배정우와 싸우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배정우는 임슬기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를 응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임슬기, 이리 와.”이미 얼굴이 백지장만큼 창백해진 임슬기는 목에서 올라오는 피 비린 맛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진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꽃뱀이라니? 다 너 같은 줄 알아?”“임슬기가 몇 번이나 다친 건 다 김씨 가문과 관련이 있는데, 그게 너랑 상관없다고?”배정우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진승윤은 김서우가 떠오르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갔다.이 일이 진승윤과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미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서우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결국 말로는 안 통하는군.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네.’얼마 후, 육문주가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두 사람을 훑어보며 물었다.“슬기 씨 혹시 머리를 부딪혔어요?”
병원 복도.김현정은 허둥지둥 달려와 병실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임슬기를 보더니 진승윤을 향해 물었다.“진 변호사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김현정이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진승윤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 뒤 물었다.“김서우와 슬기 사이에 또 다른 문제라도 있었나요?”진승윤은 자신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 같았다.김현정은 휴대전화에 저장했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실검에 오른 내용이에요.”진승윤은
김서우는 진승윤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나...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해에요...”“안 했다고? 오해?”진승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살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서우 씨, 거짓말의 대가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을 텐데.”“승윤 씨,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에요.”“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예요? 난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말이 끝나자마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에는 김서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이제 말할 수 있겠어?”참을 수 없는 아픔
병원을 나선 진승윤은 위용에게 전화를 걸었다.“김씨 가문 관련 사건 중 두 가지를 골라 실검에 올려. 반드시 실검에 올라야 해.”“알겠습니다.”“그리고 감찰부에 김씨 가문을 익명으로 신고해. 탈세 혐의로.”위용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진 대표님, 정말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응, 해야 해. 그뿐만 아니라 김서우를 정식으로 고소할 거야. 살인미수로.”전화를 끊은 뒤 진승윤은 차를 몰고 김씨 가문으로 향했다.김씨 가문의 집사였던 허재문은 진승윤을 보고 잠시 당황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진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
진승윤이 떠난 후, 김서우는 허겁지겁 연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열 번 넘게 전화를 걸어도 연다인은 받지 않았고 김서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진승윤조차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 상황에 이제 그녀는 완전히 끝장난 것과 마찬가지였다.‘누구한테 도움을 청하지? 배정우? 엄마?’하지만 오늘 실검 사건 때문에 차희라는 이미 그녀에게 화를 내며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면 배정우를 찾아갈까? 그래. 배정우도 임슬기를 싫어하니까 분명히 날 도와줄 거야.’하지만 김서우는 배정우의 연락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김
진승윤의 물음에 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진승윤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차희라가 허둥지둥 병실로 달려 들어와 그녀의 침대에 매달리며 말했다.“슬기야, 제발 서우를 구해줘.”깜짝 놀란 임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김현정을 끌어안고 물었다.“김서우가 왜요?”“누구한테 맞은 뒤 경찰서에 잡혀갔어.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대. 방금 경찰서에 가서 봤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거의 죽기 직전이야. 슬기야, 제발 구해줘. 그 애도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거야.”잠들어 있는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알 수
화난 배정우의 목소리에 임슬기는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오직 의혹과 거리감만 가득했다.“죄송한데요. 우리 아는 사이인가요?”임슬기의 물음에 병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김현정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슬기 언니, 진짜로 기억 안 나요?”임슬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기억해야 할 사람이야?”임슬기의 말에 김현정은 마음 한구석에서 기쁨이 피어올랐다. 기억을 잃었다는 건 아픔마저 잊혔다는 뜻이니, 어쩌면 다행인 것 같았다.반면 배정우는 어두운 얼굴로 임슬기의 앞
임슬기가 말을 하기도 전에 김현정이 화가 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슬기 언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임종현 그 녀석이 또 문제를 일으켰어요? 아니면 정우 그 개자식인가요?”“그들과는 상관없어.”“그럼 누군데요? 말해봐요. 내가 가서 혼내줄게요.”김현정이 소매를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임슬기는 살짝 웃었다.“현정아, 그런 성격으로 언제 결혼하겠니?”“난 결혼 안 할 거예요! 평생 언니 곁에 있을 거라고요!”말을 마치자 김현정은 다시 화를 내며 물었다.“얼렁뚱땅 넘기지 말고 대체 누군데요?”“다인이네 가족이지?”
“슬기야, 다인이도 잘못했지만 그래도 네 친구잖아. 너희는 한때 자매처럼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 아이를 죽이려고까지 해야 해?”“슬기야, 이렇게 잔인하게 굴지 마!”“다인이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10kg 넘게 빠졌어. 네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해.”“그 아이가 자살 못하도록 나와 다인이 아빠가 24시간 지켜보고 있어. 슬기야...”이 울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며 임슬기를 둘러쌌다.“다인이 어머니, 일어나 주세요! 다인이가 내 부모님을 죽이고 내 남편을 빼앗고 내 아이까지 해쳤을 때 그와 나는
육문주는 임슬기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말했다.“슬기 씨, 성격이 너무 착한 것 같아요.”“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 따질 필요 없어요.”약을 다 바르고 나서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만약 임씨 가문이 힘이 없다고 생각되면 내 이름을 걸어봐요. 누가 감히 무시하겠어요?”임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문주 씨, 고마워요.”그녀는 거울 앞으로 가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상처를 가렸다.“나는 우현식이 정말 다쳤는지 알고 싶어요. 만약 실제로 다쳤다면 종현이도 잘못이 있는 거지만...”“만약 다친 게 거짓이라면
병원.임슬기는 우현식이 있는 병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안녕, 현식아.”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우현식은 그녀를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왜 왔어요?”“네 부상 상태를 보러 왔어.”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과일 바구니를 옆에 놓고 그의 다리 쪽으로 다가가 석고를 살짝 찔러보았다.“아파?”우현식의 어머니는 없었고 우현식은 임슬기가 무서운 듯 다리를 움직이며 대답했다.“아파요.”“종현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야?”우현식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임슬기는 임종현이 우현식을 다치게 할 정도의 힘이 있
아침 식사 시간, 임슬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정우를 몇 번 흘깃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못 들은 건가?’임슬기는 배정우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식사 후, 배정우는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새 옷이야. 갈아입어.”임슬기는 거절하려 했지만, 임종현을 학교에 데려다주려면 옷을 바꿔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받아들였다.“고마워요.”방으로 들어가 봉투를 열어보자, 검은색 롱드레스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이해할 수 없는 배정우의 행동에 임슬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정우야,
임슬기는 눈물을 닦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이불을 바꾸려던 찰나, 깨끗한 이불이 깔린 걸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곳이 먼지 하나 없이 청소되어 있었다.‘누가 청소한 거지? 지난번에 왔을 때는 먼지가 가득했는데?’책장 옆으로 가던 중 그녀는 갑자기 일기장이 사라진 걸 알아챘다.배정우가 가져간 것 같아 속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봤다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일기장에 있던 사진은 이미 임슬기가 가져갔으니, 배정우는 그녀가 쓴 일기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챌 리도 없었다. 설령 알아챈다 해도, 모두 오래
남자의 몸에서는 희미한 술 냄새와 담배 향이 났다. 또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임슬기는 숨이 막혀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놔요.”하지만 배정우는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단단히 끌어안더니, 차가운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다 대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싫어.”“배정우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슬기야,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줘.”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임슬기는 숨이 턱 막혀왔다.한참 후, 배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진짜로 날 잊었으면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응?”임슬기는 이를 악물고 냉정하게 말했다
“안 그럴 거야. 이제 종현이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야.”임슬기는 코를 훌쩍였다.“누나는 종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졸업하고, 대학 가고, 결혼해서 아이 낳는 모습까지 다 보고 싶어. 누나가 곁에 있을게. 앞으로 계속...”임슬기는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정말로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임종현은 주먹을 꽉 잡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아직 용서는 못 하겠어요.”“종현아, 누나한테 시간을 줘. 나중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될 거야. 알겠지?”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껴안고 있었다.임종현은 임슬기의 손을 떼어내고 돌아서서
임종현이 물을 사 오는 동안, 임슬기는 이미 약을 먹고 벤치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여기 물. 약 먹어요.”임슬기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고마워.”“대체 무슨 병인 거예요?”임종현은 한 발짝 떨어져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대충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요.”임종현의 관심에 임슬기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폐암에 대한 건 여전히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임슬기는 임종현도 배정우처럼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폐렴이야.”“그냥 폐렴이요?”임종현은 자신의 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