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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 화

작가: 동그라미
임슬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배정우가 이렇게 일찍 들어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승윤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아침 먹을 거 좀 가져왔어. 너도 같이 먹자.”

‘같이?’

배정우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지더니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진승윤을 지나 임슬기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입은 잠옷이 눈에 너무도 거슬렸다.

임슬기가 퇴원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집으로 왔다. 그런데 임슬기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다른 남자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배정우는 진승윤을 스쳐지나 임슬기의 머리채를 잡고 식탁에 눌렀다.

“임슬기, 그새를 못 참고 다른 남자한테 꼬리 치고 있었어? 게다가 집에까지 들여?”

임슬기는 고통스러워하며 배정우의 손을 떼려 했지만 배정우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꽉 잡았다.

진승윤은 더는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어 배정우를 밀치고 임슬기 앞에 나섰다.

“배정우, 뭐 하는 거야? 사람이라도 죽이려고?”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배정우의 두 눈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그는 진승윤을 차갑게 노려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진승윤, 네가 임슬기를 좋아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쟤 내 와이프라는 거 잊지 마. 죽어서도 내 사람이라고.”

수년간 친구였던 진승윤은 배정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야 슬기 씨가 네 와이프란 거 깨달았어? 슬기 씨가 배고파서 비누까지 먹었을 때, 손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 피를 너무 흘려서 거의 죽어갈 때 넌 어디 있었는데?”

진승윤의 반박에 배정우는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제 비누를 먹었지? 임슬기처럼 자존심 강한 여자가 배고파서 비누를 먹었다고?’

배정우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진승윤의 뒤에 숨어 있는 왜소한 여자를 노려보았다.

“안 믿어, 난.”

‘안 믿는다고?’

임슬기는 갑자기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방에 가두고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비누를 먹어야만 했는데 뻔뻔스럽게 믿지 않는다고 했다.

임슬기는 진승윤의 뒤에서 나와 배정우를 올려다보았다. 두 눈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었다.

“정우야, 네가 믿지 않는다는 거 아는데 변호사님은 정말 단지 아침 식사를 가져다줬을 뿐이야.”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한마디에 배정우가 더욱 화를 냈다.

“지금 쟤를 두둔하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배정우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임슬기, 2년 전에 만났던 남자 혹시 진승윤이었어?”

‘뭐? 2년 전에 만났던 남자?’

임슬기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배정우를 쳐다보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정우야, 그게... 무슨 말이야? 2년 전에 만났던 남자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 마.”

배정우가 분노를 터트리며 임슬기를 잡으려 하자 진승윤이 그의 손을 잡았다.

“배정우, 그만해. 2년 전에 내가 어디 있었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2년 전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승윤은 해외에서 계약을 논의 중이라 국내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진승윤이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건의 전말을 모르니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정우가 계속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 더 갔다간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임슬기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폐암 말기 환자니까.

배정우는 진승윤의 손을 뿌리치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임슬기를 노려보았다.

“진승윤, 나가 있어. 임슬기랑 따로 할 얘기 있어.”

배정우가 흥분을 가라앉히자 진승윤은 임슬기를 안쓰럽게 바라보고는 그에게 당부했다.

“정우야, 함부로 하지 마.”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밖에 없었다.

임슬기의 외도와 유산에 대해 나중에 들었지만 진승윤은 믿지 않았다. 배정우가 왜 이렇게 확신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승윤이 나가자 배정우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배정우가 다가올수록 임슬기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임슬기는 테이블에 기대서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눈앞의 남자가 배정우가 아닌 것 같았다.

“임슬기,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지 말라고 했지?”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

임슬기의 태도에 배정우는 더욱 화를 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그녀의 턱을 잡더니 억지로 눈을 맞췄다.

“임슬기, 네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임슬기의 두 눈에 다시 희망이 차오른 듯했다.

“내 동생 어디 있어?”

“네가 내 말을 잘 들으면 다음 달에 만나게 해줄게. 근데 내 말을 안 들으면...”

배정우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섬뜩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 손으로 동생 시신을 거두게 하는 수가 있어.”

임슬기는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배정우가 턱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이 질문뿐이었다. 그녀는 배정우를 빤히 보며 물었다.

“대체 왜? 정우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임씨 가문 부도난 거 혹시 네가 그런 거야?”

“그래.”

‘네가 그런 거라고?’

그의 대답에 임슬기는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임씨 가문이 부도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고 동생은 실종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배정우가 계획한 거라고? 단지 날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녀는 무너지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입술이 떨려서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왜... 왜 그랬어? 혹시... 연다인 때문이야?”

‘정말로 다인이 말처럼 다인이한테 잘 보이려고 임씨 가문을 무너뜨린 거야? 근데 2년 전부터 다인이한테 잘해줬다고? 대체 언제부터 만난 거지?’

임슬기는 자신의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 한때 그녀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던 남자가 그녀의 집안을 망하게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곧이어 배정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건 알 필요 없어.”

임슬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배정우가 홧김에 동생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제발 종현이만 죽이지 말아줘.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배정우의 손에 떨어졌다. 따뜻하고 축축한 느낌에 배정우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예전에는 엄청 강하더니 지금 왜 이렇게 비굴해진 거야?’

배정우는 이런 임슬기가 더욱 역겨웠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동생은 건드리지 않을게.”

그러고는 손을 내려놓고 휴지로 그녀의 눈물이 묻은 손을 닦은 다음 그녀에게 휴지를 던지며 명령했다.

“내일 다인이 이사 오니까 준비하고 있어.”

그 말에 임슬기는 순간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연다인이 이사 온다고?’

“여기 왜 오는데?”

“다인이 몸이 안 좋아. 유산하고 몸도 다쳐서 정신이 불안정해. 언제든지 자살 시도 할 수 있으니까 네가 잘 챙겨줘. 매일 와서 볼 거야.”

임슬기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날 뭐로 생각하는 거지?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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