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임슬기는 연다인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연다인의 앞으로 걸어가 차갑게 노려보았다.“하지만 난 정우 와이프고 넌 기껏해야 스캔들 상대일 뿐이야.”“뭐라고?”연다인이 임슬기의 뺨을 후려친 순간 임슬기는 몸이 휘청하며 넘어질 뻔했다.“이 년이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임슬기,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연다인은 임슬기를 바다로 끌고 가더니 마주 보며 섰다. 하도 세게 잡아당겨서 고통이 밀려온 임슬기는 손을 빼내려고 힘껏 발버둥 쳤다.그런데 연다인이 그녀를 보며 기괴하게 웃었다.“임슬기, 우
임슬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숨을 쉬기 어려워질 때쯤 배정우는 손을 놓고 그녀의 턱을 잡았다.“임슬기, 나 다인이한테 아이를 위해 복수할 거라고 약속했어. 그러니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뭔지 똑똑히 알려줄게.”임슬기는 연신 기침을 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정우야, 다인이가 임신한 줄 정말 몰랐어. 그리고 죽일 생각도 없었고...”배정우가 코웃음을 쳤다.“흥, 지난 2년 동안 네가 질투에 눈이 멀어서 미친 짓을 한 게 한두 번이야? 다인이는 네가 질투 때문에 같이 죽으려고 했다던데?”두 사람 사이에 금
‘망했다. 도망 못 가겠네.’한때 임슬기를 사로잡았던 목소리가 이제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임슬기는 배정우와 함께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와 연다인이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젠 치가 떨릴 정도로 지겨워졌다.그녀는 바닥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창백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너랑 돌아가지 않을 거야. 배정우, 우리 이혼하자.”‘이혼? 나랑 이혼하겠다고?’배정우는 긴 다리를 뻗어 임슬기에게 다가가 손목을 덥석 잡고는 옆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른
임슬기는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고 비틀거리며 욕조 옆으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틀더니 물이 따뜻해지기도 전에 욕조에 앉았다.한때 신부 앞에서 그녀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맹세했던 남자가 변했다. 사실 2년 전에 변했는데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배정우는 겉으로는 임슬기를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척했지만 실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가둔 것이었다.배정우에게 임슬기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법적 아내? 아니면 화풀이 장난감?마침내 물이 따뜻해지면서 그녀의 차가운 몸도 조금씩 녹아내렸다.임슬기는 머리를 물속에 담그고 눈을 감았다. 배정우가
권민도 배정우의 눈빛이 변한 걸 눈치채고 급히 물었다.“대표님, 우리...”그런데 뜻밖에도 배정우가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임슬기를 엄청 걱정한다, 너?”그 말에 권민은 입을 다물었고 더는 임슬기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배정우도 다시 병원에 돌아가지 않고 사무실에 남아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짜증이 났고 모든 신경이 임슬기에게 가 있는 듯했다.‘만약 정말로 무슨 일이 있다면 나한테 전화했겠지. 전화가 없는 걸 보면 아무 일 없다는 거야.’...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비가 그쳤다.임슬기는 몸을 떨며
임슬기는 아주 길고 긴 꿈을 꾼 것 같았다.꿈속에서 배정우는 한쪽 무릎을 꿇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잡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슬기야, 나랑 결혼해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임슬기는 쑥스러운 듯 시선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정우야, 네 신부가 되어 줄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그런데 그때 화면이 갑자기 바뀌더니 임슬기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그날로 돌아갔다.그녀는 임신 테스트기를 배정우에게 보여주었다.
‘폐암 말기?’진승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봤다.“확실합니까?”“네.”의사는 잠깐 망설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게다가 위 세척도 해야 합니다.”“위 세척이요?”진승윤은 또 한 번 당황했다.“네. 식중독인 데다가 비누도 반 조각 먹었고 며칠 전에는 바닷물에도 빠졌었습니다.”의사마저 안타까워했다.“이러다가는 환자분이 6개월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진승윤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알겠어요. 일단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세요.”“알겠습니다. 간호사한테 일단 피부터 뽑으라고 할게요.”진승윤은
배정우에게 세게 밀쳐진 임슬기는 캐비닛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저도 모르게 아픈 신음을 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픔을 참으며 뒷머리를 만져보았다. 오른손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너덜거리는 살점이 더욱 섬뜩하게 보였다. 하지만 배정우는 전혀 보지 못했다.그는 임슬기가 연다인을 때리려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다시 그녀를 밀쳤다.“그 더러운 손 치워.”그러고는 연다인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차갑게 노려보며 경고했다.“임슬기,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연다인의 모습에 임슬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만약 지금 임슬기에게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주저 없이 독사 같은 연다인을 주워온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너 정말 악랄하구나!”연다인은 손을 내리며 웃었다.“그래, 맞아. 나 악랄해. 그런데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 날 아주 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더라고.”말을 마친 그녀는 임슬기의 앞까지 다가가 비웃었다.“정우에겐 네가 그 악랄한 사람이거든.”연다인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임슬기의 심장을 후벼팠다. 인
배정우는 침대 끝에 앉아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연다인을 달랬다.“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연다인은 눈물 그렁그렁 단 채 입술을 틀어 물고 배정우를 보았다.“나 안아줘. 응?”배정우는 멈칫하더니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주었다. 곧이어 그녀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몇 시간이 지나도 안 돌아오고 슬기도 안 보이고 하니까 너무 두려웠어.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그래서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봤는데 박쥐 한 마리가 날 향해 날아오는 거야. 너무 깜짝 놀라서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쫓으려다가 상처가
배정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심드렁한 눈빛으로 보았다.“임슬기, 연기하지 마. 어차피 넌 죽지 않을 거라는 거 다 아니까.”죽지 않을 거라니...그녀는 방금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이 사실을 잊은 것일까?그런데도 그는 그녀가 죽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 임슬기는 헛웃음만 나왔다.“정우야, 우리 내기할래? 내가 죽는지 안 죽는지 말이야.”순간 배정우의 살짝 흔들리며 아팠다. 그러더니 이내 내기를 받아들였다.“그래. 내기하자.”그 말을 들들은
임슬기는 온몸이 아팠다. 폐는 물론이고 복부, 손, 무릎 전부 아팠고 아무리 힘을 넣어보려고 해도 넣어지지 않았기에 배정우에게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두 무릎은 원래부터 돌에 부딪혀 상처가 난 상태였고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차가운 타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니 그 고통은 말 못 할 정도였다.그 순간 임슬기는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울지 않으려고 이를 빠득 갈며 애를 쓰면서 배정우에게 멈추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이상함을 감지한 배정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잔뜩 고
“대표님, 연다인 씨가 또 출혈 과다로 쓰러졌습니다. 지금 혈액 창고에도 연다인 씨 혈액형과 맞는 혈액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배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임슬기 손등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다인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와. 나한테 방법이 있으니까.”“네, 알겠습니다.”그는 임슬기의 곁을 지키느라 하루 동안 연다인의 상태를 살펴보지 못했다. 여하간에 연다인의 몸 상태는 연약해도 너무 연약했기 때문이지만 임슬기는 달랐다. 철인이었으니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방금도 살아남지 않았는가. 이렇듯 팔팔
“난 바람을 피운 적 없어.”임슬기는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했다.그녀는 정말로 바람을 피운 적 없었지만 배정우가 왜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자 배정우는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그때 남자랑 호텔은 왜 간 건데? 설마 연기라도 했다는 거냐?”임슬기는 고개를 저었다.“난 남자와 호텔에 간 적도 없어.”“없다고? 임슬기, 넌 내가 바보로 보이나 봐? 내가 두 눈 뜨고 네가 남자와 호텔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없다고!”“날 믿어줘.”그날 그녀는 확실히 호텔을 간 적 있었지만 그런 목적으로 간
몇 숟가락 먹고 나니 임슬기는 드디어 목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러나 기침을 하자 목이 찢어질 듯 아파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고마워요, 변호사님. 이젠 제가 알아서 떠먹을게요.”진승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침대를 정리해 주었다.“뭐라도 조금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일단 죽을 데워 왔어요. 살코기 죽인데 괜찮아요?”그는 지난번 살코기 죽을 먹고 싶다고 하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살코기 죽으로 사 오라고 했고 두 시간 동안 보온 팩에 있긴 했지만 이미 식어버려 다시 데워 왔다.임
임슬기는 여전히 머릿속이 조금 흐릿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연다인을 위한 배정우의 억지로 차가운 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원래는 자신이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세차게 내리는 비에 그녀는 점차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고 폐에 경련이 일어나면서 피가 울컥울컥 입안으로 역류해 나왔다.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감게 되었고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그녀는 자신이 죽은 줄 알았고 그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정태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머리에선 피가 흘러나왔다.하지만 연다인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 여하간에 여기서 죽게 된다면 분명 그녀가 한 짓임을 알게 될 테니까.머리를 굴리니 금방 좋은 생각이 떠오른 그녀는 임슬기가 돌아오면 임슬기에게 이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기로 했다.조금 걱정되는 것은 오정태가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지켜보자고 생각했다.그녀는 서둘러 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방금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상처가 벌어져 피가 새어 나오면서 옷을 붉게 물들였다는 것을 발견했다.결국 하는 수 없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