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반항할 때 노천호에게 맞아 기절했다."너도 참, 정말 자신을 아낄 줄 모르는구나. 비록 아직 젊다지만 이렇게 힘들게 지내면 안돼. 결국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 혹시 너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우리 배씨 집안은 어떡해? 나와 네 동생, 그리고 네 아버지까지 모두 너만 바라보고 있잖냐!"유옥진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배지수는 조금 감동하여 얼른 말했다."엄마, 나 지금 멀쩡하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어떻게 걱정 안 할 수 있어? 이번에 소리 없이 이틀 동안 사라졌고 핸드폰까지 연락이 안 되니. 진 도련님이 일로 힘들어서 쓰러졌다고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우린 정말 경찰에 신고하려 했어."유옥진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렸다."진 도련님이 데려다줬어요?"배지수는 멍해졌다.그는 줄곧 전화를 받지 않고 자신과 선을 긋지 않았나?"그 진 도련님이 아니라, 진 씨 집안 둘째 도련님 말하는 거야.""지수야, 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네.""지위가 높은 진가 둘째 도련님마저 너한테 관심이 있다니."한수경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고 부러움과 질투가 가득 차 있었다.먼저 진화였고 그리고 왕진석, 지금은 진운까지...정말 운이 대단할 정도로 좋다!"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둘째 도련님이 나를 데려다줬다고?"배지수는 눈을 크게 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럼 진운이 노천호의 손아귀에서 그녀를 구해낸 것이다."지수야, 아직도 여기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 주의한 적도 없는데, 언제부터 사이가 좋아진 거야?"유옥진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엄마,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배지수는 얼굴을 붉히며 반박했다."저희는 이전에 이미 합작을 끊었어요!""합작을 끊었다고? 지수야, 이것부터 봐봐."한수경이 신비롭게 웃으며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배지수는 의혹스러워하며 서류를 건네받았고 뒤적이며 확인했다.다 본 후 그녀는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그것은 새로운 계약서였다!계약한 내용은 예전과 같은 내용이었
"모레에 우리 가족은 소항에 한 번 갈 거야!"유옥진은 매우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소항에는 뭐 하러 가요?"배지수는 멈칫하고 조금 궁금했다.강한시와 소항은 수백 킬로의 거리를 두고 있다."며칠만 더 있으면 네 외할아버지 팔순이셔! 너의 큰삼촌이 나에게 연락해서 이번에는 크게 보낼 거라고 우리보고 다 같이 오라더구나."유옥진의 안색은 조금 흥분해 보였다."그랬군요."배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유옥진은 소항에서 태어났고 유 씨 집안도 소항에서는 근본 있는 가문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유옥진과 배전무의 혼사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유 씨 집안 할아버지는 딸이 그다지 좋지 않은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여 체면을 구겼다.그래서 요 몇 년 동안 두 집안은 왕래가 아주 적었다."지금 네가 이렇게 큰 계약을 체결했고 연경 진가와도 관계를 맺었으니 엄마를 대신해서 큰일을 이루어 낸 거야. 이번에 돌아가서 누가 감히 우리 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겠어? 고개를 들고 네 외할아버지에게 똑똑히 보시라고 해야지. 지금의 배씨 가문은 예전의 배씨 집안이 아니라고."유옥진은 신바람이 났고 꽤 득의양양한 느낌이 들었다.배지수도 어머니가 여태껏 참아오다 돌아가 자랑하려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그녀도 공감할 수 있었다.자신의 친정집 식구들에게 이십 년이 넘게 비아냥을 당했으니 마음속에 쌓인 울분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다.배지수가 계속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볼 수 있다."그럼 며칠 휴가 내고 같이 돌아갈게요."배지수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언니, 요 며칠 회사일은 언니한테 맡길게.""걱정하지 마. 나한테 맡기면 돼."한수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저녁 무렵, 용은 저택.방안에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진운과 경천 외에 이성봉 부녀, 홍진, 장준, 그리고 두 은행이 사장까지 있었다.홍진은 특별히 성급 호텔에서 요리 한 상을 주문한 후 저택으로 보내
"세상에!""누가 조약돌로 이 유리를 깨뜨릴 수 있습니까?"앞으로 걸어간 이성봉은 저도 몰래 냉기를 들이마셨다."보아하니, 정원 밖 수십 미터 지점에서 던진 돌인 것 같습니다. 괴력을 타고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정말 저 사람은... 종사 강자인 걸까요?"장준은 창백해진 얼굴로 분석했다.종사는 그의 눈에 이미 신과 같은 존재이다.모두들 종사라는 두 글자를 듣고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아무래도 종사는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피라미드 정상에 서 있는 존재이다."이 사람은 아직 조금 부족해요. 종사 강자일지는 모릅니다."과묵한 경천이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아저씨, 왜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진운이 궁금해서 추궁했다.경천은 말을 하지 않고 임지환을 바라보았다.임지환은 조약돌을 손에 쥐고 깨진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그의 분석이 맞습니다.""정말 종사라면 힘에 대한 통제가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총알처럼 유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유리를 깨뜨릴 수밖에 없어요."임지환은 한 손을 짊어지고 담담하게 분석했다."대체 상대는 누구지?"홍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강자가 아무 이유 없이 용은 저택으로 와 유리를 깨뜨릴 리는 없다.게다가 이 산에는 다른 권세가들이 살고 있어 보안도 상당히 엄했다."아마 나를 찾아왔을 거예요."말이 끝나자마자 임지환은 깨진 유리 입구에서 훌쩍 뛰어내렸다.모두들 그저 눈앞에 무언가 스쳐 지난 것처럼 느꼈을 때 임지환은 이미 정원에 서 있었다."누구신지요?"임지환은 영기를 이용하여 소리를 울려 퍼지게 했고 진동으로 인해 사람의 기혈이 솟구치게 만들었다."네 목숨을 앗으려 왔다!"나이가 들어 보이는 목소리가 울려왔다.갑자기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정원에서 쏟아져 나왔다.다가가고 나서야 경천은 말문을 잃었다."칼이다!"그렇다. 바로 칼이다!큰 칼 한 자루가 먼 곳에서 날아왔고 날카로운 칼에 달빛이 반사되었다.마치 은빛 폭포수가 등골을 오싹하게
이에 모두가 감탄을 내뱉었다.이게 뭐야? 검이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알아서 공격을 해?바로 그 순간, 임지환이 측면에서 검을 내리쳤다.팅! 쿠궁!청아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던 검은 정원의 바위에 적중해 돌을 가루로 만들었다.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기이하게 방향을 바꾼 검은 또다시 임지환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임지환은 나름 민첩하게 검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검과 인간이 싸우고 있다고?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정말 의지만으로 무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장면에 다들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한편,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던 임지환은 몇 합을 주고받은 뒤 곧 이상함을 눈치챘다.검의 손잡이 쪽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긴 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마 무기의 주인은 이 금속사로 검을 컨트롤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주위의 어둠 덕분에 얼핏 봐선 보아내기도 힘드니 정말 검에 귀신이라도 들린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그만 숨고 이만 나오시지.”동시에 임지환은 주먹을 내뻗었다.퍽!전력의 50% 정도 되는 힘이었지만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검은 통제를 잃어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그리고 금속사에 의지해 검을 조종하던 이 역시 관성에 의해 앞쪽으로 끌려나왔고 몇번의 앞구르기 끝에 겨우 중심을 잡은 남자는 검을 낚아챈 뒤 꽤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했다.상대는 중년 남자, 키 190cm는 되어 보이는 거구에 근육으로 가득 채워진 상반신은 마치 인간의 육체가 아닌 바위를 보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짙은 눈썹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는 원한으로 잠식되어 임지환을 노려보고 있었다.“당신 정체가 뭐지?”“내 이름은 서삼도다.”차분한 임지환과 달리 서삼도라는 이름의 남자의 목소리는 우레와 같이 장을 가득 채웠다.“서삼도?”남자의 대답에 장준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마저 가빠졌다.“뭐야? 대단한 사람인가?”“아, 약 20년 전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까지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너도나도 임지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난 당신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는데요. 여기저기 다 부수고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임지환의 표정이 어느새 어두워졌다.방금 전 그 검이 깨트린 유리와 가산에 놓인 바위 값만 해도 억이 넘으니 화가 날만했다.“원한 관계가 없어? 흥.”콧방귀를 끼던 서삼도가 코웃음을 쳤다.“임지환, 노천호 네가 죽였지?”“그래. 내가 죽였는데. 그게 왜?”임지환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천호 형님은 나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었다. 그리고 내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기도 하지. 그러니 네 목으로 하늘나라로 가신 형님의 영혼을 애도할 것이다.”기세좋은 대사와 함께 서삼도가 검을 휘둘렀다.설마 했더니 정말 원한 관계가 있음이 밝혀지자 홍진과 이성봉의 표정 역시 불안감으로 굳어졌다.‘종사급을 앞둔 검광이라... 지환 씨도 이번만큼은 꽤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데...’일촉즉발의 순간, 홍진이 한발 앞으로 다가갔다.“저기 서 선생님, 잠시만요.”“넌 또 누구지?”서삼도의 칼끝이 홍진을 향하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으나 나름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적어도 겉보기에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강한시 시장 홍진이라고 합니다.”“하, 시장? 왜? 시장이라고 하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았어? 내 칼은 상대가 시장이든 대통령이든 딱히 상관없는데 말이야.”피식 웃던 서삼도가 손목을 휘둘렀다.어둠속에서 서린 빛을 보여주는 칼끝이 추는 춤이 숨 막히는 죽음의 기운을 내뿜었다.“의형제를 잃은 슬픔은 분명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최근 몇 년간 노천호 씨가 수장으로 있었던 맹호당은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왔습니다. 그리고 임지환 씨는 그런 그의 만행을 지켜볼 수 없었던 고위 간부님들의 사살 명령에 따른 것뿐입니다.”이미 임지환과 한 배를 탄 사이인 홍진의 눈동자도 어느새 결연함으로 번뜩이고 있었다.“맹호당?
종사급을 바라보고 있는 서삼도는 두려울 게 없으니 고개를 더 빳빳하게 쳐들었고 이성봉과 홍진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원한에 사로잡혀 명예도 재물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피곤한 스타일이었으니까.“감히 임 선생님한테 뭐?”이때 가만히 있던 진운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넌 또 뭐야?”눈을 가늘게 뜬 서삼도가 진운을 훑어보았다.“연경 진씨 가문의 진운이다.”“뭐 나름 명문가 자제인 것 같은데 내가 그딴 타이틀에 겁먹을 것 같아? 강남에서 연경 가문이 뭔데 이래라저래라야.”“이런 건방진. 아저씨, 저 자식 제대로 혼내주세요.”진운의 명령에 결연한 표정의 경천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종사의 문턱에 한 발 정도 들인 상태이지만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떼지 못해 종사라는 타이틀을 가지지 못한 남자, 경천.딱 봐도 강해 보이는 서삼도와의 대결이 걱정스러웠지만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에 그는 한발 앞으로 걸음을 내밀었다.그런 그를 훑어보던 서삼도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널 먼저 제물로 삼고 임지환을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자세를 고친 서삼도가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침을 꿀꺽 삼켰다.역시 한쪽 주먹을 가슴 앞으로 올린 경천은 서삼도의 다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상대의 첫수에 반응하고 그에 상응하는 공격, 방어 방법을 찾는 것이 경천의 전략, 순간의 디테일 하나에 승부가 갈릴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경천은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분위기가 무거워지던 그 순간.“당신은 저자의 상대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하죠.”임지환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지환 씨...”“이런 말 굴욕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자존심은 승부를 가리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실력 차이를 인정하는 것 역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잘 봐두세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존재감 때문일까? 순간 결코 건장하다고 볼 순 없는 임지환이 큰 비석처럼 느껴졌다.“네, 알겠습니다.”“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니
“그래.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바로 죽여주마.”기합과 함께 서삼도는 임지환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휘잉.공기의 파동으로 인한 굉음과 볼을 때리는 바람이 저 심플한 공격 하나에 얼마나 많은 힘이 실렸는지 그대로 느껴졌고 다들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반면, 이토록 거센 공격에 임지환은 그저 가볍게 몸을 옆으로 비틀어 너무나 쉽게 이를 피해 버렸다.깡!임지환 대신 바닥을 때린 검이 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큰 균열까지 만들어냈다.“대단한 파워네...”장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경천 역시 몰래 감탄을 내뱉었다.침착하게 방금 전 공격을 피했다는 점 하나만 보더라도 그와 임지환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으니까.한편, 첫 공격에 실패한 서삼도는 바로 임지환의 종아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무거운 검을 휘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임지환은 이마저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살짝 다리를 들어 공격을 피해버렸다.두 번째 공격에도 실패한 서삼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순간, 임지환은 서삼도의 둔부를 향해 킥을 날렸다.줄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려가던 서삼도는 전광석화처럼 이어지는 공격에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쾅!“쿨럭.”피를 토한 채 널브러진 서삼도의 가슴을 짓밟은 채 임지환이 입을 열었다.“세 번 안에 승부를 낸다 하여 서삼도라지? 아직 한번 남았잖아. 그런데 왜 이래?”“으아아악!”임지환의 도발에 서삼도가 분노한 맹수처럼 포효하고 순간 느껴지는 기이한 괴력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임지환이 뒤로 물러섰다.겨우 몸을 일으킨 서삼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서삼도의 행보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입가에 묻은 피를 자신의 검에 바르자 검은 기이한 붉은빛과 함께 묘한 요기를 내뿜기 시작했다.“자신의 피로 검을 각성시켰어?”경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고대 무예 서적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검술에
눈동자가 붉게 물든 서삼도는 영락없는 악귀의 모습이었다.“사술이라.”경멸어린 눈으로 서삼도를 바라보던 임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성장을 위해 이 정도 기행까지 저지른다는 것이 임지환으로서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서삼도, 저자도 이제 끝이네.’“죽어!”한편,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서삼도가 마지막 공격을 내리쳤다.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의 공격은 임지환을 반으로 갈라버릴 듯 매서웠다.“끼에에엑!”피를 머금은 검에서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고 귀청을 찢을듯한 울부짖음에 다들 귀를 틀어막았다.하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로 서있던 임지환은 맨손으로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냈다.“이... 이게 무슨...”회심의 일격을, 그것도 맨손으로 막아낸 임지환, 그런 그를 바라보던 서삼도의 얼굴에는 어느새 분노가 아닌 충격이 가득 들어찼다.‘내 필살의 일격을... 이렇게 쉽게?’그 순간 어이없게도 지난 수십년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 고강도 훈련으로 실력을 다졌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그렇게 끝없는 노력을 거쳐 만들어낸 공격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니 지금까지의 인생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절망감마저 느껴졌다.“겨우 이 정도야?”피식 웃던 임지환이 손에 힘을 주자 굉음과 함께 귀기를 내뿜던 검이 그대로 부러졌다.챙그랑.“안돼!!!”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명검, 목숨보다 더 아끼던 검이 부러지자 서삼도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검을 빼앗긴 당신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군. 참... 슬퍼? 아니, 설마 공격을 세 번밖에 할 줄 몰라 서삼도라 불리는 건가?”연민 가득한 임지환의 눈빛에 서삼도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누가 그래! 누가 그래!”“오, 숨겨둔 패가 또 있나 보지? 어디 한 번 보여줘 봐.”“그래. 지금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이게 내 네 번째 공격이다.”서삼도가 손목을 들자 끊어졌던 검이 살짝 떨리더니 임지환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끊어진 검자루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