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가 붉게 물든 서삼도는 영락없는 악귀의 모습이었다.“사술이라.”경멸어린 눈으로 서삼도를 바라보던 임지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성장을 위해 이 정도 기행까지 저지른다는 것이 임지환으로서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서삼도, 저자도 이제 끝이네.’“죽어!”한편,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서삼도가 마지막 공격을 내리쳤다.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의 공격은 임지환을 반으로 갈라버릴 듯 매서웠다.“끼에에엑!”피를 머금은 검에서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들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고 귀청을 찢을듯한 울부짖음에 다들 귀를 틀어막았다.하지만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로 서있던 임지환은 맨손으로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냈다.“이... 이게 무슨...”회심의 일격을, 그것도 맨손으로 막아낸 임지환, 그런 그를 바라보던 서삼도의 얼굴에는 어느새 분노가 아닌 충격이 가득 들어찼다.‘내 필살의 일격을... 이렇게 쉽게?’그 순간 어이없게도 지난 수십년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 고강도 훈련으로 실력을 다졌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그렇게 끝없는 노력을 거쳐 만들어낸 공격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니 지금까지의 인생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절망감마저 느껴졌다.“겨우 이 정도야?”피식 웃던 임지환이 손에 힘을 주자 굉음과 함께 귀기를 내뿜던 검이 그대로 부러졌다.챙그랑.“안돼!!!”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명검, 목숨보다 더 아끼던 검이 부러지자 서삼도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검을 빼앗긴 당신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군. 참... 슬퍼? 아니, 설마 공격을 세 번밖에 할 줄 몰라 서삼도라 불리는 건가?”연민 가득한 임지환의 눈빛에 서삼도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누가 그래! 누가 그래!”“오, 숨겨둔 패가 또 있나 보지? 어디 한 번 보여줘 봐.”“그래. 지금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이게 내 네 번째 공격이다.”서삼도가 손목을 들자 끊어졌던 검이 살짝 떨리더니 임지환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끊어진 검자루
“검 다루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네.”다음 순간 임지환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번뜩이는 검의 한광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서삼도는 뒤로 한발 물러섰다.바로 서삼도의 급소 앞에서 멈춰선 검, 자기 몸처럼 다루던 검이 본인을 노리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그리고 그 경악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임지환이 다시 금속사를 당기고 검은 새로운 주인을 모시기라도 한 듯 너무나 고분고분 제자리로 돌아갔다.“뭐야? 잘난 척하더니 별거 아니잖아?”그저 단순히 임지환이 공격에 실패한 거라고 생각한 서삼도가 피식 웃었다.“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해?”말을 마친 임지환이 마치 고철을 버리듯 검을 내던지고 자신의 목을 만지던 서삼도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언제 생긴 건지 목에 난 작은 생채기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팍을 흠뻑 적셨다.“뭐... 뭐야...”아연실색한 서삼도가 미친듯이 목을 틀어막아 보아도 피는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갔다.“윽.”잔인한 광경에 이청월은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어억...”한손을 겨우 든 서삼도는 그렇게 마지막 말 한 마디 내뱉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한을 품은 듯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시체,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차분한 모습의 임지환을 번갈아 바라보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여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 유명한 서삼도가 죽다니.그것도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대결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던, 싸움을 그대로 목격한 사람들은 임지환을 절대 적으로 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지환 씨의 실력은 종사... 아니. 어쩌면 종사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네요.”경천이 나지막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시체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나?”홍진이 물었다.“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두세요.”이런 상황을 처리하는 전문 청소업자들을 부를 생각이던 홍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자네... 진심인가?”‘물고기 밥으로 던져주라고 할
매력적인 목소리, 유혹이 가득 담긴 말투, 늘씬한 몸매.불이 꺼진 집안, 이청월의 모습은 어딘가 흐릿했지만 오히려 그 몽롱함과 신비로움이 분위기를 더 묘하게 달구었다.차가운 달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하얀 어깨, 완벽한 쇄골라인.달의 여신처럼 고고한 자태의 이청월이 천천히 임지환의 곁으로 다가갔다.‘아름다운 여자네.’모든 것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벽 그 자체인 모습, 그림같이 생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은 미인이었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임지환의 시선은 무덤덤하기만 했다.“지환아, 너도 건강한 성인 남자잖아.”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이청월이 임지환의 귓가에 속삭였다.은은한 향수 냄새와 체향이 섞여 임지환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가만히 있는 임지환의 모습에 이청월의 움직임은 점점 대담해지고... 긴 손가락이 천천히 임지환의 가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녀의 손길이 아랫배를 향하려던 순간, 임지환이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누가 봐도 미인인 여자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솔직히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살짝 거칠어진 호흡, 어느새 욕망이 깃든 눈동자.임지환을 바라보는 이청월은 살짝 겁이 나긴 했지만 기대감이 더 앞섰다.‘그래, 임지환. 날 가져.’천천히 눈을 감은 이청월의 입술은 촉촉한 과즙을 머금은 딸기마냥 탐스러웠다.하지만 한참을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이청월은 빼꼼 눈을 떠보았다.방금 전 보았던 욕망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임지환은 다시 차분한 얼굴이었다.“이만 가.”임지환이 그녀의 손을 내쳤다.“왜? 배지수 그 여자 때문에 그래? 두 사람 이미 이혼했잖아. 괜찮아. 이건 배신도 아니야.”‘왜! 분명 날 원하면서 왜 참고만 있는 건데!’“이혼, 배신. 그런 거 때문 아니야.”임지환이 고개를 저었다.“그 여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 솔직히 이혼하고 나서도 그 여자는 널 무시하고 네 자존심을 짓밟았어. 그 여자가 원하는 건 돈, 명예
“너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야. 인정해.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야.”임지환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이청월이 이를 악물었다.“그, 그래. 알겠어.”말없이 옷을 주워입은 이청월이 얼굴을 감싸쥔 채 도망치 듯 저택을 나서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지환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이틀 뒤 성운호텔.성운호텔은 5성급 호텔로서 위치,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소항시에서 손꼽히는 호텔이었다.호수 근처에 위치한 35층까지 건물은 소항의 랜드마크이기도 했다.“누나, 우리 앞으로 여기서 지내는 거야?”배준영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성운호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수많은 스포츠카 구경만 해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당연하지. 외할아버지 80세 생신이잖아. 뭐든 최고급으로 해야지.”온갖 보석 액세서리로 몸을 휘감은 유옥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배지수는 전혀 다른 생각 중이었다.소항시에 온 뒤로 강한시에 묶여있었던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던 것인지 깨달은 그녀였다.‘소항... 매력적인 도시야.’“일단 체크인부터 하죠.”잠시 후, 프런트.“네? 일반 스위트룸 숙박비가 하룻밤에 1000만원이라고요? 아니 무슨 강도도 아니고.”배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웬만한 호텔에서 한달은 지낼 수 있는 가격에 겨우 하룻밤이라니.하지만 배지수는 태연하게 직원을 향해 카드를 내밀었다.“아니요. 괜찮아요. 그 방으로 해주세요.”바로 그 순간. 상자를 든 임지환이 호텔 로비로 들어서고...체크인을 마치고 방키를 챙긴 배지수는 고개를 돌리려다 바로 임지환과 눈이 마주쳤다.“너...”그를 발견한 배지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임지환, 너 미쳤어? 우리 누나 스토킹 하는 거야? 소항시까지 따라와?”역시 임지환을 발견한 배준영이 바로 욕설을 내뱉고 유옥진은 저딴 자식과는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한편, 배지수와 그 가족들을 여기서 볼 거라곤 생각지도
분노로 가득 찬 배지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임지환이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뭔지는 몰라도 오해가 꽤 깊은 모양이네...’“가자!”“아니. 왜 자꾸 따라와? 넌 수치심 뭐 이런 것도 없어?”임지환이 여전히 따라오는 걸 발견한 유옥진이 앙칼지게 소리쳤다.“우리 누나 귀찮게 굴지 마. 누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 모두 너만 보면 열불이 나. 또 내 눈에 띄면 그땐 진짜 죽여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배준영은 정말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 소매까지 걷어붙였다.“저도 여기 예약했는데요.”“하, 네가? 하하하하.”임지환의 대답에 배진영은 마치 굉장히 우스운 농담을 들은 듯 배까지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아, 웃겨. 오랜만에 이렇게 크게 웃어보네. 야. 너 여기 숙박비에 하룻밤에 얼마인 줄이나 알아?”역시 옆에서 비웃던 유옥진이 물었다.“모르는데요.”“우리가 예약한 일반 스위트룸도 하룻밤에 1000만 원이야. 너 같은 거지 새끼가 언감생신 묵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앞으로는 허세를 부리고 싶으면 제대로 좀 알아보고 부려. 괜히 창피당하지 말고.”전 장모님의 비아냥거림에 임지환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당신은 참... 하나도 안 변했네. 한때 부부로서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그냥 성실하게 살아. 되지도 않는 자존심 부리지 말고.”깊은 한숨을 내쉰 배지수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먼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뻔뻔한 자식.”혀를 끌끌 차던 유옥진이 배준영에게 말했다.“준영아. 저딴 쓰레기랑 괜히 말 섞지 말고 그냥 가.”“아니요, 엄마. 누나랑 먼저 올라가세요.”“왜. 뭐 하려고?”“저 자식 뭔가 수상해요. 행여나 우리 방 번호 몰래 알아내려는 거면 어떡해요. 제가 제대로 감시하려고요.”“알아서 해.”배지수와 유옥진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다시 임지환 앞으로 다가간 배준영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야, 임지환. 너 뭐야? 너 우리 누나랑 이미 이혼했잖아. 그런데 왜 자꾸 우리 누나 귀찮게 굴어. 우리 외할아버지 소항시 재벌
게다가 대나무로 엮은 것 같은 낡은 상자까지 들고 있는 모습은 잡상인 그 자체였다.잠깐 동안의 스캔을 통해 장수혁은 배준영의 말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물론 고객의 외모만으로 재력을 판단하는 건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는 일이긴 했지만...‘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아주 낮은 일이니까. 아무리 봐도 부자처럼 보이진 않아.’“고객님, 방 번호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이미 대충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장수혁은 프로 의식을 발휘해 최대한 친절하게 질문했다.“펜트하우스 로열 스위트룸이요.”“로열 스위트룸? 하,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왜? 아예 이 호텔이 네 거라고 하지?”배준영이 헛웃음을 터트렸다.전에는 무던하던 성격의 임지환이 왜 이렇게까지 허세를 부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한참을 웃던 배준영이 말을 이어갔다.“저기 팀장님. 얘가 지금 뭘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으니까 성운호텔 로열 스위트룸 하루 숙박비가 얼마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저희 호텔의 로열 스위트룸은 단 두 개. 가격은 1박에 3000만원입니다. 물론 가격에 맞게 최고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죠.”“들었어? 3000만원이라잖아. 너 같은 애가 3000만원을 무슨 수로. 뭘 잘못 먹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망상증? 그런 건 것 같으니까 일단 정신과부터 좀 가봐.”‘가진 건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우리 누나 고생만 시켜놓고 이제 와서 뭐? 너 오늘 제대로 당해 봐라.’하지만 배준영의 비아냥거림에도 임지환은 침착하기만 했다.“다른 방도 내가 예약했는데?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서.”“하. 뭐라고?”배준영이 장수혁을 돌아보았다.“저기 팀장님. 이 자식 진짜 미친 거 맞다니까요. 보는 눈도 많은데 이렇게 헛소리 계속 하게 두실 거예요?”역시 임지환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장수혁이 어느새 무전기를 꺼내들고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보디가드들이 임지환을 둘러쌌다.“그러게 왜 되지도 않는 뻥을 쳐선. 쌤통이
뭐?그가 바로 VIP 임지환이라고?!장수혁의 입가에는 경련이 일었고 안색이 순식간에 격하게 변했다. 정말 머피의 법칙처럼 이렇게 되다니!배준영은 장수혁의 표정 변화를 보고 정말 화가 난 줄로 알았다."장 매니저님, 저 이 녀석 알아요. 그냥 병신일 뿐이니까 더 이상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이 바로 한 대 때려요! 때리고 나면 저 녀석은 얌전해질 거예요!"배준영은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고 그들이 싸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장수혁은 단번에 그를 밀어내고 임지환의 곁으로 달려갔다."임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십니까?""전 소식을 받은 후 줄곧 여기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치가 없어 방금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만약 제가 예의를 차리지 못한 점이 있다면 양해해 주세요!"장수혁은 임지환의 손을 꼭 잡고 끊임없이 사과했다.임지환은 그의 지나친 열정에 조금 불편함을 느껴 재빨리 손을 뺐다."모르는 자는 잘못이 없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말했다.장수혁은 바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다!이 귀한 손님이 탓을 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에 큰 사고를 쳤을 것이다.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외쳤다."모두 멍해서 뭐해? 이 분은 우리 호텔의 귀한 손님이셔, 어서 와서 맞이해야지?"이 말을 듣고 호텔 직원들은 바로 하고 있던 일을 내버려두었다.종업원, 경비원, 프런트, 청소부까지... 단번에 정연하게 두 줄로 섰다."존경하는 VIP 손님, 성운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만족은 저희의 추구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입주 체험을 하시길 바랍니다!"아무래도 5성급 호텔 직원이다 보니 모두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것이 분명했다.그들은 허리를 모두 90도로 숙였고 가지런하고 일치하게 큰소리로 외쳤다.배준영은 이 장면을 보고 넋을 잃었다!아니... 임지환이 VIP 손님이라고?설마 저 녀석이 정말 펜트하우스 로열 스위트룸에 입주한 사람인가?빌어먹을
"만약 또 다음번이 있다면 그가 또 어떤 엉뚱한 일을 할지 몰라."유옥진은 눈을 흘기며 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배지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어머니의 말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임지환이 일부러 염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우연히 만난다는 핑계는 세 살짜리 아이나 속일 수 있다!"엄마, 임지환이랑 완전히 끝냈어요. 만약 다음에 또 온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할게요!"배지수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녀도 수없이 엮이다 보니 임지환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이제 엄마의 마음을 알겠지? 그 해 그 녀석이 나타났을 때에도 동기가 불순하다고 의심했었어. 네 돈을 보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네가 줄곧 너희의 감정이 한없이 굳세다고 하니 어쩌겠어. 예전에는 어렸으니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없었기에 우리가 아무리 말을 해도 설득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혼하고 나니 그 녀석의 실체도 드러난 거야. 이제는 그의 인품과 본성이 똑똑히 보여.""그게 차라리 낫지... 그 결혼은 교훈을 사는 셈이야."유옥진은 한숨을 쉬며 배지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네. 알았어요."배지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실패한 결혼은 시종 그녀의 마음속에 꽂힌 가시와도 같다.딸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유옥진은 웃으며 위로하기 시작했다."지수야, 이혼 후가 새로운 시작이야. 봐봐, 지금 진가 둘째 도련님이 얼마나 좋아. 집안도 좋고 인품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우리가 지위 높은 진가와 엮인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어머니의 말을 듣고 배지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위로 기어오르려면 강력한 뒷받침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리고 진가가 바로 이 강력한 뒷배경이다!진운이 그녀에게 그런 뜻이 있든 없든 배지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지금 그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이 뒷배경을 단단히 잡는 것이다!"지수야, 지금 가서 샤워하고 잘 좀 꾸며."유옥진이 말했다."이따가 누구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