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은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소백중 회장님이 입원하셨다고 들었어.”하영은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자업자득이죠.”“너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유준이 떠보듯 묻자 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왜 돌아가요? 그때 하마터면 나 죽일 뻔한 사실 잊은 건 아니죠?”유준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소예준도 회사 그만뒀으니까, 앞으로 소진 그룹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하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회사를 그만 둬요?”“몰랐어?”유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네 오빠가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네.”“그게 무슨 뜻이에요?”하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추궁했다.“소예준이 몰래 중요한 프로젝트만 빼돌렸거든. 그래서 지금 소진 그룹은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할 거야.”하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소백중의 성격에 예준 오빠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알면 크게 화내실 텐데. 말로만 꾸짖는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고소한다면 감옥에 갈지도 몰라.’하영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예준에게 연락하려고 했고, 유준은 그런 하영을 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소예준이 회장님한테 고소당해서 옥살이라고 하게 될까 봐 전화해 보려고?”“네!”하영이 심각한 어조로 대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야.”유준이 낮게 깔린 어조로 얘기했다.“지금 소백중 회장님이 기댈 수 있는 건 소예준밖에 없어. 그런데 그를 감옥에 보내면, 곁에는 소진 그룹을 지탱할 만한 사람이 없거든.”“하지만 오빠는 회사를 그만뒀잖아요!”하영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어떻게 오빠한테 기댈 수 있죠?”유준이 코웃음쳤다.“소백중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만약 이런 일로 혼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김제에 3대 기업으로 살아 남았겠어?”“그럼 방금 소진 그룹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는 무슨 뜻이에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만약 소백중 회장님이 너를 찾아온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하
난원.하영과 유준이 도착하자마자, 가정부가 두 녀석을 데리고 돌아왔다.차에서 내린 하영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깨에 붉은 망토까지 걸쳐 있는 세희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세희는 평소에 편안한 옷을 입는 편인데, 며칠 안 본 사이에 갑자기 공주님으로 변했다.시선을 느낀 두 녀석은 고개를 돌려 하영을 발견하고 기쁜 표정으로 뛰어왔다.“엄마!”“엄마, 오셨어요?”세희가 제일 먼저 뛰어가 하영의 품에 안겼다.“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하영은 몸을 숙여 세희를 않으려고 하자, 곁에 있던 유준이 한마디 했다.“아직 쇄골 상처도 다 낫지 않았잖아.”그대로 손은 허공에서 멈춰버렸고, 하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세희야, 미안해. 아직은 안아줄 수 없을 것 같아.”“괜찮아요, 엄마.”세희는 고개를 쳐들어 하영을 보며 물었다.“엄마, 제가 입은 옷 예쁘지 않아요?”“예뻐…….”“예쁜 척하지 마.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몇 번이나 거울을 확인하는지.”세준이 뒤에서 걸어오며 투덜거렸고, 세희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세준을 노려보며 입을 뗐다.“나는 그냥 예쁜 척하는 것뿐이지만, 오빠는 10억이나 뜯어냈잖아!”“10억?”하영이 세준을 보며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세준아, 어떻게 된 일이야?”세준의 눈꼬리가 움찔했다.‘강세희 이 자식이…….’“엄마.”세준이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10억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기어이 저한테 준 돈이란 말이에요.”세준은 유준을 슬쩍 쳐다보았다. 혼자 물에 빠질 바에는 차라리 둘 다 같이 빠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 세준의 배신에 유준은 할 말을 잃었다.하영이 고개를 돌려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애한테 10억을 줬어요?”세준이 담담한 어조로 해명하기 시작했다.“맞아. 합리적인 요구였으니까.”“무슨 이유이든지 간에, 애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 안 되죠.”“아직 자기 아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네.”하영은 순간 멍한 표정으로 세준을 보며 물었다.“세준
“강하영, 나는 네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유준의 낮은 어조에 하영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유준의 눈가에 희미한 미소가 내비쳤다.“이제 양다인 일도 끝났으니 예전에도 나랑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는 거 알았겠지?”하영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유준 씨는 이게 양다인 혼자만의 짓이라고 생각해요?”그러자 유준의 미간이 약간 좁혀졌다.“무슨 뜻이야?”“만약 양다인이 혼자 꾸민 짓이라면, 어제 아침에 진작에 정체를 밝혔을 거예요.”“그러니까, 지금 누가 양다인을 돕고 있다는 얘기야?”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빠졌고,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이제부터 다른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냥 내 짐작일 뿐이지만.”“혹시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어?”유준의 물음에 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려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지금은 그저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김제 국제 아파트.양다인은 또다시 예전에 유준이 사 준 그 아파트로 돌아왔다.이제는 집밖을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입구에 경비원이 없었다면 그 빌어먹을 네티즌들이 당장이라도 뛰쳐들어와 자신을 팰 것 같았다.양다인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손톱만 물어뜯었다.‘대체 왜? 분명 비난받을 사람은 강하영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데! 이럴 수는 없어!’양다인은 이대로 하영에게 모든 걸 빼앗길 수 없었다.‘강하영은 왜 죽지도 않아? 왜 안 죽는 건데!’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양다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휴대폰을 노려봤다.발신자가 김형욱인 것을 확인한 양다인은 이를 악물고 전화를 받았다.“김형욱 씨!”양다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이제 겨우 한 번 실패했다고 못 견디는 거야?”“김형욱 씨가 자신있게 하라고 했잖아요!”양다인은 목청을 높였다.“그런데 이게 뭐죠? 김형욱 씨 말대로 했는데 결국엔 이런 꼴이 되었잖아요!”김형욱의 어조는
전화를 끊은 뒤 양다인은 김제 국제 아파트 주소를 주원에게 보냈다.30분 후.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양다인은 비틀거리며 뛰어가 문을 열었고, 유준을 보자마자 빠르게 그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주원 씨, 나 너무 무서워요.”주원은 여전히 차분한 눈빛으로 양다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우리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때요?”양다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원을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고, 양다인은 주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앉아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주원 씨, 저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주원이 양다인의 어깨를 감싸며 얘기했다.“일단은 피해 있는 게 좋을 것 같네요.”양다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원의 말에 따랐다.“내가 봤을 때 강하영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주원이 분석하기 시작했다.“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때요?”양다인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어떻게요?”“그건 다인 씨가 생각해 봐야죠.”양다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주원 씨, 나 이대로 참을 수 없어요.” “정유준이 나를 모든 사람의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었는데, 그래도 멀쩡히 지내고 있잖아요.”“주원 씨는 다르죠. 정씨 집안이 뒷받침해 주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주원 씨한텐 함부로 하지 못하잖아요…….”양다인이 눈물을 훔치며 얘기하자 주원이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내가 그 버팀목이 되어줄까요?”주원의 말에 양다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주원 씨……, 그 얘기는…….”“다인 씨.”주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양다인을 바라보았다.“우리 약혼해요.”입을 틀어막은 양다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게 정말이에요?”“그럼요.”주원은 양다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앞으로 내가 있으니까 아무도 다인 씨를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양다인은 앞으로 다가가 주원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마치 주원의 몸에서 안전감을 되찾으려는 듯 전보다 더 미친 듯이 주원의 입술을 탐했다.두 눈을 감고
“유준 씨가 간다고 해?”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처음엔 거절하더라고.”인나가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현욱 씨가 너도 간다고 하니까 바로 가겠다고 하던데?”하영은 어이가 없었다.“뭐야,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이야?”“에잇, 그런 건 상관하지 마! 어차피 구정인데 우리 같이 휴가 가자!”“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별장에 들어섰고, 세희가 맨발로 뛰쳐나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엄마, 우리 놀러가는 거죠?”하영은 세희의 작은 콧망울을 쓱 훑었다.“그래. 이모가 임신한 걸 축하할 겸 우리도 초대했어.”“임신이요?”세희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아기가 생긴다는 뜻이에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모 배속에 지금 아기가 있으니까, 세희도 이제 언니가 되겠네.”“진짜요? 정말이죠?”세희는 들뜬 표정으로 깡충깡충 뛰었다.“저 정말 언니되는 거예요?”“진짜라니까.”하영은 세희의 손을 잡고 거실로 향했다.“내일 병원에 가 볼 생각이야.”그 말에 세준이도 고개를 돌렸다.“병원에 가서 희민이 상태를 물어보러 가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유준이 설 전에 퇴원할 수 있다고 했거든. 그래서 구체적인 시간을 물어보려고. 희민이 혼자만 남겨두고 떠날 순 없잖아.”그때 세준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도 같이 가도 돼요?”“엄마, 저도 가고 싶어요!”세희도 다급하게 말하자 하영은 웃으며 답했다.“그래, 다들 같이 가자.”다음날.하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의사 사무실 앞에 이르자, 하영은 유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희민이 지금 상태는 어떻습니까?”“잠시 후에 작은 도련님께서 무균시에서 나올 겁니다. 현재 매우 안정된 상태고, 혈소판 수치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후반기에는 약물 치료만 받으면 되고,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으면 체력도 서서히 회복될 겁니다.”의사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 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입을 앙다무는 희민의 눈가엔 하영의 말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괜찮아요 엄마. 저 견뎌냈어요.”희민은 작은 손으로 하영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하영은 그 손을 잡고 자책하듯 얘기했다.“엄마가 돼서 너의 몸상태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 엄마는 자격도 없어. 많이 아팠지? 제일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희민아. 미안해…….”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하영을 보자, 희민은 골수를 뽑을 때와 약물 치료로 힘들던 날들이 떠올랐다.희민은 하영의 품에 뛰어들어 그녀의 옷자락을 꽉 잡으며 입을 열었다.“사과하지 마세요. 저도 엄마 속상한 거 싫어요. 저 정말 열심히 버텼어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엄마앞에 나타나고 싶었거든요.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저도 마음이 아파요…….”두 사람의 모습에 곁에 있던 세준과 세희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세희가 울면서 앞으로 다가가려다가 세준에게 옷깃을 잡혀버리자, 울면서 소리쳤다.“나 잡지마, 나도 희민 오빠 안아 주고 싶어…….”“그 더러운 손으로 희민이 건드리지 마.”세준이 눈물을 닦으며 얘기하자, 세희는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렸다.“내 손 깨끗하단 말이야!”그러자 세준이 그런 세희를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깨끗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오빠보다 깨끗해!”세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이쪽에서는 서로 껴안고 눈물바다가 되었는데, 다른 한 쪽에서 싸우는 걸 곁에서 지켜보던 유준은 할 말을 잃었다.세 아이들의 성격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희민이가 무균실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현욱과 인나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병실 문이 열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희민을 발견한 인나는 눈물을 터뜨렸다.“우리 희민이 정말 장하네! 병마와 싸워서 이겨냈구나!”희민은 인나의 열정적인 모습에 적응이 안 되는지 그저 입술을 오므리며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모.”인나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현욱을 끌고와, 그의 몸에 걸려 있는 선물들을 내려
인나와 현욱은 잠깐 있다가 병실을 떠났다.희민은 오늘 금방 무균실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직은 병원을 떠날수 없어, 하영이 희민이 곁에 남겠다고 했다.세희와 세준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유준에게 돌아갔고, 그들이 병실을 떠난 뒤, 하영은 희민이 주치의를 찾아가 물었다.“선생님, 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희민이를 데리고 놀러 가도 괜찮을까요?”“회복이 빠른 편이라 문제 없을 겁니다. 대신 의사랑 같이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네요.”하영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네, 그럼 내일은 퇴원할 수 있을까요?”“설 전날인데 당연히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내야죠.”의사가 웃으며 얘기했다.“무균실에서 한 달이나 외롭게 혼자 보냈잖아요.”“감사합니다.”“당연한 일입니다.”병실로 돌아온 하영은 이미 잠든 희민이를 지켜보다가 침대로 다가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손을 뻗어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자 희민이가 손길을 느꼈는지 천천히 눈을 떴고, 하영은 손을 멈칫했다.“희민아, 미안해. 엄마 때문에 깼지?”희민은 고개를 저으며 약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에요, 엄마.”“배고프지 않아? 엄마가 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까?”“배 안 고파요. 엄마,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하영이 웃으며 물었다.“묻고싶은 게 뭔데?”“엄마, 아빠랑 화해할 수 있어요?”희민이가 조심스레 묻자, 하영은 깜짝 놀랐다.“왜 그렇게 묻는 거야?”“오늘 엄마랑 아빠가 싸우지 않아서요. 한 달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하영은 손을 거두고 침대맡에 앉아서 희민을 천천히 품에 안았다.“희민아, 그동안 확실히 많은 일이 있었어.”하영이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했다.“그런데 설명하자면 조금 긴 얘기가 될 거야.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빠랑 어떻게 될지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대신 지금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엄마가 만약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그때는 꼭 함께 하 거야.”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이젠 양다인도 해
“온다고 하면 말리진 않아요. 게다가 나도 희민이와 설을 같이 보내고 싶어요.”말을 마친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화장실 다녀올게요.”유준의 곁을 지나갈 때, 유준이 갑자기 하영의 팔을 잡았다.미처 반응하지 못한 하영은 그대로 유준의 품에 안겼고, 그는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하영을 꽉 껴안았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까지 빨갛게 물든 하영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애도 있는데 어서 이 손 놔요!”“하영아.”유준의 숨결이 하영의 목에 닿자, 감전된 듯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 하영은 얼른 그를 밀어냈다.“할 얘기 있으면 이거 놓고 얘기해요.”유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입술을 벌려 부드럽고 낮은 어조로 속삭였다.“우리 다시 만나자.”하영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몸은 유준의 말로 인해 굳어져버렸다.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목구멍에 솜사탕이라도 걸린 듯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다시 만나자고?’하영은 어쩐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거절하고 싶었지만, 핑계가 생각나지 않았다.하영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유준이 먼저 입을 뗐다.“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유준이 말을 이었다.“그래도 내 얘기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하영은 천천히 뻗뻗하게 굳은 몸을 풀었다.“유준 씨, 나한테 시간을 좀 줘요…….”“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지 얘기해줘.”하영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떼려는 순간 유준의 휴대폰이 울렸고, 하영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유준을 밀어내며 빨갛게 물든 얼굴로 얘기했다.“일단 전화부터 받아요.”유준이 휴대폰을 꺼내자 시원의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대표님, 큰 도련님이랑 양다인 씨가 약혼 준비를 한답니다!”유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언제 일어난 일인데?”“저녁이요.”시원이 설명을 이었다.“회장님을 감시하던 직원이 보고한 소식인데, 큰 도련님께서 저녁에 회장님의 허락을 받으셨답니다.”“그래, 알았어!”유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