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왜 여기서 자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럼 왜 자꾸 이불을 걷어 차는지 본인한테 물어보지 그래?”하영은 난감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얘기했다.“애 앞에서 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예요!”“네가 이불만 제대로 덮고 잤으면 나도 좁은 침대에서 잠들지 않았을 거야.”유준은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잠에서 깬 희민을 보며 얘기했다.“오늘 퇴원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따가 너 먼저 아크로빌로 데려다 줄게.”희민이 놀란 눈빛을 하더니 이내 작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네.”하영은 어처구니 없는 눈빛으로 유준을 째려보았다.‘지금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오전 10시.희민이 퇴원하자, 유준은 하영과 희민이를 아크로빌레 데려다 줬다.“이따가 조금 늦게 다시 올게.”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희민이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별장에 들어서자 두 녀석이 거실에서 달려나와 희민을 발견하고 들뜬 표정으로 세희가 환호했다.“희민 오빠, 퇴원 축하해!”세준도 웃으며 희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두 녀석이 희민을 끌고 거실에가 놀았고, 하영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주희를 불렀다.“주희 씨.”“네, 저 여기 있어요!”주희가 주방에서 뛰쳐나오며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에요?”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설 전날인데 집에 안 가도 괜찮아?”주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저희 부모님이 여행하시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끼워주세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같이 보내면 떠들썩 하고 좋지. 이따가 나랑 식자재 사러 가자.”“오케이!”오후에 하영은 주희와 함께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사 왔는데 일본 요리, 바베큐, 해산물 등등 없는 게 없었다.아크로빌로 돌아오니 거의 4시가 되었고, 인나와 현욱도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인나가 크고작은 식자재 주머니를 보고 얼른 달려와 도와주려
하영이 농담을 건넸다.“더 늦게 오면 나랑 주희 씨 정신없이 바쁠 거야.”“진석 씨랑 캐리가 도와주러 안 왔어?”예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인나도 아직 안 왔어?”“인나 임신해서 주방에 못 들어오게 했어. 애들은 진석 씨랑 캐리를 잡고 놀아달라고 해서 벗어날 수 없거든.”현욱은 인나 옆에 딱 붙어서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예준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배현욱 아이야?”예준의 말에 하영은 어이가 없었다.“오빠, 현욱 씨 이외에 인나는 다른 남자랑 만난 적도 없어…….”“미안, 미안. 나 술 가지러 갔다가 15분이면 도착할 거야.”“그래, 조심해서 와.”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휴대폰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유준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 5시 30분이 다 되었으니 볼 일도 다 마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문자를 보내 보기로 했다.[이제 곧 상을 차리려고 하는데, 언제 도착해요?]그리고 한참 기다렸지만 유준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영은 할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 놓고 주희를 도와 음식을 날랐다.정창만의 저택.정유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정창만은 중앙의 주인석에 앉았고, 정홍준과 정주원, 그리고 양다인은 정창마의 옆에 앉았다.숨 막히는 분위기는 활기찬 바깥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고, 정홍준은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는지 젖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어올리며 버벅 거리며 입을 열었다.“아……, 아버지, 오늘은 설 전이니까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넉넉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정창만도 형식적으로 술잔을 들어 정홍준과 잔을 부딪쳤다.“고맙구나, 마시자.”정홍준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버렸다.잔을 내려놓은 후에도 분위기가 여전히 이상한 것을 느끼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정주원은 양다인에게 게를 집어주고 정창만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오늘같은 날에 다인 씨는 부모님도 없고 혼자 지내는 게 안심이 되지 않아서 같이 보내려고 데려왔어요. 저희
“형이랑 무슨 상관인데?”유준이 흘겨보며 차가운 어조로 대꾸하자, 정홍준이 뭐라 한 마디 하려고 할 때, 정창만이 식탁에 잔을 탁 하고 내려 놓고 유준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네놈은 예의도 없냐?”“아버지.”그때 주원이 태연스레 입을 열었다.“막내가 아직 어려서 약간 성질이 있는 것도 정상이니까 너무 화내지 마세요.”주원이 이렇게 얘기할 수록 정창만의 화는 더욱 치밀어 올랐다.정창만은 날칼운 눈빛으로 유준을 쏘아보며 얘기했다.“이 집안에 너만 있으면 조용한 날이 없구나!”“그 말을 똑같이 돌려드리죠. 이 집안에 정주원만 있으면 더럽게 느껴지거든요.”유준이 코웃음을 치며 얘기하자 정창만은 시탁을 세게 내리쳤다.“꺼져! 이 짐승같은 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유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느긋하게 양복 단추를 잠갔다.“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저도 성폭행범이랑 같은 식탁에 앉아 밥 먹을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말을 마친 유준은 식당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몇 걸음 내 딛지 않았을 때 등 뒤로 찻잔이 날아왔다.뜨거운 찻물이 옷에 스며들어 등이 젖어들었다.“당장 이 집에서 나가! 차라리 밖에서 죽어버려서 영원히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이 짐승 같은 놈!”유준은 살벌한 얼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섰다. 주방을 지나고 있을 때 마침 보양식을 들고 나오던 양다인과 마주치고 말았다.양다인은 고개를 들어 유준을 바라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준 씨……, 벌써 가려고?”유준은 양다인을 힐끗 바라보고 얼음처럼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내가 네 능력을 너무 얕잡아 봤어.”그 말에 양다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미처 해명하기 전에 유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그 시각 시원은 불꽃놀이를 구경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는데, 유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입안에 햄버거를 삼키고 입을 열었다.“대표님!”유준은 시원을 한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아크로빌로 가자.”“네!”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유준은 백미러를 통해 시원을
예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진석이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웃었다.“왜 그러시죠?”예준은 시선을 거두고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잠시 할 얘기가 있어요.”“좋아요.”두 사람은 식탁에서 벗어나 정원으로 나왔고, 예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석 씨는 하영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진석은 스웨터 옷깃을 정리하며 대답했다.“하영이 곁을 5년이나 지켰는데, 이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그런데 방금 정유준을 언급할 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라서요.”예준이 솔직하게 얘기하며 진석을 뚫어져라 응시했고, 진석은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서른이 넘었는데, 자기 감정 정도는 컨트롤 해야죠.”예준은 차에 기대며 얘기했다.“그래도 너무 무덤덤해 보여서요.”“하영과 저는 미래가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까요.”진석이 차분하게 대답하자, 예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노력해 보지 않는 거죠?”“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진작에 함께 있었겠죠.”예준은 진석이 그의 여동생과 함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성격도 좋고, 또 하영을 생각하는 남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진석 씨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세요.”“아니요.”진석은 거절했다.“이렇게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예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을 평생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요.”진석은 침묵을 지키가다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희생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감수할 수 있어요.”예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진석의 말에 약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희생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고통받는 걸 즐기는 성향이 있나?’“밖이 너무 추운데 먼저 들어갈게요.”말을 마친 진석이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유준의 차가 정원에 들어섰다.예준은 차에서 내리는 유준을 발견하고 경고라도 하려는 듯 앞으로 다가갔다.“연말에 괜히 우리 하영의 기분 잡치게 하지 마!”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예준을 힐끔
유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 입 좀 닥쳐!”“캐리한테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새 옷이 있어요.”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내가 가져다 줄게요.”“맞아, 나랑 체격도 비슷하고, 아직 상표도 안 뜯은 옷들이 많을 거야.”캐리도 뒤따라가며 입을 열었다.유준은 무거운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더니 그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영은 옷을 찾아 유준에게 건네주었다.“감기 걸리기 전에 얼른 갈아입어요.”불쑥 튀어나온 하영의 말에 유준은 옷을 들고 그녀를 지긋이 응시했다.“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하영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방금 자기 말과 행동이 유준을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나가 있을 테니까 옷 갈아입어요.”유준은 하영의 팔을 잡았다.“샤워하고 싶은데 수건 있어?”하영은 고개를 그덕였다.“가져다줄게요.”하영은 손을 빼내고 수건 가지러 가다가 지금도 후회스러웠다.‘방금 내가 걱정한 게 그렇게 티가 났나? 만약 그렇다면 인나랑 다른 사람들도 이미 눈치챈 거 아니야?’하영은 한숨을 내쉬고 수건을 챙긴 뒤, 다시 캐리의 방으로 향했다.방문을 열자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수건을 가지고 그쪽으로 갔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유준이 상의를 벗고 욕실에 서 있었는데, 하영은 그의 등 뒷부분이 화상으로 벌겋게 된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얼마나 뜨거운 차를 던졌으면 이렇게 될 정도지?’시선을 느낀 유준이 몸을 돌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하영을 바라보았다.“내 몸에 관심이 많은가 봐?”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아니, 그냥 등 뒤에…….”“나 보고 있었던 거 맞잖아.”유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하영에게 다가갔다.“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나는 상관없어.”하영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어, 얼른 씻으세요! 이만 나가볼게요.”유준은 하영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유준의 뜨거운 숨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다가 캐리는 취기가 오른 눈빛으로 예준을 바라보았다.“예준 형, 그 두 사람 분명 수상한 짓을 하는 게 틀림없어요!”예준이 캐리를 한 번 보고, 또 다시 말없이 음식만 먹고 있는 진석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하영도 자신만의 선택이 있기 마련이니, 나는 개입하지 않을 거야.”밥을 다 먹고 카펫에서 같이 놀던 세 녀석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세희는 발로 세준을 툭툭 치며 물었다.“오빠, 지금 하는 얘기 무슨 뜻이야? 아빠랑 엄마가 위층에서 게임을 한다는 얘기야?”그 말에 세준과 희민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희민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세희야, 두 사람 아마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계실 거야.”“그런데 이모는 왜 저렇게 몰래 올라가는데?”세준은 소넹 들고 있던 블록을 내려 놓으며 입을 열었다.“세희 너 예전부터 누나가 되고 싶다고 했지?”그러자 세희가 눈을 반짝였다.“나 누나가 될 수 있어?”희민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세희는 남동생이 좋아 아니면 여동생이 좋아?”“새로운 남동생이나 여동생은 싫어!”세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세준과 희민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그럼 어떻게 누나가 될 건데?”그러제 세희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나 두 사람 누나가 되고 싶어!”“…….”그 말에 세준과 희민은 할 말을 잃었다.위층.현욱과 인나는 문에 달라붙어서 방안의 인기척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현욱이 미간을 찌푸렸다.“방음 효과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요.”인나도 약간 답답했다.“그럴 리가 없을 텐데! 예전에 하영이 통화할 때 어렴풋이 들렸어요.”현욱이 인나를 보며 얘기했다.“설마 유주이 하영 씨 입을 틀어막은 건 아니겠지?”“혹시 우리가 들을까 봐?”인나도 흥분된 표정으로 되물었다.“모르겠어요. 어쩌면 하영 씨가 소리를 참고 있는지도 모르죠.”인나는 현욱을 흘겼다.“그게 어디 본인 마음대로 되는
12시가 되자 캐리와 현욱은 폭죽을 잘 배치한 다음 물을 붙였다.불꽃이 하늘에서 피어나자, 모두가 서로 웃으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축복을 건넸다.유준이 시원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원은 차에 가서 두꺼운 봉투 세 개를 가져와 유준에게 건넸고, 그는 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두툼한 봉투를 만져보던 세희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이렇게 두툼한 걸 보니, 엄청 많은 돈이 들어있겟네요!”예준과 다른 사람들도 각자 미리 준비한 세벳돈을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아이들은 세뱃돈을 받고 새해 인사를 전했고, 세준이 하영을 보며 물었다.“엄마는 세뱃돈 안 줘요?”하영은 일부러 농담을 던졌다.“세뱃돈 맣이 받은 것 같은데, 그걸로 부족해?”“엄마는 우리한테 세뱃돈 주기 싫어요?”하영이 웃으며 패딩에서 봉투를 꺼냈다.“엄마가 어떻게 너희들 세뱃돈을 잊겠어?”그리고 애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얘기했다.“희민이, 세준이, 세희, 새해 복 많이 받아! 새해에는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랄게.”세 녀석은 웃으며 하영을 바라보다가 이구동성으로 축복을 건넸다.“엄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대박나길 바랄게요!”“새해 복 많이 받아.”그때 유준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하영이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얼굴이 불꽃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찬찬하게 빛나고 있었다.하영의 눈가에는 미소가 떠오르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새해 복 많이 받아요!”……초 하루, 새벽 다섯시 아직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하영은 애들을 깨워서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혀준 뒤, 대충 아침을 먹고 묘지로 향했다.공동묘지 밖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던 예준은 하영과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걸 발견하고 앞으로 다가왔다.“하영아, 물건은 이미 준비해 놨어.”“물건이요?”아직 잠에서 덜 깬 세희가 눈을 비비며 멍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우리 어디로 가요?”하영은 세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예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세희는 나 닮았지.”하영의 손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얘기하는 거 잊었네요. 여기는 제 오빠예요. 알고 있죠? 엄마도 소씨 집안에 오래 계셨으니 분명 오빠도 챙겨준 적 있을 거예요.”“세희야, 왜 그래?”하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말없이 있던 세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고, 하영이 고개를 돌려 세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다가 멍하니 서 있는 세희를 보고 물었다.“세희야, 왜 그래?”세희가 손을 뻗어 영정 사진을 가리키면서 뭔가 생각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손을 내렸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세희는 고개를 저었다.세희는 사진 속의 사람이 어딘가 낯이 익고 어디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혹시 꿈에서 봤나?’세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하영이 할 일을 마칠 때가지 계속 영정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조금뒤 하영이 자에서 일어났다.“오빠, 저쪽에 다른 묘지가 있는데 지영 이모가 거기 묻혀 있거든. 거기도 가서 인사드리고 싶어.”“그래.”예준은 대답하고 희민을 안았다.“희민아, 삼촌한테 안겨서 가자.”희민은 거절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차에 올랐다.지영이 묻혀 있는 묘지는 옆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아직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하영은 멀리서 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남자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묘비 앞에 우둑 서 있었는데, 희미한 안개가 주의를 감싸고 있어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더해줬다.하영은 지금 무덤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유준이란 것을 알고 있있다.“정유준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예준이 감탄하듯 입을 열자, 하영은 시선을 거두었다.“유준 씨한텐 엄마만이 유일한 가족이니까.”그 말을 내뱉을 때 하영의 가슴이 약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유준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은 그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영에겐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