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진석이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웃었다.“왜 그러시죠?”예준은 시선을 거두고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잠시 할 얘기가 있어요.”“좋아요.”두 사람은 식탁에서 벗어나 정원으로 나왔고, 예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석 씨는 하영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진석은 스웨터 옷깃을 정리하며 대답했다.“하영이 곁을 5년이나 지켰는데, 이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그런데 방금 정유준을 언급할 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라서요.”예준이 솔직하게 얘기하며 진석을 뚫어져라 응시했고, 진석은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서른이 넘었는데, 자기 감정 정도는 컨트롤 해야죠.”예준은 차에 기대며 얘기했다.“그래도 너무 무덤덤해 보여서요.”“하영과 저는 미래가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니까요.”진석이 차분하게 대답하자, 예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노력해 보지 않는 거죠?”“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진작에 함께 있었겠죠.”예준은 진석이 그의 여동생과 함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성격도 좋고, 또 하영을 생각하는 남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진석 씨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세요.”“아니요.”진석은 거절했다.“이렇게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예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을 평생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요.”진석은 침묵을 지키가다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희생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만 있다면 감수할 수 있어요.”예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진석의 말에 약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희생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고통받는 걸 즐기는 성향이 있나?’“밖이 너무 추운데 먼저 들어갈게요.”말을 마친 진석이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유준의 차가 정원에 들어섰다.예준은 차에서 내리는 유준을 발견하고 경고라도 하려는 듯 앞으로 다가갔다.“연말에 괜히 우리 하영의 기분 잡치게 하지 마!”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예준을 힐끔
유준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 입 좀 닥쳐!”“캐리한테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새 옷이 있어요.”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내가 가져다 줄게요.”“맞아, 나랑 체격도 비슷하고, 아직 상표도 안 뜯은 옷들이 많을 거야.”캐리도 뒤따라가며 입을 열었다.유준은 무거운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더니 그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영은 옷을 찾아 유준에게 건네주었다.“감기 걸리기 전에 얼른 갈아입어요.”불쑥 튀어나온 하영의 말에 유준은 옷을 들고 그녀를 지긋이 응시했다.“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하영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방금 자기 말과 행동이 유준을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나가 있을 테니까 옷 갈아입어요.”유준은 하영의 팔을 잡았다.“샤워하고 싶은데 수건 있어?”하영은 고개를 그덕였다.“가져다줄게요.”하영은 손을 빼내고 수건 가지러 가다가 지금도 후회스러웠다.‘방금 내가 걱정한 게 그렇게 티가 났나? 만약 그렇다면 인나랑 다른 사람들도 이미 눈치챈 거 아니야?’하영은 한숨을 내쉬고 수건을 챙긴 뒤, 다시 캐리의 방으로 향했다.방문을 열자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수건을 가지고 그쪽으로 갔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유준이 상의를 벗고 욕실에 서 있었는데, 하영은 그의 등 뒷부분이 화상으로 벌겋게 된 것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얼마나 뜨거운 차를 던졌으면 이렇게 될 정도지?’시선을 느낀 유준이 몸을 돌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하영을 바라보았다.“내 몸에 관심이 많은가 봐?”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아니, 그냥 등 뒤에…….”“나 보고 있었던 거 맞잖아.”유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하영에게 다가갔다.“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나는 상관없어.”하영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어, 얼른 씻으세요! 이만 나가볼게요.”유준은 하영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유준의 뜨거운 숨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다가 캐리는 취기가 오른 눈빛으로 예준을 바라보았다.“예준 형, 그 두 사람 분명 수상한 짓을 하는 게 틀림없어요!”예준이 캐리를 한 번 보고, 또 다시 말없이 음식만 먹고 있는 진석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하영도 자신만의 선택이 있기 마련이니, 나는 개입하지 않을 거야.”밥을 다 먹고 카펫에서 같이 놀던 세 녀석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세희는 발로 세준을 툭툭 치며 물었다.“오빠, 지금 하는 얘기 무슨 뜻이야? 아빠랑 엄마가 위층에서 게임을 한다는 얘기야?”그 말에 세준과 희민은 서로 눈이 마주쳤고, 희민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세희야, 두 사람 아마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계실 거야.”“그런데 이모는 왜 저렇게 몰래 올라가는데?”세준은 소넹 들고 있던 블록을 내려 놓으며 입을 열었다.“세희 너 예전부터 누나가 되고 싶다고 했지?”그러자 세희가 눈을 반짝였다.“나 누나가 될 수 있어?”희민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세희는 남동생이 좋아 아니면 여동생이 좋아?”“새로운 남동생이나 여동생은 싫어!”세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세준과 희민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그럼 어떻게 누나가 될 건데?”그러제 세희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나 두 사람 누나가 되고 싶어!”“…….”그 말에 세준과 희민은 할 말을 잃었다.위층.현욱과 인나는 문에 달라붙어서 방안의 인기척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현욱이 미간을 찌푸렸다.“방음 효과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요.”인나도 약간 답답했다.“그럴 리가 없을 텐데! 예전에 하영이 통화할 때 어렴풋이 들렸어요.”현욱이 인나를 보며 얘기했다.“설마 유주이 하영 씨 입을 틀어막은 건 아니겠지?”“혹시 우리가 들을까 봐?”인나도 흥분된 표정으로 되물었다.“모르겠어요. 어쩌면 하영 씨가 소리를 참고 있는지도 모르죠.”인나는 현욱을 흘겼다.“그게 어디 본인 마음대로 되는
12시가 되자 캐리와 현욱은 폭죽을 잘 배치한 다음 물을 붙였다.불꽃이 하늘에서 피어나자, 모두가 서로 웃으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축복을 건넸다.유준이 시원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원은 차에 가서 두꺼운 봉투 세 개를 가져와 유준에게 건넸고, 그는 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두툼한 봉투를 만져보던 세희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이렇게 두툼한 걸 보니, 엄청 많은 돈이 들어있겟네요!”예준과 다른 사람들도 각자 미리 준비한 세벳돈을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아이들은 세뱃돈을 받고 새해 인사를 전했고, 세준이 하영을 보며 물었다.“엄마는 세뱃돈 안 줘요?”하영은 일부러 농담을 던졌다.“세뱃돈 맣이 받은 것 같은데, 그걸로 부족해?”“엄마는 우리한테 세뱃돈 주기 싫어요?”하영이 웃으며 패딩에서 봉투를 꺼냈다.“엄마가 어떻게 너희들 세뱃돈을 잊겠어?”그리고 애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얘기했다.“희민이, 세준이, 세희, 새해 복 많이 받아! 새해에는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랄게.”세 녀석은 웃으며 하영을 바라보다가 이구동성으로 축복을 건넸다.“엄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대박나길 바랄게요!”“새해 복 많이 받아.”그때 유준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하영이 고개를 돌리자, 아름다운 얼굴이 불꽃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찬찬하게 빛나고 있었다.하영의 눈가에는 미소가 떠오르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새해 복 많이 받아요!”……초 하루, 새벽 다섯시 아직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하영은 애들을 깨워서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혀준 뒤, 대충 아침을 먹고 묘지로 향했다.공동묘지 밖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던 예준은 하영과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걸 발견하고 앞으로 다가왔다.“하영아, 물건은 이미 준비해 놨어.”“물건이요?”아직 잠에서 덜 깬 세희가 눈을 비비며 멍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우리 어디로 가요?”하영은 세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예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세희는 나 닮았지.”하영의 손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얘기하는 거 잊었네요. 여기는 제 오빠예요. 알고 있죠? 엄마도 소씨 집안에 오래 계셨으니 분명 오빠도 챙겨준 적 있을 거예요.”“세희야, 왜 그래?”하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금까지 말없이 있던 세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고, 하영이 고개를 돌려 세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다가 멍하니 서 있는 세희를 보고 물었다.“세희야, 왜 그래?”세희가 손을 뻗어 영정 사진을 가리키면서 뭔가 생각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손을 내렸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세희는 고개를 저었다.세희는 사진 속의 사람이 어딘가 낯이 익고 어디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혹시 꿈에서 봤나?’세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하영이 할 일을 마칠 때가지 계속 영정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조금뒤 하영이 자에서 일어났다.“오빠, 저쪽에 다른 묘지가 있는데 지영 이모가 거기 묻혀 있거든. 거기도 가서 인사드리고 싶어.”“그래.”예준은 대답하고 희민을 안았다.“희민아, 삼촌한테 안겨서 가자.”희민은 거절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차에 올랐다.지영이 묻혀 있는 묘지는 옆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아직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하영은 멀리서 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남자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묘비 앞에 우둑 서 있었는데, 희미한 안개가 주의를 감싸고 있어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더해줬다.하영은 지금 무덤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유준이란 것을 알고 있있다.“정유준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예준이 감탄하듯 입을 열자, 하영은 시선을 거두었다.“유준 씨한텐 엄마만이 유일한 가족이니까.”그 말을 내뱉을 때 하영의 가슴이 약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유준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은 그를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영에겐 그
유준의 말에 하영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내가 방금 무슨 생각한 거지?’“나는 오빠랑 갈게요.”하영이 대답했다.“지금 차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유준은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했다.“하영의 차를 따라오면 돼. 나는 그 차 타고 갈게.”유준은 전화를 끊고 하영을 보며 물었다.“같이 타도 괜찮지?”하영은 본인 차도 있으면서 심지어 자신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멋대로 결정한다고 어이없는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이제와서 어떻게 거절해?’두 사람이 차에 탔고, 유준은 세 아이들도 있는 걸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오늘 캠핑카를 몰고 왔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유준 씨가 앉을 자리는 없었을 거예요. 애들도 우리 부모님을 보여주려고 데려왔어요.”하영은 또 예준에게도 설명했다.“오빠, 유준 씨도 인사드리고 싶대. 희민이 아빠잖아.”하영의 말에 예준도 더 얘기하지 않았다.가는 동안 세희는 유준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고, 유준도 세희랑 놀아줬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준이 하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생각밖으로 애들이랑 잘 놀아주네.”하영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얘기했다.“나도 언제부터 유준 씨가 세준이와 세희한테 이렇게 잘해주기 시작했는지 몰라. 예전엔 잡종이라고 욕까지 했었는데…….”“혹시 알게 된 건 아닐까?”예준의 미간이 좁혀졌다.“그건 아닐 거야. 알았다면 진작에 나한테 와서 따졌겠지.”“하긴.”20분 후 다른 공동묘지에 도착했다.하영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고, 유준도 희민이를 안고 예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묘지 입구에는 등이 구부정하고 오래된 회색 점퍼를 입은 늙은이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었다.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늙은이는 몸을 돌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예준이 늙은이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아저씨, 저희 제사 지내러 왔어요.”말을 마친 예준은 하영을 향해 소개하기 시작했다.“하영아, 이 분은 지철 아저씨라고, 여기 무덤 관리인 분이
묘비를 닦은 뒤 예준은 하영을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아버지, 어머니, 동생 데리고 두분 뵈러 왔어요. 동생 찾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 어머니.”하영이 묘비 앞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며 알수 없는 친숙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예준은 하여을 향해 웃었다.“너무 불편해하지 마. 부모님도 네가 온 걸 보고 기뻐할 거야.”하영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애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희민이와 세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유준의 품에 안겨있는 세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세희야.”세희는 머리를 약간 움찔하더니 그래도 고개를 돌릴 생각은 없어 보였고, 유준이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추워서 이래.”하영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노지철의 말이 떠올랐다가 이내 너무 황당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얼른 떨쳐버렸다.하영은 세준고 희민의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인사를하게 했고, 예준이 곁에서 설명했다.“아버지, 어머니. 하영의 아이들이에요…….”예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방에서 큰 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했다.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스산한 소리에 세희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돌아가요!”세희는 유준의 품에서 울면서 얘기했다.“돌아 가고 싶어요! 갈래요!”하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의 등을 다독여었다.“세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인지 얘기해 봐.”“여기 있기 싫어요! 여기 있기 싫어요!”세희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하영이 예준을 바라보자, 예준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세희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자.”하영과 일행은 세희를 데리고 얼른 묘지를 벗어났다.떠나기 전에 노지철이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고,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는 세희를 보더니 다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가씨, 잠시 이쪽으로 와보세요.”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노지철에게 다가갔다.“아저씨, 무슨 일이에요?”노지철은 주머니에서
“유준 씨 말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아니.”“미신따위 믿지 않는다면서, 왜 다른 사람이 세희에게 준 물건에 신경 쓰는 거죠?”하영은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더러운 물건일 수도 있잖아!”“그 위에 바이러스라도 묻었어요?”하영은 어이가 없었다.“그 아저씨도 지저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에 희민과 세준은 서로 마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유준이 다시 반박하려고 할 때 예준이 얼른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다.“됐어, 그냥 부적일 뿐이잖아. 그 아저씨 나도 아는 분인데 나쁜 사람 아니야.”예준은 두 사람을 말리지 않으면 아마 싸움이 끝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번 일 때문에 유준과 하영은 아크로빌로 돌아올 때까지 토라져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뒤 유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원과 떠났다.예준은 세희를 안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하영과 함께 집에 들어가 세희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하영아, 너무 화내지 마. 나 다시 돌아가 봐야 하니까 먼저 갈게.”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예준이 떠나고 하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세희를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희를 안아 다리 위에 앉혀 놓고 달래주기 시작했다.“세희야, 오늘 대체 왜 그랬는지 엄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세희는 하영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저 멍한 눈빛으로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세준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하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엄마, 혹시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거랑 관련있는 거 아닐까요?”“어떤 얘기?”하영이 생각을 되짚어봤다.“세희는 양기가 약하다고 하셨잖아요.”희민이 곁에서 대신 설명해 주자 하영은 미간을 지푸렸다.‘이 방면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는데…….’한참 생각하다가 하영은 주희가 생각났다.“세준아, 가서 주희 누나 좀 불러와.”세준은 얼른 카펫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고, 이내 주희가 세준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