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를 닦은 뒤 예준은 하영을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아버지, 어머니, 동생 데리고 두분 뵈러 왔어요. 동생 찾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 어머니.”하영이 묘비 앞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며 알수 없는 친숙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예준은 하여을 향해 웃었다.“너무 불편해하지 마. 부모님도 네가 온 걸 보고 기뻐할 거야.”하영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애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희민이와 세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유준의 품에 안겨있는 세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세희야.”세희는 머리를 약간 움찔하더니 그래도 고개를 돌릴 생각은 없어 보였고, 유준이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추워서 이래.”하영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노지철의 말이 떠올랐다가 이내 너무 황당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얼른 떨쳐버렸다.하영은 세준고 희민의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인사를하게 했고, 예준이 곁에서 설명했다.“아버지, 어머니. 하영의 아이들이에요…….”예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방에서 큰 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했다.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스산한 소리에 세희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돌아가요!”세희는 유준의 품에서 울면서 얘기했다.“돌아 가고 싶어요! 갈래요!”하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의 등을 다독여었다.“세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인지 얘기해 봐.”“여기 있기 싫어요! 여기 있기 싫어요!”세희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하영이 예준을 바라보자, 예준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세희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자.”하영과 일행은 세희를 데리고 얼른 묘지를 벗어났다.떠나기 전에 노지철이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고,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는 세희를 보더니 다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가씨, 잠시 이쪽으로 와보세요.”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노지철에게 다가갔다.“아저씨, 무슨 일이에요?”노지철은 주머니에서
“유준 씨 말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아니.”“미신따위 믿지 않는다면서, 왜 다른 사람이 세희에게 준 물건에 신경 쓰는 거죠?”하영은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더러운 물건일 수도 있잖아!”“그 위에 바이러스라도 묻었어요?”하영은 어이가 없었다.“그 아저씨도 지저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에 희민과 세준은 서로 마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유준이 다시 반박하려고 할 때 예준이 얼른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다.“됐어, 그냥 부적일 뿐이잖아. 그 아저씨 나도 아는 분인데 나쁜 사람 아니야.”예준은 두 사람을 말리지 않으면 아마 싸움이 끝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번 일 때문에 유준과 하영은 아크로빌로 돌아올 때까지 토라져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뒤 유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원과 떠났다.예준은 세희를 안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하영과 함께 집에 들어가 세희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하영아, 너무 화내지 마. 나 다시 돌아가 봐야 하니까 먼저 갈게.”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예준이 떠나고 하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세희를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희를 안아 다리 위에 앉혀 놓고 달래주기 시작했다.“세희야, 오늘 대체 왜 그랬는지 엄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세희는 하영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저 멍한 눈빛으로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세준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하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엄마, 혹시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거랑 관련있는 거 아닐까요?”“어떤 얘기?”하영이 생각을 되짚어봤다.“세희는 양기가 약하다고 하셨잖아요.”희민이 곁에서 대신 설명해 주자 하영은 미간을 지푸렸다.‘이 방면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는데…….’한참 생각하다가 하영은 주희가 생각났다.“세준아, 가서 주희 누나 좀 불러와.”세준은 얼른 카펫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고, 이내 주희가 세준을 따라
“열이 난다고?”하영은 얼른 다가가 세희의 얼굴을 만져보다가, 혹시 몰라서 세준에게 얼른 체온계를 가져오라고 했다.재보니 체온이 39도에 달한 걸 보고, 하영은 얼른 세희를 안아 들었다.“주희 씨, 얼른 가서 차 가져와요.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야겠어요.”“병원?”그때 위층에서 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설 이튿날 부터 병원에 간다고? 누가 아픈데?”하영이 다급하게 캐리를 보며 대답했다.“세희가 열이 나서 지금 병원에 가 보려고.”“뭐?”캐리는 급하게 계단에서 뛰어내려오다가 그대로 계단에서 넘어져 굴러 떨어졌다.모두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캐리는 아픈 것도 무시하고 뛰어와 세희를 안았다.“세희는 내가 안을게. 주희 씨는 가서 운전해.”“네!”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세희는 계속해서 하영이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했다.하영이 의사를 찾가아 세희의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먼저 혈액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30분 후, 하영은 검사 결과를 건네자, 결과를 살펴보던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다.“염증도 없고, 모든 수치가 정상입니다.”그 말에 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체 무슨 원인이죠?”“이런 상황은 저희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우선 해열제 주사를 맞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하영은 알겠다고 하고 세희를 데리고 수액 맞으러 갔다.응급실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하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세희의 곁을 지켰다.캐리가 물을 사서 하영에게 건네주었다.“G, 너무 급해하지 말고 너도 좀 쉬어야지. 열은 금방 내릴 거야.”하영은 물을 받으며 대답했다.“밤 늦게 나랑 병원에 오느라 고생했어.”“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이야!”캐리는 물을 한모금 마시고 하영의 곁에 앉았다.“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하영은 말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를 응시했다.수액을 맞는 중에도 때때로 세희의 열을 체크했는데, 체온은 계속 38도에서 더는 내리지 않았다.수액을 다 맞은 뒤에야 하영은 다시 세
“그래.”하영은 희민이에게 계란을 까주었다.“희민아, 엄마는 세희를 돌봐줘야 할 것 같으니까, 혼자서라도 약 잘 챙겨 먹어. 알겠지?”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지금 중요한 건 세희니까요.”세준은 우유를 마시고 입을 열었다.“엄마, 정 안되면 병원에 가요.”“그래.”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오후에도 열이 안 내리면 세희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어.”……시간은 어느새 오후 1시가 되었고, 세희는 열이 내리기는커녕 40도까지 올라갔다.하영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캐리한테 세희를 안기고 함께 병원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외출하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주희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하영 언니, 저도 같이 가요. 사람이 많으면 돌보기도 편하잖아요.”하영은 집에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대답했다.“주희 씨도 집에 없으면 희민이와 세준이 걱정돼서 안 될 것 같아.”“예준 오빠가 오는 길이에요.”주희가 코트를 입으며 입을 열었다.“주희 씨가 얘기했어요?”하영의 물음에 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무래도 세희가 걱정이 되어서 예준 오빠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그래.”하영은 차 키를 캐리에게 건네주었다.“캐리, 운전은 네가 해.”20분 후.하영은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하영에게 약처방을 지어준 뒤 수액을 놔주었다.세희가 조용히 수액을 맞을 수 있게 하영은 간호사한테 얘기해서 1인 병실을 요구했다.세희를 병실 침대에 눕힌 후 세 사람은 병실에서 묵묵히 기다렸다.“하영 언니.”주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잠시 소파에서라도 눈 좀 붙여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떼려는 순간, 세희가 갑자기 아무 징조도 없이 눈을 떴다.하영은 깜짝 놀라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세희야.”세희는 눈을 깜빡이면서, 어딘가 공허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엄마, 누가 자꾸 말을 걸어요.”“말을 건다고?”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
“설명하자면 길어!”하영은 주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나랑 캐리가 다녀올 테니까, 주희 씨는 일단 집에 가 있어.”“네, 얼른 가요!”……묘지로 향하는 도중 하영은 마트에 들러 우유 두 박스와 담배 두 보루, 그리고 술 두병을 샀다.장소에 도착하자 그 작은 오두막 창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를 안고 차에서 내린 캐리는 주변의 적막한 풍경과 산 중턱에 늘어선 무덤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G, 그 아저씨는 어디 있는데?”캐리가 경계하듯 주의를 둘러보았고, 하영은 트렁크에서 선물을 챙겼다.“따라와.”두 사람은 오두막 앞에 도착해서 하영이 집안을 향해 노지철을 불렀다.“지철 아저씨, 계세요?”“문이 열려 있으니까 들어오세요.”노지철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하영이 어깨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식탁에는 노지철 혼자 앉아 있었는데, 식탁 위에는 네 개의 그릇과 젓가락이 놓여 있었다.난방이 켜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집 안에는 서늘한 공기로 휩싸였다.하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혹시 손님이 계시면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하영은 물건을 내려 놓은 뒤 다시 나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요.”노지철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 놓고 몸을 일으켰다.“그들도 이제 다 먹었습니다.”‘다, 다 먹었다고?’놀란 얼굴로 방안을 둘러보던 하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아무도 없는데?’노지철의 말에 캐리도 소름이 돋았다.‘이 늙은이가 지금 이 밤중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상한 사람이야!’캐리가 하영한테 그만 가자고 얘기하려던 찰나 세희가 또 갑자기 소리질렀고, 하영과 캐리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노지철은 그들을 힐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장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었다.“애를 데리고 들어오세요.”하영은 얼른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캐리, 얼른 세희를 침대에 눕혀.”캐리는 더러운 침대를 보고 미간을 좁히더니 입을 삐죽
하영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세희를 일으켜 자기 품에 기대게 했다.“입을 벌려서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해요.”하영은 말대로 했고, 노지철은 그 물을 천천히 세희의 입에 부어넣었다.그런데 두 모금도 채 마시지 않았을 때 세희는 사레에 걸렸는지 눈을 떴고, 눈앞에 노지철을 보자마자 물을 뿜었다.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하영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엄마!”세희가 울면서 소리쳤다.“엄마 안아 줘요. 나 안아 줘요!”세희의 모습을 보자 하영의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하영은 얼른 세희를 안고 노지철을 바라보았다.“죄송해요, 아저씨. 아이가…….”“괜찮습니다.”노지철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더니 멍하니 서 있는 캐리를 쳐다보았고, 캐리도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노지철을 응시했다.“저……, 제 몸에도 이상한 게 붙었나요?”캐리가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아니요. 다만 올해는 차에 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운전도 하지 말고 물이 있는 곳을 멀리하세요.”“네?”캐리는 그 말에 어리둥절해졌고, 하영이 헛기침을 했다.“캐리, 더 캐묻지 말고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해.”캐리는 그제야 노지철을 향해 연신 인사를 전했다.“감사합니다, 아저씨. 꼭 명심해서 운전도 하지 않고, 앞으로 자전로 출근할게요!”‘비록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그래도 이상한 것이 몸에 달라붙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캐리는 혀로 입술을 훑었다.‘너무 무서워!’노지철이 바삐 돌아치고 있을 때 캐리가 하영의 곁으로 다가왔다.“G, 한국에선 이런 선술을 뭐라고 하는 거야? 너무 신기하네!”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몰라.”“열은 다 내렸죠?”노지철이 의자에 앉으며 하영에게 묻자, 하영은 얼른 손을 뻗어 세희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여, 열이 안 나요!”“네.”노지철은 하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이 아이는 팔자가 세긴 하지만 유독 기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약하거든요.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세희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 할아버지 눈이 무서워요…….”하영은 세희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세희야, 모든 사람이 완벽한 건 아니란다. 세상에 불쌍한 장애인들도 많이 있잖아.”“네…….”세희는 하영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얘기했다.“그 사람들도 분명 평범한 사람처럼 변하고 싶겠네요.”“그렇지. 그러니까 방금 세희가 보인 행동에 그 할아버지가 속상하지 않았을까? 세희야, 우리는 입장을 바꿔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생각해 봐야 하잖아.”세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방금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엄마, 다음부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그래.”하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세희는 누구보다 착한 아이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다음날.세희를 안고 자던 하영은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고, 침대맡에 놓인 핸드폰을 더듬어 잠이 떨 깬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강하영!”인나의 목청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하영은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우인나, 데시벨이 너무 높잖아!”인나는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지금 몇신 줄 알아? 놀러 안 갈 거야?”“지금 몇 시야?”하영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10시!”하영은 눈을 뜨고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미안, 어제 일이 좀 있어서 늦게 잠들었거든.”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짐은 다 정리했고?”하영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지금 정리할게. 네가 도착했을 때면 거의 다 끝날 것 같아.”“지금 너희 집 앞이야! 시원 씨가 큰 캠핑카를 몰고 왔으니까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아직도 자고 있는 세희를 깨워서 대충 씻긴 다음, 옷 몇 벌을 챙기고 세준이와 희민이를 깨우러 갔다.방문을 열었을 때 두 녀석은 이미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하영이 들어오자 얼른 노트북을 닫아버렸다.하영은 문어구에 기댄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두 사람, 지나치게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세준은 의자에서 내려오며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모처럼 회사에 안 나가도 된다고 그냥 집에서 자고 싶대.”“그래.”인나는 하영의 팔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이제 출발하자.”하영은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유준 씨는?”“현욱 씨가 그러는데 처리할 일이 좀 남아서 조금 늦게 온다고 우리한테 먼저 출발하라고 했대.”“그래, 잠깐만 기다려. 주희 씨한테 얘기하고 올 테니까.”하영은 주희를 찾으러 주방에 들어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제 출발하자!”위층에 있던 캐리는 맨발로 창가에 서서 아래층 상황을 살폈다.그리고 하영과 사람들이 출발하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주방 정리를 마치고 나오던 주희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캐리는 주희를 붙잡고 물었다.“다들 확실히 출발했지?”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보았다.“뭘 그리 긴장하고 그래요? 혹시 하영 언니 몰래 딴짓하러 가려는 건 아니죠?”“몰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캐리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내가 남자친구도 아닌데, 그래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주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캐리, 뭔가 수상한데요.”“애들은 몰라도 돼.”케리는 주희의 머리를 헝클었다.“나 먼저 나갈게! 이따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저 오늘 집에 없으니까 사 올 필요 없어요!”캐리가 손을 흔들었다.“그래, 알았어.”집에서 나와 차에 오른 캐리는 어딘가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15분 뒤 캐리는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라면 가게에 도착했다. 캐리는 가게를 한 번 둘러보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등지고 앉아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표정을 풀고 다가가 맞은편에 앉아서 여자에게 물었다.“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는데,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내가 좋아하는 곳이야.”여자는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