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를 닦은 뒤 예준은 하영을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아버지, 어머니, 동생 데리고 두분 뵈러 왔어요. 동생 찾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 어머니.”하영이 묘비 앞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며 알수 없는 친숙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예준은 하여을 향해 웃었다.“너무 불편해하지 마. 부모님도 네가 온 걸 보고 기뻐할 거야.”하영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애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희민이와 세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유준의 품에 안겨있는 세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세희야.”세희는 머리를 약간 움찔하더니 그래도 고개를 돌릴 생각은 없어 보였고, 유준이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추워서 이래.”하영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노지철의 말이 떠올랐다가 이내 너무 황당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얼른 떨쳐버렸다.하영은 세준고 희민의 손을 잡고 무덤을 향해 인사를하게 했고, 예준이 곁에서 설명했다.“아버지, 어머니. 하영의 아이들이에요…….”예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방에서 큰 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했다.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스산한 소리에 세희는 겁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돌아가요!”세희는 유준의 품에서 울면서 얘기했다.“돌아 가고 싶어요! 갈래요!”하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의 등을 다독여었다.“세희야, 왜 그래? 무슨 일인지 얘기해 봐.”“여기 있기 싫어요! 여기 있기 싫어요!”세희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하영이 예준을 바라보자, 예준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자. 세희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자.”하영과 일행은 세희를 데리고 얼른 묘지를 벗어났다.떠나기 전에 노지철이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고, 그는 몸을 웅크리고 있는 세희를 보더니 다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가씨, 잠시 이쪽으로 와보세요.”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노지철에게 다가갔다.“아저씨, 무슨 일이에요?”노지철은 주머니에서
“유준 씨 말이 좀 어색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아니.”“미신따위 믿지 않는다면서, 왜 다른 사람이 세희에게 준 물건에 신경 쓰는 거죠?”하영은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더러운 물건일 수도 있잖아!”“그 위에 바이러스라도 묻었어요?”하영은 어이가 없었다.“그 아저씨도 지저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에 희민과 세준은 서로 마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유준이 다시 반박하려고 할 때 예준이 얼른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다.“됐어, 그냥 부적일 뿐이잖아. 그 아저씨 나도 아는 분인데 나쁜 사람 아니야.”예준은 두 사람을 말리지 않으면 아마 싸움이 끝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번 일 때문에 유준과 하영은 아크로빌로 돌아올 때까지 토라져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뒤 유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원과 떠났다.예준은 세희를 안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하영과 함께 집에 들어가 세희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하영아, 너무 화내지 마. 나 다시 돌아가 봐야 하니까 먼저 갈게.”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예준이 떠나고 하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세희를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희를 안아 다리 위에 앉혀 놓고 달래주기 시작했다.“세희야, 오늘 대체 왜 그랬는지 엄마한테 얘기해 줄 수 있어?”세희는 하영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저 멍한 눈빛으로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세준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하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엄마, 혹시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거랑 관련있는 거 아닐까요?”“어떤 얘기?”하영이 생각을 되짚어봤다.“세희는 양기가 약하다고 하셨잖아요.”희민이 곁에서 대신 설명해 주자 하영은 미간을 지푸렸다.‘이 방면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는데…….’한참 생각하다가 하영은 주희가 생각났다.“세준아, 가서 주희 누나 좀 불러와.”세준은 얼른 카펫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고, 이내 주희가 세준을 따라
“열이 난다고?”하영은 얼른 다가가 세희의 얼굴을 만져보다가, 혹시 몰라서 세준에게 얼른 체온계를 가져오라고 했다.재보니 체온이 39도에 달한 걸 보고, 하영은 얼른 세희를 안아 들었다.“주희 씨, 얼른 가서 차 가져와요.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야겠어요.”“병원?”그때 위층에서 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설 이튿날 부터 병원에 간다고? 누가 아픈데?”하영이 다급하게 캐리를 보며 대답했다.“세희가 열이 나서 지금 병원에 가 보려고.”“뭐?”캐리는 급하게 계단에서 뛰어내려오다가 그대로 계단에서 넘어져 굴러 떨어졌다.모두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캐리는 아픈 것도 무시하고 뛰어와 세희를 안았다.“세희는 내가 안을게. 주희 씨는 가서 운전해.”“네!”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세희는 계속해서 하영이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했다.하영이 의사를 찾가아 세희의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먼저 혈액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다.30분 후, 하영은 검사 결과를 건네자, 결과를 살펴보던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다.“염증도 없고, 모든 수치가 정상입니다.”그 말에 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체 무슨 원인이죠?”“이런 상황은 저희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우선 해열제 주사를 맞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하영은 알겠다고 하고 세희를 데리고 수액 맞으러 갔다.응급실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하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세희의 곁을 지켰다.캐리가 물을 사서 하영에게 건네주었다.“G, 너무 급해하지 말고 너도 좀 쉬어야지. 열은 금방 내릴 거야.”하영은 물을 받으며 대답했다.“밤 늦게 나랑 병원에 오느라 고생했어.”“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이야!”캐리는 물을 한모금 마시고 하영의 곁에 앉았다.“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하영은 말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희를 응시했다.수액을 맞는 중에도 때때로 세희의 열을 체크했는데, 체온은 계속 38도에서 더는 내리지 않았다.수액을 다 맞은 뒤에야 하영은 다시 세
“그래.”하영은 희민이에게 계란을 까주었다.“희민아, 엄마는 세희를 돌봐줘야 할 것 같으니까, 혼자서라도 약 잘 챙겨 먹어. 알겠지?”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지금 중요한 건 세희니까요.”세준은 우유를 마시고 입을 열었다.“엄마, 정 안되면 병원에 가요.”“그래.”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오후에도 열이 안 내리면 세희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어.”……시간은 어느새 오후 1시가 되었고, 세희는 열이 내리기는커녕 40도까지 올라갔다.하영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캐리한테 세희를 안기고 함께 병원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외출하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주희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하영 언니, 저도 같이 가요. 사람이 많으면 돌보기도 편하잖아요.”하영은 집에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대답했다.“주희 씨도 집에 없으면 희민이와 세준이 걱정돼서 안 될 것 같아.”“예준 오빠가 오는 길이에요.”주희가 코트를 입으며 입을 열었다.“주희 씨가 얘기했어요?”하영의 물음에 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무래도 세희가 걱정이 되어서 예준 오빠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그래.”하영은 차 키를 캐리에게 건네주었다.“캐리, 운전은 네가 해.”20분 후.하영은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하영에게 약처방을 지어준 뒤 수액을 놔주었다.세희가 조용히 수액을 맞을 수 있게 하영은 간호사한테 얘기해서 1인 병실을 요구했다.세희를 병실 침대에 눕힌 후 세 사람은 병실에서 묵묵히 기다렸다.“하영 언니.”주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잠시 소파에서라도 눈 좀 붙여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떼려는 순간, 세희가 갑자기 아무 징조도 없이 눈을 떴다.하영은 깜짝 놀라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세희야.”세희는 눈을 깜빡이면서, 어딘가 공허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엄마, 누가 자꾸 말을 걸어요.”“말을 건다고?”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
“설명하자면 길어!”하영은 주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나랑 캐리가 다녀올 테니까, 주희 씨는 일단 집에 가 있어.”“네, 얼른 가요!”……묘지로 향하는 도중 하영은 마트에 들러 우유 두 박스와 담배 두 보루, 그리고 술 두병을 샀다.장소에 도착하자 그 작은 오두막 창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를 안고 차에서 내린 캐리는 주변의 적막한 풍경과 산 중턱에 늘어선 무덤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G, 그 아저씨는 어디 있는데?”캐리가 경계하듯 주의를 둘러보았고, 하영은 트렁크에서 선물을 챙겼다.“따라와.”두 사람은 오두막 앞에 도착해서 하영이 집안을 향해 노지철을 불렀다.“지철 아저씨, 계세요?”“문이 열려 있으니까 들어오세요.”노지철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하영이 어깨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식탁에는 노지철 혼자 앉아 있었는데, 식탁 위에는 네 개의 그릇과 젓가락이 놓여 있었다.난방이 켜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집 안에는 서늘한 공기로 휩싸였다.하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혹시 손님이 계시면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하영은 물건을 내려 놓은 뒤 다시 나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요.”노지철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 놓고 몸을 일으켰다.“그들도 이제 다 먹었습니다.”‘다, 다 먹었다고?’놀란 얼굴로 방안을 둘러보던 하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아무도 없는데?’노지철의 말에 캐리도 소름이 돋았다.‘이 늙은이가 지금 이 밤중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상한 사람이야!’캐리가 하영한테 그만 가자고 얘기하려던 찰나 세희가 또 갑자기 소리질렀고, 하영과 캐리는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노지철은 그들을 힐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수납장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었다.“애를 데리고 들어오세요.”하영은 얼른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캐리, 얼른 세희를 침대에 눕혀.”캐리는 더러운 침대를 보고 미간을 좁히더니 입을 삐죽
하영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세희를 일으켜 자기 품에 기대게 했다.“입을 벌려서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게 해요.”하영은 말대로 했고, 노지철은 그 물을 천천히 세희의 입에 부어넣었다.그런데 두 모금도 채 마시지 않았을 때 세희는 사레에 걸렸는지 눈을 떴고, 눈앞에 노지철을 보자마자 물을 뿜었다.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하영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엄마!”세희가 울면서 소리쳤다.“엄마 안아 줘요. 나 안아 줘요!”세희의 모습을 보자 하영의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하영은 얼른 세희를 안고 노지철을 바라보았다.“죄송해요, 아저씨. 아이가…….”“괜찮습니다.”노지철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더니 멍하니 서 있는 캐리를 쳐다보았고, 캐리도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노지철을 응시했다.“저……, 제 몸에도 이상한 게 붙었나요?”캐리가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아니요. 다만 올해는 차에 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운전도 하지 말고 물이 있는 곳을 멀리하세요.”“네?”캐리는 그 말에 어리둥절해졌고, 하영이 헛기침을 했다.“캐리, 더 캐묻지 말고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해.”캐리는 그제야 노지철을 향해 연신 인사를 전했다.“감사합니다, 아저씨. 꼭 명심해서 운전도 하지 않고, 앞으로 자전로 출근할게요!”‘비록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그래도 이상한 것이 몸에 달라붙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캐리는 혀로 입술을 훑었다.‘너무 무서워!’노지철이 바삐 돌아치고 있을 때 캐리가 하영의 곁으로 다가왔다.“G, 한국에선 이런 선술을 뭐라고 하는 거야? 너무 신기하네!”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몰라.”“열은 다 내렸죠?”노지철이 의자에 앉으며 하영에게 묻자, 하영은 얼른 손을 뻗어 세희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여, 열이 안 나요!”“네.”노지철은 하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이 아이는 팔자가 세긴 하지만 유독 기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약하거든요.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세희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 할아버지 눈이 무서워요…….”하영은 세희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세희야, 모든 사람이 완벽한 건 아니란다. 세상에 불쌍한 장애인들도 많이 있잖아.”“네…….”세희는 하영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얘기했다.“그 사람들도 분명 평범한 사람처럼 변하고 싶겠네요.”“그렇지. 그러니까 방금 세희가 보인 행동에 그 할아버지가 속상하지 않았을까? 세희야, 우리는 입장을 바꿔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생각해 봐야 하잖아.”세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방금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엄마, 다음부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그래.”하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세희는 누구보다 착한 아이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다음날.세희를 안고 자던 하영은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고, 침대맡에 놓인 핸드폰을 더듬어 잠이 떨 깬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강하영!”인나의 목청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하영은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우인나, 데시벨이 너무 높잖아!”인나는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지금 몇신 줄 알아? 놀러 안 갈 거야?”“지금 몇 시야?”하영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10시!”하영은 눈을 뜨고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미안, 어제 일이 좀 있어서 늦게 잠들었거든.”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짐은 다 정리했고?”하영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지금 정리할게. 네가 도착했을 때면 거의 다 끝날 것 같아.”“지금 너희 집 앞이야! 시원 씨가 큰 캠핑카를 몰고 왔으니까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아직도 자고 있는 세희를 깨워서 대충 씻긴 다음, 옷 몇 벌을 챙기고 세준이와 희민이를 깨우러 갔다.방문을 열었을 때 두 녀석은 이미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하영이 들어오자 얼른 노트북을 닫아버렸다.하영은 문어구에 기댄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두 사람, 지나치게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세준은 의자에서 내려오며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모처럼 회사에 안 나가도 된다고 그냥 집에서 자고 싶대.”“그래.”인나는 하영의 팔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이제 출발하자.”하영은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유준 씨는?”“현욱 씨가 그러는데 처리할 일이 좀 남아서 조금 늦게 온다고 우리한테 먼저 출발하라고 했대.”“그래, 잠깐만 기다려. 주희 씨한테 얘기하고 올 테니까.”하영은 주희를 찾으러 주방에 들어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제 출발하자!”위층에 있던 캐리는 맨발로 창가에 서서 아래층 상황을 살폈다.그리고 하영과 사람들이 출발하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주방 정리를 마치고 나오던 주희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캐리는 주희를 붙잡고 물었다.“다들 확실히 출발했지?”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보았다.“뭘 그리 긴장하고 그래요? 혹시 하영 언니 몰래 딴짓하러 가려는 건 아니죠?”“몰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캐리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내가 남자친구도 아닌데, 그래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주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캐리, 뭔가 수상한데요.”“애들은 몰라도 돼.”케리는 주희의 머리를 헝클었다.“나 먼저 나갈게! 이따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저 오늘 집에 없으니까 사 올 필요 없어요!”캐리가 손을 흔들었다.“그래, 알았어.”집에서 나와 차에 오른 캐리는 어딘가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15분 뒤 캐리는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라면 가게에 도착했다. 캐리는 가게를 한 번 둘러보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등지고 앉아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표정을 풀고 다가가 맞은편에 앉아서 여자에게 물었다.“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는데,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내가 좋아하는 곳이야.”여자는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