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사장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강하영 씨는 각종 산부인과 검사 결과 모두 깨끗합니다. 완벽한 처녀입니다.”병원 검사실 입구에서 경호원이 전화기 저편에 있는 남자에게 공손하게 말했다.강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행인들의 이상한 시선을 최대한 견뎌야 했다.어머니는 아픈 상태이고, 아버지는 거액의 노름빚을 졌다.이 두 큰 짐은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자기 몸을 밑천으로 삼아 정유준의 침대에 올랐다.잠시 후, 경호원의 전화에서 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난원으로 보내.]……난원.어두컴컴한 불빛 아래 하영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긴장한 채 이불 속에 움츠러들었다.침대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잘생기다 못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의 그림 같은 눈썹 아래에는 깊고 차가운 봉황의 눈동자가 있다.정유준, 김제를 휩쓸고 있는 막강한 제왕.하영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남자가 이불을 들추자 강하영의 깨끗하고 매끈한 몸이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들어왔다.곧 뜨거운 키스가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몸의 마지막 장애물이 뚫렸을 때 강하영은 아픈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정유준은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눈물 흘리지 마. 네가 선택한 일이야. 그리고 기억해. 아무나 내 침대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어느덧 잠에서 눈을 뜬 하영은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정유준은 옆에서 고요히 자고 있었다. 하영의 기억이 잠시 흐릿해졌다.어느덧 정유준과 알게 된 지 이미 3년이 흘렀다.3년 동안 그녀는 그의 개인 비서였고, 더욱이 그의 오피스 와이프였다.뜻밖에도 어젯밤에 그들이 처음 만난 날의 꿈을 꾸었다.하영은 지긋지긋 아파오는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려고 했다. 이 때 침대 머리맡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 유준은 재빨리 일어나 핸드폰을 받았다.“얘기해.” 그는 핸드폰을 귓가에 바짝
호텔 방문이 열렸다.매튜는 금빛 단발머리에 헐렁한 가운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그런대로 잘생긴 얼굴에 푸른 눈은 마치 독사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천만 원의 성과금을 위해 그녀는 지금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사장님, 실례합니다.”매튜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리며, 웃는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비켜 세웠다. 그러고는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강 비서님, 드디어 오셨네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두근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 같았지만 하영은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그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스위트 룸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곁눈질로 객실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을 꼼꼼히 훑어보았다.매튜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은 후, 하영은 비로소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똑같이 앉았다.곧이어 매튜가 와인 한 잔을 건네왔다.잔을 받아 든 하영은 매튜의 와인잔에 낮게 부딪혔다.“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매튜의 눈에는 화색이 돌았다.“강 비서님 뭐 좀 아시네. 쭈뼛쭈뼛하지 않고…… 좋아, 내 스타일이야!”하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순조롭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손에 든 와인을 쭉 들이켰다.이를 본 매튜의 미간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이렇게 술 한 잔 마시고, 내 계약을 따내려는 건 아니지? 그럼 너무한데…….”하영은 매튜가 순순히 계약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집어치웠다.와인잔을 내려놓고 못 들은 척 사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사장님께서 우리 MK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MK의 실력도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매튜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자, 제가 저희 사장님을 대표하여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러 왔습니다. 사장님, 어떻습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매튜의 얼굴에 웃음이 걷혔다. 하영을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하영은 비록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냉정을
강한 현기증을 참으며, 하영은 문 쪽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나서기 전,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순간, 높고 큰 인간 벽에 부딪혔다.그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건 더없이 익숙한 얼굴이었다.하영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계약서를 유준의 가슴으로 밀어 넣었다.비록 유준의 옷을 꽉 잡았지만, 가녀린 몸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져 바닥에 축 처졌다…….그러고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사장님, 계약서에 서명했어요. 5천만 보너스 준다고 약속한 거 잊지 마요…….”하영이 쓰러지는 것을 본 유준은 즉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이때 매트도 방에서 쫓아 나왔다.하영을 안고 있는 유준을 본 매트가 분노를 참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았다.“미스터 정! 그 여자 내놔!”매트의 말을 들은 유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이어 뒤따라온 허시원이 매튜를 가로막으며 경고했다.“매튜 사장님, 지금 감히 우리 사장님의 사람을 건드리겠다는 겁니까?”매튜는 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글자씩 내뱉었다.“그럴 리가! 저 여자 혼자 왔다고!”허시원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럼 우리 사장님이 여기에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매튜는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검은색 마이바흐 뒷좌석.유준의 다리에 누워 있던 하영은 갑자기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녀는 여린 입술을 벌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꼬대를 했다.약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뺨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었다.그윽한 차 안의 불빛 아래 유준의 칠흑 같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예리한 턱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는 하영의 작은 손을 잡고 눈을 치켜뜨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프로젝트팀에 연락해. 매튜와 합작한 프로젝트, 지금 당장 자금 투입 중단하라고……. 그놈이 찾아와
아침을 먹고 두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30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가 회사 앞에 세워졌다.운전기사가 공손하게 차에서 내려 유준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차 안의 남자는 긴 다리를 내디디고 차안에서 내렸다.몸에 맞게 맞춤 제작한 블랙 코트는 그의 존재가치를 극도로 부각시켰다.눈부신 태양아래,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왕자와 같았다. 그의 카리스마는 모든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정유준은 희고 긴 손가락을 내밀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손에 든 자료를 옆좌석의 하영에게 건네주었다.한순간, 그윽한 눈동자가 살짝 멈추었다.유준은 하영의 꽃잎 같은 핑크색 입술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입술 모서리를 가볍게 문질렀다.“립스틱 제대로 발라.”말이 끝나자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장자리에 묻은 립스틱을 지워주었다.따뜻하고 가벼운 촉감에 하영의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렸다.유준의 눈동자 속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 있는 것을 보고, 하영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그러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심장은 터질 듯 빨리 뛰어도, 하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평온했다.하지만, 정신은 혼미해지는 듯했다…….정유준은 손을 거두고 얇은 입술을 위로 올리며, 몸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하영은 마음속의 가벼운 설렘을 뒤로하고 아이패드를 열어 신속하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정유준에게 오늘의 스케줄을 보고했다.“9시에 고위층 회의가 있고…….”“정 사장님!!”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낯선 여자의 그림자가 갑자기 다가왔다.여자는 직접적으로 정유준을 향해 달려왔다. 하얀 두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고 애걸복걸했다.“사장님, 제발…… 인사팀에 남게 해주세요.저는 정말 이 직장이 필요합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정유준의 준엄한 표정엔 짙은 혐오가 떠올랐다.그는 한쪽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눈빛을 보내며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끌어내!”경호원이 재빨리 앞으로 나가 여자의 팔을 잡고 회사 밖으
묵묵히 하영을 쳐다보던 허시원은 곧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사무실 문이 다시 닫히자, 하영은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두 손을 이마에 괴고 의자에 앉았다.정유준의 행동으로 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윙윙-책상 위 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하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핸드폰 화면에 엄마의 주치의인 의사 부진석의 발신 표시가 떴다. 급히 전화를 받았다.“부 선생님!” 하영은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혹시 저희 엄마한테 무슨 일 있나요?”부진석이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영 씨, 지금 바로 병원에 와 줄수 있어요?]부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하영은 즉시 일어섰다.“네, 지금 곧바로 갈게요!”……20분 뒤.코트 없이 셔츠만 하나 입은 채로 하영이 병원 앞에 나타났다.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재채기가 나오더니 한기가 드는 듯했다. 하영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어머니의 병실 입구에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껌을 씹으면서 부 의사에게 껄렁껄렁하게 말하고 있다.그를 본 하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빠른 걸음으로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발소리에 부 의사와 남자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강하영을 본 남자가 하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는 말투로 얘기했다.“어머, 강 비서님 오셨네!”하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부 의사와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가죽 재킷 남자에게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주 사장님, 제가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요. 빚 독촉하는 건 이해하는데 우리 어머니의 병실에는 안 왔으면 좋겠어요…….”주 사장이라는 남자는 계속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말했다.“네 아버지는 또 도망갔어. 네 엄마 안 찾아오면 누구를 찾겠어?”하영은 마음속에서 치솟는 화를 참으며 주 사장이라는 자를 쳐다보았다.“이번에는 또 얼마인가요?”
“말씀하세요. 뭔데요? 듣고 있을게요.”양운희는 눈을 뜨고 천장을 한번 보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하영아, 사실 너는…….”“여보!”양운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병실 입구에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남자가 하나 보였다.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이미 남자는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그의 몸에는 술과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후줄근한 옷차림의 사내는 병상 옆 하영의 건너편에 앉았다.“주 사장이 널 괴롭히지 않았지?”양운희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당신 뭐 하러 왔어?! 아직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뜯어간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강성문은 입을 쩝쩝 다시더니, 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영아, 잠깐 커피 좀 사 와라. 엄마랑 단둘이 할 얘기가 좀 있다.”하영은 걱정 어린 눈길로 양운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부부에게 얘기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의자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당부했다.“아빠, 엄마 화나게 하지 마요.”강성문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강성문이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하영은 여러 번 고개를 돌려 양운희 쪽을 보며 병실을 나섰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강성문의 얼굴에 있던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감정 없는 사람처럼 양운희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야, 그 입 좀 얌전히 다물고 있으면 안 돼?”양운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이제 하영이 그만 이용해!”강성문은 냉소했다.“내가 지금껏 키웠는데, 키워준 밥값 좀 하라는데 그게 어때서?”?“당신만 입 다물면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 만약 그 얘기를 꺼내면, 하영이가 더 이상 직장에 다니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리 알아!”침대 시트를 부여잡은 양운희는 분노한 나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강성문! 너는 사람 새끼도 아니야!”강성문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나는 사람 새끼도 아니니까…… 당신 입이나 조심해. 괜히 쓸데없는 말 했
정유준은 하영에 관한 궁금증을 억누르고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저녁에 강 비서에게 약 좀 보내주고, 인사팀에 전화해 3일간 휴가라고 전해.”마지막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집에 사람 한 명 들여서 강 비서한테 하루 일과 살피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해.”“예, 사장님!” 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으로 옮겼다.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웃음을 머금고 음식을 주문하는 양다인을 보니, 허시원까지도 여러 감정에 사로잡혔다.……이날 밤, 하영은 정유준의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약을 먹고 병원 병상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몸을 뒤척일 때 그녀는 손등에 주삿바늘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본 양운희가 당부했다.“하영아, 함부로 움직이지 마. 네가 열이 난 채로 기절한듯 자고 있어서 부진석 선생님이 링거를 놔주셨어.”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너도 참, 열이 그렇게 나면서,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왔구나.”양운희는 참지 못하고 또 중얼거렸다. 엄마의 이런 걱정스러운 푸념을 듣고 있으니 하영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하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려 양운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엄마, 배고파요.”양운희는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기다려 봐, 식사 시간이 다 됐구나. 좀 있으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을 갖고 올 테니 조금만 참아. 이 녀석아. 밥을 제때 안 챙겨 먹으니 이렇게 기운이 없지.”말이 끝나자마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보곤, 턱으로 입구를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하영아, 입구에 잘생긴 남자 둘 있던데, 혹시 네 친구니?”하영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친구요?”머릿속에서 갑자기 정유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자, 깜짝 놀라 몸을 곧게 폈다.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입구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허시원은 문을 빼꼼 열고 얼굴만 들이밀었다.“강 비서님, 잠깐 나와 보실 수 있으
부진석은 하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허시원은 자신도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눈치껏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서 기다렸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며 분위기는 어색해져만 갔다. 하영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사장님…….”“이렇게까지 해서 너한테 얻어지는 게 뭐야?”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유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겼다.그리곤 눈에는 조롱을 띈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너에 대한 나의 동정?”하영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사장님,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정유준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 작은 하영을 내려다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엔 화가 가득했다.그의 눈빛은 마치 살얼음에 담금질한 칼처럼 차가웠다.“불쌍한 척 동정표 구걸하는 수단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아니면 나한테 받은 돈이 부족해서 의사 꼬셔서 어머니 공짜로 치료라도 하려던 셈이었어?”정유준의 말은 비수와 같이 하영의 가슴을 후벼 팠다.숨이 멎을 만큼 아팠다.열이 나서 아픈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픈 척을 한다는 건지?어제 따뜻했던 그의 행동도 가식이었나?‘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눈에 난 그저 오피스 와이프일 뿐 이였나?’하영은 두 손을 꼭 쥐고 냉정을 유지했다.곧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사장님은 저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습니까?”거리를 두면서도 공적인 비서 스타일의 대답은 정유준의 가슴에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그는 하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깊은 눈동자는 하영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으려 무척 노력하는 듯했다.“돈을 원한다면, 더 줄 수 있어. 하지만 우리 관계가 끝나기 전까지 남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알아서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하영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하고 공무적인 비서 스타일의 말투로 입을 열었다.“사장님, 계약서에 분명하게 적혀 있잖아요. 사장님 첫사랑이 돌아오면 모든 계약이 종료된다고……. 그럼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