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준은 하영에 관한 궁금증을 억누르고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저녁에 강 비서에게 약 좀 보내주고, 인사팀에 전화해 3일간 휴가라고 전해.”마지막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집에 사람 한 명 들여서 강 비서한테 하루 일과 살피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해.”“예, 사장님!” 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으로 옮겼다.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웃음을 머금고 음식을 주문하는 양다인을 보니, 허시원까지도 여러 감정에 사로잡혔다.……이날 밤, 하영은 정유준의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약을 먹고 병원 병상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몸을 뒤척일 때 그녀는 손등에 주삿바늘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본 양운희가 당부했다.“하영아, 함부로 움직이지 마. 네가 열이 난 채로 기절한듯 자고 있어서 부진석 선생님이 링거를 놔주셨어.”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너도 참, 열이 그렇게 나면서,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왔구나.”양운희는 참지 못하고 또 중얼거렸다. 엄마의 이런 걱정스러운 푸념을 듣고 있으니 하영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하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려 양운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엄마, 배고파요.”양운희는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기다려 봐, 식사 시간이 다 됐구나. 좀 있으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을 갖고 올 테니 조금만 참아. 이 녀석아. 밥을 제때 안 챙겨 먹으니 이렇게 기운이 없지.”말이 끝나자마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보곤, 턱으로 입구를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하영아, 입구에 잘생긴 남자 둘 있던데, 혹시 네 친구니?”하영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친구요?”머릿속에서 갑자기 정유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자, 깜짝 놀라 몸을 곧게 폈다.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입구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허시원은 문을 빼꼼 열고 얼굴만 들이밀었다.“강 비서님, 잠깐 나와 보실 수 있으
부진석은 하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허시원은 자신도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눈치껏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서 기다렸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며 분위기는 어색해져만 갔다. 하영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사장님…….”“이렇게까지 해서 너한테 얻어지는 게 뭐야?”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유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겼다.그리곤 눈에는 조롱을 띈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너에 대한 나의 동정?”하영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사장님,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정유준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 작은 하영을 내려다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엔 화가 가득했다.그의 눈빛은 마치 살얼음에 담금질한 칼처럼 차가웠다.“불쌍한 척 동정표 구걸하는 수단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아니면 나한테 받은 돈이 부족해서 의사 꼬셔서 어머니 공짜로 치료라도 하려던 셈이었어?”정유준의 말은 비수와 같이 하영의 가슴을 후벼 팠다.숨이 멎을 만큼 아팠다.열이 나서 아픈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픈 척을 한다는 건지?어제 따뜻했던 그의 행동도 가식이었나?‘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눈에 난 그저 오피스 와이프일 뿐 이였나?’하영은 두 손을 꼭 쥐고 냉정을 유지했다.곧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사장님은 저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습니까?”거리를 두면서도 공적인 비서 스타일의 대답은 정유준의 가슴에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그는 하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깊은 눈동자는 하영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으려 무척 노력하는 듯했다.“돈을 원한다면, 더 줄 수 있어. 하지만 우리 관계가 끝나기 전까지 남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알아서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하영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하고 공무적인 비서 스타일의 말투로 입을 열었다.“사장님, 계약서에 분명하게 적혀 있잖아요. 사장님 첫사랑이 돌아오면 모든 계약이 종료된다고……. 그럼 저도
저녁 8시.하영은 정리한 스케줄을 정유준에게 보냈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하영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회사를 나섰다. 허시원이 차 옆에 서서 자신을 대기 중이었다.하영을 본 허시원은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사장님께서 하영 씨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난원으로 모셔다드리라고 했습니다.”하영은 거절했다.“아니요, 제집으로 갈게요.”“강 비서님,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하영은 힘없이 대답했다.“사장님께서는 강 비서님이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비서님 돌볼 이모님을 구했어요. 지금 난원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하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대체 나랑 뭐 하자는 것일까?’‘첫사랑과 함께하면서 나랑도? 둘 다 갖겠다는 거야 뭐야?’하영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자와 한 남자를 나눠 가질 만큼 비천하지는 않다.하영이 입을 열어 다시 거절하려 하자 허시원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강 비서님, 양다인 씨의 위치는 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먼저 포기할 생각인가요?”하영은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론 냉소적으로 웃었다.“허 비서님, 지금은 감정보다 돈이 중요한 세상이에요.”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하영은 허시원을 돌아서 떠났다.허시원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차에 올라,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강 비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답니다.”정유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럼 이제 다시는 별장으로 돌아올 필요 없어! 내일 강 비서 물건 모두 갖다 줘버려.”“……네.”……다음날.노크 소리가 하영을 깨웠다.하영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 앞으로 나갔더니, 허시원이 큰 종이박스 두 개를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예상하는 하영은 잠시 침묵한 뒤 허리를 굽혀 상자를 집안으로 들여놨다.박스를 집안으로 다 옮긴 뒤 하영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허 비서님, 감사합니다. 집에 대접할 게 없네요. 조심히 가세요.”
하영은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잠시 뒤, 유준과 허 비서가 어제 병원에 왔었다는 게 생각났다.얼른 핸드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강 비서님.]“허 비서님, 어제 사장님이 저희 어머니 병원비 내주셨어요?”[네, 사장님께서 어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강 비서님 어머니의 병원비 계좌에 1억 원을 넣었습니다. 강 비서님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했구요…….]돈의 출처를 확인한 하영은 바로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장님 지금 어디시죠?”정유준은 여전히 냉담했다.[뭔 일이야? 말해.]“1억 원, 꼭 갚을 거예요!” 하영은 확고하게 말했다.정유준은 코웃음 쳤다.[난원으로 와.]하영은 전화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병원을 나섰다.……난원.하영은 별장 안이 캄캄한 것을 보고 불을 켜려 벽을 더듬었다.손가락이 스위치에 닿을 때쯤 익숙한 기운이 갑자기 밀려왔다.미처 고개를 돌리지 못했는데 허리를 감싼 손이 넓고 따뜻한 품으로 끌어당겼다.유준이 그녀를 들쳐 안고 소파 쪽을 향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영은 긴장하여 그를 밀었다.“사장님! 저는 오늘 돈 갚는 문제로 이야기하러 왔어요!”정유준은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하영을 소파에 눕히고 하영의 몸을 누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용히 해!”말이 떨어지자 바쁘게 유준은 하영의 속옷 단추를 가볍게 풀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키스를 하며 그녀를 탐닉하기 시작했다.한바탕 격전을 치른 후.하영은 격전의 흥분을 애써 참으며 옷으로 몸을 가렸다.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첫사랑 그분께서 질투할까 걱정되지 않은가요?”정유준은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야.”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1억……, 꼭 갚을 거예요.”정유준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로 갚을 거야? 그 몸뚱어리?”굴욕감이 감돌자, 하영은 옷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어떻게 갚을지는 제 문제니,
양다인은 정유준의 핸드폰을 건네주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온 사람이 하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동작을 멈칫했다.순간 머릿속은 고민이 되는 듯했지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그때.전화가 끊긴 것을 본 하영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지금 바쁜가?’하영은 이를 악물고 정유준이 다시 전화할 것이라는 믿고 택시를 타고 카지노로 향했다.……한 시간 뒤.하영은 럭셔리하고 웅장한 카지노 입구에서 내렸다.그리고 홀을 지나 길을 물어 2번 룸 입구까지 찾아갔다.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밀어 열었다.순간 피비린내가 뒤섞인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룸 안쪽에는 흉악한 얼굴의 남자가 몇 명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강성문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놈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잘린 손은 거즈로 대충 감아 지혈 중이었다.입구의 인기척에 강성문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하영을 보자 강성문의 눈에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하영아! 하영아! 살려줘!”카지노에 들어서기 전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하영은, 강성문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빠른 걸음으로 강성문을 향해 걸어갔으나, 이내 험악한 남자들에게 가로막혔다.“저기…… 미스 강, 이보세요! 뭐가 그리 급해? 돈부터 줘야지?”시가를 피우고 있는 얼굴에 흉악한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의 더러운 눈빛은 끊임없이 하영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눈빛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더러운 욕망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쳤다.하영은 마음속 공포와 분노를 누르고 고개를 돌려 칼 흉터 남자를 바라보았다.“우리 아빠 먼저 풀어줘요. 그러면 돈을 줄게요!”칼 흉터 남자가 손짓하자 강성문을 잡고 있던 무리가 뒤로 물러섰다.강성문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그러고는 바로 하영에게 달려갔다. 그의 눈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감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영아! 나 먼저 갈게
옆 룸입구까지 간 유준은 문을 걷어찼다.하영의 볼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눌려 있는 모습을 본 유준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검은 눈동자에서 피에 굶주린 듯한 음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방안을 가득 채웠다.유준은 대머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정강이를 걷어찼다.곧이어 그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집어 들어 대머리의 대가리를 내리쳤다.유준은 온몸에 차가운 피를 두른 염라대왕같이 무자비했다.장내에 감히 앞으로 나서서 저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유준이 손에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부수는 것을 본 허시원은 바로 다가가 자기 겉옷을 벗어 유준에게 건네주었다.유준은 몸을 돌려 하영 앞으로 가 옷으로 그녀를 감싸주었다.하영을 안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똑똑히 보았다.그녀의 눈물이 소리 없이 그의 손등에 떨어졌다.품속의 하영을 꼭 껴안고 차가운 소리로 허시원에게 명령했다.“저 새끼 병신으로 만들어!”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사장님!”놀라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던 양다인은 유준이 하영을 안고 자신의 앞을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은 점차 짙은 불안과 질투로 변해갔다.……난원.가정부 임씨는 피와 상처로 얼룩진 하영을 보고 놀라 다리가 후덜거렸다.“사장님, 아가씨……”“여의사로 한 명 불러와!”유준은 말을 끝내고 하영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도착한 그는 기절한 하영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그녀의 얼굴에 선명하게 찍힌 빨간 손자국을 본 유준의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 씨는 여의사를 모시고 왔다.의사는 하영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후 유준에게 말했다.“하영 씨는 보여지는 외상 외에 다른 큰 문제가 없습니다.”그제야 유준은 안심한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아주머니, 선생님 모셔다 드리세요!”임 씨는 곧 여의사를 데리고 떠났다.문이 닫히자, 유준은 휴대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
“너 아직도 변명할게 남았어?” 유준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하영의 입술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뭘 어떻게 해명하라는 말인가?CCTV가 조작된 것이 분명하지만 증거가 없다.“말해!”유준의 고함소리에 하영은 몸을 떨었다.억울함이 치밀어 오르자 무기력하게 눈을 감았다.“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요?”하영의 담담한 대답에 유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때는 될 대로 되라는…….영상에서도 그랬고, 지금 자신의 앞에서는 그랬다!유준은 나지막한 소리로 경고했다.“오늘 이후로, 출근할 때 외에, 별장에서 한 발짝도 나갈 생각 하지 마!”하영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뭔데, 제 자유를 박탈하는 거예요?!”“내가 네 상사니까!”이 말을 남기고 유준은 문을 박차고 떠났다.하영은 아무 말 못도 하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알 수 없는 아픔은 그녀의 신분이 얼마나 비천한지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온몸에 극심한 피로가 몰려온 하영은 책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했다. 그런데 이때 책상 한가운데 잠긴 서랍이 눈에 들어왔다.잠긴 서랍 안에는 정유준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정유준이 술에 취했을 때 잠꼬대를 한 적이 있었다.“하영아, 다들 나를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는데……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바로 저 서재 서랍 안에 있어. 매번 서랍을 열 때마다 내 심장은 쪼개지는 것만 같아…….”처음으로 유준이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당시에 서랍 속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 완벽한 존재의 남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하지만 이제 하영은 알 것 같았다.서랍 속의 물건은 틀림없이 양다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지금껏 줄곧 그녀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으니…….여기까지 생각하니 하영은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아침 식사 후, 하영은 병원에 양운희를 보러 갔다.별장을 나서자 허시원의 그림자가 나타
승자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준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영은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금전적인 부분에서 자기 능력으론 도저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화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양다인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서운하고 화날 텐데…… 괜찮으세요?”하영은 조심스레 유준의 표정을 살폈다.유감스럽게도 그는 무표정하게 몇 마디만 했다.“너와 상관없는 일인 거 같은데…….”……8시, 회사.정유준이 회의하는 동안 하영은 화장실에 갔다가 마침 손을 씻고 있는 양다인을 만났다.하영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양다인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강 비서는 정말 책임감이 강하시네요. 그렇게 얻어맞고도 나온걸 보면…….”하영이 씻던 손을 멈췄다. ‘그날 밤 혹시 양다인도 그 자리에 있었나?’‘그럼 유준이 자신의 전화를 끊은 것도 양다인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겠지?’하영은 무표정으로 답했다.“양 부팀장님!!부팀장님 본인 하시는 일만 관심 갖는 게 어떻겠어요?”양다인은 함박꽃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유준 씨…… 강 비서님한테 화 안 내던가요?”하영은 곧장 일어나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양다인은 느릿느릿 페이퍼 타올로 손을 닦았다.“내가 봤을 때…… 유준 씨는 지금 강 비서를 엄청 혐오할 꺼 같은데요. 남자라면 누구라도 몸뚱어리 굴려서 도박 빚을 갚는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을 꺼 같은데요.”조작된 CCTV 파일이 생각나면서 양다인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이 모든 게 양다인의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하영은 화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양다인씨, 저한테 왜 그러세요? 혹시 저한테 감정 있어요?”양다인이 입술을 심술궂게 올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남자를 빼앗으려 드는데 왜 감정이 없겠어? 강하영, 열 받지? 누가 널 더러 주제넘게 내 남자를 넘보라고 했어? 니 가족, 너네 집 식구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그런데 이 세상 어느 남자가 널 위해 진심을 다하겠어?”양다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