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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너와 상관없어

승자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준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영은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금전적인 부분에서 자기 능력으론 도저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화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양다인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서운하고 화날 텐데…… 괜찮으세요?”

하영은 조심스레 유준의 표정을 살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무표정하게 몇 마디만 했다.

“너와 상관없는 일인 거 같은데…….”

……

8시, 회사.

정유준이 회의하는 동안 하영은 화장실에 갔다가 마침 손을 씻고 있는 양다인을 만났다.

하영은 그녀를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양다인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강 비서는 정말 책임감이 강하시네요. 그렇게 얻어맞고도 나온걸 보면…….”

하영이 씻던 손을 멈췄다.

‘그날 밤 혹시 양다인도 그 자리에 있었나?’

‘그럼 유준이 자신의 전화를 끊은 것도 양다인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영은 무표정으로 답했다.

“양 부팀장님!!부팀장님 본인 하시는 일만 관심 갖는 게 어떻겠어요?”

양다인은 함박꽃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유준 씨…… 강 비서님한테 화 안 내던가요?”

하영은 곧장 일어나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양다인은 느릿느릿 페이퍼 타올로 손을 닦았다.

“내가 봤을 때…… 유준 씨는 지금 강 비서를 엄청 혐오할 꺼 같은데요. 남자라면 누구라도 몸뚱어리 굴려서 도박 빚을 갚는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을 꺼 같은데요.”

조작된 CCTV 파일이 생각나면서 양다인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이 모든 게 양다인의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영은 화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양다인씨, 저한테 왜 그러세요? 혹시 저한테 감정 있어요?”

양다인이 입술을 심술궂게 올리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남자를 빼앗으려 드는데 왜 감정이 없겠어? 강하영, 열 받지? 누가 널 더러 주제넘게 내 남자를 넘보라고 했어? 니 가족, 너네 집 식구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그런데 이 세상 어느 남자가 널 위해 진심을 다하겠어?”

양다인의 치졸한 모습을 보고, 하영은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하영은 별것 아닌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제가 능력, 학력, 외모 등 모든 면에서 양 부팀장님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제 가족 얘기로 저를 공격하는 거 같아 보이는데…… 맞죠?”

하영이 말을 끝나자, 양다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하영은 다인을 무시하듯 힐끗 보곤 화장실을 나갔다.

갑자기 뒤에서 쫓아 나온 양다인은 하영의 팔을 확 잡았다.

하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1초도 안 되어 양다인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니 양다인은 이미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녀는 아픈 듯 몸을 일으키며, 억울한 듯 하영을 바라보았다.

“강 비서님,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죠?”

“…….”

또 무슨 쇼를 하려는 걸까?

양다인은 분명 배우를 했어야 했다.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난 단지 강 비서님 얼굴의 상처를 살피려고 한 것뿐인데, 왜 나를 밀어요?”

하영이 한마디 하려고 하자,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차갑고 익숙한 소리가 울리자, 하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양다인에게 다가가는 정유준의 모습이 보였다.

양다인은 연약한 여자의 모습을 하며, 정유준의 품속에서 울기 시작했다.

“유준 씨, 나…… 발이 너무 아파…….”

“음…….”

정유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영을 힐끗 보고, 양다인을 들쳐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하영의 마음은 점점 착잡해졌다.

아! 이 두 사람…… 한 사람은 타고난 배우고, 한 사람은 눈먼 장님이고…….

일순간 그녀는 악녀가 되어있었다.

지나가는 두 명의 동료가 하영에게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강 비서님도 이럴 날이 있네요.”

“사장님의 편애가 하늘을 찌르더니…… 글쎄 양 부팀장의 대체품이었다네……. 웃겨 죽겠어!”

하영은 매섭게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월말 업적평가에서 떨어지면, 언제든지 짐 싸서 회사 나가야 되는 거 알고 있죠?”

말을 마친 하영은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

퇴근 후 허시원은 하영을 난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가정도우미 임 씨 아주머니는 이미 저녁 식사 준비를 다 마쳤다.

하영이 손을 씻고 식탁 옆에 앉자마자 임 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참 복도 많아…….”

하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임씨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제가요??”

임 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사장님이 아가씨 좋아하는 음식을 알려주면서, 퇴근하고 오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고 하셨어요.”

하영이 식탁에 펼쳐진 요리들을 보니, 분명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근데 좋아하면 뭐 하냐고? 나에겐 자유가 없는데.’

입맛이 없어 몇 젓가락 헤집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올라가자, 정유준이 막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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