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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남자가 있나 봐

[잠깐!]

배현욱은 전화를 끊으려는 하영을 재빨리 붙잡았다.

그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허 비서님, 지금 좀 멀리 있어서 올 수 없다네!]

“……알았어요. 주소 보내주세요.”

20분 뒤.

하영은 몬스터 나이트클럽 입구에 도착했다.

클럽 입구에 배현욱과 육기범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정유준을 가까스로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앞으로 다가갔다. 정유준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배어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그가 정말 취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만, 170센티미터의 자신이 어떻게 190의 유준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배현욱은 정유준을 강하영의 품에 밀어 넣으며 물었다.

“강 비서님, 유준이 오랫동안 찾고 있던 그 여자…… 본 적 있어?”

하영은 힘없이 시선을 내려 대답했다.

“네. 있어요.”

배현욱은 웃었다.

“유준이 술을 많이 마신 것도 그 여자 때문일 거야.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고…… 암튼 잘 좀 챙겨줘. 부탁해.”

강하영의 심장이 비수가 꼽힌 듯 아려왔다.

하지만 이전보다 고통의 강도가 세진 않은 것 같다.

하영은 배현욱을 향해 멋쩍게 웃은 뒤, 힘겹게 유준을 데리고 떠났다.

그들이 멀어지자 육기범은 얼른 입을 열었다.

“야! 배현욱, 너 미쳤어?”

배현욱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가 뭐?”

육기범은 화가 나서 하영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너, 유준이, 강 비서때문에 술 마신 거 알면서…… 왜 그 첫사랑인지 뭔지 하는 여자 때문이라고 했어?

배현욱은 가볍게 웃었다.

“유준도 쓴맛을 좀 봐야 해. 마음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고. 다 그 녀석을 위한 거야.”

육기범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무슨 마음고생?”

“참 눈치 없구먼…….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육기범은 어이가 없었다. 그냥 시원하게 말해주지 뭔 뜸을 들이고 그러냐?

……

난원으로 돌아온 하영은 힘겹게 유준을 안방으로 데려갔다.

한밤중에 술에 취한 남자를 데려오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침대 끝자락에 엎드린 하영은 손가락 움직일 힘조차도 없었다.

하영은 고개를 들어 유준의 조각 같은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남자의 짧은 머리는 이마를 어지럽게 덮고 있다.

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아래 두 눈을 꼭 감고 있다. 오뚝한 콧날 아래, 오므린 얇은 입술은 뭔가 불편한 듯 보였다.

하영은 손을 들어 유준의 미간을 쓰다듬으려고 했다.

그리고 손끝이 떨어지는 순간, 유준은 갑자기 눈을 뜨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 손을 거두려 했지만 유준은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너한테 기회를 줬는데…… 왜 도망 안 가는 거야?”

정유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영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도망가면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까요.”

유준은 하영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네 눈에는 돈 말고 다른 것이 있기나 한 거야?”

하영은 일부러 깊은 생각에 잠긴 척하며 대꾸했다.

“남자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정유준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 아닌가?!

하영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유준의 눈동자에는 짙은 실망감이 떠올랐다.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오피스 와이프로써 본분 잘 지켜!”

유준의 말은 하영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는 거리낌 없이 첫사랑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녀에게는 비루한 정부 노릇을 계속 시키고 있다.

싫어! 싫다고!

하영은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유준과 눈빛을 마주쳤다.

“정유준씨, 이젠 우리 이런 관계 끝냅시다.”

유준은 호흡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잠시 동안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하영의 턱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모질게 말했다:

“강하영, 이 계약의 주도권은 내 손에 있어. 네가 끝내고 자시고 할 자격 없어!

오늘부터 내 허락 없이 넌 난원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

……

하영은 자신이 어떻게 유준의 방에서 나왔는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단지 그가 계약의 주종 관계와 외출을 금하는 명령만 내렸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되돌리고 싶었다.

적어도 그전에는 병원과 회사에는 갈 수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어디도 갈 수 없다.

그녀는 정유준이 사육하며, 즐기고 싶으면 즐기고, 싫증나면 버리는 애완동물이 되었다.

……

난원에 갇힌 지 일주일째다.

하영은 의뢰받은 디자인 스케치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수를 받은 후, 가장 먼저 엄마 양운희의 계좌로 병원비를 이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계정을 로그아웃하려는데 친구인 우인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인나: 하영아, 이번에 Y 국에서 인터넷 패션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는데, 너도 한 번 나가봐……]

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영: 혹시 출전 자격요건과 주의사항 등 정보를 좀 알 수 있을까?]

유인나가 링크를 보내왔다.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한 결과, 현재 하영의 조건으로는 출전이 가능했다.

3개월 동안 세 차례 대결.

1등 상금은 5억 원에 달했다.

이 상금만 있으면 어머니의 병원비도 충당할 수 있다. 그러면 정유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영은 유인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하영: 고마워. 나에게 정말 중요한 기회야.]

[우인나: 우리 사이에 무슨 감사야.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

공모전 신청서를 다 작성하자, 마침 임씨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 마쳤다고 1층으로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했다.

하영은 얼른 컴퓨터를 덮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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