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자 임씨 아주머니는 하영에게 방금 끓인 닭고기 수프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다.닭고기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갑자기 구토감이 확 몰려왔다. 하영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이 장면을 본 임씨 아주머니는 제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곧 놀라움과 기쁨의 기색이 얼굴에 나타났다.하영이 창백한 얼굴로 돌아오자, 임 씨는 웃으며 물었다.“아가씨, 혹시 요즘 생리가 늦어지는 건 아닌가요?”하영은 나른한 듯 탁자 위의 찻잔을 집어 들었다.“생리가 불규칙적이어서…… 잘 모르겠어요.”“저기…… 내가 봤을 때는 임신인 거 같은데?”하영은 갑자기 손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놀란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임…… 임신요?!”임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따가 나가서 테스트기를 사다 줄 테니까, 테스트해보면 알 수 있어요.”하영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모님, 저와 사장님은 줄곧 피임을 해왔어요. 최근 위가 좋지 않아 그런 걸 거예요. 임신은 불가능해요.”아주머니는 다소 아쉬워하는 눈빛이었다.“그럼 소화가 잘되고 위에 부담 안 되는 요리를 만들어 줄게요.”하영은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아, 맞다, 이모님, 제 속이 불편하단 건 유준 씨에게 말씀하지 마세요.”“사장님…… 사실 아가씨 걱정 정말 많이 하는데…….”하영은 웃으며 말했다.“저도 알고 있어요. 유준 씨 매일 바쁘잖아요. 괜히 저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저녁을 먹은 후, 하영은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사실 정말 임신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그날 밤 차에서는 확실히 아무런 피임 조치를 하지 않았다.하영은 불안한 듯 손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만약 정말 임신했다면, 이 아이는 낳아야 할까?오피스 와이프가 임신한 아이, 정유준은 틀림없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갑자기 몰려온 불안으로 하영은 침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외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꼭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했다.……밤 10
“당장 지워! 내가 왜 네 아이의 아빠야? ……구역질이 난다!”산부인과 앞에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하영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남자의 옷자락을 잡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낙태가 여자 몸에 얼마나 나쁜지 알아? 사람이 왜 이렇게 모질어?”“네 몸뚱어리가 내 꺼야? 나랑 뭔 상관인데?”커플의 다툼소리를 듣는 순간, 하영의 머릿속에 유준의 냉정한 얼굴이 떠올랐다.그녀는 단지 유준의 이부자리를 데워주는 ‘도구’일 뿐이다.유준은 배속의 아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갑자기 그 남자의 얼굴에 유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덜컥 겁이 난 하영은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먼저 기회를 봐서 정유준의 의중을 파악해 봐야 한다.하영은 임신확인서를 가방에 넣은 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엄마의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그녀는 어머니의 병실 앞에서 한참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문을 밀고 들어갔다.양운희는 사과를 먹고 있었다. 하영이 오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하영이 왔어?”하영은 양운희의 침대 옆에 앉아 다정하게 물었다.“엄마, 저 방금 출장 다녀왔어요. 오늘은 안색이 좀 괜찮은 것 같아 보여요.”양운희의 기분은 말처럼 좋아 보였다.“네가 출장 가 있는 동안 부진석 선생님께서 잘 챙겨 주셨어.”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 선생님도 일이 바쁘시니까, 너무 폐 끼치지 말아요.”“나, 안 바쁜데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진석의 온화한 목소리가 병실 입구에서 들려왔다.하영은 얼굴의 미소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일어서서 감사를 표했다.“선생님, 우리 엄마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부진석의 지나친 친절은 오히려 양운희로 하여금 헛된 생각을 하게 했다.안 그래도 하영이 결혼해야 할 나이가 다 된 것에 양운희는 걱정하고 있었다.“하영아, 너 점심에 시간 되면 선생님께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 드려.”하영은 간곡히 거절하려
허시원은 차 옆으로 가서 하영이 차 문 여는 것을 도왔다.차문이 열리는 순간, 하영은 차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명치가 가라앉는 듯 가슴이 철렁했다. 귓가에는 정유준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들어와!”하영은 침을 삼키며, 긴장한 표정으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제대로 앉기도 전에 정유준은 손을 들어 하영의 턱을 쥐었다. 고개를 들며 분노에 찬 눈동자로 하영을 쳐다봤다.그는 금방이라도 하영을 잡아먹을 듯,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강하영, 너 내 말을 전부 귓등으로 들었어?!”하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서 해명하기 바빴다.“사장님, 방금 본 게 다가 아니라…….”“그럼 뭔데?” 정유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나는 내가 본 것만 믿어!”한마디 할 때마다 정유준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하영은 너무 아픈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맴돌았다.어떻게 설명해야 정유준이 믿을까?아니면 아무리 설명해도 다 헛수고일까?그가 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정유준은 한참 하영을 쳐다보았다.그녀가 고분고분한 요령을 터득한 줄 알았다.그래서 어젯밤 그녀의 외출을 허락하였다. 또 혼자만의 외출도.그런데…… 그의 믿음을 이렇게 짓밟아 버리다니…….“말해봐!!”정유준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의 표정은 하영으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두렵게 만들었다.하영은 눈가에 맴도는 눈물을 꾹 참았다. 감정을 억누르고 그에게 물었다.“그럼, 당신은?”정유준은 ‘이 여자가 왜 이래?’ 라는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정유준, 당신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뭔데? 니 체면이 서지 않아서? 아니면 너의 강한 집착 때문에?당신은 첫사랑만 찾아다녔으면서, 한 편으론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고 있자나…… 이런 양다리가 어딨어?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어?”“무슨 네 생각?” 유준은 계속해서 하영에게 비수와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강하영, 넌 오피스 와이프야. 나한테 네 생각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넌 그럴
하영은 양다인의 계략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아 침착하게 밥을 먹었다.양다인은 난처한 듯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유준 씨, 내가 여기 와서 강 비서님 기분이 언짢은 거 아니야?”“뭔 상관이야?” 정유준은 앉으라며 손을 잡았다.양다인은 영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영에게 한마디 던졌다.“강 비서님, 지난번 일은 괜찮아.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내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랬어.”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나한테 화 그만 내면 안 될까?”양다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하영은 구역질 나는 쓰레기를 보는 것 같았다.겨우 메스꺼움을 참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토할 것 같았다.하영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는 누구처럼 좀생이가 아니에요.”하영의 말을 듣고 양다인은 젓가락을 힘껏 쥐었다.그러나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녀는 분노를 처량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바꾸는 연기를 선보였다.“아니, 아니야, 강 비서님, 그런 뜻 아니야.난 단지 앞으로 우리가 유준 씨 곁에 있으려면 서로 오해를 풀고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양다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두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숙이고 목멘 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유준 씨, 내가 괜히 와서 두 사람의 식사 분위기를 망친 거 같아. 미안, 미안해…….”정유준은 불현듯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담담한 어조로 위로했다.“대화가 안 되는 사람과 얘기하면 속이 답답하고 원래 그래. 그러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밥 먹이나 먹어.”정유준이 나서서 편을 들자, 양다인은 득의양양했다. 반면 하영은 속이 쓰렸다.유준의 눈에 자신은 악독한 여자다.양다인의 착한 척하는 연기는 완벽했다.하영은 입안의 음식이 마치 모래알 같아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어려웠다.식사 후.정유준은 회사 업무로 인해 별장을 나왔다.하영은 주방으로 가서 임 씨 아주머니께 과일을 좀 부탁하려고 했다.자리에서 일어나자 양다인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정형편이 안
정적을 깨는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아버지한테서 걸려 온 전화 란 걸 확인한 하영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쥐고 발목의 아픔을 참으며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하영의 목소리가 무거웠다.[하영아, 아빠다. 넌 어찌 아빠한테도 전화 한 통도 없니?]“아빠가 저를 차단했잖아요. 빚쟁이들이 저를 이용해 아빠 찾아 낼까 봐…… 잊으셨어요?”강성문은 어색하게 두 번 웃었다.[허허, 아빠가 깜빡했네. 미안하구나. 그나저나 지금 어디에 있니?]“야근 중이에요.”[오오, 야근하면 야근수당도 나오니…… 잘됐네.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일이야! 그런데 하영아, 너 지금 혹시 수중에 돈 좀 있니?]하영이 컵을 꽉 움켜잡았다. 강성문은 돈 문제 말고, 다른 일로 연락한 적이 거의 없다.지난번에 자신을 카지노에 버리고 도망간 일을 설마 이렇게 빨리 잊었단 말인가?하영은 말투가 딱딱하다.“없어요! 있던 돈 모두 빚 갚았는 걸요!”[몇 만원도 안 되겠어? 하영아, 설마 몇 만원도 없는 건 아니겠지?] 전화기 너머로 강성문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하영은 가슴이 씁쓸했다.“아빠, 이렇게 저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어야겠어요? 엄마 병원비를 한 번이라도 댄 적 있어요? 아빠 도박 빚도 제가 다 갚았잖아요. 대체 뭘 어쩌라는 거예요?”[어떻게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니? 너를 지금껏 어떻게 키웠는데……너 돈 좀 번다고 아빠한테 유세 떠냐?]하영은 코를 훌쩍이며 애써 서운한 감정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이젠 정말 돈이 없어요. 다음 달에 다시 이야기해요.”[잠깐, 잠깐!]다급한 강성문은 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하영아, 나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 너 돈 안 주는 면 진짜 양심이 없는 거다!]하영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또 도박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가 봐요. 지난번의 교훈으로는 부족했나요?”[너 그런 식으로 말 할 거야?] 강성문이 버럭 소리쳤
흰 가슴살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전에도 이렇게 입었는데, 오늘은 왜 또 갑자기 안 되는 거야?정유준에게 따지는 것도 귀찮아, V형의 등이 드러나는 흰색 롱 드레스로 갈아입었다.그러나 드레스를 갈아입은 모습을 본 정유준의 표정은 ‘더욱 별로’라고 말하고 있다.하영의 몸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위가 바로 등이다. 가늘고 곧게 벌어진 나비 모양의 어깨뼈가 아름다움을 더했다.매번 침대에서도 그의 가장 원초적인 성적 충동을 일깨우던 부위이기도 하다.그 아름다움은 자신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입고 나가서 누구를 꼬시려는 거야!?유준은 일어나 드레스를 진열해 놓은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몇 벌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 하영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연출할 수 있는 인디안 핑크색 롱 드레스를 골랐다.하영이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왔다. 파인 곳이 없다. 노출도 없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그녀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차에 앉자 정유준은 신발 박스를 건네주었다.하영은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저에게 주시는 건가요?”정유준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설마 허시원에게 주겠어?”운전하는 허시원은 백미러를 통해 둘을 살폈다.“…….”신발 박스를 받아 열어보니 둥근 코의 은색 작은 하이힐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의식적으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자기 발목을 슬쩍 보았다. 그래도 유준이 나름 자신에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유준이 다친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선샤인 호텔.정유준이 하영을 데리고 로비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별고 없으시죠!”“정 사장님도 오늘 경매에 오셨군요…….”다가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자, 하영은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비록 이런 장면에 익숙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달리 다른 사람과 배가 부딪칠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정유준의 팔짱을 풀고 말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정유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영은 자리를 떴다.
명함을 받고 하영은 스스럼없이 말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하영이 떠날 때까지 소예준의 시선은 하영을 떠날 줄 몰랐다.닮았어…… 너무 닮았어…….“오빠!”소희원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소예준은 고개를 돌렸다.하영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소예준을 본 희원은 짜증이 몰려왔다.“오빠! 오빠도 저 불여우한테 넘어간 거야? 왜 계속 쳐다보고 난리야?”희원이 또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듣고 소예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넌 어찌 아직 명문가 규수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니?”“오빠도 저 여우한테 반한 거 아니야? 왜 계속 저 여자 편만 들고 그래?”……더 이상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영은 유준 곁에 가 머물기로 했다.그의 곁에 앉자마자 유준은 하영의 창백한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왜? 어디 안 좋아?”하영은 대충 얼버무렸다.“좀 답답해서요.”정유준은 담담하게 시선을 거두었다.“이따가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면 알려줘.”이런저런 거추장스러운 물건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하영은 그냥 말을 아끼기로 했다.몇 분 뒤, 사회자가 오늘 밤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첫 번째 경매품이 나왔을 때, 정유준의 휴대전화도 진동하기 시작했다.양다인의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즉시 통화버튼을 눌렀다.“유준 씨, 어디야? 제발…… 나 좀 도와줘! 살려줘……!”공포에 질린 양다인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옆에 앉아 있던 하영 귀에까지 들렸다.정유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어…… 유준 씨, 나 너무 무서워…….”정유준은 재빨리 일어섰다“위치 확인해서 나한테 보내. 전화 끊지 말고, 바로 갈게!”말을 마친 유준은 하영을 바라보며 명령조로 얘기했다.“가자!”“…….”두 사람의 애정 문제에 왜 굳이 나를 데려가려 할까?……가는 내내 하영의 귓가에 양다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차 안의 분위기도 착잡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정유준의 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얼굴이 시뻘건 강성문이 몸을 비틀거리며 병실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술에 취한 게 분명했다.강성문은 하영도 있는 것을 보고 얼굴에 즉시 웃음기를 띠었다.“아, 우리 하영이도 있었네!”양운희는 강성문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말을 했다.“여기 뭐 하러 왔어?! 나가요!!”하영은 얼른 일어나서 양훈희를 다독였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수술 마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화내시면 몸에 안 좋아요.”강성문은 입을 삐죽거렸다.“돈 좀 줘라…… 그러면 갈게!”하영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강성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아빠, 엄마 아직 병상에 누워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엄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해요?”강성문은 하영을 노려보았다.“너희 엄마는 네 돈으로 편안하게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나는? 집도 절도 없이, 오갈 데도 없고…… 매일 길거리에서 자는 거 모르지?”순간 강성문은 자신이 한 말실수를 깨닫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하영과 양운희 두 사람은 분명히 들었다.양운희는 인간에게 질려 버린 듯 강성문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집? 집으로 뭐했는지 당신이 제일 잘 알 텐데!”강성문은 배 째라는 식이었다.“빚 갚았다. 됐냐?”“정말 너무하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지…….”“아…… X발, 내가 네 돈 썼어?!”하영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머릿속이 텅 비었다.3년.아버지의 빚을 짊어진 지 꼬박 3년이다.어머니에게 작은 보금자리라도 만들어 드리려고 집을 장만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다.하영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왜?” 그녀는 중얼중얼 입을 열었다.말다툼하던 강성문은 초조하게 하영을 바라보았다.“뭐가? 왜?”“왜 아빠는 이렇게 자기밖에 몰라요? 어찌 나와 엄마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아요?”하영이 물었다.“너랑 네 엄마 생각해서 집을 판 거야…… 내가 빚을 갚아야…….”“빚이요?”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