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정 사장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강하영 씨는 각종 산부인과 검사 결과 모두 깨끗합니다. 완벽한 처녀입니다.”병원 검사실 입구에서 경호원이 전화기 저편에 있는 남자에게 공손하게 말했다.강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행인들의 이상한 시선을 최대한 견뎌야 했다.어머니는 아픈 상태이고, 아버지는 거액의 노름빚을 졌다.이 두 큰 짐은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자기 몸을 밑천으로 삼아 정유준의 침대에 올랐다.잠시 후, 경호원의 전화에서 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난원으로 보내.]……난원.어두컴컴한 불빛 아래 하영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긴장한 채 이불 속에 움츠러들었다.침대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잘생기다 못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의 그림 같은 눈썹 아래에는 깊고 차가운 봉황의 눈동자가 있다.정유준, 김제를 휩쓸고 있는 막강한 제왕.하영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남자가 이불을 들추자 강하영의 깨끗하고 매끈한 몸이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들어왔다.곧 뜨거운 키스가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몸의 마지막 장애물이 뚫렸을 때 강하영은 아픈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정유준은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눈물 흘리지 마. 네가 선택한 일이야. 그리고 기억해. 아무나 내 침대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어느덧 잠에서 눈을 뜬 하영은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정유준은 옆에서 고요히 자고 있었다. 하영의 기억이 잠시 흐릿해졌다.어느덧 정유준과 알게 된 지 이미 3년이 흘렀다.3년 동안 그녀는 그의 개인 비서였고, 더욱이 그의 오피스 와이프였다.뜻밖에도 어젯밤에 그들이 처음 만난 날의 꿈을 꾸었다.하영은 지긋지긋 아파오는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려고 했다. 이 때 침대 머리맡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 유준은 재빨리 일어나 핸드폰을 받았다.“얘기해.” 그는 핸드폰을 귓가에 바짝
호텔 방문이 열렸다.매튜는 금빛 단발머리에 헐렁한 가운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그런대로 잘생긴 얼굴에 푸른 눈은 마치 독사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천만 원의 성과금을 위해 그녀는 지금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사장님, 실례합니다.”매튜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리며, 웃는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비켜 세웠다. 그러고는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강 비서님, 드디어 오셨네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두근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 같았지만 하영은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그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스위트 룸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곁눈질로 객실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을 꼼꼼히 훑어보았다.매튜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은 후, 하영은 비로소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똑같이 앉았다.곧이어 매튜가 와인 한 잔을 건네왔다.잔을 받아 든 하영은 매튜의 와인잔에 낮게 부딪혔다.“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매튜의 눈에는 화색이 돌았다.“강 비서님 뭐 좀 아시네. 쭈뼛쭈뼛하지 않고…… 좋아, 내 스타일이야!”하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순조롭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손에 든 와인을 쭉 들이켰다.이를 본 매튜의 미간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이렇게 술 한 잔 마시고, 내 계약을 따내려는 건 아니지? 그럼 너무한데…….”하영은 매튜가 순순히 계약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집어치웠다.와인잔을 내려놓고 못 들은 척 사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사장님께서 우리 MK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MK의 실력도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매튜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자, 제가 저희 사장님을 대표하여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러 왔습니다. 사장님, 어떻습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매튜의 얼굴에 웃음이 걷혔다. 하영을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하영은 비록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냉정을
강한 현기증을 참으며, 하영은 문 쪽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나서기 전,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순간, 높고 큰 인간 벽에 부딪혔다.그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건 더없이 익숙한 얼굴이었다.하영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계약서를 유준의 가슴으로 밀어 넣었다.비록 유준의 옷을 꽉 잡았지만, 가녀린 몸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져 바닥에 축 처졌다…….그러고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사장님, 계약서에 서명했어요. 5천만 보너스 준다고 약속한 거 잊지 마요…….”하영이 쓰러지는 것을 본 유준은 즉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이때 매트도 방에서 쫓아 나왔다.하영을 안고 있는 유준을 본 매트가 분노를 참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았다.“미스터 정! 그 여자 내놔!”매트의 말을 들은 유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이어 뒤따라온 허시원이 매튜를 가로막으며 경고했다.“매튜 사장님, 지금 감히 우리 사장님의 사람을 건드리겠다는 겁니까?”매튜는 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글자씩 내뱉었다.“그럴 리가! 저 여자 혼자 왔다고!”허시원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럼 우리 사장님이 여기에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매튜는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검은색 마이바흐 뒷좌석.유준의 다리에 누워 있던 하영은 갑자기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녀는 여린 입술을 벌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꼬대를 했다.약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뺨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었다.그윽한 차 안의 불빛 아래 유준의 칠흑 같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예리한 턱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는 하영의 작은 손을 잡고 눈을 치켜뜨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프로젝트팀에 연락해. 매튜와 합작한 프로젝트, 지금 당장 자금 투입 중단하라고……. 그놈이 찾아와
아침을 먹고 두 사람은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30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가 회사 앞에 세워졌다.운전기사가 공손하게 차에서 내려 유준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차 안의 남자는 긴 다리를 내디디고 차안에서 내렸다.몸에 맞게 맞춤 제작한 블랙 코트는 그의 존재가치를 극도로 부각시켰다.눈부신 태양아래, 그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왕자와 같았다. 그의 카리스마는 모든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정유준은 희고 긴 손가락을 내밀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손에 든 자료를 옆좌석의 하영에게 건네주었다.한순간, 그윽한 눈동자가 살짝 멈추었다.유준은 하영의 꽃잎 같은 핑크색 입술을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입술 모서리를 가볍게 문질렀다.“립스틱 제대로 발라.”말이 끝나자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장자리에 묻은 립스틱을 지워주었다.따뜻하고 가벼운 촉감에 하영의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렸다.유준의 눈동자 속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 있는 것을 보고, 하영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그러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심장은 터질 듯 빨리 뛰어도, 하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평온했다.하지만, 정신은 혼미해지는 듯했다…….정유준은 손을 거두고 얇은 입술을 위로 올리며, 몸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하영은 마음속의 가벼운 설렘을 뒤로하고 아이패드를 열어 신속하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정유준에게 오늘의 스케줄을 보고했다.“9시에 고위층 회의가 있고…….”“정 사장님!!”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낯선 여자의 그림자가 갑자기 다가왔다.여자는 직접적으로 정유준을 향해 달려왔다. 하얀 두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고 애걸복걸했다.“사장님, 제발…… 인사팀에 남게 해주세요.저는 정말 이 직장이 필요합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정유준의 준엄한 표정엔 짙은 혐오가 떠올랐다.그는 한쪽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눈빛을 보내며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끌어내!”경호원이 재빨리 앞으로 나가 여자의 팔을 잡고 회사 밖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