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하영을 쳐다보던 허시원은 곧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사무실 문이 다시 닫히자, 하영은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두 손을 이마에 괴고 의자에 앉았다.정유준의 행동으로 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윙윙-책상 위 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하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핸드폰 화면에 엄마의 주치의인 의사 부진석의 발신 표시가 떴다. 급히 전화를 받았다.“부 선생님!” 하영은 긴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혹시 저희 엄마한테 무슨 일 있나요?”부진석이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영 씨, 지금 바로 병원에 와 줄수 있어요?]부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하영은 즉시 일어섰다.“네, 지금 곧바로 갈게요!”……20분 뒤.코트 없이 셔츠만 하나 입은 채로 하영이 병원 앞에 나타났다.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재채기가 나오더니 한기가 드는 듯했다. 하영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어머니의 병실 입구에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껌을 씹으면서 부 의사에게 껄렁껄렁하게 말하고 있다.그를 본 하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빠른 걸음으로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발소리에 부 의사와 남자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강하영을 본 남자가 하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는 말투로 얘기했다.“어머, 강 비서님 오셨네!”하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부 의사와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가죽 재킷 남자에게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주 사장님, 제가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요. 빚 독촉하는 건 이해하는데 우리 어머니의 병실에는 안 왔으면 좋겠어요…….”주 사장이라는 남자는 계속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말했다.“네 아버지는 또 도망갔어. 네 엄마 안 찾아오면 누구를 찾겠어?”하영은 마음속에서 치솟는 화를 참으며 주 사장이라는 자를 쳐다보았다.“이번에는 또 얼마인가요?”
“말씀하세요. 뭔데요? 듣고 있을게요.”양운희는 눈을 뜨고 천장을 한번 보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하영아, 사실 너는…….”“여보!”양운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병실 입구에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남자가 하나 보였다.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이미 남자는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그의 몸에는 술과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후줄근한 옷차림의 사내는 병상 옆 하영의 건너편에 앉았다.“주 사장이 널 괴롭히지 않았지?”양운희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당신 뭐 하러 왔어?! 아직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뜯어간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강성문은 입을 쩝쩝 다시더니, 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영아, 잠깐 커피 좀 사 와라. 엄마랑 단둘이 할 얘기가 좀 있다.”하영은 걱정 어린 눈길로 양운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부부에게 얘기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의자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당부했다.“아빠, 엄마 화나게 하지 마요.”강성문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강성문이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하영은 여러 번 고개를 돌려 양운희 쪽을 보며 병실을 나섰다.방문이 닫히는 순간, 강성문의 얼굴에 있던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감정 없는 사람처럼 양운희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야, 그 입 좀 얌전히 다물고 있으면 안 돼?”양운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이제 하영이 그만 이용해!”강성문은 냉소했다.“내가 지금껏 키웠는데, 키워준 밥값 좀 하라는데 그게 어때서?”?“당신만 입 다물면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어! 만약 그 얘기를 꺼내면, 하영이가 더 이상 직장에 다니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리 알아!”침대 시트를 부여잡은 양운희는 분노한 나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강성문! 너는 사람 새끼도 아니야!”강성문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나는 사람 새끼도 아니니까…… 당신 입이나 조심해. 괜히 쓸데없는 말 했
정유준은 하영에 관한 궁금증을 억누르고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저녁에 강 비서에게 약 좀 보내주고, 인사팀에 전화해 3일간 휴가라고 전해.”마지막에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집에 사람 한 명 들여서 강 비서한테 하루 일과 살피고, 나한테 보고하라고 해.”“예, 사장님!” 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으로 옮겼다.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웃음을 머금고 음식을 주문하는 양다인을 보니, 허시원까지도 여러 감정에 사로잡혔다.……이날 밤, 하영은 정유준의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약을 먹고 병원 병상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몸을 뒤척일 때 그녀는 손등에 주삿바늘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본 양운희가 당부했다.“하영아, 함부로 움직이지 마. 네가 열이 난 채로 기절한듯 자고 있어서 부진석 선생님이 링거를 놔주셨어.”하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너도 참, 열이 그렇게 나면서, 얇은 셔츠 하나만 입고 왔구나.”양운희는 참지 못하고 또 중얼거렸다. 엄마의 이런 걱정스러운 푸념을 듣고 있으니 하영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하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려 양운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엄마, 배고파요.”양운희는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기다려 봐, 식사 시간이 다 됐구나. 좀 있으면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을 갖고 올 테니 조금만 참아. 이 녀석아. 밥을 제때 안 챙겨 먹으니 이렇게 기운이 없지.”말이 끝나자마자 간병인 아주머니가 구내식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하영이 깨어난 것을 보곤, 턱으로 입구를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하영아, 입구에 잘생긴 남자 둘 있던데, 혹시 네 친구니?”하영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친구요?”머릿속에서 갑자기 정유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자, 깜짝 놀라 몸을 곧게 폈다.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입구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허시원은 문을 빼꼼 열고 얼굴만 들이밀었다.“강 비서님, 잠깐 나와 보실 수 있으
부진석은 하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허시원은 자신도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눈치껏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서 기다렸다.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며 분위기는 어색해져만 갔다. 하영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사장님…….”“이렇게까지 해서 너한테 얻어지는 게 뭐야?”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유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겼다.그리곤 눈에는 조롱을 띈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너에 대한 나의 동정?”하영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사장님,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정유준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 작은 하영을 내려다보았다. 조각 같은 얼굴엔 화가 가득했다.그의 눈빛은 마치 살얼음에 담금질한 칼처럼 차가웠다.“불쌍한 척 동정표 구걸하는 수단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아니면 나한테 받은 돈이 부족해서 의사 꼬셔서 어머니 공짜로 치료라도 하려던 셈이었어?”정유준의 말은 비수와 같이 하영의 가슴을 후벼 팠다.숨이 멎을 만큼 아팠다.열이 나서 아픈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픈 척을 한다는 건지?어제 따뜻했던 그의 행동도 가식이었나?‘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눈에 난 그저 오피스 와이프일 뿐 이였나?’하영은 두 손을 꼭 쥐고 냉정을 유지했다.곧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사장님은 저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습니까?”거리를 두면서도 공적인 비서 스타일의 대답은 정유준의 가슴에 더욱 분노를 자아냈다.그는 하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깊은 눈동자는 하영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으려 무척 노력하는 듯했다.“돈을 원한다면, 더 줄 수 있어. 하지만 우리 관계가 끝나기 전까지 남자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알아서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하영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하고 공무적인 비서 스타일의 말투로 입을 열었다.“사장님, 계약서에 분명하게 적혀 있잖아요. 사장님 첫사랑이 돌아오면 모든 계약이 종료된다고……. 그럼 저도
저녁 8시.하영은 정리한 스케줄을 정유준에게 보냈다.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하영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회사를 나섰다. 허시원이 차 옆에 서서 자신을 대기 중이었다.하영을 본 허시원은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사장님께서 하영 씨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난원으로 모셔다드리라고 했습니다.”하영은 거절했다.“아니요, 제집으로 갈게요.”“강 비서님,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하영은 힘없이 대답했다.“사장님께서는 강 비서님이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비서님 돌볼 이모님을 구했어요. 지금 난원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하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대체 나랑 뭐 하자는 것일까?’‘첫사랑과 함께하면서 나랑도? 둘 다 갖겠다는 거야 뭐야?’하영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자와 한 남자를 나눠 가질 만큼 비천하지는 않다.하영이 입을 열어 다시 거절하려 하자 허시원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강 비서님, 양다인 씨의 위치는 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먼저 포기할 생각인가요?”하영은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론 냉소적으로 웃었다.“허 비서님, 지금은 감정보다 돈이 중요한 세상이에요.”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하영은 허시원을 돌아서 떠났다.허시원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차에 올라,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강 비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답니다.”정유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럼 이제 다시는 별장으로 돌아올 필요 없어! 내일 강 비서 물건 모두 갖다 줘버려.”“……네.”……다음날.노크 소리가 하영을 깨웠다.하영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 앞으로 나갔더니, 허시원이 큰 종이박스 두 개를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예상하는 하영은 잠시 침묵한 뒤 허리를 굽혀 상자를 집안으로 들여놨다.박스를 집안으로 다 옮긴 뒤 하영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허 비서님, 감사합니다. 집에 대접할 게 없네요. 조심히 가세요.”
하영은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잠시 뒤, 유준과 허 비서가 어제 병원에 왔었다는 게 생각났다.얼른 핸드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강 비서님.]“허 비서님, 어제 사장님이 저희 어머니 병원비 내주셨어요?”[네, 사장님께서 어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강 비서님 어머니의 병원비 계좌에 1억 원을 넣었습니다. 강 비서님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했구요…….]돈의 출처를 확인한 하영은 바로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장님 지금 어디시죠?”정유준은 여전히 냉담했다.[뭔 일이야? 말해.]“1억 원, 꼭 갚을 거예요!” 하영은 확고하게 말했다.정유준은 코웃음 쳤다.[난원으로 와.]하영은 전화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병원을 나섰다.……난원.하영은 별장 안이 캄캄한 것을 보고 불을 켜려 벽을 더듬었다.손가락이 스위치에 닿을 때쯤 익숙한 기운이 갑자기 밀려왔다.미처 고개를 돌리지 못했는데 허리를 감싼 손이 넓고 따뜻한 품으로 끌어당겼다.유준이 그녀를 들쳐 안고 소파 쪽을 향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영은 긴장하여 그를 밀었다.“사장님! 저는 오늘 돈 갚는 문제로 이야기하러 왔어요!”정유준은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하영을 소파에 눕히고 하영의 몸을 누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용히 해!”말이 떨어지자 바쁘게 유준은 하영의 속옷 단추를 가볍게 풀었다. 그러고는 거칠게 키스를 하며 그녀를 탐닉하기 시작했다.한바탕 격전을 치른 후.하영은 격전의 흥분을 애써 참으며 옷으로 몸을 가렸다.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첫사랑 그분께서 질투할까 걱정되지 않은가요?”정유준은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건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야.”하영은 입술을 깨물었다.“1억……, 꼭 갚을 거예요.”정유준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로 갚을 거야? 그 몸뚱어리?”굴욕감이 감돌자, 하영은 옷을 손에 꼭 쥐고 말했다.“어떻게 갚을지는 제 문제니,
양다인은 정유준의 핸드폰을 건네주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온 사람이 하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동작을 멈칫했다.순간 머릿속은 고민이 되는 듯했지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그때.전화가 끊긴 것을 본 하영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지금 바쁜가?’하영은 이를 악물고 정유준이 다시 전화할 것이라는 믿고 택시를 타고 카지노로 향했다.……한 시간 뒤.하영은 럭셔리하고 웅장한 카지노 입구에서 내렸다.그리고 홀을 지나 길을 물어 2번 룸 입구까지 찾아갔다.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밀어 열었다.순간 피비린내가 뒤섞인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룸 안쪽에는 흉악한 얼굴의 남자가 몇 명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 강성문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놈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잘린 손은 거즈로 대충 감아 지혈 중이었다.입구의 인기척에 강성문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하영을 보자 강성문의 눈에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하영아! 하영아! 살려줘!”카지노에 들어서기 전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하영은, 강성문을 본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빠른 걸음으로 강성문을 향해 걸어갔으나, 이내 험악한 남자들에게 가로막혔다.“저기…… 미스 강, 이보세요! 뭐가 그리 급해? 돈부터 줘야지?”시가를 피우고 있는 얼굴에 흉악한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의 더러운 눈빛은 끊임없이 하영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눈빛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더러운 욕망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쳤다.하영은 마음속 공포와 분노를 누르고 고개를 돌려 칼 흉터 남자를 바라보았다.“우리 아빠 먼저 풀어줘요. 그러면 돈을 줄게요!”칼 흉터 남자가 손짓하자 강성문을 잡고 있던 무리가 뒤로 물러섰다.강성문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그러고는 바로 하영에게 달려갔다. 그의 눈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감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영아! 나 먼저 갈게
옆 룸입구까지 간 유준은 문을 걷어찼다.하영의 볼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눌려 있는 모습을 본 유준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검은 눈동자에서 피에 굶주린 듯한 음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방안을 가득 채웠다.유준은 대머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정강이를 걷어찼다.곧이어 그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집어 들어 대머리의 대가리를 내리쳤다.유준은 온몸에 차가운 피를 두른 염라대왕같이 무자비했다.장내에 감히 앞으로 나서서 저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유준이 손에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부수는 것을 본 허시원은 바로 다가가 자기 겉옷을 벗어 유준에게 건네주었다.유준은 몸을 돌려 하영 앞으로 가 옷으로 그녀를 감싸주었다.하영을 안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똑똑히 보았다.그녀의 눈물이 소리 없이 그의 손등에 떨어졌다.품속의 하영을 꼭 껴안고 차가운 소리로 허시원에게 명령했다.“저 새끼 병신으로 만들어!”허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사장님!”놀라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던 양다인은 유준이 하영을 안고 자신의 앞을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은 점차 짙은 불안과 질투로 변해갔다.……난원.가정부 임씨는 피와 상처로 얼룩진 하영을 보고 놀라 다리가 후덜거렸다.“사장님, 아가씨……”“여의사로 한 명 불러와!”유준은 말을 끝내고 하영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도착한 그는 기절한 하영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그녀의 얼굴에 선명하게 찍힌 빨간 손자국을 본 유준의 눈엔 분노가 가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임 씨는 여의사를 모시고 왔다.의사는 하영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후 유준에게 말했다.“하영 씨는 보여지는 외상 외에 다른 큰 문제가 없습니다.”그제야 유준은 안심한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아주머니, 선생님 모셔다 드리세요!”임 씨는 곧 여의사를 데리고 떠났다.문이 닫히자, 유준은 휴대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