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남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다른 사람의 침대에 바쳤다. 다들 강지찬은 여색을 멀리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강지찬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발로 내 침대에 기어 올라왔는데 그냥 보내주면 그건 예의가 아니죠." 정유진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남자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남자는 그녀를 위해 엑스 남친을 괴롭혀 주는데. "짜릿했어요? 내 여자가 되어준다면 평생 짜릿하게 해 줄게요." 날이 갈수록 남자는 점점 그녀에게 미쳐가고 있었다. "당신의 몸도 마음도 반드시 내 것이어야만 해요!" 남자의 거친 공격, 과연 그녀는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View More강지아와 서원준의 결혼식 날, 날씨가 흐렸고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강지아에게 화장을 해주러 온 송민욱은 들어오자마자 불평했다.“강 대표, 정말 날은 기가 막히게 잡았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오면 어떻게 헤. 우리 예비 신부의 미모에 영향을 주잖아.”그러다가 강지아의 얼굴을 보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맙소사! 설마 어젯밤에 또 한숨도 못 잔 거야?”강지아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어이없는 듯 말했다.“어떡하죠?”송민욱이 하인에게 말했다.“저기 누구야, 계란을 몇 개 삶아서 아가씨 얼굴에 문질러줘. 시간이 얼마 없어서 나도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아.”강지아는 요 며칠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꼼꼼하게 관리했다. 피부가 희고 매끈해 손과 발 모두 뽀송뽀송했지만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얼굴이 초췌했다.송민욱은 안달이 났다.“안 되겠어. 네 얼굴 화장 못 할 것 같아. 내 명성마저 나락 가게 생겼어.”겉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두 손으로 강지아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연구했다.“정말 화가 나. 이렇게 좋은 미모를 소중히 여기지 않다니! 너무해!”꼬박 세 시간이 지났고 강지아는 드디어 모든 스타일링을 완성했다.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 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늘 꿈꾸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마음은 전혀 들뜨지 않았다.강지찬과 정유진, 서원준이 계속하여 들어오는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서원준은 친척이 없기에 오는 사람은 대부분 동료와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결혼식은 강씨 가문에서 주관하게 되었다.누군가 서원준에게 명문가에 시집가는 데 성공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서원준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시집을 가든 장가를 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강지아가 그녀와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서원준은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마음대로 놀려, 난 상관없으니까.”서원준은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다들 편히 있어. 난 신부 좀 보고 올게.”하지만 친구들이 가려는 서원준을 막았다.“보긴
강지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모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요? 무슨 뜻이에요?”“온유한이 지아 씨의 말만 듣는다는 뜻이에요.”임유희의 말에 강지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강지아를 조용히 바라보는 임유희는 애원하는 눈치였지만 슬픈 기색은 별로 없었다.“강지아 씨가 온유한에게 우리 아빠를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부탁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빠와 오빠도 약속했어요. 이번 한 번만 봐주면 계속 태안 그룹과 협력하고 두 번 다시 배신하지 않겠다고요.”임유희도 이 말을 하는 자신이 우스운 모양이었다.용서해 주면 계속 협력하겠다고?역시 뻔뻔한 임씨 가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온씨 가문과 협력하려고 하니 말이다.욕심을 부리지 않고 임유희를 온유한에게 기필코 시집보내겠다고 애를 쓰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이런 꼴은 되지 않았을 텐데...임유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우습죠? 엄마와 오빠가 가라고 강요를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온 거예요. 엄마가 이틀 동안 밥도 안 먹었거든요. 내가 지아 씨를 만나러 오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몰라요.”강지아가 담담하게 말했다.“난 임유희 씨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굳이 사람 목숨으로 날 설득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온유한을 찾으러 가는 일 절대 없을 테니까.”“괜찮아요.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어요.”“그럼 왜...”“그냥 혹시나 해서 온 거예요.”임유희는 강지아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서원준과 같이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온유한, 그 사람은 너무 무서운 사람이에요.”임유희는 강지아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전에 쓸데없는 망상을 하면서 두 사람의 감정에 끼어든 일,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죄송해요.”말을 마친 임유희는 강지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로 돌아섰다.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었고 지금 사과하는 것도 너무 늦었다.이틀 뒤 임유희가 출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들은 말에 의하면 계속 공부하기 위해 해외에 나갔다고 했다. 아마 엉망진창이 된 임씨 가문
명성 빌딩에서 나온 강지아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차에 앉아 한창 쉬고 있을 때 온미정이 차를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온미정은 이미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명성 빌딩에 갔다고?”온미정이 묻자 강지아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어떻게 아셨어요?”온미정이 말했다.“유한이가 알려줬어. 유한이가 명성 빌딩에 있어. 네가 놀랄까 봐 나더러 만나보라고 했어.”알고 보니 온유한은 집에 있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괜찮아요.”강지아의 말에 온미정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청첩장은 잘 받았어. 꼭 갈게.”온미정은 강지아의 얼굴을 보며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시간이 정말 빠르네. 우리 지아가 시집갈 때가 다 되고 말이야. 우리가 가족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강지아는 웃을 수 없었다.‘고마워요’라는 말도 목구멍에 걸려 한참 후에야 내뱉을 수 있었다.온미정이 강지아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결혼식 준비 때문에 힘든 거야?”“조금요.”온미정의 말뜻을 강지아도 알아들었다.강지아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온미정이 화제를 돌렸다.“너와 네 오빠 덕분에 온씨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강지아는 마음이 착잡했다.“별말씀을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다...”온유한이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또다시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온미정도 이내 눈치를 채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저녁에 서원준을 만났다.서원준은 그녀가 결혼 때문에 긴장해 할까 봐 밥을 먹은 뒤 영화까지 봤다.“오후에 어디 갔었어? 전화도 안 받던데. 형수님에게 물어 보니까 네가 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하더라고.”결혼 날짜가 확정된 이후로 서원준은 자연스럽게 강지찬과 정유진의 호칭을 불렀다. 강 대표님, 정 대표님 보다 훨씬 부드러웠다.서원준은 강지아에게 스테이크를 썰어주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강지아는 서원준이 프러포즈 할 때 줬던 반지를 찾으러 명성 빌딩에 갔다.아래층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고 작업자들 또한 외벽을 청소하거나 수리하고 있었다.“강지아 씨, 왜 이제야 돌아온 거예요?”돌아서 보니 하얀 티셔츠에 밀크티 한 잔을 든 낯익은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누구...”“저는 저기...”남자가 아침 식사 가게 위치를 가리켰다.“종업원이에요. 제 이름은 서준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강지아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오늘 스타일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어요. 죄송해요.”“아니에요.”서준은 수다쟁이였다.“왜 혼자예요? 남자친구와는 같이 오지 않았나요?”“남자친구는 여기에 살지 않아요.”그러자 서준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아닌데... 남자친구가 계속 여기에 살았잖아요. 전에 해외에 간 후에도 여기 자주 와서 머물렀어요. 우리 가게에 와서 아침도 먹었어요. 강지아 씨가 우리 가게의 죽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 후로 강지아 씨가 여기에 올 때마다 매일 아침 밥을 사 갔어요.”그 말을 들은 강지아는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다.서원준이 이쪽에 산다고?그녀가 해외에 간 후에도 여기에 와서 아침을 먹었다고?“사람 잘못 본 것 같은데요?”강지아가 웃으며 말했다.“제 남자친구는 여기에 살지 않아요. 의사도 아니고요.”서준은 밀크티를 마시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온유한 씨가 남자친구가 아니에요?”“네?”강지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누구라고요?”“온유한 씨요. 화재 당일 밤에 같이 있었잖아요. 그날 여기서 구조하느라 밤새 바쁘게 돌아다녔어요. 지금 여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강지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그럼 조금 전 여기에 살면서 매일 아침 식사를 사 간 사람이 온유한이라고요?”“네. 우리 가게 단골손님이에요. 명성 빌딩에 살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서준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지아 씨, 설마 남자친구가 온유한이 아니에요?”그러
강씨 본가.드레스와 액세서리가 끊임없이 집안에 들어왔다. 강지아의 임무는 드레스를 입어보고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었다.정유진은 출근도 하지 않고 매일 결혼식을 챙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강지찬 또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결혼이라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려 했다.“고모, 이 귀걸이 예쁘지 않아? 마음에 안 들어?”아홉 살이 넘은 정연우는 귀걸이를 들고 자신의 귀에 대보며 말했다. 예쁜 장신구를 보자 녀석의 눈이 반짝였다.강지아는 목걸이를 녀석의 손에 몇 번 감아주며 팔찌로 하라고 선물했다.“마음에 들어?”“응, 마음에 들어.”정연우는 고모의 표정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고모,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거야?”강지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또 들켰네?”정연우가 말했다.“결혼하기 싫은 거 다 티나.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게 아주 무섭다고 하던데... 무서워서 그러지?”강지아가 피식 웃었다.“그럼 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고 널 낳을 때 무서웠을까?”“아니.”정연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아빠를 사랑하잖아!”정연우는 애어른처럼 한숨을 쉬었다.“사실 지금 고모부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저번에 형원이 그 녀석과 두 시간 내내 그림을 그렸어. 정말 대단해!”정연우는 강지아를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고모, 진짜 유한 삼촌 버릴 거야?”강지아는 녀석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어린이들은 함부로 어른들 일에 참견하면 안 돼.”“그럼 우리 일에도 어른들이 끼어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 오늘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았는데 엄마에게 말하면 안 돼.”서원준이 도착했을 때 강지아는 방금 도착한 웨딩드레스를 보며 멍해 있었다.“신상 모델인데 마음에 안 들어?”강지아가 웨딩드레스를 보며 말했다.“입어 봤어. 맞는 것 같아.”서원준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맞는 것 같다고? 마음에는 안 들고?”“마음에 들어. 그냥 이걸로 할게. 다른 것은 안 입어 봐도 돼.”서원준
강지찬, 정유진, 그리고 최의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강지아는 없었고 온유한만 마스크를 쓴 채 구조를 돕고 있었다.“지아는 서원준 씨와 이미 갔대요.”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한 정유진이 한마디 하자 최의현이 입꼬리를 올렸다.“지아를 구한 사람은 유한인데 서원준이 데려간 거네?”강지찬이 최의현을 힐끗 바라봤다.최의현도 이런 상황에 웃어야 할지 아니면 온유한에게 동정을 표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한쪽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온유한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안 됐네.”강지아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강지찬과 정유진은 자리를 떴다.온유한은 화재 현장에서 밤새 바쁘게 돌아다녔고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큰불이 모두 진압되었다. 그리고 갇혔던 사람들이 모두 구조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지친 얼굴로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그를 인터뷰하려던 기자는 그의 피곤한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저 사람, 낯이 익네요.”그러자 다른 기자가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저 사람! 태안 그룹 대표이사 온유한 아니에요? 지난번에 태안 그룹 근로자들이 난리를 피울 때 나도 현장에 있었어요.”그때 카메라에 많은 사진을 남겨뒀던 기자는 순간 눈이 반짝 빛났다.“정말 온유한이에요?”“아마도요. 그런데 오늘은 많이 못 찍었어요.”서울 명성 빌딩 화재는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화재를 일으킨 용의자와 그의 전 여자친구 모두 죽었고 사상자들도 아주 많았다.사람들이 화재에 주목함과 동시에 한 사람의 이름도 실검에 올랐다.온유한.“온유한이 옥상에서 내려오자마자 구조에 나섰어요. 의사로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줬어요.”“온유한이 밤새 쉬지 않고 계속해서 화상 환자의 응급 치료를 도왔어요.”“온유한이 구조하느라 여자친구에게도 신경 안 썼어요. 정말 대단해요.”“온유한의 여자친구가 헬리콥터를 한 모녀에게 양보했어요. 우리 이웃들이 옥상에서 다 봤어요.”‘온유한’이라는 세 글자가 다시 한번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면서 태안 병원도 같이 언급되었다.“태안 병원이 비록 요금은 터무니없게
몇 분이 지나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 강지아는 어느새 온유한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느꼈다.온유한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겁먹지 마.”두 눈을 꼭 감은 강지아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때 누군가 소리쳤다.“사다리가 왔어요!”나이가 많은 그 노부부를 제외하고는 다들 사다리로 우르르 몰려갔다.아래층의 불길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완전히 진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온유한과 강지아는 노부부와 함께 제일 마지막에 갔다.고소공포증이 있는 강지아였지만 다행히 밤이라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사다리를 탄 후에도 다리에 힘이 풀려 온유한이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지 못했고 오히려 두려운 마음에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온유한이 말했다.“지아야,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평생 네 마음속에 남을 수 있을까?”강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온유한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서원준과 결혼 안 하면 안 돼?”강지아는 화가 나서 온유한의 손을 뿌리쳤다.“미친!”온유한이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네가 약속하지 않으면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깜짝 놀란 강지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뭐라고?!”온유한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이 한마디 때문에 강지아는 고소공포증마저 잊었다.안전한 곳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그녀 상태를 물었지만 강지아는 그저 손을 흔들었다. 지금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온유한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시끄러운 화재 진압 현장에서 다들 바쁘게 돌아다녔다. 바닥에는 온통 물이 뿌려져 있었다.구정물에 발을 디딘 강지아는 그제야 신고 있던 슬리퍼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멍해진 강지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이였다.“이거 놔!”온유한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진짜로?”발바닥이 만여 마리의 벌레가 묻은 것 같은 느낌에 강지아는 당장 알코올로 발을 소독하고 싶
온유한의 머리도 많이 길었기에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그는 소매를 걷어붙였고 깡마른 팔뚝에 힘이 있어 보였다.온유한은 그런 팔뚝으로 강지아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유한 오빠가 있잖아.”강지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익숙한 말 한마디, 오랫동안 아무것도 모르며 자란 강지아에게 큰 힘이 되었던 말이었다.지금 이 말을 들으니 진짜로 두렵지 않았다.그를 살짝 밀었지만 밀어내지 못했다.“이거 놔.”온유한이 그녀를 더 꼭 안자 강지아는 고개를 돌려 그의 팔에 세게 깨물었다.온유한은 아파서 ‘악’ 소리를 냈지만 그녀를 놓지 않았다.옆에 있던 점잖은 노부부는 그들이 싸우는 줄 알고 한마디 했다.“아가씨, 이런 상황에 생사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지 않겠나? 서로 숨기지는 마. 인생에서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데 그 사람도 마침 본인을 좋아한다면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거야.”온유한이 노부부에게 말했다.“네. 제가 많이 좋아해요.”강지아는 온유한이 다른 데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그와 거리를 뒀다.온유한이 노부부에게 본인이 잘못했다는 둥,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둥 하는 말들이 가끔 들렸다.휴대폰이 또 울렸고 이내 강지찬이 준비한 헬리콥터가 도착했다.헬리콥터는 강지찬의 개인 소유로, 대부분 출근할 때 교통수단으로 사용했다.헬리콥터를 본 순간 사람들은 눈이 반짝였다.하지만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었기에 강지아는 본인이 타지 않고 어린 딸과 그 엄마를 타라고 했지만 온유한이 허락하지 않았다. 온유한은 일단 어린 소녀와 강지아더러 타라고 했다.헬리콥터 프로펠러 바람이 너무 강해서 서로 소통할 수도 없었고 말을 한다고 해도 들리지 않았지만 온유한의 뜻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그러나 강지아는 고집을 피우며 어린 소녀와 그녀의 엄마를 헬리콥터에 태웠다.헬리콥터가 떠난 후 점잖은 노부부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지아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서원준이 저녁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신경이 곤두선 강지아는 하루 종일 자다가 저녁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나서는 동하민과 화령을 불러 게임을 했다.화재가 발생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게임 한 판이 끝나 헤드폰을 벗자마자 키가 큰 사람이 뛰어 들어와 그녀를 잡고 밖으로 나갔다.‘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것이지?’강지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누가 들어오라고 했는데? 이거 놔!”강지아가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자 온유한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온유한은 설명할 겨를이 없었기에 앞에 있던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밖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본 강지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무슨 일이야? 밖에 왜...”온유한은 그녀의 휴대전화를 주워들더니 팔목을 잡고 이곳을 빠져나왔다.이번만큼은 강지아도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온유한은 강지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강지아는 큰불이 난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불이 난 것이지?22층인 이곳에서 불빛이 저렇게 보인다는 것은 불길이 세다는 것을 설명했다.문을 뛰쳐나오자 복도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들 아래층으로 달려가고 있었다.강지아가 엉겁결에 따라나서려 하자 온유한이 그녀를 잡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우리는 내려가면 안 돼. 옥상으로 가자.”두 사람은 서둘러 옥상으로 달려갔고 그의 말을 들은 몇몇 사람들도 같이 위로 뛰었다.옥상에 도착하여 내려다보니 금방 도착한 소방차가 화재 진압을 준비하고 있었다.하지만 불길이 워낙 거셌기에 쉽지 않았다. 누군가 말하길 불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층을 다 태웠다고 했다.강지아 일행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온유한은 한 손을 허리에 짚고 전화를 걸었다.“맞아... 불길이 거세서... 지아는 나와 같이 있어...”온유한은 강지아를 힐끗 본 후 말했다.“하지만 별일은 없어.”아마 강지찬과 통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이내 정
변호사 사무소에서 나오자 정유진은 다리가 풀린 채 주저앉을 뻔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 약혼남 사건은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강 씨 가문과 연관이 돼 있는 한 서울 그 어디에도 이 사건을 맡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미리 치른 선금까지 그대로 돌려주겠다며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하는 모습은 유진을 깊은 심연으로 빠트렸다.유진과 약혼남 한빈은 대학교 시절부터 만나온 사이였다. 한빈의 사업을 옆에서 지지해주며 드디어 회사를 어느 정도 규모로 키워냈고 둘의 결혼도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시점에 누군가가 회사의 자금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고발했고 한빈은 검찰에 소환된 채 회사 역시 록다운 상태가 되었다.그들의 눈앞에 아른거리던 행복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배후 세력은 강 씨 가문이었다.서울에서 제일가는 재벌에 기침 한 번이면 서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강 씨 가문이었다.유진은 차를 끌고 한빈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 며칠을 잠조차 제대로 못 잔 듯 퀭했고 수염마저 거뭇거뭇한 것이 전에 보던 위풍당당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유진을 보자마자 한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때, 유진아? 변호사는 뭐라고 했어?”유진은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변호사들이 최선을 다해줄 거야.”“거짓말하지 마!” 한빈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강 씨 가문이 꾸민 일이야, 온 서울에 우리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없는 거 맞지?”한빈이 눈치챌 줄 몰랐던 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답했다.“... 변호사가 선금을 모두 돌려줬어. 강 씨 가문을 건드리는 사건이라고…”한빈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챘다. “강 씨 가문이 일부러 그런 거야. 우리 회사를 집어삼키려고 의도적으로 날 함정이 빠트린 거지. 유진아 날 믿어줘, 난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알잖아. 내가 왜 자금 세탁 같은 일을 하겠어?”유진이 답을 주기도 전에 한빈이 급하게 덧붙였다.“날 구할 방법이 하나 있어. 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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