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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가하
잠에서 깨자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유진은 갑자기 한 대 맞은 듯 그대로 멍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벌거벗은 가슴팍과 마주쳤고 그대로 시선을 위로 올리자 충격에 휩싸였다.

강지찬이었다.

아려오는 몸이 어제 강지찬과 자버렸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강지찬은 그녀의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침대에서 내려왔다.

넓은 어깨에 좁은 골반, 모두가 말하는 이상적인 몸매였지만 지금 유진의 눈에는 등에 가득한 붉은 손자국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샤워 타올을 집어 허리춤에 묶은 강지찬이 확 커튼을 열어젖히자 방이 환해지며 유진의 엉망이 된 몰골이 드러났다.

“왜 그랬어요?” 유진은 멘탈을 잡지 못한 채 소리 질렀다. “쓰레기야 당신!”

그냥 술만 마시면 된다고 했잖아!

강지찬은 조롱의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말했다.

“한빈은 이미 집에 있을 거예요.”

유진은 흠칫 놀라더니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강지찬은 그녀의 턱을 잡고는 물었다.

“당신이 원한 건 다 해줬잖아요. 왜 울어요?”

“전... 전 당신이랑...”

강지찬이 사악하게 웃었다.

“먼저 나랑 자겠다고 찾아왔는데, 들어주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죠?”

정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

이불이 스르르 떨어지며 드러난 뽀얀 가슴팍에는 어젯밤 사랑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다.

강지찬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의현이 나오는 지찬을 보고는 음흉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쯧쯧, 독특한 취향이 있었네. 그 많은 여자는 쳐다도 안 보더니 다른 남자 부인이 좋은 거야?”

강지찬은 헛웃음을 쳤다. “다른 남자 부인?”

“그럼 네 부인이겠냐?” 의현이 훈계를 시작했다.

“유진 씨와의 스캔들이 이미 한빈 귀에 들어갔을 거야. 결혼 준비까지 하는 마당에 혼사는 엎어졌다고 봐야겠지.”

강지찬이 대꾸하기도 전에 의현이 말을 이었다.

“근데 한빈도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좋은 놈 같아 보이진 않았어. 전에 나한테 모델 하나 보낸 적 있었는데 감히 손대지도 못했어. 엄마가 알면 맞아 죽을까 봐. 이번엔 살겠다고 자기 예비 신부까지 내다 팔다니. 헛, 저런 쓰레기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게 말이 안 돼!”

얼마나 지났을까, 유진은 그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 위 남겨진 붉은 자국을 볼 용기가 없어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손발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몸을 담그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어젯밤 입었던 치마는 이미 입을 수 없게 됐고 침대에는 흰색의 원피스와 새 속옷 세트가 놓여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누가 놓고 간 것인지 뻔했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로 한 씨네로 달려갔다.

한 씨네 도우미가 유진을 보고는 기쁨에 겨워 인사했다.

“아가씨 마침 잘 오셨어요. 한 대표님이 무사히 돌아오셨어요!”

유진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드디어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빈은 무사했다.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때 한빈 엄마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우리 아들이 돌아온 지 반나절도 넘었는데 누군 하나도 걱정이 안되나 보구나. 싸돌아다니다 이제야 나타나는 걸 보니.”

또 다른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놓칠세라 위로해왔다.

“양어머니 진정하세요. 빈이가 돌아왔으면 된 거죠.”

유진은 마음속에 말 못 할 아픔을 품은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왔어?” 한빈도 자리에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은 채 역겹고도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유진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몇 번이고 훑었다.

한빈의 엄마는 유진을 탐탁지 않게 여긴 데다 결혼 전 유진에게 손을 댔다간 큰 화를 당한다는 미신에 한빈도 몇 년간 꾹 참아왔었는데 결국엔 강지찬 좋은 일만 시켜버렸다.

정유진은 그의 눈빛에 양심에 찔려 버벅거렸다.

“한빈아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 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빈의 엄마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컵을 들고는 냅다 내려쳤다.

“이 빌어먹을 년. 우리 가문의 체면은 네가 다 깎아 먹는구나!”

이마에 찢어지는 고통이 전해지더니 뜨뜻한 액체가 유진의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갑자기 손발이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무슨 뜻이지... 혹시, 알게 됐나?

옆에서 듣고 있던 한빈이 무표정으로 내뱉었다.

“유진아, 결혼은 없던 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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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모두 강지찬에게 아부하러 모여들자 한빈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짐을 느꼈다.다 끝났다.그는 인제야 강지찬이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의도임을 알아챘다.“강 대표님...”자리에 사람이 많지만 않았더라면 한빈은 강지찬에게 무릎이라도 꿇을번했다.“저, 저...”목적을 달성했으니 강지찬은 더는 길게 있고 싶지 않았다.그는 한빈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유진을 껴안으며 고개를 숙여 물었다.“지루하지 않아요?”강지찬이 누구인가, 서울에서 그가 고개를 숙일 만 한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유진은 그의 연기에 동조하듯 “네.”라고 대답했다.“더 있고 싶지 않아요.”강지찬은 그녀를 안아 일으켜 세우더니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그럼 집으로 돌아가요.”“집”이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진짜로 돌아갈 듯한 기분이었다.철저히 무시당한 한빈은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나가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보며 마음이 무너져내렸다.정말로 끝났다.강지찬 일행이 떠나자 모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듯 핑계를 댔다.“미안하게 됐네요. 한 대표님, 아들 숙제를 봐줘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한 대표님, 노모가 몸이 안 좋으셔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 합시다.”여자 손님들 역시 한 명도 빠짐없이 나가버렸고 시끌벅적하던 룸에는 곧 한빈과 소희 둘만 남았다.소희의 공들여 치장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저 배은망덕한 자식들!”텅 빈 연회장을 둘러보며 한빈은 소파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셔츠의 등판은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젖어있었다.프라임 홀을 나서자 강지찬이 유진을 놓아줬다.이젠 연극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갈 때였다.최의현이 정유진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며 웃었다.“아가씨, 이건 강 대표님의 보상입니다.”유진은 의현의 손에 들린 은행 카드를 쳐다보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보상이요? 내 순결을 빼앗고 내 명성을 추락시킨 것에 대한 보상인가요? 아니면 오늘 당신들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11화

    유진은 몸에 휴대폰이고 지갑이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택시를 잡아 친구 집에 도착한 후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를 빌려 조예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나와달라고 부탁했다.예원은 유진의 화려한 드레스 차림을 보더니 빠른 속도로 택시비를 내며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오늘은 뭐야? 도망가는 신부야, 신데렐라야?”요즘 디자인 작업으로 바빠 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유진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나 한빈이랑 헤어졌어.”예원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어?”엘리베이터에 들어서서야 정신을 차렸다.“왜? K그룹에 찍혀서 구치소에 있다며?”“나왔어.” 유진은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남 얘기하듯 건조하게 이야기했다.“내가 강지찬을 찾아갔고, 그 사람이랑 잤어.”예원이는 또다시 입을 떡 벌렸다.“...”‘강... 강지찬? 내가 아는 그 강지찬이 맞는 걸까?’조예원과 유진은 대학교 동창이었고 작년에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실을 함께 개업했다.작업실은 예원이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가끔 늦은 시각까지 야근할 때면 예원이네 집에서 잠을 잤으므로 이곳은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었다. 옷이며 생활용품이 모두 있었기에 문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이마의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식탁에는 방금 쪄낸 만두가 놓여 있었다.이 만두는 지난번 유진의 엄마가 직접 빚어 얼려둔 것으로 야근하고 돌아올 때 간단하게 야식으로 먹으라고 챙겨준 것이었다.예원도 두뇌 회전이 빨랐던지라 앞뒤 얘기를 이어보더니 스스로 진실에 가까워졌다.“밥 안 먹었지?”마음이 아프면서도 한심해 보였다.“지금 네 모습 그대로 집에 가면 아저씨 아줌마가 마음 아파 못사실걸.”유진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짐을 느꼈다.“그래서 널 찾아온 거잖아.”“얼른 먹기나 해.” 예원은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절친에게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해 답답한 채로 꾹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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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5화

    공항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서원준의 행동은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내려줘.”강지아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볼 테면 보라 그래. 내 여자 친구를 내가 안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서원준은 말을 마친 뒤 턱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동하민에게 말했다.“짐은 뒤에 있어요.”말을 마친 뒤 그대로 강지아를 안고 자리를 떴다.오늘 유난히 들떠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서원준은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강지아를 데리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갔다.그리고 두 사람만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특별히 동하민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뒀다.동하민은 어쩌다 먹어보는 호화로운 저녁에 주스를 마시다가 참지 못하고 SNS에 사진을 올려 자랑했다.[사장님과 맛있는 식사. 회사 복지가 아주 굿굿.]그리고 아홉 장을 꽉 채워서 음식과 아름다운 야경 사진까지 올렸다.멀지 않은 창가 자리에서 서원준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너무 강렬했고 그의 눈에는 강지아, 오직 그녀만 보였다.그러다가 문득 네모반듯 한 케이스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자 강지아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서원준은 케이스를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반지가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케이스 안에는 예쁜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고 강지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뻐?”“응.”마침 강지아는 오늘 귀걸이를 안 하고 나왔는데 서원준은 재빨리 귀걸이를 가지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그의 손끝이 너무 뜨거웠는지 강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움직이지 마.”“나 처음으로 여자한테 이런 걸 해줘서 자칫하면 찌를 수 있어.”그의 말에 강지아는 그제야 얌전히 앉아서 서원준의 손길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는지 서원준의 향수 냄새가 빠르게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는데 참으로 사람에게 안전감을 주는 동시에 남자 매력이 흠씬 풍기는 냄새였다.그러나 여전히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4화

    온유한과 현채영이 떠나간 뒤 최의현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이 최신애와 다를 바 없었다.“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야?”결과가 너무 허탈하고 온유한의 태도에 놀랐다.한규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런 상황을 보고도 설마...”강지찬도 한껏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뜨면서 속으로 생각했다.‘겨우 이거야? 지아랑 비교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닌데.’최신애는 화병으로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바짝 독이 올라와 있었고 깨어나서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또 한차례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집안일에는 여태껏 신경조차 쓰지 않던 온혁진도 어젯밤 이야기를 듣고 불같은 화를 냈다. 그러다가 최신애의 행동을 먼저 꾸짖었다.“아직도 모르겠어? 유한이는 지금 일부러 당신 말을 안 듣는 거야. 당신이 강지아랑 그 애를 갈라놓는 바람에 지금 일부러 저런 수준의 여자를 데려와서 심기를 건드리는 거라고.”“예전에 지아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지?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지금 그나마 유명해지고 온씨 가문에서도 많이 도와줘서 이 바닥에서는 지금 우리 가문이랑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는데 괜히 당신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바람에 우리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고 있잖아.”최신애는 이마를 짚고 그에게 반박했다.“지금 제 탓을 하는 거예요? 그럼 그때 당신은 뭐 하고 있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요. 3년 전에 당신도 강지아를 엄청 싫어했잖아요.”정곡을 찔린 온혁진은 최신애의 말을 인정하기 싫어 버럭 화를 냈다.“여태껏 집안일은 항상 당신이 결정했고 분명 자기 실수로 집안일이랑 회사까지 말아먹게 만들고는 지금 남 탓만 하고 있잖아. 임씨 가문의 일은 무조건 빨리 해결해야 해. 만약 그 사람들이 손잡고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거로 결론이 나면 우리 쪽에서 준비한 새 프로젝트는 망하는 건 물론이고 손실도 어마어마할 테니까.”최신애는 그의 입에서 임씨 가문이라는 단어를 듣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3화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2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1화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10화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9화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8화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907화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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