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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가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12-13 18:11:45
유진은 몸에 휴대폰이고 지갑이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 친구 집에 도착한 후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를 빌려 조예원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예원은 유진의 화려한 드레스 차림을 보더니 빠른 속도로 택시비를 내며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오늘은 뭐야? 도망가는 신부야, 신데렐라야?”

요즘 디자인 작업으로 바빠 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유진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한빈이랑 헤어졌어.”

예원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서야 정신을 차렸다.

“왜? K그룹에 찍혀서 구치소에 있다며?”

“나왔어.” 유진은 엘리베이터에 기댄 채 남 얘기하듯 건조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강지찬을 찾아갔고, 그 사람이랑 잤어.”

예원이는 또다시 입을 떡 벌렸다.

“...”

‘강... 강지찬? 내가 아는 그 강지찬이 맞는 걸까?’

조예원과 유진은 대학교 동창이었고 작년에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실을 함께 개업했다.

작업실은 예원이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가끔 늦은 시각까지 야근할 때면 예원이네 집에서 잠을 잤으므로 이곳은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었다. 옷이며 생활용품이 모두 있었기에 문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이마의 상처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식탁에는 방금 쪄낸 만두가 놓여 있었다.

이 만두는 지난번 유진의 엄마가 직접 빚어 얼려둔 것으로 야근하고 돌아올 때 간단하게 야식으로 먹으라고 챙겨준 것이었다.

예원도 두뇌 회전이 빨랐던지라 앞뒤 얘기를 이어보더니 스스로 진실에 가까워졌다.

“밥 안 먹었지?”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심해 보였다.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집에 가면 아저씨 아줌마가 마음 아파 못사실걸.”

유진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널 찾아온 거잖아.”

“얼른 먹기나 해.” 예원은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절친에게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해 답답한 채로 꾹 참고 있었다.

유진은 정말 배가 고팠다. 저녁도 못 먹은 채로 강지찬 옆에서 그런 큰 연기를 해댔으니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였다.

얼추 다 먹고 나자 예원이 그제야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말해. 상처는 또 무슨 일이야?”

유진은 속이지 않고 사실대로 털어놨다.

“한빈이 엄마가 컵으로 내리쳤어. 내가 자기 아들 체면을 다 깎아 먹었다고.”

“저 미친 노인네!” 예원이는 상을 엎을 뻔했다.

“날 기막혀 죽일 셈이야? 이런 일이 있었으면 날 불렀어야지. 너 언젠간 내가 손 좀 봐줄 거야.”

유진은 피식 웃었다. “널 불렀어도 이기지도 못 할거잖아.”

억지로 웃으며 예원이 걱정하지 못하게 했다.

잘 먹고 잘 웃는 모습에 예원도 한 시름 놓은 듯했다.

“다른 건 됐고, 한빈이랑 헤어진 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찬성이야.”

예원이 말하지 못해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어. 한빈이 그거 자기밖에 모르는 쓰레기라고. 네 주량이 어떻게 단련된 것인지 잊었어? 너 겨우 몇 살이라고 걔 손님 접대 자리에 불려가서 그 늙은 노인네들이랑 술을 마셔대더니 병원에까지 실려 가고. 걔는 미래를 위한 거라고 구구절절 말하지만, 너한테 더 나은 삶을 주기는 개뿔! 강지찬을 찾아서 사정 해란 것도 그 녀석이 시킨 거지? 겨우 빼내 줬더니 널 더러워할 낯짝이 남아있다고?”

유진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 한빈의 사랑이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무정함 역시 진짜였다.

“강지찬...” 예원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유진은 물을 한 입 마시더니 숨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한빈이를 괴롭힐 도구에 불과했어. 지금은 소용없어졌지만 뭐. 왜 한빈이를 괴롭히는지는 그들의 일이지 나랑은 상관없어.”

예원이 다가오더니 꽉 끌어안았다.

“그럼 생각하지마. 똥차를 떠났으니 다시 시작하는 거야. 푹 잠도 자고, 이틀 동안 휴가를 줄게, 작업실은 내가 있는데 뭐.”

잠을 푹 잔다는 건 불가능했다. 해가 거의 뜰 때가 되어서야 유진은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마저도 계속 꿈에 시달렸다. 한빈이었다가 한빈의 엄마였다가 또 강지찬이였다가...

잠에서 깨니 벌써 점심이 다 되었다. 머리맡에서는 새 휴대폰이 놓여있었고 유심도 예원이 다 개통해 놓은 상태였다.

유진은 밀려오는 감동에 어쩔 줄 몰랐다.

내려가 뭐라도 먹고 집으로 가려고 할 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옆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유진아 얼른 돌아오렴, 어떤 사람이 너희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있어. 엄마는 이미 충격에 쓰러지셨어.”

머릿속이 띵하고 울렸다.

전화를 끊을 새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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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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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꾼이 점점 더 많아졌고 정유진은 더는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역겨웠다.한빈이 그녀에 대한 감정은 진심이라고 생각했었다.우스웠다.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가식이고 거짓이었다.그녀가 대학교 1학년 때, 한빈은 4학년이었다. 그녀가 대학교 3학년이던 그해 한빈은 그녀에게 소희를 소개해 주며 자기 어머니에게 딸 같은 아이라고 했었다.처음에 그녀도 소희 언니라고 불렀는데 알고 보니 소희는 한빈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언짢게 생각했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한빈의 어머니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모호했던 건 아니었을까?정유진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내가 그렇게 바보였어?구경꾼들은 대부분 연세가 꽤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이었고 그들은 비난의 눈빛으로 한빈과 소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요즘 젊은것들은 자기애가 너무 없어.”“남자 쪽이 정말 쓰레기네. 욕심이 너무 많아.”“울지 마, 저런 인간 말종은 멀리하는 게 좋아.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누군가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고, 그제야 그녀는 자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작 한빈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니.“고마워요.”정유진은 눈물을 닦았다.참다못한 소희가 입을 열었다.“다들 뭘 안다고 왈가왈부에요? 저 여자가 먼저......”정유진은 싸늘하게 소희를 노려보았다.“야, 소희. 너 지금 여기서 나와 시비 따지고 싶어? 난 괜찮은데, 넌 괜찮겠어?”지켜보던 한 아줌마는 너무 화가 나서 심장병이 올 것 같았다.“내가 젊었을 때 말인데, 제일 친한 친구 년이 내 남자 친구의 애를 임신하고 나한테 자랑하러 왔더라고. 그런데 애가 다섯 살도 되기 전에 그 망할 자식이 또 바람을 피웠지, 뭐야. 남의 남자 빼앗으면 언젠가는 똑같이 빼앗기게 돼 있어. 아가씨, 남자 친구 단속 좀 잘해. 그러다 아가씨도 같은 꼴 나.”“아주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소희는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한빈은 그녀의

    Last Updated : 2023-12-13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19화

    하지만 강지찬은 마침 그녀의 등 뒤에 있었고 그녀는 강지찬의 신발을 그대로 밟아버렸다.노기등등했는데, 바로 멋쩍어지는 순간이다.“타요.”강지찬이 말했다.정유진은 뻘쭘한 표정으로 발을 슬쩍 걷었고 강지찬의 반짝이던 구두에는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그녀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한빈이 그 새끼....... 아니, 두 사람 이미 가고 없는데 이제 연기 그만해도 되겠죠?”마침 택시 한 대가 길가에 멈춰서더니 승객이 내렸고, 정유진은 곧장 택시로 몸을 구겨 넣었다.동작이 스무스한게 마치 물고기와도 같았다.“제가 알아서 갈게요. 길도 다른데.”정유진은 강지찬을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이더니 바로 “쿵”하고 택시 문을 닫아버렸다.강지찬이 지켜보는 가운데, 택시는 그녀를 태우고 다급히 멀어졌다.고개를 숙여 구두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멀리 떠난 택시를 또 한 번 바라보던 강지찬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매번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꿋꿋하게 맞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강지찬은 저도 몰래 그녀를 돕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지만 이 여자는 그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모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개인 번호까지 주었는데......이 순간 강지찬은 확신했다. 그녀는 이미 그의 번호를 지웠을 것이라고.그렇다. 정유진은 이미 그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이때 조예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큰 주문이 들어왔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정유진은 며칠 동안 스튜디오에 가지 않았던지라 가는 길에 버블티 몇 잔을 사서 스튜디오로 향했다.키키는 그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누나, 드디어 왔네요. 더 늦었으면 나 진짜 죽을 뻔했어요.”조예원은 삐걱대는 다리를 휘둘러 키키를 저만치 날려버렸다.“넌 찌그러져 있어. 디자인 한 장 800번을 고치고도 고객님을 만족시키지 못하다니. 너 좀 반성해!”키키는 버블티를 들고 그의 디자인과 씨름하러 자리로 돌아갔다.조예원은 정유진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 그녀를 위해 버블티에 빨대를 꽂

    Last Updated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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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7화

    강지아는 곧 국내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갔다.그녀의 인스타를 보고서야 비행기에 탔다는 것을 안 서원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양심 없는 녀석’이라고 욕을 했다.인스타를 끄려고 할 때 강지아가 올린 글을 보고 멍해졌다.[비행기에 타니까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지네.]무슨 뜻이지?서원준은 그 문구에 눈을 가늘게 떴다.귀국 후 그는 강지아를 만난 적이 없다.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이고 또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매우 바빴다.그동안 강지아는 온유한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진짜로 그들 사이에 금이 갔단 말인가?강지아의 스토리를 본 온유한은 무의식적으로 강지아의 이 문구가 그와 함께 있었을 때의 답답함을 표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얼마 전까지는 주유정이었다가 이번에는 임유희, 강지아도 당연히 피곤했을 것이다.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린 온유한은 본인도 이런 상황이 힘들다고 생각했다.그 후 20일 동안, 강지아와 온유한이 페이스 톡한 횟수는 10번을 넘기지 않았다. 매일 페이스 톡을 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요 며칠 타이밍이 맞지 않은 듯했다.가끔은 온유한이 받기 불편한 상황이었거나 또 어떤 때는 강지아가 바빠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예전에 매일 하던 자기 전 통화도 채팅으로 바뀌었다.내용은 대부분 ‘오늘은 피곤해서 먼저 잘게’ 등이었다.그러면 온 유한도 ‘잘자’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어느 날 한밤중에 강지아가 느닷없이 한마디 보냈다.[보고 싶어.]온유한이 막 답장하려 할 때 강지아가 보낸 메시지를 삭제했다.온미정의 결혼식은 남쪽 지방에서 성대하게 차려졌다.연우는 겨울방학을 맞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같이 미리 이곳에 와서 지냈고 강지아는 이틀 전에 도착해 연우와 같이 놀았다.결혼식 날 강씨 가문 식구들이 모두 참석했고 정유진도 강지찬의 팔짱을 끼고 참석해 온미정의 체면을 세워줬다.온미정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정유진은 처음 봤다.이들은 로맨틱한 서양식으로 결혼식을 했다. 온미정은 한평생 웨딩드레스를 입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예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6화

    온유한이 재활 운동을 할 때 강지아는 창문 너머로 디자인을 보고 있었다. 또 출장 준비를 해야 했고 아마 온미정과 백무영이 결혼할 때가 되어야 돌아올 예정이었다.몇 바퀴 걷자 다리에 힘이 빠진 온유한을 본 재활 선생님은 그더러 쉬라고 했다.물까지 다 마셨지만 강지아는 온유한이 쉬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강지아는 헤드셋을 끼고 스튜디오 디자이너와 영상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온유한은 천진난만하던 소녀가 어느새 성숙하고 예뻐진 것을 발견했다.이렇게 눈부실 정도로 예쁘니까 외국의 재벌 귀족들의 관심을 끌었나 보다.하지만 온유한은 강지아가 본인의 여자임을 당연하게 여겼다.어느 정도 프로젝트 논의를 마친 뒤 옆에 있던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려던 강지아는 커피가 없는 것을 보고 영상 통화 중인 디자이너에게 한마디 했다.“두 사람 중 누가 나와 함께 갈지는 두 분이 결정하고 한 사람은 작업실에 남아 주세요.”이때 누군가 물 한 병을 건네주자 강지아는 무의식적으로 인사했다.“감사합니다.”그 말에 온유한은 가만히 있었다.강지아는 화상 카메라에 비친 온유한을 보고 나서야 물을 건넨 사람이 그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끝났어?”“아직. 잠깐 휴식 중이야.”“그래. 나도 마침 좀 더 할 게 남았으니까 끝나고 나서 같이 밥 먹자.”“그래.”강지아는 계속해서 부하직원들과 프로젝트를 논의했고 온유한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왠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 손을 내렸다.점심에 강지아가 호텔 음식을 배달해 막 차려 놓았을 때 최신애가 온씨 가문 하인과 함께 점심 식사를 가져왔다.강지아가 주문한 요리는 여섯 가지로 아주 푸짐했다.최신애는 보온 통을 온유한 앞에 놓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다리가 아직 안 나아서 의사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위주로 먹으라고 했어.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강지아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으며 최신애에게 인사를 하지 않자 테이블 위의 음식을 훑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5화

    강지찬의 요청으로 최의현, 한규진, 온유한이 모여 서원준에게 식사를 대접했다.이 자리에서 강지찬은 서원준에게 보름 동안 강지아를 돌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테이블에 앉은 사람 중, 서원준과 강지찬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어색해했다.특히 온유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지찬의 이런 행동은 일부러 온유한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강 대표님, 저와 지아는 친구예요. 지아에게 일이 생겼는데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죠.”이 말은 그야말로 온유한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온유한이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최의현이 혀를 내둘렀다.“지찬아, 너 정말...”“내가 뭐? 이미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거야.”오랜 친구였기에 그나마 참은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강지찬은 진작 온유한에게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강지찬이 경은우와 잠깐 얘기하는 사이 서원준도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이때 온유한이 마침 전화를 끊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다리가 완전히 낫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기질은 여전했다.“내가 지아를 발견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요?”서원준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묻자 온유한의 눈빛이 잔뜩 어두워졌다.그는 혹시라도 강지아가 다른 생각을 할까 봐 그날 일을 자세히 묻지 않았다.“얘기해 봐요.”서원준은 담배를 한 모금 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온몸은 침대에 꽉 묶여 있었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어요. 눈만 부릅뜬 채 가만히 있는 모습은 진짜로 죽은 사람 같았고요.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표정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온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온유한은 누군가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서원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지아의 휴대전화에서 무엇을 봤는지 알아요?”“뭔데요?”서원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온 선생님과 임유희 씨의 사진이요. 두 사람이 바닥에 누워서 당장이라도 키스할 것처럼 가까이 있었어요. 어찌나 애틋하던지.”온유한은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4화

    온유한은 강지아가 본인에 대한 감정이 옅어진 것을 발견했다.유한 오빠는커녕 온 선생님이라고도 잘 안 부르고 있다.“오늘 뭐 해?”온유한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다리가 낫지 않아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진료만 했다.“다친 데는 아직도 아파?”“괜찮아.”강지아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환자가 별로 없었기에 온유한도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한편 그의 진료실 문 앞에 있던 임유희는 그가 전화하는 것을 보고 진료실로 들어오지 않았다.온유한이 사무실 문 앞을 힐끗 보자 강지아는 바로 알아챘다.“일 봐. 이만 끊을게.”온유한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강지아가 전화를 끊었다.옆에서 가만히 있던 서원준은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두 사람 사이 곧 끝장 날 것 같은데 그럼 나에게 기회가 생기는 거 아니야?”핸드폰을 옆으로 내려놓은 강지아는 소파에 앉더니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요 며칠 펀은 강지아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희귀한 사파이어 보석 하나만 보내왔다.그렇게 두 사람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강지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매일 그녀의 곁을 따라다니며 일을 하고 생활하는 것을 지켜본 서원준은 왠지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얼마 후, 강지아와 서원준은 마침내 서울로 돌아왔다.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온유한 것도 당연히 있었으며 심지어 정유진의 뱃속에 있는 아기 선물도 있었다.서울로 돌아온 강지아는 다시 예전의 그녀로 돌아온 것 같았다.“온 선생님?”재활 운동 중이던 온유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내 문에 기대 빙그레 웃는 강지아를 발견했다.“왔어?”온유한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달려간 강지아는 옆에 재활 선생님이 있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온유한의 목을 껴안으며 키스를 했다.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재활 선생님은 이미 옆에 없었다.“돌아온다고 미리 말하지 그래? 그럼 공항으로 마중 나갔을 텐데.”이제 설 수 있는 온유한은 강지아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3화

    정유진의 말을 들은 서원준은 의사더러 강지아에게 외부에 긁힌 상처만 치료해 달라고 한 후, 다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낯선 해외 환경이라 의사 치료 방법이 강지아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었다.집에 돌아온 후 강지아는 이내 잠이 들었지만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서원준은 다시 차르에게 주먹을 날렸다.한편 차르는 풀이 죽은 채 맞아도 욕을 하지 않았고 미친 사람처럼 웃지도 않았다.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서원준을 쳐다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내가 설마 우리 천사를 해쳤어?”그 말에 서원준은 또 한 번 그를 걷어찼다.“모른 척하지 마. 조금 전까지 미친놈처럼 날뛰더니 지금은 왜 갑자기 억울한 척하는 거야?”그러자 ‘차르’가 천천히 말했다.“진짜 내가 아니야. 난 지아를 해치지 않아.”“네가 아니면 누구야? 지아를 침대에 묶는 걸 내가 직접 봤어. 하마터면 지아에게 나쁜 짓을 할 뻔했다고! 이 짐승아!”서원준은 옷이 찢긴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짓던 강지아를 떠올리면 이 자식을 한 손에 때려죽이고 싶었다.“나는...”지금 깊은 고민에 빠진 남자는 차르가 아니라 펀이다.펀은 자책하면서도 해명할 길이 없었다.펀이 누구를 좋아하기만 하면 차르가 와서 감정을 파괴했고 잔인한 수단으로 그의 애인과 친구를 갈라놓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믿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진짜 내가 아니야.”죄책감을 느낀 펀도 서원준에게 용서를 빌며 애원하지 않았다.강지찬이 의사를 데리고 왔을 때 강지아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주위 사람들도 그제야 펀에게 조현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서원준은 펀을 풀어주기 전에 여러 번 물었다.“너 진짜 그 얼간이 펀 맞아? 짐승 같은 차르가 아니라?”“맹세할게. 나 진짜 펀이야.”서원준은 그제야 펀을 놓아줬다.풀이 죽은 펀은 잘생긴 얼굴마저 서원준에게 맞아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었지만 화를 내지 않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더니 미안한 얼굴로 강지아를 바라보았다.“배고픈데 밥 있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2화

    강지아에게 일이 생긴 것을 온유한이 모르고 있자 최의현은 화가 치밀었다.“지찬이는 다섯 시간 전에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몰라? 서원준이 얘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까 형수도 너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는다고 하던데 혹시 문자한 건 못 봤어?”온유한이 핸드폰을 뒤적였다. 정유진과 카톡 친구가 되어있긴 하지만 여태껏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형수님, 문자 온 거 없는데...”여기까지 말한 그는 다시 통화기록을 뒤적였지만 정유진에게서 전화 온 기록이 없었다.서원준과 정유진의 전화 부재중 전화 모두 없었다.정유진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온유한은 의심을 거두고 일단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오후 내내 회의하느라 형수님 전화를 못 받았어. 지아는 지금 어때?”“방금 서원준에게 전화했더니 지아가 그냥 긁힌 것뿐이라는데 문제는 너무 놀라서 아직 정신을 못 차렸대.”최의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너도 알잖아. 어릴 때 어땠는지. 서원준의 말을 들어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지찬이가 갔으니까 너는 다리가 불편하니 집에서 소식이나 기다려. 지찬이가 지아를 데려올 거야. 네가 지금 가도 어차피 늦었어.”온유한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알았어.”통화를 마칠 때까지 임유희는 가지 않았다.“강지아 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온유한은 아무런 대답 없이 혼자 휠체어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그의 싸늘한 얼굴에 임유희는 순간 멍해졌다.“온 선생님, 어디 가세요. 제가 밀어드릴게요.”온유한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임유희는 그의 휠체어를 밀어 온혁진의 병실로 갔다.“온 선생님, 여긴... 어머니를 찾으러 가는 거예요? 어머니가 온 선생님의 휴대전화를 건드렸다고 의심하는 건가요?”온유한이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임유희도 온씨 가문 식구가 아니었기에 그저 한숨만 내쉬며 가만히 있었다.온혁진과 밥을 먹고 있던 최신애는 임유희가 온유한의 휠체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1화

    이때 누군가가 방문을 세게 부딪쳐 열었지만 강지아는 그저 멍한 상태였다.이내 차르를 끌고나가더니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불이 켜졌고 누군가 그녀의 몸에 이불을 덮어준 후 입에 붙은 테이프를 뜯었다.손발을 묶었던 끈도 풀렸다.귓가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고 또 누군가는 그녀를 흔들고 있었지만 강지아는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동하민이 울며 외쳤다.“서 대표님, 우리 대표님, 왜 이래요?”서원준은 주먹으로 차르를 때려눕힌 뒤 차르의 몸에 올라타 죽을힘을 다해 때렸다.동하민의 말을 들은 서원준은 더 이상 차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달려와 강지아의 이마를 짚었다.“서 대표님, 대표님이 열이 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마를 만지면 뭐라도 알 수 있나요?”“나도 의사가 아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피가 줄줄 흐르는 강지아의 발목을 본 서원준은 화가 나 다시 차르를 발로 걷어찼다.“옷을 갈아입혀 주고 병원에 가보자.”서원준은 한마디만 한 뒤 차르를 끌고 밖으로 나가 계속 때렸다.차르는 아픈 느낌도 없는 듯 맞으면서도 계속 웃었다.“이 짐승 같은 자식, 지아가 너를 친구로 여기다니!”서원준은 이 자식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그러자 차르가 웃으며 말했다.“하하, 이 자식에게 친구가 있었어. 이런 바보 멍청이에게 친구가 있다니.”“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서원준은 펀이 미친 척 바보인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서원준은 로버트 가문이 현지에서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 알고 있었기에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는 것을 알고 신고하지 않았다.낮에 강지아가 펀에게 납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찰에 말했지만 이곳 경찰은 그저 그를 비웃기만 하고 가버렸다.서원준은 경호원더러 줄을 구해오라고 해서 펀을 묶어놓고는 동하민더러 일단 강지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라고 했다.태안 병원.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로 간 온유한은 휴대전화를 봤지만 강지아에게서 부재중 전화도, 메시지도 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그가 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50화

    차르가 드디어 미쳤다.강지아를 죽일 목적으로 그녀의 목을 있는 힘껏 졸랐다.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느껴진 강지아는 목이 따갑고 너무 아파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눈물만 줄줄 흘렸다.파묻혔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났지만 지금 그녀는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이제 곧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강지아는 다시 물고기가 다시 물속으로 돌아와 살아난 것처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하지만 차르는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스스로를 때리며 강지아 앞에서 기괴한 모습을 보였다.그의 왼손이 강지아에게 닿지 못하도록 오른손을 잡고 있었고 얼굴 표정도 변덕스러웠다.“차르, 건드리지 마!”“어머, 이 여자는 역시 네게 특별하네.”“차르, 제발 이러지 말고 돌아가.”“왜 내가 돌아가야 하는데? 사라져야 할 사람은 너야! 이 바보야, 네 연약함과 무능함이 나를 만든 거잖아. 그런데 나더러 돌아가라고? 펀, 순진한 생각은 집어치워.”“넌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어. 차르, 이 세상에 네가 머물 곳은 없어.”“닥쳐! 너야말로 죽어야 해!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고 너의 존재는 로버트 가문의 수치야!”...강지아는 놀란 얼굴로 눈앞의 사람이 차르와 펀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집안의 빛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너무 놀라 기절했을 것이다.펀과 차르가 이 몸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고 결국 착한 펀이 졌다.차르가 강지아의 치마를 낚아채자 ‘슥’하는 소리와 함께 강지아는 배가 시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차르가 다시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았다.겁에 질린 강지아는 아래층에 귀를 기울일 틈도 없이 그저 서원준이 자신을 발견해주길 빌었다.또다시 ‘슥’하는 소리와 함께 치맛자락이 또 뜯겨 나갔다.이 순간 차르가 그녀를 꽁꽁 묶은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옷이 전부 찢겼을 것이다.“봤어?”차르가 또 다가와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바보 멍청이가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49화

    위층에 있는 강지아는 그저 희미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아래층에서 나는 소리가 서원준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서원준은 위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강지아가 아무리 소리쳐도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방안에 불을 켜지 않아 차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눈앞이 어두워 다른 감각들이 더욱 예민해졌다.차르가 쓰는 향수는 펀과 달리 좀 더 차갑고 음산한 느낌을 줬다. 왠지 차르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는 것 같았다.어둠 속에서 강지아를 노려보고 있는 차르는 마치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악마 같았다.강지아는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떴지만 호흡이 점점 가빠지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사실 강지아는 꽤 오랫동안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집에 있는 바닥 등이나 벽 등은 날이 어두워지면 바로 켜졌기에 어둠을 두려워할 틈이 없었다.잊혀진 낯선 공포가 엄습해 오자 강지아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끈에 묶인 손목과 발목이 아픈 줄도 모른 채 미친 듯이 벗어나려 했다.차르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 그녀의 몸부림 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강지아가 조금 전과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마음이 약해진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너도 정상은 아니었네.”차르가 몸을 굽혀 강지아의 귀에 대고 유혹하듯 말했다.“우리는 모두 미치광이여서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보여. 우리야말로 같은 사람들이네.”강지아는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려움에 떨었다.그녀는 미치광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다!그녀는 강지아이다!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이내 강지아는 차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차르는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발을 만지더니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그 멍청이가 너를 좋아해. 그런데 내가 그 자식보다 먼저 너를 얻으면 어떻게 될까?”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지아는 더 심하게 몸부림을 쳤다.공기 속에서 피비린내가 났고 이내 그녀의 발목에서 피가 났다.하지만 이 피 냄새는 차르를 더욱 자극했다.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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